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기애가 쓸데없을 정도로 많아서 내가 남들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편이다. 심지어 다른 사람이 자신과 똑닮은 자식을 낳고 싶어하는 걸 보며 ‘저 사람은 자기 존재를 무척 특별하게 생각하는 게 분명해. 뭐가 잘난 게 있어서 자기 유전자를 복제해 대를 이어가고 싶어하는 걸까? 죽으면 끝인데. 자신의 종적을 남기는 게 삶의 목표 중 하나인 사람들은 뭔가 이상해.’라며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사람들을 속으로 비웃는다. 안다. 엄청나게 사회성 떨어지고 이상하고 못된 생각이라는 걸. 이 책을 읽다 보니, 내가 자식을 낳는 걸 ‘자기 유전자를 특별히 여겨 대를 잇는 행위’로 생각한 건 100% 내 편협한 주관에서 나온, 사실과는 관계없는 의견이란 걸 알았다. 생육하고 번식하는 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체의 유전자에 새겨진 ‘특별한 의미와 목적이 없는’ 미션이다. 유전자로부터 분부받은 제일 강력한 본능에 따라 사는 걸 나는 저렇게 입을 삐죽거리며 해석한 것이다. 생각해보면 놀랄 것도 없는데 말이다. 미생물이 자기가 오늘따라 잘생겨 보여서 번식하는 것도 아니고…
책에 따르면 인간은 ‘생존 기계’이고, 우리가 행하는 많은 일에는 유전자가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며 지시하는 본능이 자리하고 있다. 이 사실은 어떤 관점을 가지고 보는가에 따라 위안이 될 수도, 절망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사실에 굉장한 위안을 얻었다. ‘유전자를 연구할수록 인류의 흥망성쇠 패턴부터 시작해 한 나라의 정책을 정하고 역사를 해석하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 라고 적고 싶지만, 솔직히 말해 ‘아무것도 특별하지 않다. 인간들이 이렇게 지지고 볶고 살게 된 것에는 그 어떤 보이지 않는 손길도 작동하지 않았다. 짜잔, 이 모든 건 우연이었지롱!’ 라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생물학 파트를 읽는 것은, 심리상담 분야의 마법사가 갑자기 나한테 다가와서(이 책을 내돈내산 한 걸 생각하면, 상담을 ‘예약’했다는 표현이 맞을 수도 있다) 건강한 멘탈로 갈아끼워주고 유유히 떠난 것 같은 경험이었다. 나는 그냥 유시민 작가의 팬이라 책을 집은 것 뿐인데, 책을 읽고 나니 갑자기 속세에서 해방된 것 같은 편안함이 들었다. 우리 인생에 무슨 일이 펼쳐지든, 그게 가지는 절대적인 의미는 없다. 그냥, 나는 내가 내 인생에 부여하고 싶은 의미를 부여하며, 우연히 태어난 김(이 자체로 우리는 특별하다, 야호!)에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고 재밌게 살다가 흙으로 돌아가면 된다. 유전자가 내 머리칼을 잡고 영화 라따뚜이 속 쥐처럼 이렇게 저렇게 당기며 나를 특정한 방향으로 가도록 유도할 것이고, 나는 재주껏 그 본능을 거스르거나 추구하며 살아가면 된다. 웬만하면 거스르고 싶다. ‘본능’이라는 말이 여전히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이다. 그래도 유전자에 새겨지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은 본능 중에는 이타적인 행동을 비롯한 내 마음에 드는 본능들도 있다는 걸 배우게 돼서 좋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착하면 손해봐.’, ‘기브 앤 테이크지’, ‘사실인데 뭘 그래?’, ‘위선 떠는 것보다 솔직한 게 좋아’. 글쎄다. 적당한 다수가 착하면 우리 유전자가 오랫동안 보존된답니다, 여러분. 이제 당당하게 말하고 다닐거다. 적자생존을 약육강식과 엮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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