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이 책을 정식출판일 전에 도서전에서 집은 나는 뭔가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이 책을 고른 것 같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이 그의 그 역사서 집필에 대한 것이거나 한국역사관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읽어보고서는 이전에 읽었던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처럼 역사가 어떤 것인지, 역사가들은 어떤 태도로 역사를 쓰는지에 대한 책이라는 느낌을 받아서 기대가 컸다.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 일단 에드워드 카의 책도 그렇게 깊은 심층분석은 아니었지만 유시민의 책은 에드워드 카의 책보다 두껍지만 (솔직히 중간중간에 끼어있는 책표지 삽화는 멋스러움을 위해서라지만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서 공간확보를 위해 요약발췌를 하느니 그런 그림을 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역사관이나 이 책의 내용은 참신하고 깊은 성찰의 연구결과라기보다는 종합취재이자 좀 얄팍한 족집게 요약정리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카의 책보다 더 읽기 쉬웠지만 이미 역사책들을 어느 정도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좀 실망스러운 책 같다.
하지만 역시 지식소매상답게 이 역사책들을 읽어본 적이 없거나 역사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개책이 될 것 같다. 에필로그에서 유시민은 이번 책이 자유여행이 아닌 패키지여행에 비유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패키지 여행을 해본적이 없어서 이 책을 여행지를 소개하는 ‘배낭 속에 인문학’같은 여행 가이드 프로라는 생각이 든다. 수박 겉핥기 식의 패키지 여행이어도 적어도 그 여행지에 직접 가보기는 하는 거니까. 이 책을 읽은 것에 멈추지 않고 적어도 이 책에 나온 책들을 직접 읽어봐야 패키지든 자유든 armchair tourist에 멈추지 않고 여행의 길에 오르는 것이라고 본다.
나는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교육받고 자라나 헤로도투스, 투키디데스, 토인비, 맑스, 카, 다이아몬드, 하라리 등 서양역사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이븐할둔이나 사마천, 신채호, 박은식 등의 서구 외의 역사에 대해서는 너무 몰라서 한편으로는 창피했지만 새로운 도전에 좋은 자극이 된 것 같다.
‘우리가 옛 역사서를 읽는 것은 그들이 남긴 이야기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유시만은 썼는데 맞는 말이다. 수천년 전의 서구문명에 대해 읽어도 내 자신을 발견하는데 근현대의 한국사에서는 더 가까운 자신을 발견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자신을 발견하면서 투키디데스가 염려한 역사의 반복을 일으킬 인간의 본성에 대해 고찰함으로써 이제는 인류 전체가 나서야할 현재와 미래의 문제의식에 대한 각성을 요구한다. 단지 사회의 확장과 기술 및 지식의 발전이 아니라 전세계, 전인류적 문제로의 확대가 역사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 와중에 작지만 한창 시끄러운 한반도의 문제에 눈을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듯하다. 역사가 사실만이 아닌 주관, 과거만이 아닌 현재와 미래와 소통하듯이 거시적인 관점 뿐 아니라 미시적 관점 모두 통합해서 보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역사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