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시대를 철하다 – 안재성지음/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2.13 | 목록
안재성 지음
발행일 2012년 9월 24일 | 면수 392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7,000원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 국내외의 여러 매체에 실렸던 글들을 뽑아 엮은 책이다.

그 시대를 그 시절로 바라보는 현재의 역사서와는 다르게 그 시대를 지금으로 기록한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요즘 하는 말로 레알, 리얼이라는 것이 그 특징이다.

그 시대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거나, 과거와 오늘을 관통하는 근본원리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소재를 찾아서 선별하였고, 오늘의 한국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도 관심을 끈다.

일제시대 대표적인 대중잡지이던 『개벽』이나『별건곤』, 널리 알려졌던 잡지였으나 일제 말기에 어용지로 변질한 『산천리』등의 민족주의적인 잡지들부터 『신흥』, 『비판』같은 사회주의 계열 잡지들, 쏘련 모스크바에서 발행된 『모쁘르의 길』, 중국 연안에서 발행한『조선의용대 통신』, 중국 상해에서 발행한 『꼼뮤니스트』, 일제가 만주에서 발행한 어용신문 『만선일보』까지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았다. 해방 후에도 우익 계열인 『신천지』부터 중도파 신문이라 할 수 있는 『새한민보』와 『혁명』,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와 좌파 신문『현대일보』까지 다양한 매체들로부터 기사를 수집했다.

『신계단』투고 편지 내용 – 일제시대 여성노동자의 노동현실은 참혹이라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심각함. 취직한 여성 노동자들은 어느 공장이나 할 것 없이 극심한 강도의 노동과 장시간 노동, 저임금에 시달렸다.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취업을 했다가도 얼마 못 가 도망치거나 파업을 일으키는 일이 부지기수, 덕분에 공장주들은 똑똑한 여성들보다는 되도록 미련해 보이는 여성들을 선발했을 것이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되던 1890년대부터 수많은 조선인들이 항일에 뛰어든다. 최소 10만 명 이상이 희생당했던 동학농민군과 역시 수많은 희생자를 낳았던 초창기 의병들의 투쟁, 7,000명이 학살당했던 3.1만세운동 등 조선인들의 항일 투쟁은 해방되는 그날까지 반세기 동안 계속되었다. 그런데 3.1만세운동 이전의 항일운동이 특정한 이념을 가졌다기 보다 외세에 항거하는 민족주의 의식이 주류였다면 이후 투쟁은 명백히 사회주의 사상이 이끌게 된다.
대다수 민족주의자들이 직접적인 투쟁을 포기하고 민족주의자들은 직접적인 투쟁을 포기하고 민족개량주의운동으로 돌아선다. 반면 1917년 러시아혁명에 고무된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투쟁에 나선다. 이때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이던 소련은 실제 항일투쟁에 막대한 자금과 조직적인 지도를 아끼지 않는다.

일제는 뭔 사건만 나면 닥치는 데로 요시찰 인물들을 연행해 가두고 장시간 조사를 벌인다. 악명 높은 예심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재판을 받기 전에 1,2년씩 가둬 놓는 것은 기본이었다.

무기와 보급품에서 열세일 수밖에 없는 조선의용군이 일분군과 대적해 승승장구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중국 민중들의 절대적인 지지. 팔로군은 물론 조선의용군은 주민들에게 물 한 그릇, 쌀 한 톨도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제일의 철의 규율로 삼았기 때문.

중국공산당 산하 팔로군 지도부는 조선의용군이 한 명이라도 손실을 보지 않도록 많은 배려를 함. 장차 해방된 조선을 이끌어야 할 사람들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고 특별 명령을 내려 주로 일본군과 그 속에 섞인 조선인 징병자들, 중국 민중들에 대한 선전선동을 하도록 한다.

러시아혁명이 성공한 지 겨우 7년 만인 1924년 지도자 레닌이 사망. 너무 빨랐던 레닌의 죽음으로 러시아 혁명은 본래의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된다.

후계자 대상에 올라 있지도 않던 스탈린이 등장해 일인숭배와 피의 독재라는 전대미문의 공산당 독재를 강행함으로써 혁명정신이 파괴되어 이후 여러 사회주의 국가를 고통에 빠트린다.

