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

개를 사랑한 조선 사람들

이종묵 엮음

발행일 2024년 10월 28일
ISBN 9791192836942 03810
면수 280쪽
판형 변형판 140x210, 소프트커버
가격 18,500원
한 줄 소개
사람이 개만 못한 세상을 비웃다
주요 내용

개를 통해 인간을 꾸짖다

 

이 책에는 31편의 개에 대한 글이 실려 있다. 각 편의 해설에서 저자가 따로 소개한 개와 다른 동물, 예를 들어 소, 닭, 고양이, 거위 등에 관한 글까지 합하면 70여 편의 동물을 대상으로 한 글을 한 권에서 소개하는 셈이다. 글들의 면면을 보면 아마도 조선 시대 사람에게는 애견이나 반려의 의미는 없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인구가 절대적 소수임을 생각하면, 어쩌면 알려지지 않은 애견인들이 많았을지도 모르겠다. 개는 예나 지금이나 사랑스러운 존재임은 분명하니 말이다.

옛사람이 글에서 개를 다룬 시각은 명확하다. 개 자체에 관한 것보다는 개의 행동을 통해 잘못된 인간의 행위를 꾸짖는, 교훈의 성격을 갖고 있다.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 땅에 이렇게나 많은 모범적인 개가 있었고, 책에 기록됐고, 또 개를 기리는 비석까지 세워졌다는 것을 보면, 그 옛날에도 ‘개’에 빗댈 만한,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많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개망나니’, ‘개 같은 경우’ 등등 ‘개’를 비유한 말 중에 고귀한 뜻을 가진 말은 찾아보기 어렵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된다’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개’ ‘개가 개를 낳지’ 등등도 마찬가지다. 형편없는 사람을 비유할 때 개가 주로 사용된다. 신조어로 ‘개’가 ‘심하게 많이’의 의미로 접두사가 되기도 하는데, ‘개멋있다’ ‘개꿀’ 등의 말을 쓴다. 이때의 ‘개’도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느껴지진 않는다. 조선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시대에 집에서 기르는 소, 말, 돼지, 양, 닭, 개 등 여섯 짐승을 육축(六畜)이라 했는데, 육축 가운데서도 개를 가장 천하게 여겼다. 여섯 마리 가축 순서로도 제일 꼴찌다. 개는 키울 때 깨끗한 음식을 주지도 않거니와 복날이면 다투어 잡아먹으면서도 정작 제사상에는 올리지 않았다. 더구나 개는 조선 시대에도 가장 흔한 욕설의 비유로 쓰였다. 그러니 사람을 개에 빗댄다는 건 얼마나 모욕적인 언사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 시대 기록에는 충구(忠狗), 열구(烈狗), 의구(義狗) 등의 존재가 등장한다. 대표적인 의구로, 주인을 화재에서 구하고 죽은 개 이야기는 학교 다닐 때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런 개는 조선에도 있었고 고려에도 있었고, 또 중국에도 있었다. 경상북도 선산에 있던 의구총이 널리 알려졌는데, 김정호(金正浩)가 작성한 『동여도』(東輿圖)에 선산을 대표하는 명소로 월파정과 의구총이 표기되어 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신 길재(吉再)나 하위지(河緯地)의 유적 대신 의로운 개의 무덤을 넣었으니, 의구총이 얼마나 널리 알려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어미 개가 죽자 새끼 개가 따라 죽는 효구(孝狗)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에서 작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 이른바 사람이라는 것은, 말할 수 있는 사람이요, 옷을 입는 사람이요, 팔다리 사지와 백 가지 기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살펴보면 효(孝)라는 도리는 근근이 있거나 아예 끊어지고 없다. 이 개를 보면 어찌 얼굴이 붉어지지 않겠는가? 내 생각에 개돼지라도 그러한 사람의 똥은 먹지 않으려 할 것 같다.

 

이 밖에도 이 책에는 다른 개의 새끼에게 젖을 나눠 먹이는 개, 우애와 효심이 깊은 개, 불심(佛心)이 있어 몸에서 사리가 나오는 개, 주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개들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그저 흘러간 옛이야기 정도로 치부하고 넘겨 버리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큰 글들이다.

