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왜 우리가 기득권에 저항해야 하며 왜 기득권을 향해 분노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일깨워주는 책이다. 저자는 95세라는 노구의 몸으로 세상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저항 정신이 왜 중요한지를 왜 우리가 지금 분노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펜을 들었다.
이미 기득권이고 분노해야봐야 더 얻을 것도 없어 보이는 저자가 저항 정신을 주장하고 분노할 것을 촉구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세상이 점점 더 권력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중간은 없고 최상층과 극빈층으로 나뉘어 버린 이유를 기득권을 향한 저항 정신과 불의를 향한 분노하는 마음의 부재로 진단하고 있다.
현 사회는 기득권의 조작으로 인해 기득권들에게 너무나 많은 부를 몰아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권력과 멀어진 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기본적인 권리마저 주장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는 비단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한국도 프랑스 못지않게 부와 빈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으며 보통 사람의 권리는 심각할 정도로 소외되어 있는 실정이다. 만약 이와 같은 현상이 저항을 받지 않고 계속된다면 과거 왕과 귀족들만 권력과 혜택을 누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즉 만약 우리가 기득권을 향해 정당한 권리 주장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기득권들만 온갖 권력을 독점하며 그들만 온갖 혜택을 누리는 그런 암울한 세상으로 되돌아가고 말 것이다. 기득권들만 위한 세상이 다시 안 찾아오란 법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저자의 말에 귀 기울여 한다.
이 책은 총 6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저자의 분노 유지 기간’이다. 저자는 1917년 생으로 (올해가 2011년이니까) 5년 후엔 100세를 맞이하는 95세 노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기득권에 저항하는 청년정신으로 똘똘 뭉쳐있다. 정말이지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세상에 불만을 갖고 분노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감정은 좋은 감정이든 나쁜 감정이든 간에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은 사그라지기 마련이다. 100%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더라도 처음과 달리 수그러드는 것이 감정이란 정서다.
그런데 저자는 거의 1세기라는 긴 시간 동안 계속해서 분노라는 감정을 보유하면서 살아온 것은 물론이고 지금도 분노하면서 타인들을 향해 세상에 분노하라고 독려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저항정신이고 불굴의 의지력이다. 뒤에서도 다시 언급하겠지만 저자의 이런 저항정신이 단지 권력을 노리고 혹은 어떠한 혜택을 누리고자 발휘된 것이라면 퇴색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기득권을 향한 순수한 저항정신이기 때문에 그의 정신은 값진 것이고 칭찬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도 노쇠한 몸을 이끌고 지금도 여전히 기득권에 저항하며 보통 사람들의 권리 찾기에 앞장서는 저자를 본받아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불의에 저항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기득권이 기득권에 저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시절의 저자는 피기득권이었다. 즉 젊은 시절의 저자는 권력과 무관한, 권력에 소외된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저자는 젊은 시절과 180도 다르다. 지금의 저자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기득권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기득권인 저자가 기득권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으며 피기득권들에게 기득권에 저항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는 점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게 저자는 자신도 엄연한 기득권이면서 기득권을 비난하라고 충동하고 기득권으로부터 권력을 뺏어오라고 촉구할 수 있단 말인가! 보통 사람의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을 저자는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린 왜 저자가 이런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저자가 지금도 여전히 처음 세상에 저항을 했을 당시처럼 피기득권이었다면 저자의 행동은 놀랄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은 나이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얻지 못해 끊임없이 저항하는 이들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대 권력자들을 살펴보더라도 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득권들은 글자 그대로 이미 권력을 얻었기 때문에 세상에 저항할 이유도 없고 세상을 향해 분노할 이유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개의 권력자들은 보수 성향을 띠면서 세상을 바꾸기 보단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고만 하는 것이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것도 또한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들의 보편적인 행동이다. 이와 같은 기득권들의 행보는 권력이 생긴 이래 변한 적이 없다. 그런데 저자는 기득권이면서도 같은 기득권 세력을 공격하고 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왜 저자는 같은 편인 기득권을 두둔하거나 보호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비난하며 반기를 드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저자의 저항정신은 권력욕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에 저항하는 이유는 권력을 갖기 위해 혹은 어떠한 혜택을 얻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권력을 갖기 위해 투쟁하고 자신이 누리지 못한 혜택을 얻기 위해 저항한다. 그게 일반적인 투쟁이고 저항이다. 반면에 저자는 인류의 근본적인 권리를 위해 기득권에 저항했고 지금도 같은 이유로 저항하고 있다. 만약 저자가 자신의 일신의 안위를 위해 혹은 권력 욕구를 채우기 위해 저항을 했다면 기득권이 된 시점부터는 태도를 달리 했을 것이다. 굳이 과거를 들추지 않고 현재의 권력 추구자들만 놓고 보더라도 그들이 세상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이유가 타인이 아닌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위해 헌신할 것처럼 떠들어대고 시위대에 앞장 서 투장했던 수많은 사람들 중 기득권이 된 후 지금까지도 세상에 저항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과거엔 권력에 소외되었지만 지금 권력을 누리는 사람 중에 과연 몇이나 타인을 위해 발 벗고 나서서 투쟁하고 있고 기득권에 저항하고 있는가 이 말이다.
권력을 얻기 전과 얻은 후의 사람의 태도는 변하기 마련이다. 오히려 안 변하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피기득권이었던 사람이 기득권이 되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변해 보수 성향을 띠게 된다. 여기서 권력을 얻었다가 잃고 다시 권력 투쟁을 하는 자들은 제외토록 하자. 이런 자들은 다시 권력을 얻기 위해 현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지 국민들을 위해 혹은 전 인류의 권리를 위해 분노하는 것이 아님을 우린 확실히 인식해야 한다. 이런 것을 보면 저자의 저항 정신이 얼마나 숭고하고 위대한 것인지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저자의 저항 정신을 본받아 기득권의 만행에 분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저항하고 분노하더라도 왜 저항하는 왜 분노해야 하는지를 똑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가 왜 저항하는지 왜 분노하는지 모른 채 행동하면 권력추구자들의 꼭두각시 노릇밖에 하지 못한다. 권력 추구자들에게 이용당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왜 자신이 저항하는지 왜 분노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또한 권력투쟁을 도우며 떡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세상에 저항하는 척, 분노하는 척 하는 자들도 경계해야 한다. 이들도 또한 보통 사람들의 권리가 아닌 자신의 일신과 명예를 위해 투쟁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결코 이들에게 현혹되어 새로운 기득권을 만들어주는데 기여해서는 안 된다. 저자처럼은 아니더라도 순수한 뜻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항하는 자들을 지지하고 권력욕이 아닌 정말 모든 국민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는 그런 자를 도와 분노하는 것이 바람직한 저항 정신이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바이다. 왜 우리가 분노해야 하고 왜 우리가 기득권에 저항해야 하는지를 바로 인식하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