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핑퐁: 베를린 장벽이 열린 날

마빌 글․그림 | 윤혜정 옮김 | 300쪽 | 올컬러 | 반양장 | 20,000원

2018년 5월 31일 출간

 

 

2014년 에를랑겐 국제 만화 살롱 ‘최고의 독일 만화’

 

 

 

 

 

“장벽이 열렸다고요? 그래도 난 탁구 시합에 가야 해요!”

통일 직전 1989년 동베를린에서 날아온 상쾌하지만 묵직한 서브

세상은 그렇게 느닷없이 바뀌고, 어쨌거나 우리는 그렇게 어른이 된다

 

 

1989년 여름 동베를린, 막 사춘기 문 앞에 선 소심한 모범생 미르코 바츠케는 등굣길이 두렵다. 탁구를 치다 잘못 엮인 고학년들에게 고자질쟁이로 찍혀 버린 것. 뜻하지 않게 위기마다 미르코 앞에 ‘서독 아빠’를 둔 삐딱한 전학생 토르스텐이 나타난다. 운동에는 젬병이지만 탁구만큼은 좋아하는 미르코와 퉁명스럽고 센 척하지만 사실은 친구가 필요한 토르스텐은 핑퐁핑퐁 공을 주고받으며 더욱 친밀해진다. 탁구에 대한 열정도 커져, 둘이 중심이 되어 교내 친선 탁구 시합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시합이 열리기로 한 바로 그날, 세상이 뒤집혀 버리는데…….

이 책은 통일을 목전에 둔 동독 아이들의 일상을 통해 사춘기 문턱에서 경험하는 우정과 열정, 용기와 성장에 관해 이야기한다.
“진실성의 기적”이라는 평을 들을 만큼 시대상을 무척 세밀하게 재현했으며,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이야기들은 뒤로 물리고 ‘명랑 소년 만화’ 안에 역사적 메타포를 절묘하게 녹여 냈다.
아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아빠가, 또 친구가 떠나 버리고 모두가 도망치려 한다는 사실, 익숙한 것들이 무너지고 있음에 본능적으로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신세계의 화려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그 혼란한 감정을 애써 담담한 척, 무심한 척, 이른바 ‘쿨한 척’으로 숨기면서 눈앞의 우정과 열정을 꼭 붙들어 보려 한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간다.

 

 

시대는 베를린 장벽 붕괴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이와 상관없이(약간은 상관있지만) 소년들은 우정과 승부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간다. 1989년의 동베를린은 따스하고 궁색하며 자조적인 황동빛으로 물들어 있다. 세밀하게 그려진 그 군상의 풍경과 생활감은 우리가 어린 시절 언젠가 그곳에 잠시 살았던가 하는 기시감마저 불러일으킨다. 무너지는 베를린 장벽과 함께 기억 저편으로 아스라이 부셔져 가는 낡은 거리와 동독 의무교육 시스템의 마지막 날들. 그 추억들이 찌질하고 궁상맞게 담긴 예쁜 컷들. 부럽다. 뭔 분단과 통일, 역사의 거대한 급류 어쩌고 하는 라벨을 붙이기 쑥스럽게 만드는 저 작은 이야기가 부럽다.

굽시니스트(만화가)

 

 

사실 좀 뻔한 만화일 거라고 생각했다. 통일 전 동독, 주인공은 자그마한 모범생과 껄렁한 전학생, 소재는 탁구. 흠, 그렇다면 동독과 서독을 상징하는 두 소년이 탁구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화합을 이룬다는 — 남북 정상이 평양냉면을 먹으며 평화를 약속한 이 시기에 딱 맞는 훈훈한 만화려니 했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완전한 착각이었다. 아이들의 성장에 눈길을 줄 수 없는 혼돈한 세상에서, 장벽이 무너지든 말든 서독이 살기 좋든 어쨌든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그러나 미련을 못 버린 나는 이제나저제나 ‘그래서 언제 훈훈한 결말이 나오나.’ 하며 책장을 넘겼다. 정신없이 읽다 마지막 장을 넘겼을 때 나는 깨달았다. 아아, 나도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구나. 아이들은 고독하게 자라는구나. 성장은 괴로운 일이구나. 그래도 자라나게 되는구나. 이래서 책 제목이 ‘어쨌거나, 핑퐁’이구나, 하고.

김보통(만화가)

출간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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