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극세계가 온다

미국 패권 이후, 세계질서 대격변의 장면들

페페 에스코바 지음 | 유강은 옮김

원제 EURASIA v. NATOstan
발행일 2025년 11월 26일
ISBN 9791194442592 03300
면수 316쪽
판형 변형판 127x200, 소프트커버
가격 21,000원
한 줄 소개
다극화 진영 최고 저널리스트가 유라시아 및 전 세계를 누비며 쓴 신세계질서 태동의 생생한 기록, 반패권 다극화의 눈으로 본 가장 최근의 세계사
주요 내용

안팎으로 붕괴하는 미국
착실하게 힘을 키운 다극세계가
마침내 우리 눈앞까지 다가왔다

다극화 진영 최고 저널리스트, 브라질 출신 지정학 분석가 페페 에스코바의 책이 드디어 한국에 소개된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 패권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글로벌사우스의 세계정세를 치열하게 탐구하며 생동감 넘치는 분석으로 명성을 쌓아 온 저자는, 『다극세계가 온다』를 통해 마침내 “화산처럼 솟구치는 지정학적 분기점에서 역사의 초안을 날것 그대로 검토”해냈다. 미국 패권 없는 다극세계가 어떻게 준비되어왔는지, 반패권 다극화의 눈으로 2020년대의 가장 최근 세계사를 기록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달러 패권 이후, BRICS+와 SCO, 국제 경제 회랑 대결, 중국·러시아·조선(북한) 협력, 팔레스타인 독립 등 우리 시대 세계정세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유라시아 대륙과 전 세계를 직접 누비며 보고 듣고 분석했다. 우리가 주로 접해 온 서방의 세계정세 분석과 비교하면, 다극세계 권역을 ‘분석 대상’이 아닌 ‘행동 주체’로 설정하고, 때로는 전선 지역 취재까지 마다하지 않고 구체적인 현장성과 전문적인 저널리즘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흥미롭다.

저자는 다극세계는 결코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치열하게 다극화를 지향했던 ‘글로벌 다수’는 착실하게 힘을 키우며 준비했고, 안팎으로 무너지는 미국 패권과 대비하여 마침내 성큼 모든 이들의 눈앞까지 진출한 것이다. “혼돈의 제국”은 전쟁까지도 불사하며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지만, 치열한 대결은 2030년쯤 다극세계의 모든 영역(정치·경제·군사·문화 등) 최종 승리로 결국 귀결될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룬 2020년대 초반 신세계질서 태동의 모습들이 곧 패권 이후 새 시대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대격변의 장면들’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을 기본값으로 하는 관성적인 우리의 관점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세계 역사의 중심축이 차곡차곡 만들어지는 지금, 숨 가쁘게 이어지는 국제질서의 대변동 속에서 핵심적 흐름과 대세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동의 여부를 떠나 페페 에스코바의 대담하고 급진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미 다극세계는 우리의 인식보다 더 빠른 속도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집단서방의 예외주의라는 눈가리개를 이제는 벗어던지자”는 저자의 외침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다극세계는 트럼프 2.0에 놀라지 않았다
2025년 세계정세의 한복판에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벌인 ‘관세 세계대전’이 있었다. 동맹국들은 대부분 고개를 숙였지만, 적지 않은 나라들이 순응하지는 않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했고, 특히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이른바 ‘다극세계’의 선도국들은 강경하게 맞대응했다. 특히나 중국은 11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의 조치를 대부분 무효화하는 ‘사실상의 1승’을 거두며, 새삼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미국의 ‘일극 패권’이 해체된 세상을 최근 일반적으로 ‘다극세계’라고 부르고 있다. 브릭스 등의 기구로 대표되며 ‘글로벌사우스’로도 불리는 세계 여러 나라, 여러 세력이 그 구성원이다. 미국, 집단서방, 미국의 동맹국들, 각 국가의 친미 엘리트 등으로 표상되는 10억 인구와 대립하는, 70억 인구의 ‘글로벌 다수’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들에게 사실 미국은 ‘언제나 미국’이었다. 동맹국들에게는 그 의미가 사뭇 달랐을지 몰라도, 오바마, 바이든의 ‘친나토’든,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든 다극세계 입장에서 미국은 언제나 지배하고 군림하는 경쟁적이고 적대적인 나라다. 그래서 지난 21세기 20여 년 내내 다극세계는 “NO KINGS”를 외쳐왔다. 그러니 트럼프 2.0에 놀랄 것은 없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리고 금융위기, 군사적 실패, 쌓이는 재정 적자, 생산 능력 상실, 총기 및 마약, 양극화 등의 사회 혼란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쇠퇴와 대비하여 10여 년간 빠른 속도로 착실하게 모든 분야에서 다극세계가 스스로의 힘을 키워왔다는 점이다. 급기야 2023년에는 브릭스 5개국이 미국 주도 G7을 경제적으로 추월(PPP 기준)하고, 2025년에는 그 격차가 더욱 증대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다극세계 진영의 대표적 지정학 분석가, 브라질 출신의 저널리스트 페페 에스코바가 2021~2024년에 쓴 글들을 선별하여 정리한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다극세계의 전진을 이른바 ‘내재적 관점’, 다극화 진영 스스로가 주장하는 관점과 논리를 바탕으로 살피고 있다. 2025년에 가시화되었지만, 사실 다극세계의 폭발적 전진은 이미 2020년대 전반부터 준비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 패권 이후를 ‘준비한 시기’가 곧 ‘세계질서 대격변의 장면들’이다. 미국과 집단서방의 눈으로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다극세계 스스로의 관점에 입각하여 그들의 행동 전략과 목표, 실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살펴볼 필요성이 증대되는 지금 시기 한국에 적절하게 소개되었다.