레닌은 스스로 자기 당의 이름을 볼세비키, 즉 다수파로 지었을 만큼 당내 민주주의에 병적으로 철저했던 사람. 반면 스탈린은 일당독재와 사상검증이라는 공산주의 체계가 가진 허점을 이용해 자신을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만듬. 공산당 일당독재라는 이론 자체는 레닌이 주창한 것이지만 스탈린은 그 본래의 의미를 살리기 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이를 악용한 데 불과한 인물이 되고 만다.

개인 우상화와 조급한 사회주의화 등으로 표현할 수 있는 스탈린주의를 받아들인 여러 사회주의 국가의 실험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만다. 하지만 스탈린주의가 곧 사회주의의 필연적 귀결도 아니고 사회주의의 필연적 한계도 아닐 것이다. 프랑스 혁명과도 같이 초기의 부작용을 오랜 세월에 걸쳐 다듬어지듯, 그 원인도 언젠간 현실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전쟁은 언제나 한 국가와 국가 사이의 일정한 이해관계를 원인으로 한 무력적 충돌이다. 옛날의 전쟁도 그랬거니와 현대의 전쟁은 더욱 그러하다.

해방은 왔으나 봄은 오지 않았다. 그 시기에 남한 경찰들은 좌익용의자를 체포하면 일제 경찰보다도 더 잔혹한 고문을 한다. 일제 때는 일본인 밑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에 불과했으나 해방 후에는 공산주의자를 포함한 애국자들을 없애지 않으면 자기들이 죽어야 한다는 절박감으로 더욱 잔인하고 혹독하게 탄압한 것이다.

간도성에는 비수로 유명한 김일성이 있었는데 만주사변 직전에 토벌대에 사살을 당하자 김성주는 만주사변이 발발하던 그때 즉 18세 때부터 김일성으로 이름을 고치었으므로 근일에 와서도 간도에 있던 김일성으로 오해하는 이가 많다. 오늘날 북한에서 발행되는 김일성 전기는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최소한 일제 중후반기 10여 년간 김일성이 항일빨치산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이 『만선일보』에도 잘 나와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 항일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김일성을 불세출의 영웅이나 지도자로 찬양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식이라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극우파로 변신한 사람들도 과거의 행적만으로 존경해야 할 것입니다.

김일성은 항일운동에 바친 십여 년보다도 훨씬 더 긴 세월을 스탈린주의 독재자로 군림하면서 수많은 북한 주민들을 굶주림과 억압에 시달리게 만든 전체주의 파시스트이다. 무엇보다도 전쟁을 일으켜 300만의 동족을 죽게 만든 전범이기도 하다. 수많은 혁명동지들을 죽이고 사회주의 이상을 개인우상화에 이용한 그는 역사의 단죄를 받아 마땅하다.

박헌영 – 충남 예산 양반 가문과 주막집 주모 사이의 서자로 태어나 경성고보 재학 중 3.1운동을 계기로 항일운동에 뛰어듬, 뛰어난 두뇌와 원칙에 깐깐하면서도 온후한 성품으로 절대다수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줄곧 지도자로 옹립됨. 해방된 조국에서 반발의 여지가 없이 조선공산당 지도자로 선출되나 남한에서 1년을 버티고 미군정 경찰의 수배를 피해 북한 땅으로 넘어가나 김일성 밑에서 부수상, 외무상 등을 전전하다가 한국전쟁이 종료될 무렵 미제의 간첩이란 명목으로 체포되어 3년 뒤 처형됨. 스탈린 조직노선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자신과 생각이 일치하는 이들 이외에는 모두 적으로 돌려 배척한다든지, 북한에 올라가서도 김일성 우상화 등 문제점을 비판하지 않은 채 전쟁의 공범이 되는 실수를 범한다. 그리고 자신의 노선의 결과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본래 조선일보는 3.1운동의 여력을 몰아 여러 뜻있는 유지들에 의해 세워진 민족신문이었으나 경영이 악화되자 광산재벌이던 방응모에게 넘어간다. 다수가 주인이던 1920년대 조선일보는 반일적이고 진보적인 논조로 널리 지지를 받았으나 방응모가 인수한 뒤로는 반일적인 기자들을 대부분 해고하고 친일적인 논조로 넘어가고 만다.

