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위식, 국왕의 탄생 – 김지영 외 5명 공저 – 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11.19 | 목록
발행일 2013년 2월 19일 | 면수 320쪽 | 가격 25,000원

즉위식, 국왕의 탄생

– 김지영, 김문식, 박례경, 송지원, 심승구, 이은주 공저 / 돌베개 / 왕실문화총서 08

돌베개 출판사가 3권씩 3세트 도합 9권으로 구성한 「왕실문화총서」 9권 중 8번째인데 주로 왕실의 행사를 위주로 다룬다. 즉위식, 제사, 혼례식 풍경 등 3가지 주제 중 국왕의 탄생을 알리는 즉위식에 대해서 다룬다.

왕권은 사위 혹은 양위 그리고 반정 등에 의해서 권력의 주체가 변경되는데, 새 왕이 되는 과정과 절차 그리고 세자가 왕의 후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되는 왕세자 책봉 의식까지 같이 알아보는 일반인들을 상대로 한다고 책을 만들었지만 깊이와 넓이는 논문급 책이다.

서양에서는 왕권이 넘어오는 상징이 왕관을 새로운 왕에게 씌워주는 ‘즉위식’이 왕권 이전의 대표적인 ‘대관식’인데, 이는 우리나라에 한때 ‘미스코리아’ 선발 후 전년도 미스코리아가 금년도 미스코리아에게 왕비의 관을 넘겨주는 행사 등으로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즉위식은 우리가 상상하는 모습과는 많이 다른 절차를 거쳤다.

기본적으로 전왕의 사후에 왕세자 혹은 왕세제가 사위嗣位(27대 왕의 26회 왕권 이양 중 선왕의 사망으로 인한 왕권 이양이 18회)의 형식이므로 일단 전체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이므로 ‘길례’라기보다는 ‘흉례’의 절차를 따랐다.

이 책을 비롯 현존하는 다양한 사료들 또한 사위를 기본으로 했다.

그 이유는 과거 사위 이외의 규정을 기록으로 남기면 훗날 반정의 본보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 그랬을 수도

물론 궁궐의 상황과 사위와 양위, 반정에 따라서 왕위를 물려주는 장소는 상황마다 달랐으며, 어떤 때는 문問에서 때로는 전殿에서 거행되었다. 사위를 통해 왕위에 오른 경우, 조선 전기에는 경복궁 근정문, 후기에는 창덕궁 인정문에서 즉위식을 행했다. 그 이유는 선왕의 죽음과 함께 하는 사연으로 슬픔과 선왕의 추숭을 감안한다면 감히 전으로 올라갈 수 없었으리라… 물론 즉위식이 끝나면 바로 상복으로 갈아입고 선왕의 장례식을 엄숙히 진행했었고…

물론 중종, 인조의 경우에는 반정으로 혁명에 성공한 사람들의 조용한 잔치가 있었을 것이고, 양위 혹은 수선이라고 하는 선왕이 직접 왕권을 물려주는 경우라 하더라도 신하와 세자들은 언제 선왕의 마음이 바뀔지 모르고 완전히 정권을 장악하기 전에 어떤 정치적 격변이 몰아칠지도 모르기에 일단 겸손하게 수차례 사양하고 또 사양하며, 즉위식에 임하더라도 제반 절차와 복장을 한 등급 낮추기도 했었다.

그나저나 왕이 승하하고 난 이후 대권을 이어받을 사람은 일단 선왕의 장례절차에 따라 최소 6일 정도의 절차를 밟은 이후에 상복을 벋고 공식 복장인 ‘면복’을 착용하고 왕위에 오르는 절차를 밟았기 때문… 덕분에 예악과 관련한 모든 악기를 진설하기는 하지만 궁궐에 음악은 울리지 않았다.

아울러 즉위하는 왕은 즉위, 등극 등으로 불리지만 보위에 오르는 절차는 ‘하늘의 뜻을 받아 천하를 다스리는 제주의 위치에 오르는 것’을 상징하고 천하에 공표하는 절차가 주된 절차였다.

현존하는 다양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그리고 정밀하게 열어 보지만… 너무 깊어서 ‘이거 책인지 논문인지? 이 책이 일반 독자들을 위해서 만든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반부 4부와 5부는 아주 자세하다. 조금 말을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추가 사료 없이 이대로 즉위식을 재현해도 될 정도가 아닌감?’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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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명회전에는 홍무 원년에 거행된 황제 등극의가 실려있다. 이 등극의 의주는 역대 황제의 즉위 의례에 대한 정식 명칭과 의식 절차에 대한 최초의 예전 기록이라는 점에서 동아시아 즉위 의례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것은 대한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고종의 즉위 의례를 거행할 때에도 중요한 전거로 참용된 바 있다.

– 고려 태조가 안정된 국가의 운영을 위해 후손들에게 내린 훈계인 훈요십조에는 왕위 계승에 대한 내용도 나온다. "만일 원자가 불초하고 그 차자가 또 불초하면 그 형제 가운데 추대를 받는 자가 대통을 잇게 한다."라고 하여 적자라도 무능하면 왕이 될 수 없고, 자질이 있는 자가 왕위를 승계해야 한다고 명시, 덕분에 고려에서는 장자에 의한 계승 사례가 적고 정변에 가까운 힘에 의한 왕위 교체가 잦았다.