다시 쓰는 “거대한 체스판”, 신세계질서의 태동을 생생하게 기록하다
페페는 이 책을 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을 아우르는 미국의 21세기 국책, ‘테러와의 전쟁’이 끝내 실패로 끝난 아프가니스탄 이야기로 시작하여, 미국-나토-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패배하고 있는 돈바스 지역의 전선 방문 취재기로 마무리한다(한국어판에는 트럼프 2.0과 세계정세를 평가하는 2025년 글 추가 포함). 사실상 미국이 촉발한 2개 전쟁의 양상이 지금까지의 “규칙 기반 세계질서”의 종말, 바꾸어 말하면 다극세계의 실질적 우위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14쪽). 파슈툰족과 노보로시야가 보여주듯, 이제는 글로벌 다수가 “거대한 체스판”을 다시 두기 시작했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압도적인 군사력, 경제력으로 “거대한 체스판”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세계를 호령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저자는 다양한 주제, 소재, 현장 방문을 통해 일극 패권과의 치열한 경쟁 속 다극세계의 여러 모습을 촘촘히 기록하고 분석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그가 주목한 네 가지 주제는 다음과 같다.

① BRICS+, SCO, 유라시아경제연합, 일대일로의 ‘따로 또 같이’
브릭스플러스(BRICS+), 상하이협력기구(SCO),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일대일로(一带一路, BRI)는 현재 세계질서의 변화를 이끄는 여러 세력이 ‘따로 또 같이’ 집결한 공간이다. 이들의 연대, 교차, 협력은 점점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의 포괄하는 범위는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사회 모든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점차 ‘통합’적으로 ‘집결’하고 있다. BRICS+와 SCO가 가까운 시일 내에 더욱 가깝게 접근할 것이 예상되며(219쪽), 최종적으로는 공정하고 합리적인 ‘새로운 유엔’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특유의 전문성을 발휘하여 여러 다자기구 회의 및 행사에 대한 생생한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다극세계의 결집 양상과 구체적인 현실을 다뤘다.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확립이다. 저자는 2023년 3월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시진핑-푸틴 정상회담을 “팍스 아메리카나의 잔존물”을 철거하기로 확약한 “다극세계를 향한 새 시대의 얄타 회담”이라고 규정한다(118쪽). 중국의 ‘중국몽’과 러시아의 ‘유라시아 구상’은 다극세계 구축, 즉 세계질서의 민주화와 주권 중심의 국제 관계 구축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접점을 지니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은 “흔들림 없이” “1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중대한 변화”를 “하나로 뭉쳐” 추동해 나가겠다고 다짐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글로벌사우스’가 이들의 기본 구상을 “동반자”로서 분명히 지지하고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으며, 특히 아프리카의 광범위한 지지와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음에 주목한다. 이로써 미국과 서방 중심의 식민주의적‧인종주의적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와의 질적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비서구권, 개발도상국, ‘제3세계’를 지칭하는 말로 쓰여 온 ‘글로벌사우스’는 사실상 다극세계의 구성원 그 자체를 의미한다. 거대한 아시아(동, 서, 중앙아시아를 모두 포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나라들이 현재 글로벌사우스의 중심이다. 글로벌사우스가 점점 성장하고, 아시아가 유럽까지 연결되며 ‘유라시아’로 확대되고, 집단서방 속에서도 다극세계 질서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글로벌글로브”라는 용어까지 쓰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다수’가 곧 글로벌사우스이자 글로벌글로브인 시대가 왔다.
