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립습니다!

글쓴이 이연경 | 작성일 2005.2.2 | 목록
박종채 지음 | 박희병 옮김
발행일 1998년 9월 10일 | 면수 440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5,000원

자식이 돌아가신 아비를 그리워하고, 살아 생전 고인께서 자식들에게 하신 말씀과 행동을 생각하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려 노력하는 자세는 시대가 아무리 흘러도 이를 바라보는 모든 부모들의 코끝이 짠하게 만드는 행동일 것이다. 어린 시절, 직업적으로 가정에만 계실 수 없었던 선친에 대한 즐겁고도 행복했던 뚜렷한 기억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간간이 떠오르는 기억의 몇 가닥을 부여 잡고 선친께서 가르침을 주시려던 것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본 계기였다.
나의 선친께서는 직업 군인으로, 군에서 예편하신 후 특별한 직업이 없으셨다. 어쩌다 아시게 된 동네분들과 사업을 해 보시겠다고 투자하셨으나 그 사업은 아버지의 꿈도 헤아리지 못한 채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해 버리고 말았다. 쉬운 이야기로 세상 물정 모르고 투자하셨다가 사기를 당하셨다는 이야기다. 군을 나오신 후 특별한 직업이 없으셨던 아버지께서 사회에 나와 처음 접하는 사업에 거는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30여 년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그때 보여 주셨던 아버지의 흥분된 모습은 지금 나에게 커다란 슬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평소와 달리 나를 방으로 부르신 후, 벽장 속에서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들뜨신 음성과 함께 보여 주셨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명함’이었다. 명함은 단순한 아버지의 사업을 상징하는 증표이기 이전에 당신의 희망이셨고 아들들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있는 증표의 하나였으나 끝내 한 장도 사용되지 못하고 당신께서 돌아가신 후 통째로 소각되었다. 사업에 실패하신 후 아버지는 그 이후 거의 밖에 나가시지 않으신 채 집에서 화초와 새 기르 데만 온 힘을 기울이셨다.
몇 년 후, 집 앞에 무허가 공장이 들어섰는데 아버지는 우연한 기회에 이 공장에 소일 삼아 출입하시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 무슨 일인지 궁금해 우연히 그 공장을 찾아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나는 아버지께서 또 다른 희망을 찾고 계신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것은 공장 내부에 걸려 있던 아버지가 쓰신 구호로부터 알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 생산량을 맞추자’였던 것이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 구호가 생각나 공장에 찾아갔으나, 공장은 폐쇄되었고 아버지의 구호가 붙었던 자리엔 빛 바랜 벽지만이 펄럭거렸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돌아가시기 몇 해전의 모습은 이렇게 기억되고 있다.
선친의 말씀과 연암의 자손이 기록한 내용 중 의미가 같거나 동일한 내용을 여기에 적어 보면, 장난이 심하고 남과 다투기를 잘하던 나에게 아버지는 항시 가르침을 주시던 말씀이 ‘선과 인내’에 대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연암은 ‘선(善)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자기 몸에 갖추고 있는 이치거늘 신명이 굽어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행하는 선에 따라 일일이 복을 내려 주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마땅히 할 일을 한 것이므로 딱히 훌륭하다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惡)은 단 한 가지라도 행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 이는 어째서일까?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므로 미워하고 노여워할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악을 제거하여 죄를 면할 방도를 생각함이 옳을 것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선친께서 내게 항시 하시던 말씀과 일맥상통한 점이어서 십수 번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며 그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였다.
비록 자식들에게 성공한 부모로서 각인되지 않으셨지만 그분이 살아오신 삶의 자세와 행동은 아직은 부족한 부모인 내게 오늘도 큰 가르침을 주고 계시다. 아버님은 가고 안 계시지만 그분의 살아 생전 자식들에게 하셨던 말과 행동 하나하나는 이 아들의 머리와 가슴속에 나만의 ‘과정록’으로 남아 있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아버지!

5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