이태진 – "역사가는 기록을 떠나서 못 살지만 창작한다는 예술가들은 왜 그 문헌에만 사로잡히는지 알 수 없다고 이런 말을 보드래도 역사소설이라고 꼭 역사에 따라 쓸 건 아니라고 봅니다."

"결혼이 연애의 무덤이라는 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발달되지 않은 감정과 감정의 결합이면 그럴 수가 있거든요, 다시 말하면 맹목적으로 사랑을 하다가 결혼하면 결혼 후에 온갖 허물이 피차에 보여서 권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죠마는 다 성숙된 감정과 감정이라면 도저히 그럴 리가 없습니다.

발달되지 않은 감정의 결합으로 파탄되는 거야 어쩌는 수가 있습니까? 억지로라도 얽어매어 놓아야 별수 없지요, 내 생각엔 서로 맞지 않는, 다시 말씀하면 성숙된 감정이 아닌 감정의 결합을 법률로 도덕으로 얽어매 놓고 싶진 않아요, 그건 위정자에게 있어서나 매우 긴요한 논리일지 모르지만."

이승만은 안전하고 편안한 미국 땅에서 미국 관리들에게 로비를 하며 만나는 조선인들마다 돈을 내라고 하여 악명이 높았던 사람.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서도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돈타령만 한 것이다. 자신의 고집만 내세우고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금권 매수를 제일의 수단으로 생각해온 이승만에게 돈 많은 친일 매국노들이야말로 제일이 벗이었던 것.

그들에게 둘러싸여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아니라 이승만이 그들을 이용해 권력을 잡으려 한 것뿐. 대한민국 수립 후에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든 반민특위를 대통령인 이승만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앞장서 없앴다는 사실을 진실을 웅변한다.

당시 시대 상황으로 보아 남북의 독자적인 정부수립은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에 앞장선 이승만은 그의 개인적인 야망과 탐욕은 별개로 두고라도 우리 역사에서 가장 염치없는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야만 할 것이다.

성의 자유사상을 수입한 조선의 일부 진보적 여성들은 성을 생리현상으로만 간주하고 누구하고나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주장. 신여성 화가인 나혜석은 성관계란 밥 먹고 배설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아무하고나 잠잘 수 있다고 주장하였고, 여성 사회주의자 허정숙은 세 남자로부터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낳아 자신이 키운다. 그러나 봉건적 도덕의식과 여성에게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 남녀간 불평등한 관계가 공존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러한 자유로운 성애관은 비난의 표적이 된다.

일부 인용부분과 일부 저자의 해설을 같이 혼재하였다.

당시의 잡지의 내용 중 주요 내용을 옮겨 오는 것도 의미는 있으나 그의 내용에 기초한 해설을 가져오면 더 이해가 빠르니…

레알이 중요한가, 리얼이 중요한가의 선택에서 일부 레알, 일부 리얼을 선택했다. 번역서의 직역과 의역, 선택의 차이리라…

잡지와 방송이 없어도 세상은 변하고, 역사는 진보하나…

대책 없는 언론은 역사라는 수레바퀴의 걸림돌… 하지만 역사의 발전 자생력을 결코 뒤로 물리지 못하는 필연적 사유로 인해서 바퀴를 조금 늦출 수만 있을 뿐이다…

지금 우리의 주위의 걸림돌이 될 뿐인 언론, 잡지, 방송, 신문 등 등은 과연 100년 정도 뒤에는 이런 책으로부터 마구 쏟아내는 기사들이 향후 어떻게 평가받을지를 최소한도로 생각을 하면서… 최소한의 미래의 눈치를 보는 언론,방송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 이네들 언론, 방송, 정치인들이 움직이는 것은 마치 내일이 없을 듯하고, 후안무치하여 역겨울 따름이니…

이를 어찌한다…. 이를 어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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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시대를 철하다 - 안재성지음/돌베개] 우리 현대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 직전까지 국내외의 여러 매체에 실렸던 글들을 뽑아 엮고, 저자의 해설을 덧 붙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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