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처럼 쓰기

글쓴이 고은경 | 작성일 2008.4.2 | 목록
발행일 2007년 11월 30일 | 면수 352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3,000원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외화 중 하나일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는 플라잉 낚시를 준비하는 노인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Long ago, when I was a young man, my father said to me “Norman, you like to write stories.” and I said, “Yes, I do,” then he said, “someday when you’re ready you might tell our family story. Only then will you understand what happened and why.”
오래 전,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노먼, 너는 글쓰기를 좋아하지.” 내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또다시 말씀하셨다. “언젠가 준비가 되면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쓰렴. 그때야 우리가 겪은 일이 무엇인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될 거다.”

서평 서두부터 뜬금없이 영화 이야길 꺼낸 바람에 의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읽은 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저자의 어조가 노인의 그것과 닮았음을. 저자의 권유가, 낚싯줄을 던지며 가족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노인의 의지와 맞닿아 있음을.

누구에게나 소중한 경험이 있고, 글로 남기고 싶은 이야깃거리가 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마음 가는 대로 쓰면 된다. 값비싼 도구? 현란한 기술? 어느 것도 필요치 않다. 필기구와 종이 한 장, ‘수수하고 오래된 노력과 언어라는 수수하고 오래된 도구’면 충분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진리를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아름답고 미더운 글쓰기 책이다. 저자는 물 흐르듯 유장한 어조로 글쓰기의 간소한 기쁨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물론 좋은 글을 쓰려면 생각나는 대로 끼적인 수준에서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한다. 간결하게 쓰기, 거듭 고쳐 쓰기, 개성을 살려 쓰기 등 여타의 글쓰기 책에 나올 법한 방법들을 이 책 또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의 관록과 경험치에 힘입어 그 방법들은 한층 설득력 있는 지침들로 다가온다. 이는 유명 작가나 저자의 제자 등 여러 사람의 글쓰기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터. 게다가 인터뷰 기사, 여행기, 회고록, 과학 글, 비즈니스 글, 비평, 유머 글 등 다양한 논픽션 쓰기를 다루어줘서 매우 유용하다. 두고두고 들춰 보게 될, 그래야 마땅한 책이다.

독자에 대한 저자의 태도 역시 마음에 든다. 그는 의연하면서도 겸허하다. 독자의 눈치를 보지 않으나 충분히 예의바르다. 그의 문장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껏 이어져 왔을 물소리가 들린다.

The river was cut by the world’s great flood and runs over rocks from the basement of time. On some of the rocks are timeless raindrops. Under the rocks are the words and some of the words are theirs. I am haunted by waters.
강은 대홍수로부터 생겨나서 태초의 시간부터 바위 위로 흘러간다. 어떤 바위 위에는 영겁의 빗방울이 머물고, 또 그 바위 밑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있어서, 그 말씀이 곧 그들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난 그 강물에 넋을 잃고 마는 것이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당신이 쥔 연필이 종이 위를 스치는 순간부터 물은 흐르기 시작할 것이다. 기억이란 바위를 넘고 희망이란 빗방울을 맞으며, 그렇게. 그러다 어느 순간엔 정말 넋을 잃기도 할 것이다. 그래 난 이런 사람이었지, 내 곁엔 이런 사람들이 있었지, 모두가 흐르고 흘러서 여기까지 왔지, 지금도 난 흐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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