 

 

개는 짖는 것이 본성이다

 

요란하게 짖는 개의 소리는 참으로 듣기 힘들다. 아파트가 주 생활 공간이 되어 버린 현대 사회에서 이 문제는 첨예한 갈등을 낳기도 한다. 방 안이 아닌 마당에 키우는 개라도 그렇다. 도둑이 들거나 최소한 낯선 사람의 인기척이 있어 짖는 것이라면 그러려니 하지만 아무 까닭 없이 짖어서 사람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면 정말 짜증이 난다. 그래서 행여 집 안에 두고 가족처럼 사는 개라도 함부로 짖어 이웃에 폐가 될까 하여 아예 짖지 못하도록 교육을 받은 개를 입양하거나 성대에 칼을 대어 짖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조선 시대 문인 박종경(朴宗慶)은 「개를 용서하다」(恕狗)라는 글을 지으며 이 문제에 대해 성찰하였다. 그의 집에서 키우는 개 두 마리는 피부병으로 몰골이 흉한 데다 아무렇게나 똥을 싸서 더럽고 꼴사나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박종경이 병이 났다. 다행히 조금 차도가 있었는데, 개들이 짖어대는 통에 숙면을 취할 수 없어 병이 도질 지경이었다. 아이를 시켜 개를 쫓아 보지만, 기어이 다시 돌아와서 짖어댔다. 화가 난 박종경은 하인을 불러 내일 아침 개를 잡아 죽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다시 생각에 잠겼다. “개가 짖는 것은 개의 본성이다. 저놈이 제 본성을 따르는데 내가 죽인다면, 이는 내가 동물의 본성을 완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어찌 옳은 일이겠나!” 이런 깨달음을 얻은 박종경은 하인에게 개를 죽이지 말라 하고 개를 용서하는 시를 지었다.

박종경은 마음에 들 것 하나 없는 자기 집 개로부터 성찰의 공부를 하였다. 세상 만물은 타고난 본성에 따라 맡은 일이 있다. 개는 도둑을 막는 일을 하려고 열심히 짖는다. 소는 논밭을 갈고 말은 짐을 싣는다. 이에 비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무슨 잘난 일을 하는가? 자신이 병들었다는 이유로 도둑을 막기 위해 짖는 개를 욕하고 죽이려 하였으니, 개에게 부끄럽다. 개를 용서한다고 하였지만 사실은 개에게 용서받을 일이다.

개는 짖는 것이 본성이고 또 그 때문에 사람과 한 무리가 될 수 있었다. 지금은 가족으로 삼아 집 안에 함께 살기 위해 그 본성을 인위적으로 막는다. 가족의 이름으로 이렇게 해도 괜찮은가? 역지사지다. 개와 사람의 처지를 바꾸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금 시대에 짖는 법을 잃어버린 개들이 많은 건 순전히 사람의 욕심 때문이다.

 

 

조선 시대 개를 키우는 법

 

19세기의 실학자 이규경(李圭景)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구변증설」(狗辨證說)에서 개 키우는 여러 가지 방법을 소개해 놓았다. 『본초강목』(本草綱目), 『화한삼재도회』(和漢三才圖會) 등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 인용한 것이니, 이규경이 직접 이렇게 해본 것은 아니므로 믿을 만한 것은 아니지만 재미 삼아 읽어볼 만하다.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 개가 여위고 힘이 없으면 미꾸라지 한두 마리를 구해다 입과 콧구멍에 넣으면 바로 살이 찐다.

– 생 흑임자를 개 발에 바르고 비단으로 싸 주면 천 리를 갈 수 있다.

– 흑임자 기름으로 새끼 개를 사육하면 검게 변한다. 또 호마(胡麻) 가루를 개에게 먹이면 검은빛이 나고 걸출해진다.

– 개에 붙는 파리를 퇴치하는 법. 개에 파리가 끓을 때 향유(香油)를 두루 발라 주면 바로 사라진다.