– 왕의 즉위식이 선왕의 죽음을 애통하는 의식인 국상의 일부로 포함되고 그 과정은 『세종실록』, 「오례」 및 『국조오례』의 단계에서 이미 의례로서 제도화되었다.

– 새 왕의 즉위를 공인하는 외교 의식은 중국에 왕의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리고 시호를 청하는 표문과 전문을 고부사를 통해서 보낸 뒤 석 달 후에 있었다. 중국 황제가 보낸 제후국 국왕을 인준하는 문서인 고명과 면복을 받는 것은 경사스러운 의례이고, 나라 안에서는 삼년상을 치르고 있는 중이라 예를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 논란이 많았다.(중국은 3개월 이후에 국상이 끝남) 상중임에도 고명을 받는 외교적 의례의 자리는 경사스러운 모습을 띄게 되었다.(조선 후기 청대에서는 상례로 바뀜)

– 중국이나 조선에서 용은 통치자의 중요한 상징, 승강룡, 즉 날아오르는 용과 아래로 내려오는 용 두 마리를 그린 교룡기는 여러 용기 가운데 기라고 부리며 위로 올라가 천자를 뵙고 아래로 내려와 방국을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제후의 통치권을 상징하였다.

– 황제가 12류관과 12장 면복을 착용하였다. 9장 면복은 용(龍), 산(山), 화(火), 화충(華蟲, 꿩), 종이(宗彛, 제기), 초(艸, 수초), 분미(粉米,쌀), 보(輔, 도끼) 불의 9가지 상징이 새겨져 있다. 이 9가지 상징은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화하는 정치적 상징물이었다. 황제복인 12장 면복은 9장 면복에 태양(日), 달(月), 별(星辰)이 추가되었다. 태양, 달, 성신은 황제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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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계가 검정, 국정 역사 교과서 문제로 들썩인다.

다양한 종류의 역사 책을 두루 보고 있어, 다양한 시각의 역사 해석을 만나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성명을 발표하는데 아는 사람 이름도 가끔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사학계와 한국사와 관련된 책과 관련한 이름난 저자들은 몇 안 되니…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이번 사태에서 표명한 입장은 정권의 교체에 따라서 여러 가지 방향에서 다양한 후폭풍을 몰고 올 듯해서 마음이 무겁다.

그나저나 이참에 나도 믿고 보는 몇몇 글 잘 쓰고 내용 깊은 저자들 리스트에서 이미 몇몇의 이름이 지워졌다.

​일명 영구 삭제.

과거부터 여러 사학자들 중에는 이미 확실한 일제 앞잡이처럼 보이는 이들도 많았고,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이 방향(식민사관)을 고집하고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했지만 그저 한권의 책, 그저 한 사람의 주장으로 그치면 그 사람의 책 혹은 강연을 안보면 되는거니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와 철학과 해석의 방향을 따르고 말고는 돈을 주고 사보는 독자들의 몫이기에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되고 버려지는 책들이 많아 자정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다고 보기에~

하지만 국정교과서 문제는 좀 다른 사안인데…

과거 조선의 국왕들과 신하들은 신사협정을 맺고 조선 후기까지도 잘 지켜져 왔던 ‘왕조실록’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궁금하다.

현존 최고 권력자인 당대의 왕은 물론이고 그 당대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선왕을 비롯,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실록에 공식적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했었다. 훗날 자신을 어떻게 쓰건, 자신의 선왕을 어떻게 평가했더라도 결코 열람, 수정, 개정을 엄하게 금함으로 인해 엄중한 후대의 심판을 각오하고 움직이라는 지혜에서 출발하고 우리의 사료들을 보호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하물며 많은 지식과 정보들이 공개되어 있는 이 마당에 누구 맘대로 어떤 역사를 무슨 기준으로 획일화해서 자판기 찍어내듯 짜고 비틀고 눌러서 누더기를 만들려고 하는가…

법률과 행정상으로 국민이 선출해서 생에 딱 한번 위치하는 불과 5년의 단임제에 불과한 월급쟁이 대통령이 과거의 역사를 통틀어서 100년 대계라고 하는 아이들의 가르침에 발을 담그려 하는지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 사안을 단순화해보자면…

가장 중요한 건… 당근 민주주의 이론의 접목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두루 들어봐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지 못하는듯 하다.

국가나 기업이나 聽政하지 못하면 淸政하지 못하여 곧 기울게 되어 있다. 대의민주주의와 그를 기반으로 한 정치라는 것은 견제와 균형을 그 동력으로 한다.

여러 다양하고 달고, 쓴 소리들을 다 들어가면서 형평에 맞는 방법과 방향이 나오고 그길을 가야 한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그렇게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리 고집을 꺾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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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식, 국왕의 탄생 - 김지영외 지음 / 돌베개] 왕실의 3대 주요 행사 중 한 가지인 왕과 세자의 즉위식 절차의 유래와 절차를 비롯, 즉위식 의궤를 통하여 의복과 비품 등이 어떤 기물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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