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기반 문화대국 조선 – 정옥자지음/돌베개
부제 : 조선사에서 법고창신의 길을 찾다.
이 책은 석학인문강좌 시리즈물 중 한 권으로 말 그대로 인문강좌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강좌가 언제, 어디서 이루어졌는지 모르겠으나…
강좌가 들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열렸으면 열 일을 젖혀두고 가서 들었을 텐데… 하면서 보아둔 책이었다.
그러던 2012년 12월 31일이 기울고 있는데…
돌베개 출판사에서 일 년을 마감하면서 책 한 권 구입하면서 마감하는 것도 참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캠페인성 이벤트가 열리는 것을 보고 퇴근길에 교보문고 들러서 한 권 구입한 책이다.
여자들이 외출할 때 뭘 입고 나갈까? 직장인들이 오늘 점심을 뭘 먹을까? 라는 고민을 할 때… 뭔 책을 고를까?라는 고민도 나름 참 재미있는 고민이긴 하다.
아무튼 덕분에 이 책과 『잡지,새대를 철하다』와 『삼국사기』가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는 인연으로 함께 하게 된 책이 되었다.
나에게 ‘짧지 않은 조선역사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진행형이다. 분명한 동력이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개념 정의가 아직도 시원하게 내려지지 않은 진행형의 학문인 조선사의 동력에 대한 이야기… 숨은 그림 찾기처럼 하나씩 둘씩 풀어서 맞추어서 나가는 중이다…
조선의 마지막, 대한제국의 마지막이 일본의 식민지로 강제병합됨으로 인해서 찟겨지고, 짓밟히고, 왜곡된 조선역사의 동력을 찾는 것 또한 이 책의 지은이와 내가 찾고자 하는 학문적 진리 중의 한 가지임은 분명하다.
저자는 그 동력을 찾고 있었다. 조선의 역사는 문화사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연구는 규장각 자료들을 섭렵하면서 문화사관에 입각해서 식민사관을 걷어내고 도적과 자존, 평화를 지향하는 문치주의 전통을 찾아내어 조선시대가 지식에 기반을 둔 문화국가임을 밝히는 데 주력했다.
조선왕조의 기본적인 성격을 탐색하고, 왕조의 기본적인 성격의 바탕이 되었던 조선시대 선비의 삶과 선비정신에 대해서 알아본다. 그런 다음에 근현대에 내내 문제가 되는 사대와 중화사상에 대한 실체를 조선 중화사상으로 이어져 대한제국의 정신적 뿌리가 되고, 위정척사사상으로 이어져 의병,독립운동으로 이어진다는 것도 다룬다. 말미에는 정조와 규장각에 대해서 그리고 사대부 다음의 차지식 층인 중인들에 대해서 알아본다.
저자는 서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론적으로 일제가 가장 심하게 평가 절하한 조선의 역사를 문화사적으로 재정립해서 왕도정치와 덕치를 중심으로 하는 문치주의의 본질을 파악하고 문화국가의 실상을 밝혔다. 나아가 시대에 따라 전개된 조선왕조의 역동적인 자기극복의 모습을 단계적으로 밝혀 냄으로써 음지에 묻힌 조선후기 역사를 양지로 끌어냈다."
조선사의 동력을 "왕도 + 덕치 + 문치 = 문화국가"라는 방정식으로 풀어낸 책이다.
책이 주요 내용들을 잠시 열어보면….
현재의 우리와 맞물려 있는 조선시대의 역사는 편찬되지 못 했다. 국가 차원에서….
조선의 국제관계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천하라는 동북아시아 세계질서를 인정하고 그 질서 속에서 자주 보강하고자 내수외양(내치를 닦아 외적을 물리친다)에 힘쓰며 평화적 공존체제를 모색했다. 그러나 세계가 제국주의에 의해 재편되는 과정에서 서세동점의 충격에 적절히 대응못해 망국의 비운을 맞는다.
사대주의론은 우리가 중국에 사대로 일관한 종속국이지 자주국가가 아니라는 이론인데, 전통시대에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사대라하고 기타 주변 여러 나라와의 외교관계를 교린으로 규정한 데서 사대를 차용해서 주의를 붙여 만들어낸 것인데. 이는 문화 외교의 한 방법 중의 하나이지 굴종과 지배의 관계는 아니었다. 사대는 외교의 한 형태였을 뿐이니 유교적 예교질서로 규정할 수 있다.