현재 20개국까지 확대된 브릭스플러스(회원국 10, 파트너국 10)는 가장 큰 범위에서 세계를 아우르는 정치, 경제, 문화 동반자 거버넌스로 작동하고 있다.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는 정치, 군사, 경제적 측면에서 급속히 강화되고 있고,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은 특히 중앙아시아와 극동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경제, 정치 회랑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연결되는 접점인 플랫폼이자 인프라로 나아가는 것이 지금의 일대일로, 이른바 ‘신실크로드’라고 볼 수 있다(단순히 중국의 투자 사업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저자는 그들의 목표를 “전쟁이 아니라 무역”(No War Make Trade, 反戰通商)이라고 말한다(144쪽). 다극세계의 지향은 ‘발전, 평화, 주권, 협력, 실천’이라는 말이다. (물론 패권국의 엘리트들은 이를 “지정학적·지경학적 최대 위협”으로 해석한다.)

② 탈달러 거버넌스 구축의 경로
2차 대전 종전 이후 80년 동안 지속된 달러 패권의 위기에 대한 심각한 논의들이 제출되는 요즘이다. 세부적으로 중요한 정보들이 많이 보도되고 있지만, 그조차도 ‘달러의 근원지’인 미국의 학자, 금융 관계자들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많다. 그러한 정보들은 월가 또는 자본주의 금융에 대해서는 상세할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그러한 상황을 야기하는 ‘달러 없는 세계경제’를 추진하는 주체들의 전략과 논리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맹점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서방 중심의 ‘달러 이후의 질서’ 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관점과 정보로 탈달러 거버넌스 구축의 경로를 예상한다.
특히 저자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의 현 통합거시경제장관 세르게이 글라지예프와의 상세한 교류를 통해 이른바 R5(런민비-인민폐, 루블, 루피, 헤알-레알, 랜드. 브릭스 국가들의 통화가 영문명으로 모두 R로 시작하여 붙은 별칭)를 사용하는 브릭스 국가들의 ‘새로운 결제수단’(향후 준비통화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켜보아야 함)에 관한 구상 및 진행 상황을 다루고 있다.
탈달러 거버넌스의 출발점은 달러를 무기화하고 그 속에서 타 국가의 외환을 제재의 형태로 강탈해 온 미국의 정책이다. 최근 많이 회자 되는 트리핀 딜레마, 미란 보고서 전략은 사실상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한계를 누설한 것이다. 달러로 인한 피해를 벗어나 자신들의 경제 현실에 부합하는 자주적인 경제 체계로서의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이 새로운 화폐의 지향이며, 동시에 이는 미국 중심의 비효율적 금융 경제체제보다 우월한 “중앙집권적 전략 계획과 시장경제의 이점, 화폐와 물리적 인프라의 국가 통제와 기업가 정신의 이점을 결합”한 다극세계권의 새로운 실물 중심 경제체제에 어울리는 체계다.
탈달러 세계경제 거버넌스는 먼저 상호 경제 교류 과정을 자신들의 통화로 진행하는 단계(달러 사용을 급격히 줄인다)를 착실히 거친 후, 2단계에서 달러를 참조하지 않는 새로운 가격 형성 체계(결제수단)를 고안하고, 3단계에서 투명성·공정성·선의·효율 원칙의 준비통화 창설을 실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계획이다(52~55쪽). 매 단계를 관통하는 4대 핵심 사안은 금 및 핵심 자원, 실제 생산 능력에 기반한 GDP, 디지털 결합(스테이블 코인 등), 주권에 기반을 둔 상호 신뢰와 호혜성이다. 현재 브릭스 국가들을 시작으로 자신들의 교역을 자기 화폐 기반으로 진행하는 일은 이미 꽤 궤도에 올라서고 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공황”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306쪽). 그것만으로도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에는 이상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천문학적 재정 적자에 시달리는 미국의 경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달러 이후의 거버넌스’ 수립은 가능할까? 저자는 시행착오는 많겠지만, 미래는 밝다고 전망한다. 다극세계권 국가들의 국민 경제가 실질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상호 신뢰와 연결을 통한 확장이 점점 강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은 “인간적 교류에 바탕을 둔” “주요 생산자들의 압도적 동맹”이라는 맥락을 바탕으로 진행된다(237쪽).

