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나의 숲입니다

신영복을 읽는 시간

김명인, 강원국, 김미옥, 김중미 외 5인 지음

발행일 2026년 6월 29일
ISBN 9791194442998 03810
면수 248쪽
판형 변형판 130x225, 소프트커버
가격 20,000원
한 줄 소개
신영복 선생 10주기에 띄우는 답장, "10년 만입니다, 선생님!"
주요 내용

신영복 선생 10주기에 띄우는 답장,

“10년 만입니다, 선생님!”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신 지 올해로 10년이다. 강산이 한 번은 변할 그 시간 동안 우리의 삶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여전히 ‘어제의 나’와 치열하게 경쟁하며 모자람을 자책하고 있지는 않은지,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임을 순순히 수긍하고 존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신영복 선생은 당신의 마지막 책 『담론』에서도 내내 걱정했는데, 선생 없이 보낸 10년의 시간 동안 신자유주의는 공고해지다 못해 이제는 출구조차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1997년, 해외여행을 하며 기행문을 연재하던 어느 날, 신영복 선생은 이런 글을 쓰셨다.

나는 당장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더불어숲)

그러고 보니, 신영복 선생은 내내 우리에게 엽서를 띄우기만 했다. 감옥에서는 형수님과 계수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감옥 안의 사색을 꾹꾹 눌러써서 내보냈고, 출소한 뒤에도 국내와 해외, 그리고 우리나라의 변방을 여행하며 엽서를 띄웠다. 그런 선생에게 이 책은 뒤늦은 답장이지만, 저자 없이 남아 있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답장일 것이다.

SNS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서평으로 유명한 김미옥 작가는 「숲에서 보내는 편지」를 통해 자신이 오랫동안 신영복 선생을 좋아했노라 수줍게 고백한다. 오래전 강연장 뒷줄에 서서 선생을 지켜봤지만 끝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 작가는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유일한 이’로 신영복 선생을 이야기하며, 자신은 늘 제도권 밖의 사람이었기에 뭐든 타인보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답장이 이렇게 늦었노라고 말한다.

김미옥 작가뿐 아니라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여덟 명의 작가 모두가 각자의 글쓰기 방식으로 선생에게 연대와 사색의 메시지를 띄웠다.

이 책에 수록된 여덟 편의 글은 신영복 선생에 대한 오마주이자, 선생의 글에 대한 작가들의 답장이다.

 

 

탈근대적 대안 모색, ‘관계를 맺으면 달라진다

 

신영복 선생은 『맹자』의 ‘곡속장’ 에피소드를 인용하며 본 것과 안 본 것의 차이를 설명한다. 양혜왕이 흔종 의식에 끌려가 도살당할 위기에 놓인 소를 풀어주고 양으로 소를 대신하라 한 것은 양이 더 싸서가 아니라 덜덜 떨며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본 것과 안 본 것의 차이는 한 생명의 생사를 가른다.

김하나 작가는 아침마다 들리는 금속성의 “탁- 드르르륵, 탁- 드르르륵” 하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 도대체 아침부터 누가 이런 소리를 내는지, 한마디 해 주겠노라 창문을 벌컥 열었는데, 작가의 시선에 들어온 존재는 허리가 거의 ㄱ자로 굽은, 앙상하게 마르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한눈에도 낡아 보이는 보행 보조기를 밀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계셨는데, 창문을 벌컥 여는 소리에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귀도 잘 안 들리시는 듯했다. 그다음 날에도 소리는 여전했지만, 소리의 정체를 알고 나니 작가는 이제 더 이상 불쾌하지 않았다. ‘아, 할머니가 오늘도 지나가시네.’ 작가는 이것을 ‘신영복식 층간 소음 해결법’이라고 부른다. 소음은 그대로지만 그 소음의 주동자를 내가 보고 알게 되어 그와 나 사이에 ‘관계’가 생긴다면 심리적 고통은 크게 덜어지게 된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자본주의가 거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면서 이제는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기보다는 인간과 돈이 관계를 맺는 사회가 되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만남’이 없기에 식품에 유해한 물질을 넣는 일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관계가 없으니 배려할 필요가 없다. 드론을 마구 날려 수많은 사람을 살상하는 것도 서로를 보지 않고 전쟁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고’ ‘만나는’ 일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정지우 작가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으며 ‘관계론’의 의미에 집중하면서, 우리 시대에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거의 매일 고전을 읽는다. 마음이 약간 허하다 싶으면 『채근담』이나 『명상록』을 읽고 가끔은 성경도 읽는다. 그리고, 마음 깊이 내려가고 싶을 때는 카뮈나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다시 읽는다. AI가 전 세계를 휩쓰는 이때, 작가가 매일 고전을 읽는 이유는 고전의 한 줄, 한 단어 속에 시대를 넘어선 어느 한 인간과의 진실한 ‘대화’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관계론의 보고 『논어』를 다시 읽는다는 것이, SNS 등을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고 시기 질투와 조급함을 만들어내는 온갖 관계들로 가득한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를 담는지 설명한다. 『강의』는 ‘관계의 결핍’을 겪고 있는 우리를 위해, 동양 사상 전체를 ‘관계론’으로 읽어 내고, 우리 시대의 결핍을 채우려고 시도한다.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가 ‘고전 독법’으로 향하는 첫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비참한 것들과 약한 것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 파노라마