책봉은 왕이 즉위하거나 정치적 사건이 생길 때 중국의 승인을 받는 절차로, 오늘날 정권의 승인과 유사하다. 세계 각국에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미국의 승인부터 받아야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오늘날 외교 관행과 다름이 없다. – 이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붕당이 이익집단으로서의 면모를 분명히 하고 피비린내 나는 살육까지 감행한 것은 1세기에 걸친 붕당정치의 폐단이 나타난 17세게 말 이후의 현상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나 사상도 유효기간이 있는 법이다. 일정 기간의 역사적 역할이 끝나면 폐단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선은 역성혁명으로 건국된 나라지만 일찍이 국가운영방식을 성리학적 이념에 입각한 문치주의로 설정하고 법에 의한 강제 보다는 교화를 통한 자율성을 제고하는 덕치를 그 이상으로 했다. 그 결과 문약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동서고금에 장수한 나라는 모두 무력에 의존한 나라가 아니라 문화능력으로 통치했음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조선이 양란 이후에 무너져 내리는 사회라는 말은 역사의 기초지식을 못 갖춘 억지였다. 도무지 250년 이상의 시간에 걸쳐 와해되는 사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 역대 왕조의 평균수명은 150년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선비는 지식 종사자에 불과한 오늘날의 지식인보다 확대된 역할을 했다. 지식과 교양을 갖춘 인문학도로 학문과 예술을 겸수해 이성과 감성이 잘 조화된 지식인이었다. 앎과 행동을 일치시키려 최선을 다하고, 배운 것을 실천을 통해 이 세상에 실현시키려 노력하며 치열하게 살다 간 이상주의자다.
문집에 의하면 조선선비들이 얼마나 명분을 중요시했는지를 ‘선생’이라는 칭호의 절제된 사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생의 사표가된 사람에게만 선생이란 칭호를 올리고 일생 동안 한 명의 선생을 모시거나 따라서는 독학하고 선생이란 존재를 찾아볼 수 없는 이도 많다.
관리 중에서도 백성과 가장 가깝게 접촉하는 지방관청의 책임자야말로 청렴의 기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조선은 중앙집권적인 국가로서 경제정책도 국가기획으로 사회주의와 유사한 체제였다. 일부 특권상인들이 당시 세도가인 노론 벌열과 정경유착해 정치자금의 공급원이 되었다.
조선초기 경국대전 체제에선 양인과 천인의 양천 이원체제에서 양인,중인,상인,천인의 네 계층으로 분명한 신분질서를 고정시켜감. 양인이 양반, 중인, 상인으로 계층 분화. 당대의 주도계층이던 양반사대부들이 시효성이 다해 가는 조선 성리학에 집착하고 있을 때 이들은 구체적 행정사무와 기술에 대한 실용적 지식을 갖추고 지식 축적을 기반으로 사대부에 못지않은 교양을 갖춤으로 자아실현의 돌파구를 찾아 몸부림치며 신분의 사슬을 벗어나려는 치열성을 보였다.
중인계층에서 시.서,화 삼절이 많이 배출되는 현상은 시,서,화를 교양필수로 해서 종합예술을 지향하던 조선사대부의 문예사조를 중인계층이 계승하면서 신분상승의 징표로 삼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1장 조선왕조의 기본 성격에서 출발한 강의하는 듯한 필체는 반복되는 단원들도 조금 있기는 하지만 2장 선비에 대한 개념정의를 하는 장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속도를 올려서 중화사상의 개념과 정조시대와 조선 말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뻔하였던 중인들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다루면서 책을 마친다.
"강의와 함께 책을 만났다면 조선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아주 쉽게 할 수 있었던 인연을 만들 수 있었겠는데… 조선 전반의 동력에 대해서 큰 줄기를 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었겠는데…" 하는 아쉬움이 몰려오는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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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기반 문화대국 조선 - 정옥자지음/돌베개] 조선의 역사는 문화사라는 시각으로 문치주의 전통을 찾아내기 위해 조선왕조의 기본 성격, 선비의 삶 등을 통해 지식에 기반을 둔 문화국가의 실상을 밝힌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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