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출판인회의에서 이달의 책으로
홍대용의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가 선정되었습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뽑은 11, 12월의 책으로,
문학2 부문(평전, 기행, 에세이, 산문 등)에 선정되었습니다.
▶한국출판인회의에 있는 문학 2부문에 대한 하응백 선정위원의 글을 올립니다.
(문학 2부문 심사위원 : 이문재-시사저널 편집국 편집위원, 하응백-문학평론가)
문학2 분야에는 총 17권의 책이 출품되었다. 이 중 기행문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최근 베스트셀러로 화제가 되고 있는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공지영의 수도원기행』이 그렇고, 그밖에도 『돈황가는 길』, 『최성민의 자연주의 여행』,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가 기행문이다. 기행문은 다른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나 이국적 풍광을 만나면서 결국은 우리 혹의 나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타자를 통해 자아를 확인해 가는 과정인 것이다. 물론 모든 기행문이 다 그럴 수는 없지만 홍대용의 『을병연행록』을 쉬운 한글로 고친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는 기행문학의 한 전범을 보여준다. 철저한 준비와 대상에 대한 조사 과정, 주체적 의식으로 당당하게 타인의 삶과 만나려는 의식, 세밀한 기록과 묘사의 산문 정신, 이러한 여러 가지가 합쳐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이다. 약 250년 전의 기록이지만 이 책은 글이 무엇인가, 글이란 어떠해야하는가 하는 것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편리해진 교통 사정으로, 통신기기의 첨단의 발전으로, 또 이런저런 사정으로, 속성으로 제작되는 현대의 기행문과 홍대용의 기행문 사이에는 250년의 세월보다 더 아득한 거리가 있다. 베스트셀러로 만약 한 문명을 진단할 수 있다면, 기행문으로만 본다면, 21세기의 초입에 있는 우리의 문명은 분명 천박하다.
홍대용의 북경 여행기인 『을병연행록』을 알기 쉬운 현대 한글로 옮긴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는 한마디로 놀라운 책이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와 함께 여행 문학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책은 한글로 씌어진 최초의 장편 기행문이라는 문학사적 가치를 가지면서 그 내용의 풍부성은 읽는 이들의 혀를 내두르게 한다. 홍대용은 1765년 11월 연행(燕行) 사신을 따라 북경으로 갔다가 1766년 5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이 책은 그 6개월간의 세밀한 기록인데, 단순한 기행문이라기보다는 북학파로 알려진 홍대용의 사상과 철학과 중국 선비들과의 교유기가 상세히 적혀있다.
요즘의 기행문이 편리한 교통편만큼이나 쉽게 제작되는 데 반해, 홍대용의 이 책은 필생의 역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18세기 조선 선비의 해박한 지식과 광대한 독서량과 깊은 사유 체계이다. 21세기 지식인의 저작이 전문화되어 있다고는 하나, 이 책의 지식의 양과 비교해보면 어린아이의 단순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때문에 이 책은 단순화와 직선화라는 현대의 지식 체계에 대한 전반적인 반성을 가져올 수도 있다. 실패한 실학(實學) 운동, 좌절된 조선의 근대화는 우리 스스로 서양의 인문학에 비해 조선의 인문학을 하잘 것 없이 보지 않았던가 하는 반성도 할 수 있다. 이 책은 합리주의적 정신으로 저술된 저 유명한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보다 오히려 한 수 높은 사유체계로 무장한 세계적 명작임을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