③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국제 경제 회랑 ‘경쟁’
저자는 중앙아시아에도 크게 주목하고 있다. 땅 또는 나라를 뜻하는 ‘-스탄(stan)’이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의 핵심으로 고대 문명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했고, 서방 중심의 지정학적 구도에서도 이른바 ‘심장지대(heartland)’의 핵심을 구성했다. 500여 년 서방 해양 세력 중심의 시기 상대적으로 발전이 지체되며 고난을 겪었지만, 역사적 전환이 이야기되는 현 시기 다시 중요한 지역으로 주목받기 시작하고 있다. 광대한 영토 속 수많은 핵심 자원들을 보유한 중앙아시아가 세계와 연결되면서 다시 부흥을 꿈꾸는 것이다. 중앙아시아를 핵심으로 수에즈운하를 우회하여 러시아와 인도까지 7200킬로미터를 연결하는 국제남북운송회랑(INSTC) 그 대표적인 예이다(13쪽).
이는 저자가 “파이프라이니스탄”이라고 명명한 국제 경제 회랑 연결을 둘러싼 각종 각축전과 함께한다. 우리에게 익숙지 않지만, 점점 더 국제 뉴스의 중심을 차지할 이야기 중 하나다. 다극세계와 미국, 집단서방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중앙아시아 각국이 특유의 “다면적 외교”로 대응하는 각종 회랑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저자는 독창적인 취재와 분석으로 정리했다. 결국 이 지역을 통과하지 않으면 유라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연결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지정학·지경학의 성패가 결정될 중요한 지역이 아닐 수 없다. 중국과 러시아, 다극세계의 기본 전략이 ‘연결’이라면, 미국과 집단서방의 기본 전략은 ‘분할’이다. 다극세계가 지역의 통치 주권을 최대한 인정하는 방향에서 접근하는 반면, 미국은 친서방 ‘색깔혁명’ 및 반정부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를 다각적으로 지원한다. 엎치락뒤치락 치열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결국 최종적인 방향성은 다극세계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결국 “중앙아시아인들에게 집단서방은 세계관에 있어서 외계인이며, 중앙아시아는 경제 번영과 자유민주주의를 결코 연결하지 않을 것”(232쪽)이기 때문이다. 일대일로의 시작이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였다는 사실 역시 놓쳐서는 안 된다.
현재 최고의 산유 지대이자 이스라엘과 아랍의 대립이 심각한 서아시아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핵심은 미국,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저항의 축”이다(그중 이란은 ‘국제 경제 회랑’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국가다). 팔레스타인 전쟁에서 서방식 ‘인권’의 민낯이 폭로된 가운데, 이 지역의 핵심과제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폭력을 추방하는 것이다. 이는 문명적이면서도 기술적인 과제인데, 무엇보다도 “무한한 인내심”을 바탕으로 “비대결”을 통해 “부전승”을 이루는 방식이어야 한다(271쪽). 팔레스타인에서의 제노사이드는 패권국의 고립과 배제를 필연적으로 만들었고, 그것의 연쇄가 앞의 결과를 추동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④ 조선(북한), 중국,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
지난 9월 중국 베이징의 ‘항일 전쟁 및 세계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 기념 행사 망루는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중국, 러시아, 조선의 정치적 연대의 공고함과 향후의 협력 속도를 가늠케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들의 협력을 “아시아-태평양 패러다임을 바꾸는 진정한 게임체인저”라고까지 표현하며 매우 주목하고 있다(205쪽). 다극세계 패러다임을 선도하는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지적이다.
특히 저자는 최근 이른바 ‘러시아의 극동’ 개발, 즉 3국의 접경 지역 경제 협력에 크게 주목하고 있다. 이는 “상당히 정교하고 거대한 조선의 산업-군사 복합체”와 유라시아경제연합의 선도국 러시아, 일대일로의 주창자 중국이 만나는 장이자(204쪽), 미국과 서방의 “영구전쟁” 행보 속 ‘정치적 안정성이 높은 핵보유국들의 협력’이라는 점에서 확실한 안전이 보장되는 지역에서의 안정적이고 재빠른 성장이 도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단된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이 지역과 연동되는 시베리아의힘 가스관이 대체했을뿐더러, 앞으로 넘어설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40쪽, 중국 입장에서 이러한 대륙적 발전과 연계는 ‘해양 봉쇄’의 위협을 무력화한다는 안보적 효과도 있다). 두만강, 시베리아, 북극 항로를 연결하는 물류, 생산, 자원 경제 회랑은 현재 상대적으로 저발전된 곳들을 배경으로 하지만, “전략적 우선순위”와 “첨단 기술”이 “탈서방화 운동”의 차원에서 결합한 이 프로젝트의 발전 가능성은 “경탄스러울 정도”다(243쪽). 저자는 직접 블라디보스토크에 방문하여 느낀 역동적 가능성을 취재기로 수록하였다.
참고로, 이 책에서는 북한을 정식 국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기재하였다. 저자의 뜻이자, 다극세계권의 용례임을 감안하였다.

