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가 만난 조희룡 : 박정애(중앙대학교)

글쓴이 조원형 | 작성일 2018.1.18 | 목록
발행일 2017년 9월 20일 | 면수 392쪽 | 판형 변형판 175x225 | 장정 소프트커버 | 가격 30,000원

미술사 연구에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작가작품론은 가장 고전적인 연구  방법의 하나이다.

그런 만큼 오래 전부터 조선 서화가(書畵家)를 주제로 한 연구가 꾸준히  진행되어 왔고, 이제 웬만한 화가라면 한번쯤 논문의 주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화가 연구가 단행본 저서로 출간된 사례는 드물어서 고작 10여 명에 불과하다.

그  이유로는 전근대기 화가의 경우 관련 사료가 영성(零星)한 탓에 자연인으로서는 물론 예술 가로서의 이력조차 추적이 어렵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만 공재 윤두서와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같은 사대부 가문 출신 문인화가들은 개인 문집이 전하거나 주변 인사들의 전언(傳言)이 풍부한 편이다.

(미술사학보 2017년 12월호에 실린 박정애 선생님의 서평을 옮깁니다)

그에 반해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신분이 낮은 직업화가들에 관한 의미 있는 기록을 찾아내기란 녹록지 않다. 19세기 화단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던 이른바 여항
화가(閭巷畵家)들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 살짝 비켜나 있는 이가  있으니 바로 ‘우봉(又峰) 조희룡(趙熙龍, 1789-1866)’이다. 이선옥 선생의 신간(新刊) 『우
봉 조희룡-19세기 묵장의 영수』는 그 사람, 조희룡에게 초점을 맞춘 전문 학술서이자 교양서이다.  조희룡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1970년대 후반 그의 저술이 발굴, 소개되면서 비롯되었다.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역사학계와 문학계의 중인시사(中人詩社) 및 여항문학(閭巷文學) 연구에서 고찰되었고, 미술사학계에서는 1990년대 초반 조희룡의 회화에 초점을 맞춘 석사논문이 처음 발표되었다.

특히 1999년, 그의 방대한 저술을 번역해 엮은 『조희룡전집』의 출간으로 관련 연구에 탄력이 붙으면서 학위논문과 단행본 서적 등 연구 성과가 쏟아졌다.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두루 뛰어났고 그림뿐 아니라 주목할 만한 저서를 많이 남긴 조희룡의 족적이 다양한 전공 분야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그 흐름을 잇는 『우봉 조희
룡-19세기 묵장의 영수』는 미술사학자의 견지에서 기왕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해 낸 조희룡 연구의 결정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저자는 조선시대 매화도(梅花圖)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던 시절에 본 독특한 매화 그림이 조희룡을 눈여겨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한다. 조희룡은 매화를 향한 사랑이 지극
하여 ‘매화 화가’라 일컬어졌고, 저자는 ‘매화 그림 전문가’였으니 피할 수 없는 만남이었던 셈이다.

2004년 학위논문을 제출한 저자는 연구 범위를 확장해 『사군자, 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돌베개, 2011)을 펴내는 등 매화를 포함한 사군자 그림의 전문가로서 왕
성한 활동을 펼쳐 왔다. 그 과정에서 조희룡이라는 인물 연구와 작품 연구를 계속 진행했으니 그야말로 이 책에 최적화된 집필자라 할 수 있다. 저자는 ‘꽃이 다음해에 또 피어날 것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접듯이 미련과 두려움은 다음 연구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책을 마무리했다’고 소회를 밝혔으나 이 책이 품고 있는 학술적 성과와 의의는 넓고도 깊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었는데, 각각 조희룡의 삶과 예술, 그리고 글과 생각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제1부에서는 조희룡이 살았던 시대, 즉 격동하는 19세기 조선 사회의  변화와 그 복판에 내쳐졌던 조희룡의 삶에 대해 정리하였다.

원래 평양조씨 명문가의 후손이었으나 중서층으로 전락한 조희룡의 일상과 지향, 헌종 임금의 총애, 김정희와의 인연과  유배생활, 평생의 지기(知己) 등 가계와 교유관계, 생애의 주요 사건 등에 대해 찬찬히 풀어
냈다. 흔히 작가론에 적용되는 연대기적 서술 방식에 의존하지 않고 항목별로 핵심 내용을 전개한 점이 눈에 띈다.

마찬가지로 제2부에서는 매화·난·대나무·산수·돌 등 화제별로 조희룡의 예술을 다루었고, 화폭을 관통하는 미감(美感)은 담(淡)과 격동(激動)이 공존하는  양면성을 지닌다고 하였다.

무엇보다 즐겨 그린 홍매(紅梅)와 연폭 병풍에 그리는 전수식 매화도 형식, <매화서옥도>에 구사한 ‘광도난말(狂塗亂沫)’의 필치 등 역사를 새로 쓴 ‘매화  그림’에 가장 많은 지면을 할애하였다.

제3부에서는 화가로 알려지기 이전에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조희룡의 글과 그 속에 담긴 생각의 갈피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최초의 중인 전기집으로 평가되는 『호산외기(壺山外記)』를 비롯해 시와 편지, 산문, 화제(畵題) 등을 엮은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여느 사대부 문인에 뒤지지 않는 조희룡의 저술에 녹아있는 정체성과 역사적 의의, 그리고 ‘수예론(手藝論)’과 같은 독창적인 서화관을 통해 내면의 풍경을 엿보고자 하였다.

책 말미에 조희룡에 관한 연구사와 함께 연보와 교유관계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우봉 조희룡-19세기 묵장의 영수』는 저자가 뛰어난 문장가이자 전문 예술가의 삶을 살다간 조희룡을 온전히 복원시키기 위해 감내한 5년여의 산고(産苦) 끝에 나온 책이다.

문헌기록과 회화작품은 물론 관련 자료의 폭넓은 섭렵과 치밀한 분석, 그리고 잘 다듬어진 문장등 곳곳에 저자의 성실한 연구 태도와 정성이 배어 있다.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서술한 문장과 더불어 가독성 좋은 판형, 해상도 높은 컬러 도판까지 갖추어져 있어 학계뿐 아니라 일반 독자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책은 1860년 동지정사(冬至正使)로 북경에 간 신석우(申錫愚)가 조희룡의 안부를 묻는 청나라 서예가 정공수(程恭壽)에게 “그는 김정희의 고족(高足: 제자)으로 추사(秋史) 거세(去世) 후에는 오직 이 사람이 있
을 뿐이다”라고 한 대답에 수긍하게 해준다. 누구든 우봉 조희룡을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필독서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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