 

1987년부터 지역 공동체를 꾸리며 ‘기차길옆작은학교’의 큰이모로 살고 있는 김중미 작가는 신영복 선생의 ‘하방연대’, 즉 바다처럼 아래로 아래로 모여 이루는 낮은 연대가 진짜라고 말한다. 작가는 신영복 선생이 만난 청구회 아이들과 작가가 만난 동호와 희철이를 나란히 놓으며, 가난한 이들의 연대와 희망, 만남과 연결의 힘을 이야기한다.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 네 개를 잃고 주먹손이 된 열다섯 살 동호, 새벽부터 신문 배달을 하고 점심은 보급소에서 혹은 일하는 중국집에서 대충 때우며 알콜릭 아버지와 사는 희철이, 그들을 돕고 싶지만 힘이 되지 못해 마음 한구석이 늘 에이는 작가. 작가는 이 시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존재가 어린이 청소년이며, 우리 사회는 어린이와 청소년과 연대하지 않으려 할 뿐 아니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연대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더욱 서로 연결이 간절하고, 약하고 가난한 이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희망을 만들어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정희진 작가는 ‘의기 방자’한 사람을 질색한 신영복 선생에게서 묘한 동류의식을 느낀다. 서구 자본주의를 쫓아가려는 한국 사회는 “의지의 한국인”, “의지의 어머니”들로 넘쳐난다. 하지만, 자유 의지를 갖기 어려운 조건에서 사는 사회적 약자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은 폭력이다.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 어떤 일도 엄두가 나지 않아 미루는 것이 습관인 사람들, 구직 활동을 포기하고 ‘쉬는’ 이들, 수시로 몸살을 앓는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사람들, 가난의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기분 장애(mood disorder)를 앓는 사람들, 하루하루 나이 듦을 실감하는 사람들, 부당한 상황에서도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사람들, 겁먹은 사람들, 병원에서 만나는 질병을 앓는 그 많은 건강 약자에게 신영복 선생은 ‘약한 사람은 패배자가 아니라 착한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위로한다. 작가는 나약한 사람으로써 평화와 약함을 재해석하고 ‘의지’의 힘을 상대화하기 위해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읽고 또 읽는다.

 

 

신영복’, 세대를 뛰어넘는 헤리티지

 

이 책의 서문을 쓴 김명인 교수는, 한 사람이 사라진다는 것은 한 세계가 사라지는 것이고, 그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든 연루되어 있던 남은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가 사라진다는 것은 자기가 관계 맺었던 세계의 한 부분이 동시에 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그런데 가끔 자기 세대의 울타리를 넘어, 혹은 자기 세대로부터 이탈하여 어떤 잉여를 남기고 그것을 다음 세대로까지 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특별히 위대하거나 우월한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은 특이한 존재들이다. 어떤 특별한 계기를 통해서 동세대가 공유하는 주류적 인식과 행동 체계와는 결이 다른 인식 체계나 삶의 방식을 가지게 된 사람들이다.”

신영복 선생 타계 10주기, 그의 퇴장과 함께 그의 세계도, 그와 연루되어 있던 나의 한 부분도 동시에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영복’이라는 이름과 선생이 남긴 책과 사상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하방연대, 만남, 관계, 대교약졸, 상선약수 이런 단어들은 경쟁, 투쟁, 각자도생, 승자독식, 약육양식 같은 말들과는 다른 세상의 말들이라, 언뜻 들으면 무력해 보이지만, 이런 말들을 통하지 않는다면 오늘날의 정글 같은 세상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꿈꿔볼 수도, 만들 수도 없다. 그래서 그가 남긴 말은 부드럽지만, 강물처럼 도도히 흐른다.