미국 싱크탱크들의 패권적 구상과 반격이 실현될 가능성은?
물론 새로운 질서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당장 “네오콘”부터 “리버럴”을 거쳐 “우선주의”까지 언제나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던 미국의 패권 의지가 가장 강력한 걸림돌이다. 최근의 베네수엘라 위기, 나토 및 아시아에서의 핵동맹화 및 동맹국 전초기지화 전략 등은 미국발 세계대전의 가능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미국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미국은 2000년대 이래 실질적인 미사일 기술 발전에 실패하면서 군사적으로 쇠락했고(157쪽), 탈산업 금융경제의 이윤에 집착하면서 실질적인 경제 생산 능력을 상실(190쪽)했기 때문이다. 가지고 있는 역량을 총동원하여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이고, 제재로 ‘적대국’ 및 그들과의 협력을 봉쇄하고, 동맹국들을 수탈하고, 분쟁과 정보 공작 정치를 통해 ‘친미정권’을 수립하거나 ‘반미정권’을 전복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에는 근본적인 자체의 모순을 회피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최후 선택지로서의 ‘적대국’과의 직접적인 핵전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오히려 미국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확인될수록 ‘봉신국 반란’이 거듭되고 동맹이 파기되어 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때의 핵심 ‘황금률’은 동맹국들이 “자주적 주권국가”답게 “제국의 핵심 지부를 폐쇄하고 미군을 쫓아내는 것”이다(201쪽).
결론적으로 다극세계는 억제해야 하고, 미국은 파괴해야 한다. 과거처럼 압도적인 힘의 격차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공격은 원래 수비보다 어렵다’는 진리가 통한다. 게다가 점점 더 시간은 다극세계의 편이다. “거듭 자기의 무릎에 총을 쏘는 적을 방해하지 않고” “엄청난 전략적 인내심”으로 “패권국 스스로가 붕괴하도록”, “헤게모니를 안락사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다극세계의 전략이어야 한다(273쪽). “거대한 기능 부전의 핵 깡패국가가 어떤 유독물을 만들어내든, 브릭스플러스의 승리는 2030년에는 현실이 될 것”(101쪽)이라는 말이다.

