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여름휴가를 어딜 돌아다니는 것보다 한 곳에서 머물면서 보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서 채 다 못본 책들을 넉넉하게 보고 오는 것이 목표였었다.
아이들이 커져서 휴가를 제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집사람은 집에서 아이를 뒷바라지하고 나도 그냥 집에서 책이나 볼까… 하다가 시골집으로 자리를 옮겨서 열대야도 없고, 낮에도 선선한 곳으로 피난을 가서 제대로 책을 읽고 오자… 는 생각에 꼭 읽고 싶은 책 5권을 엄선했다.
단단히 맘먹고 런던올림픽을 뒤로하고 책만 보리라… 다짐하고 여행길에 올라서 런던올림픽의 유혹을 물리치고 찬찬히 4박 5일간 집중해서 다 읽고 온 여름휴가 5선 중 가장 먼저 뽑아든 책이 [허규선집 -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이다.
휴가지 베스트 라인업 5 중에 허균선집을 가장 먼저 손에 잡은 이유는 돌베개의 우리고전 100선이 읽기 편하고 쉽게 엮은 책이라서 독서 휴가의 출발을 가볍고 쉽게 출발하고 싶어서였다. 예상했던 데로 쉽고 편하게 들어가서 나온 책이다.
이 책은 허균의 글 중 전해오는 글들을 엮은 책인데, 허균(1569~1618)은 선조 ~ 광해군 때의 문신이자 당대를 대표하는 문인 중의 한 사람이었다. 우리들 중 대부분은 그저 홍길동전의 저자로서 사회 모순을 비판한 문인 그리고 그의 누나 허난설헌 정도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허균의 다른 모습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는 돌출적인 행동으로 인해서 내내 탄핵과 파직, 재기용 심지어는 역모로 몰려 죽음까지 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고의 시인이었고, 예리한 논설과 높은 수준의 시를 짓는 실력 덕분에 명나라 사신들이 오면 어김없이 재기용되어 사신을 영접하는 자리에 임하게 될 정도로 높은 수준의 문학적 실력을 가진 것 만은 분명한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정상급 문학가이자 시인 허균의 글 중에 지금까지 전해오는 글들을 읽기 쉽게 풀어 엮은 책이다.
책 속의 해설편에서 저자가 요약한 내용을 살펴보자면~
허균(1569~1618)은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 조선과 동아시아의 격변기를 살다 간 인물이다.
정치가로서의 허균은 허다한 추문 속에 살다 마침내 반역죄로 처형당한 괴물로 나고 말았다. 반면 문학가로서의 허균은 조선 한문학사의 보배로운 존재였다. 허균에 대해서 반감을 품은 이들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조선 제일의 비평가였다. 하지만 그의 글은 그의 사후에 반항아, 음험한 반역자로서 정당한 평가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그의 글은 대부분 사라졌고, 이후에도 공식적 간행이 불가해서 필사본으로만 전해진 일종의 금서였기에 현존하는 글이 적다.
근대로 접어들어 허균은 전혀 다른 시각에서 처형당한 반역자의 형상은 서얼 등용을 주장했던 생전의 그의 주장과 홍길동전에 힘입어 중세를 거부하고 평등에 입각한 새로운 질서를 꿈꾸던 날개 꺾인 혁명가의 이미지로 바뀌었다…. 어느 쪽이 허균의 참모습인가?
허균의 아버지 허엽 아래 선조대에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대립할 때 동인의 영수 역할을 할 정도로 조선에서 가장 흥한 가문의 막내 귀공자로 태어나는데 선조 앞에서 극언을 마다 않다가 병조판서 이이를 탄핵한 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뒤 유배에서 풀려났음에도 도성에 들어오는 것이 금지될 정도로 선조에게 골치아픈 존재였다.
1594년 전쟁이 소강상태일 때 허균은 문과에 급제했다. 이후 그는 도합 다섯 차례나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훗날 허균이 파직되어 재기용 되기 어려운 시점에도 번번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준 자리가 바로 원접사 종사관이라는 자리였다. 명나라 사신을 접대하는 자리에서는 고금의 역사와 문학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고 짧은 시간 동안 시를 지어 주고받기도 해야 하는데 허균이 적임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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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 - 허균선집/정길수편역/돌베개]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라, 겉과 속이 다른 간신 소인배로도 불렸던 허균. 하지만 반대파들조차 인정했던 당대 제일의 비평가요 박학가인 그의 글을 쉽게 풀어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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