최재봉 작가는 3월의 마지막 일요일, 서오릉 산책길에 올랐다. 「청구회 추억」에서 신영복 선생이 소풍에 나선 절기가 “산기슭의 양지에는 벌써 진달래가 피어 있”는 “조춘”早春 즈음이었으니 얼추 시간마저 비슷하다. 지금은 봉분으로부터 멀리 목책을 둘러놓아 선생과 청구회 여섯 꼬마가 단체 사진을 찍은 장소조차 알 길 없지만, 그럼에도 무작정 길을 나선 건 기자로서의 직업적 본능일 것이다. 작가는 사형선고를 받고 정신적으로 극히 혼란스럽고 취약했을 사람이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그토록 순정 어린 글을 쓸 수 있는지 궁금해했고, 그 해답을 선생의 책 속에서 찾아낸다. 즉, 감옥살이가 언어를 버리고 몸과 실천의 세계에 주목하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음을, 그로부터 선생의 품성과 감수성이 벼려졌음을 「신영복 선생과 서오릉 걷기」에서 이야기한다.

강원국 작가는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된다」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쓰기에 담긴 특별한 것들에 주목한다. 글쓰기 1타 강사답게, 작가는 신영복 선생의 글이 삶과 일치되는 어려운 경지의 증거들을 찾아내 요령 있게 우리에게 설명해 준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신영복 글쓰기에는 3가지 목적이 있고, 7가지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신영복의 글에는 9가지 ○○이 있다. 그래서 신영복 선생은 떠났지만, 여전히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고 말한다.

“그의 글은 삶에서 우러나온 진정성, 시대를 꿰뚫는 깊은 통찰,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따뜻한 문체가 결합되어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신영복 선생의 글이 작가에게 위로와 용기를 준 것처럼, 독자들과도 신영복 선생의 글이 주는 깊은 울림을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이동국 작가는 한국 서예 연구자이자 큐레이터로 37년간 120여 차례의 전시를 기획해 왔다. 신영복 선생의 서화 <서울>도 이동국 작가가 기획한 《1994 서울 정도 600년 기념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이동국 작가는 신영복 선생의 쇠귀체(어깨동무체)에 담긴 철학에 주목한다. 조형과 내용이 일체가 되는 ‘쇠귀체’의 역사성과 현대적인 의미를 짚어낸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서체야말로 글씨 예술의 근본을 돌아보고 앞으로 서예가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설명한다.

 

 

책 속으로

 

P16.(김미옥, 숲에서 보내는 편지중에서)

강제로 유배지의 정주민이 되어야 했던 당신과 유목민으로 성장한 나와의 만남은 『더불어숲』이었습니다. 당신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당장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늦은 편지를 씁니다.

P26.(김미옥, 숲에서 보내는 편지중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가 책을 덮고 일어나 벚꽃이 만발한 봄의 숲길을 걸었습니다. 계절은 이렇게 어김없이 다시 옵니다. 당신은 여기 없지만 한 번도 내게 부재한 적이 없습니다. 당신이 나의 숲입니다.

P48~49.(김하나, 신영복이라는 바다중에서)

그래서 나는 수집한다. 우리가 서로를 보고 만날 때 생기는 변화의 증거들을. 관계 맺기의 희망에 대한 이야기들을.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이나 팟캐스트를 통해 발신하는 말에 그 힘이 담기기를 바란다. 그를 통해 또 다른 관계가 생겨나기를 바란다. 나의 말과 글에 그런 힘의 부스러기라도 들어 있다면 그것은 신영복 선생님이 남기고 가신 가르침을 내가 기억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일 것이다.

P51~52.(김하나, 신영복이라는 바다중에서)

‘처음처럼’도 ‘더불어숲’도 짧은 글귀지만 선생의 힘 있고 따뜻한 어깨동무체와 만나면 보는 순간 읽는 이의 내면에 퐁당 떨어지는 조약돌처럼 널리 파문을 일으키는 단단한 말이 된다. 물론 그 힘에는 이 말과 글씨처럼 살아간 한 사람의 전 생애가 스며 있다.

 

P71~72.(김중미, 동호와 희철이에게중에서)

나는 선생이 말한 ‘구원의 시간’이 어떤 것인지 안다.씨름에 이긴 선생을 “전리품 실은 개선장군처럼” 영접하던 아이들의 빛나는 눈빛을, 그 안에 담긴 따뜻함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나를 자기들 편 사람으로 간주해 주는 그들의 푸짐한 칭찬”, “어색하고 서투른 표현에도 불구하고 가식 없는 진정” 그 자체인 아이들의 마음을 안다. 나 또한 청구회 어린이들이 선생을 자기편으로 맞아 주던 그 감동과 같은 감동을 여러 번 겪었다.

 

P93~94.(김중미, 동호와 희철이에게중에서)

청구회 아이들이 선생에게 절망의 작은 창문이었던 것처럼 공부방 아이들이 내게 창문이었다. 그 창으로 보이던 별빛, 어둠을 밀어내고 기어이 말간 얼굴을 내미는 햇빛 덕분에 살았다.