“동의하지 않더라도 페페의 견해를 붙잡고 씨름하는 건 필수”
추천사에서 프레드 짐머맨은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의 견해를 붙잡고 씨름하기”를 권유한다. 한국 사회는 일반적으로 미국 중심으로 세계를 보고, 그 동맹국으로서 스스로의 행동 과제를 생각하는데 익숙한 편이다. 다극세계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상 상당히 편향된 인식틀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이미 변하고 있다. 그렇기에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불편한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접할 필요가 있다. 페페 에스코바가 제공하는 관점, 논리, 정보들은 그러한 차원에서 매우 쓸모가 있다. 점점 강력하게 자신의 영역을 넓히는 다극세계는 철저히 서방과는 다른 자신들의 논리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생각을 “편향적”이라거나 “전체주의적”이라거나 “반민주적”이라고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러한 접근으로 나오는 결론은 관성적으로 (극단적으로든 절충적으로든) 미국과 서방의 편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다극세계와 대립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는 “불가피한 변화를 이해할 수 없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우리가 믿어 왔던 세상이 한계를 드러내고 쇠락으로 치닫는 위기의 시대에는, 그 반대편의 이야기들을 적극적으로 섭취하여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반성적인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의 대담한 예측이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다.

한국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 선택, 한미동맹에 머무를 것인가? 다극세계로 나아갈 것인가!
최근의 「한미 관세·안보 팩트시트」에서 확인된 것처럼, 한국은 여전히 미국의 패권 질서에 한미동맹을 이유로 스스로를 속박하며 순응하고 있다. 눈앞의 현실인 미국의 ‘동맹 수탈과 동원’은 역설적으로 몰락하는 ‘제국’의 궁핍한 처지를 다시 한번 확인케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오히려 “제국의 봉신”을 자처하며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 주변국들(a.k.a 미국의 적대국)과의 안보 분쟁에 더욱 뛰어드는 것은 우리에게 ‘매국’이자 ‘망국’으로 이어지는 위험한 일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미국보다 훨씬 큰 다극세계가 이미 눈앞까지 왔다. 미국의 동맹이라는 틀을 깨고 세상을 보면, 우리에게는 얼마든지 새로운 가능성이 있다. 배짱 있게 자주적으로 당당하게 다극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저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에서 “한국의 친구들과, 언제나 희망찬 아시아와 유라시아가 집단서방으로부터 점점 이탈하여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워프 여행기’를 함께 쓰고 싶다”고 했다. 이 책은 패권 몰락의 혼란과 다극·다중심 세계질서의 가능성이 교차하는 세계사의 전환기를 맞이한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과 패기 넘치는 관점을 제공한다. “잃어버린 시간은 벌충할 수 없다. 지금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시간이 지난 후에 선두에 서 있을 것”(150쪽)이라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한 것이 아닐까.

차례

추천사
서문
약어 및 주요 용어 해설

I. 3차 세계대전과 반전통상의 지정학
1. 카불에서 벌어진 정말 이상한 일
2. 노르트스트림2의 퇴장과 시베리아의힘2의 입장
3. 새로운 공산당 선언: 반전통상, 전쟁이 아니라 무역을!
4. 세르게이 글라지예프와의 대화: 탈달러 시대의 새로운 세계 화폐·금융 시스템
5. 상트페테르부르크, 새로운 경제 전쟁을 대비하다
6. 발흐에서 콘야까지: 루미가 남긴 영적 지정학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7. 3차 세계대전으로 몽유병자처럼 걸어 들어가는 “파편화된 세계”
8. 달러 패권을 우회하기 위한 글로벌사우스의 경주

