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소리치며 숯덩이가 되어 쓰러진 전태일 열사…
어느 젊은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쓴 책인 것은 한국 사람이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 이제는 공영방송을 통해서도 책에 대해서 소개가 나가고, 일본어(일본에서 먼저 출간되었다는 말이 있다)와 영어판도 존재할 정도로 세간에 많이 알려진 책이다. 한때 모든 청년 학생들의 필독서이자 교과서였던 책….
나는 이 책을 다시 만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의 일기를 그린 [어머니]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2012년 4월 5일 개봉되어 시장에 런칭되었다. 이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작을 위하여 기록물을 담던 중 이소선 어머니는 2011년 9월 갑작스레 세상을 등지셨다. 그렇게 어머니의 삶의 흔적들을 담아서 만든 영화는 2012년 4월에 개봉하여 홍대 앞 상상마당 등 여러 극장에서 공개되었으며, 이 날은 상상마당의 상영 마지막 날… 그 영화의 마지막 회 상영을 본 후 태준식 영화감독과 삽입된 노래의 가수인 이아립의 미니 콘서트를 1만 원에 만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참석자에게는 [전태일 평전] 1권씩 선물하고, 회비로 낸 1만 원은 좋은 곳에 기부를 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꼭 참석하고 싶어 신청을 했던 바…. 다행하게도 초대를 받아 그날 퇴근길을 재촉하여 상상마당으로 뛰어가서 담당자를 만나서 표를 받고 급하게 저녁 먹고 관람한 영화였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라고 소리치며 쓰러져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故조영래 저자의 글은… 1980년 광주민주항쟁 이후 군사독재가 살기등등한 82년의 어느 저녁 무렵 청계피복노조의 전 간부였던 민종덕 씨가 대학노트에 깨알 같은 잔글씨로 씌여진 원고의 복사물을 들고와 출판을 제의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시절이 시절이라 출판사에서도 이 책을 출판할 경우 출판사가 박살 날 수도 있는 어려운 시절…. 과감한 결정을 내린 출판사, 수배 중이면서 원고를 완성한 저자, 그 복사본을 들고 와서 요청한 사람… 당시에는 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물어본다는 것은 금기에 속하였고, 안다는 것 자체도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고 해서, 첫 출판을 하는 시점에는 故조영래 저자가 쓴 글임을 드러내지 않았어야 할 만큼 어려웠던 시절에 나왔던 그런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과 저자는 둘 다 안타깝게도 단명한다… 연령이 높고 낮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꼭 보고싶은 일들을, 이루고 싶은 일들을 다 못 이루고 세상을 등진 것 같은 안타까운 단명을 말하고자 함인데….
한 명은 22세의 나이로 또 다른 한 명은 이 책을 쓰고 인권 변호사로서 헌신적인 활동을 하다가 43세라는 나이에 폐암으로 타계했다. 故조영래 저자는 그가 수배 중에 열정을 다하여 집필한 책인데 군사독재 시절 내내 철저하게 비밀에 붙여졌던 저자의 이름이 1991년 1차 개정판에 이르러 겨우 이름을 올릴 수 있었는데 그 개정판 발간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또한 이소선 어머니도 40주년 추모회를 넘기고 마음을 놓으셔서 그랬는지 몇 해 후 세상을 등지셨고… 세상은 왜 이리 무심한지….
세월이 흘러가면 세상은 발전하기 나름인데… 지금의 우리는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일어난 사건에서 그가 바라고 원하던 세상이 되었는지 되묻고 싶다.
물론 이 책의 발간은 돌베개의 출판 방향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당시의 노동운동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펴내려는 노력은 이 책을 펴내기 전과 이후에도 지속되었으며, 나도 돌베개와 인연이 된 시점은 1985년 전후로 기억한다. 그런 멀고도 긴 인연으로 나는 돌베개 출판사의 [전태일 평전]을 손에 들고 영화 [어머니]를 관람했다.
돌고도는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그가 남긴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를 아직 풀지 못한 것일까? 1976년에 올린 책 속의 서문은 지금도 나의 마음에 돌멩이 하나를 던져서 마음속에 잔잔하게 파장을 일으킨다. 그 일부를 옮겨 적어 본다…
또 전태일은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억압 아래 인간 이하의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민중의 숨결 속에 눈물 속에 죽음 속에 살아 있으며, 역경 가운데서도 생존권과 인간다운 노동을 할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우리 노동자들의 뜨거운 가슴속에 살아 있다. 전태일은, 부패와 특권과 빈곤과 폭압이 없는 내일을 위하여 숨죽여 준비하고 투쟁하고 있는 우리 청년학생들을 비롯하여 자유와 정의와 진리와 평화와 통일의 새 역사를 창조해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손길 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전태일은 여러분에게로 간다. 이 결함투성이의 책자에, 전태일에 관한 약간의 진실이라도 담겨져 있다면, 당신이 이 지구 상의 어느 곳에 사는 어떤 인종, 계층,신조,사상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전태일은 반드시 당신에게로 가서 당신의 심장을 두들기며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소리칠 것이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어느 국회의원의 말이 생각이 난다.
"살림살이 좀 낳아지셨습니까?"라는…
우리는 그가 원하는 만큼 낳아진 것인가? 아닌가?
…….
p.s
1. 오른손으로 뽑아 왼손으로 넘겨와 마지막 장을 덮은 책이다. 한번 잡으면 눈을 뗄 수 없는 힘을 가진 책
2. 얼마 전 돌베개에서 사단법인 전태일기념사업회로 판권이 넘어가게 되어 현재 판매를 하지 않고 재고 도서만 고객들에 행사가 있을 때 나누어 주는 것 같다. 로고 또한 돌베개 예전 로고이다.
3. 다큐영화 [어머니]를 태준식 감독의 사인을 받았다… 옆에 이아립 가수의 사인도 받을 수 있었으나… 이 책과는 안 어울릴 듯하여 죄송하지만 감독의 사인만 받았다.
4. 영화감독에게 물었다. 이소선 어머니의 아들 사후 지속적으로, 열정적으로 움직이게 만든 그 동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