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
_신영복
2025년을 여는 첫 달, 1월 15일
신영복선생9주기 | memorial_letter | 엄지혜작가
첫 현직 대통령이 체포된 오늘 1월 15일은 신영복 선생의 9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오늘 신영복 선생이 남긴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본다는 말이 가슴에 와닿습니다. 돌베개는 신영복 선생의 9주기를 맞이하여 엄지혜 작가님에게 추모편지를 부탁드렸습니다.
돌아가신 지 1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 유효한 ‘희망’의 메시지를 남겨주신 신영복 선생께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선생을 그리워하는 분 그리고 지금 2025년에 우리가 무엇을 자르고, 간직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께서 선생의 메시지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바쁘신 중 돌베개의 부탁에 귀한 추모 편지를 써주신 엄지혜 작가님에게(@koejejej) 감사드립니다.
* 추모편지 전문
어른의 한 마디, 선생의 한 문장이 사무치게 그리운 요즘. 엄혹하다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닌 겨울을 보내며, 고 신영복 선생을 떠올렸다. 지금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까. 들을 수 없지만 읽을 수 있는 선생의 목소리. 2025년을 여는 첫 달, 노란빛 표지를 입은 책 『처음처럼』을 다시 꺼내 읽었다.
선생의 책은 언제나 잘 읽힌다.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 소화할 수 있는 문장. 독자를 배려하는 글들을 곱씹다 보면, 작가의 문체에도 심성이 깃든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처음처럼』을 펴내기까지 신영복 선생은 꽤 망설였다. 발표된 글에서 일부 문장을 따로 떼어 싣는 일, 조연이었던 그림이 주인공의 위치에 놓이는 일. 저자로서는 주저했지만 기획자와 편집자의 고마운 설득으로 우리는 이 책을 만났다.
서문에서 신영복 선생은 “나로서는 매우 미안한 책.(10쪽)”이라고 밝히지만 나는 고마웠다. 신영복 선생의 글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는 ‘입문서’로 이만한 책이 없다고 여겼으니까. ‘처음처럼’에서 시작해 ‘석과불식’(碩果不食)으로 끝나는 이 책은 인간은 왜 성찰해야 하는 존재인지, 실천과 인식은 왜 함께 가야 하는지, 물을 모으려면 왜 자신을 낮은 곳에 두어야 하는지를 부단히 설파한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233쪽)”라는 선생의 말은 2025년 대한민국의 풍경을 말해주는 듯하다.
희망이 있을까, 세상은 과연 변하고 있는가. 의심의 단초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을 때, 『처음처럼』에 담긴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을 떠올린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간직해야 하는지, “시대를 정직하게 호흡하고,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며, ‘삶’이라는 글자 속에 ‘사람’을 읽어낸 선생의 9주기를 추모하며 「새해」라는 제목의 글을 옮겨 적는다.
“세모(歲暮)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