II. 달러 패권과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
9. 새로운 국제 화폐 열차에 탑승하라: ‘이동하는 다극세계’를 타고 나눈 대화
10. 시진핑과 푸틴, 팍스 아메리카나 철거에 나서다
11.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며
12. 다극세계의 수도: 모스크바 다이어리
13. 일대일로 열차가 샹그릴라로 향한다
14. 푸틴 그리고 ‘체스판’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

III. 거대한 체스판이 뒤집힌다
15. 미국, 브릭스플러스와의 하이브리드 전면 전쟁을 준비하다
16. 미래는 대유라시아에서 등장한다
17. 시칠리아 산꼭대기에서 새로운 야만인들을 지켜보며
18. 21세기의 결정적인 전쟁은 ‘중국과의 전쟁’이 아니다
19. 시리아: 약탈과 부활의 이야기
20. 러시아, 아프리카, 중국, 조선: 체스판을 가로지르는 결정적인 움직임들

IV. 다극세계 vs 미제국
21. 부하라에서 브릭스까지: 광기의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여정
22. 중앙아시아: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의 주전장
23. 나토스탄의 로봇 대 다극세계의 천마
24. 다극세계의 색조를 결정하는 러시아의 극동
25. 혼돈의 경제 회랑 전쟁: 인도-중동-유럽 회랑 그리고 잔게주르 회랑
26. 일대일로와 브릭스의 로드맵을 그리는 전략적 동반자들
27. 네 가지 언어로 작성된 퇴거 통지서: 팔레스타인과 서구의 ‘가치’
28. 중국과 러시아는 순항하고 있다
종결: 전쟁 속의 삶, 돈바스의 길 위에서

한국의 독자들에게: ‘혼돈의 제국’의 허장성세 길들이기
타임라인: 다극화 신세계질서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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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페페 에스코바 지음

브라질 출신 저널리스트, 지정학 분석가. 스스로를 다극세계의 시민으로 규정한다. ‘죽어가는 신문 산업의 해외 통신원’으로 경력을 시작해 유럽, 할리우드, 아시아를 거치며 견문을 넓혔다. 라틴아메리카, 유럽, 아시아의 정체성을 함께 품고 문명적 관점에서 세계정세의 한복판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다. 분쟁 지역 전선 취재도 마다하지 않고 유라시아와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가장 최근의 다극세계 역사를 추적하고 글을 쓰고 방송을 한다.

특히 브릭스, 상하이협력기구, 유라시아경제연합 등의 다자기구에 대한 그의 능숙하고 전문적인 취재는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때때로 이러한 기구들의 컨퍼런스에 직접 토론 및 연설 패널로 출연하면서 다극화 진영이 그에게 갖는 신뢰감을 입증하고 있다.

홍콩의 『아시아타임스』, 베이루트의 『더크레이들』, 모스크바의 『스푸트니크인터내셔널』과 『전략문화재단』, 테헤란의 『프레스TV』 등에 연재 칼럼을 쓰며 이 글들은 글로벌사우스 및 미국, 유럽의 매체에서 여러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다. 그의 작업물은 텔레그램(@rocknrollgeopolitics)과 X(@RealPepeEscobar)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글로벌라이스탄』(2007), 『혼돈의 제국』(2014), 『분노의 20년대』(2021) 등 7권의 책을 썼다. 『다극세계가 온다』는 페페 에스코바의 최신작으로, 한국어판으로 소개되는 그의 첫 번째 책이다.

유강은 옮김

국제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더블스피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의 아주 짧은 역사』,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냉전』,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팔레스타인 종족 청소』, 『혁명의 지성사』, 『물러나다』 등이 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로 제58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편집자 100자평
숨 가쁘게 이어지는 국제질서의 대변동 속에서 핵심적 흐름과 대세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그의 대담하고 급진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미 다극세계는 우리의 인식보다 더 빠른 속도로 현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사의 대전환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확인해 보아야 할 새로운 지식과 패기 넘치는 관점이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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