– 개를 작게 만드는 법. 작은 개가 처음 태어났을 때 바로 오동기름을 밥에 섞어 먹이면 조그마하여 끝내 자라지 않는다.

– 개를 늘 짖게 하는 법. 개는 추위를 가장 무서워하므로 대개 누울 때 꼬리로 그 코를 덮어 주어야 깊이 잠이 든다. 반드시 밤에 경계하도록 하려면 그 꼬리를 잘라 코가 시려도 덮을 것이 없도록 해야 밤새 경계하여 짖는다.

– 개가 싸움을 그치게 하는 법. 물 한 바가지를 그 머리에 부어 씻어 주면 그친다.

 

애견산업이 한창일 때 ‘티컵 강아지’가 유행하기도 했다. 일부러 작게 만들어 판매하는 상품이었고, 살아있는 개를 택배로 배달해서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옛날에도 개를 작게 만드는 법을 쓴 걸 보면, 집안에서 키우기 위해 개 크기를 줄이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었던 듯하다. 요즘에 개 꼬리를 자르는 까닭은 미용 목적이 크지만, 예전엔 집을 더 잘 지키게 하려고 잘랐다 하니, 그 이유가 퍽 다르다. 개든 사람이든 싸움을 그치게 하는 데는 물 한 바가지가 약이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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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개란 무엇인가?
나의 개에게 / 개의 직책과 천성 / 개는 짖는 것이 본성이다 / 개가 짖는 까닭 / 개를 왜 키우는가? / 귀염둥이 호박개 ― 53
2장 젖 나눠 먹이는 개
다른 새끼를 함께 거두어 키운 개 / 형제의 우애와 개의 우애 / 새끼 없는 개가 다른 새끼를 키운 이야기 / 고양이에게 젖을 먹인 개
3장 개의 우애와 효심
기다렸다 함께 밥 먹는 개 / 개의 우애와 감화 / 주인의 효심과 효구총 / 어미를 따라 죽은 효구 / 어미의 원수를 갚은 개
4장 불심이 있는 개
삼목왕과 팔만대장경 / 불법을 깨달은 개 / 개 사리를 모신 부도탑 / 불공드리는 개
5장 주인을 위한 개의 의리
눈먼 아이의 반려견 / 꿩을 잡아 바친 효견 / 여주인을 징치한 개 / 열녀의 개 의구 / 공정한 개의 마음 / 한구를 찬양하다
6장 목숨 바쳐 주인을 사랑한 개
오수의 의견총 / 선산의 의구총 / 범과 싸워 주인을 구한 개 / 주인을 따라 죽은 열구 / 또 다른 열구와 열우 / 목을 매어 주인을 따른 개

지은이·옮긴이

이종묵 엮음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 한시를 사랑하여 『한국 한시의 전통과 문예미』, 『우리 한시를 읽다』, 『한시 마중』, 『이야기가 있는 여성의 한시』 등을 내고, 조선 선비의 삶을 추적하여 『조선의 문화공간』(1-4), 『조선시대 경강의 별서』(1-3), 『부부』, 『알고 보면 반할 매화』 등을 냈다. 또 좋아하는 옛글을 번역하여 『부휴자담론』, 『누워서 노니는 산수』, 『사의당지, 우리 집을 말한다』, 『글로 세상을 호령하다』, 『양화소록』 등을 펴냈다.

이종묵의 다른 책들

편집자 100자평
공원 산책길에는 어느새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많고, 개 장례식이 사람 못지않다. 현대인에게 개는 애완을 넘어 반려의 존재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 비하의 용어로 ‘개’가 쓰이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는 개를 어떻게 대했을까? 소수지만, 남아 있는 개와 관련한 글을 통해 개에 대한 옛사람의 생각을 들여다보았다. 이 책에 나오는 글들은 못해도 100년 훨씬 이전의 것인데, 이 글들을 읽다 보면 지금의 세태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마치 옛사람이 지금의 상황을 미리 알고 가르쳐주는 듯하다. 과거는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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