한국전쟁의 미시사를 향하여

글쓴이 조원형 | 작성일 2016.10.4 | 목록
박찬승 지음
발행일 2010년 6월 21일 | 면수 320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7,000원

한국전쟁이 우리에게 남겨준 역사적 유산은 어마어마하다.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현대사를 결정짓는 구조적 요건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은 한반도에 평화에 가져다주긴 고사하고 분단체제를 고착화시켜 버렸다. 이후 한반도에는 냉전 논리에 입각한 체제 경쟁만이 전개되었다. 평화에 대한 상상력은 적의 파멸이라는 전제 하에 가능했을 뿐이다.

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남한과 북한의 독재체제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확립되었다는 사실이다. 남한의 이승만이 1952년 부산정치파동으로 독부(獨夫)의 길을 가게 되었다면, 북한의 김일성은 정치적 라이벌인 박헌영의 남로당 세력을 숙청하며 자신의 권력을 강화시켰다. 전쟁 초기에 발생한 민간인 학살은 우리의 집단기억에 레드 콤플렉스를 심어주어 극우반공체제의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한국현대사를 공부하는 데 한국전쟁은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담론이 냉전 이데올로기의 재생산에 주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한국전쟁에 관한 관심은 ‘6․25’라는 역사용어를 통해 전쟁의 발발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전쟁은 남한의 북침으로 시작되었는가. 아니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는가. ‘6․25’라는 집단기억은 전쟁 발발의 책임을 물음으로써 증오의 정치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일조하였다. 여기에 전쟁의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은 은폐되어 버렸다.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의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정통주의와 수정주의 사이에 벌여지고 있는 동안 냉전이 종식되고 새로운 역사연구 방법론이 대두되었다. 이제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는 군사사와 정치․외교사뿐만 아니라 사회사로 확장되었다. 여기에는 학살, 점령, 피난, 여성 등의 문제들이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출간된 『마을로 간 한국전쟁』(박찬승 저, 돌베개)은 한국전쟁에 대한 냉전적 시각과 거시적 관점을 넘어서서 전쟁의 영향이 구체적인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났는지 살펴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한국전쟁의 미시사 연구를 알린 초석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발로 쓴 마을의 역사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저자가 10년 동안(2000~2009) 전국을 누비며 쓴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머리가 아니라 발로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책은 저자가 쓴 6편의 논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여기에는 전남 진도, 전남 영암, 충남 부여, 충남 당진, 충남 금산이 중요한 지리적 공간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이 다섯 마을을 취재하며 전쟁 시기의 마을 역사를 구술사(Oral History)로 재구성하였다. 새로운 역사연구 방법론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구술사는 생존자들의 체험과 기억을 역사 담론의 장으로 이끌어낸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마을의 역사를 저자는 구술사를 통해 복원하고 있다.

이 책은 마을이라는 구체적인 지리적 공간에서 한국전쟁이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허나 여기에는 전쟁 이전의 마을 역사를 간과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저자는 전쟁 이전에 축적된 마을의 갈등이 전쟁을 계기로 격렬하게 나타났음을 강조한다. 이 책에 따르면, 과거 양반과 평민 간의 신분 갈등, 지주와 소작인 간의 계급 갈등, 친족 내부의 갈등, 마을 간의 갈등,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갈등 등은 한국전쟁의 발발과 함께 학살(Genocide)이라는 역사적 비극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이를 ‘복합적 갈등구조’로 명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전남 진도의 X리에 발생된 학살은 동족마을 내부의 갈등이 전쟁을 통해 골육상쟁으로 이어진 것이다. 충남 부여군의 두 동족마을은 기존의 신분 갈등이 한국전쟁을 통해 학살로 격렬하게 나타났다. 충남 당진군 합덕면의 경우는 훨씬 더 복잡하다. 여기에서 일어난 대립과 학살은 지주․마름 대 소작인․머슴 간의 갈등, 기독교와 사회주의의 갈등, 경쟁 집안 간의 오랜 갈등 등이 중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전쟁 초기의 민간인 학살이 결코 갑자기 발생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식민지 시기에 형성된 여러 가지 갈등들이야말로 학살의 요인으로 작동되었다. 따라서 이 책은 학살의 ‘식민지적 기원’을 탐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한국전쟁 연구는 점차 거시에서 미시로 변화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내전으로서의 한국전쟁을 강조한다. 저자는 전쟁 시기의 마을 주민들이 좌우로 나뉘어 서로 갈등을 빚고 마침내 충돌하는 양상을 포착하고, 그 역사적․사회적 배경을 추적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다섯 마을의 사례들은 한국전쟁의 미시사 연구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물론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지역적 편중성을 들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이 책에 등장하는 주요 공간은 전라남도와 충청남도에 한정되어 있다. 한권의 책이 모든 걸 담아내야 하는 건 아니지만, 경상도와 강원도가 다뤄지지 않아 아쉽기도 하다. 만약 가능하다면, 전쟁 시기에 벌어진 마을의 갈등과 학살이 지역별로 어떠한 차이가 발생했는지를 분석하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한 마을의 구체적인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에 낯선 지명과 인명이 가득한데. 이는 책의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하는 것 같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을의 지형이나 사건의 인과관계를 그림과 지도로 한 눈에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러나 이러한 지적은 책의 의의를 전혀 훼손하지 못하는 지엽적인 것에 불과하다. 『마을로 간 한국전쟁』은 한국현대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한국전쟁의 다양한 역사상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한국전쟁 시기 마을에서 벌어진 작은 전쟁들은 어쩌면 우리의 부모, 조부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한국현대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거나 가지려는 분이라면 일독을 권한다.

강성호

순천의 동네 책방 ‘그냥과 보통’에서 <마을로 간 한국전쟁>을 추천해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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