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베개』라는 책이 있습니다. 일제하에서 학병으로 일본군에 끌려갔다가 탈출하여 광복군에 투신한 장준하 선생이 자신의 항일 역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이 책은 197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선생께서 해방 직후도 아니고 한참 철 지나서 새삼스럽게 항일 수기를 내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박정희의 장기집권 음모가 노골화되던 시점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거 일제하 에 조국의 광복을 위해 분투했듯 반독재민주화투쟁을 멈추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습니다. 이후 선생은 유신독재체제의 시퍼런 서슬 아래에서 반독재민주화투 쟁에 앞장섰으며, 1975년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기까지 재야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서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돌베개’는 이처럼 조국의 해방과 민주화를 위하여 평생 거친 삶을 마다하지 않았던 장준하 선생의 사상과 실천을 표상합니다.
출판사 ‘돌베개’는 1979년 여름에 창립되었습니다. ‘겨울공화국’이라 불리던 유신독재 체제가 종말을 향하여 치닫던 무렵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장준하 선생의 책 『돌베개』에서 따왔습니다. 이러한 작명에서 예고되었듯, 돌베개의 이후 출판 활동과 그 궤적은 우리 현대사의 전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1970∼80년대에 돌베개는 민주출판운동의 한 부분을 이루면서 우리의 역사와 현실을 밝히는 출판의 영역을 개척하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운동으로서의 출판’이었습니다. 『한국근대민족운동사』, 『한국경제의 전개과정』, 『전태일 평전』,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 등의 수많은 책들은 시대를 일깨우며 당대의 역사와 현실을 전진시키는 힘이 되었으며, 그 시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많은 사람의 기억 속에 지금도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돌베개는 ‘운동으로서의 출판’에서 ‘문화로서의 출판’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면서 출판의 분야와 영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우리의 시대와 현실을 비판적으로 인식하고 성찰하는 수준 높은 학술서·교양서를 지속적으로 펴내는 한편,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하는 기획에 관심을 집중하였습니다. ‘돌베개 한국학총서‘를 비롯한 ‘답사여행의 길잡이‘, ‘테마한국문화사‘ 등의 시리즈를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사상을 학술적으로 정리하면서 그 성과를 대중화하는 데 힘을 쏟아 왔습니다. 제대로 된 번역을 통해 우리 고전의 새로운 정본을 만드는 작업도 지속하고 있습니다. 돌베개는 항상 깨어있는 눈으로 시대를 호흡하고 독자와 소통하면서 우리 인문서의 ‘넓이와 깊이’를 더 해 갈 것입니다.
돌베개는 그 우직한 행보와 더불어 깐깐하고 단단한 책 만들기의 자세를 견지해 왔습니다. 그 결과 돌베개의 책들은 엄선된 기획과 내용의 충실함, 깐깐한 편집, 아름다운 디자인을 자랑하며 여러 출판문화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주간지 『시사인』이 출판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수년째 ‘가장 신뢰하는 출판사 1위’에 오르기도 하였습니다. 돌베개는 이러한 신뢰를 든든한 격려로 여기면서 무거운 책임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돌베개는 2003년 파주 사옥으로 이전하여 파주 시대를 열었으며 2012년 주식회사로 전환하였습니다. 이러한 기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돌베개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견지하여 우리 인문서 출판의 중심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책, 독자들의 가슴속에 오래 기억되는 책,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하는 책, 우리의 아름다운 문화·전통을 이어가는 책을 꾸준히 펴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