 

P118.(정지우, 우리 시대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중에서)

『강의』는 우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양적 가치인 ‘인성의 고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시 인간과 인간의 만남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다시 만남의 가치를 깨우치고, 스마트폰 화면을 뒤로한 채 사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를 ‘삶’으로의 회귀라고 말하고 싶다.

 

P120.(정지우, 우리 시대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중에서)

팔랑거리며 온갖 말에 현혹되기 좋은 시대, AI가 매일 무수한 텍스트를 생성해 내는 시대, 우리를 붙잡아 줄 것은 한 문장이라도 우리 정신에 깊이 뿌릴 내릴 ‘무게 있는 말들’이다.

 

P136.(정희진, 신영복의 평화를 생각한다중에서)

평화는 평화平和라는 그 말뜻과는 달리, 매우 당파적이어서 내 마음의 평화가 타인에게는 지옥일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보편적인 평화는 가능하지 않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정의한다면, 나는 취약한(vulnerable) 몸들이 서로 의지하는 세상이라고 말하고 싶다.

 

P137~138.(정희진, 신영복의 평화를 생각한다중에서)

나는 “의기가 방자한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지나치게 나대는 사람,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도 두렵다. 인류세, 빈부 격차 등 인간과 지구의 모든 비극은 이 같은 인간형이 대세가 되면서 생긴 일이다. 의지가 박약하거나 몸이 아픈 사람들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은 폭력이다. 약자는 의기가 방자한 이들을 감당할 수 없다. 승부는 옳고 그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의 끈질긴 의기에 의해 정해진다.

 

P169.(최재봉, 신영복 선생과 서오릉 걷기중에서)

꽃샘추위의 역습과 그에 이은 진짜 봄의 방문을 묘사한 이런 문장을 보라. “어디서 철모르는 와공蛙公(개구리)이, 성급히 고름을 풀던 꽃잎이, 이 눈발에 얼지나 않는지. 해마다 봄은 피다가 얼은 꽃을 들고 동령冬嶺 넘어 아픈 걸음으로, 늦어서 수줍은 걸음으로, 그렇지만 배달부보다 먼저 오는 것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처음 읽었을 때의 감동이, 긴 투옥 기간에도 온전히 보존되고 오히려 더욱 연마된 듯한 선생의 품성과 감수성 그리고 문학적 향내가 물씬 풍기는 필력 덕분이었음을 새삼 알겠다.

 

P174~175.(강원국,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된다중에서)

신영복, 그에게 글쓰기는 타자에게 가는 여행이다. 머리로 안 것을 가슴으로 느끼고, 손발로 실천함으로써 타자의 삶에 공감하고, 타자를 통해 자기 스스로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여정이다. 그는 독자에게 그런 여행을 권한다.

 

P207.(강원국,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된다중에서)

글을 쓰는 동안 신영복 선생을 다시 만났다. 많이 배웠고 내내 행복했다. 그의 글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며 우리 안에 숨 쉴 것이다. 나의 글은 일종의 신영복 글쓰기에 대한 오마주이며 신영복 평전이다.

 

P214.(이동국, 쇠귀체, 내력과 구조 너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중에서)

쇠귀의 서書는 주류 서예가와는 정반대의 궤적을 보여 주었다. 공모전이 아니라 현대 서가들이 버린 생활 현장에서, 실존에서 서의 꽃을 피웠다. 시심詩心에 먼저 귀를 기울이면서 이것을 문자 조형으로 담아냈다. 일상에서 서의 완전체를 길어 올린 것이다.

차례

*
*
김명인 ― 머리말
김미옥 ― 숲에서 보내는 편지
김하나 ― 신영복이라는 바다
김중미 ― 동호와 희철이에게
정지우 ― 우리 시대 동양고전을 다시 읽는다는 것
정희진 ― 신영복의 평화를 생각한다
최재봉 ― 신영복 선생과 서오릉 걷기
강원국 ―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된다_신영복의 글에 있는 3가지, 7가지, 9가지
이동국 ― 쇠귀체, 내력과 구조 너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지은이·옮긴이

김명인 지음

문학평론가. 인하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및 『황해문화』 편집주간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관장으로 재임 중이다. 저서로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 『폭력과 모독을 넘어서』, 『부끄러움의 깊이』, 『내면 산책자의 시간』,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등이 있다.

강원국 지음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설 비서관 등으로 일하며 여러 리더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었다. 지금은 집필, 강연 활동을 하며 자기 말을 하고 자기 글을 쓴다. 저서로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 『나는 말하듯이 쓴다』, 『강원국의 어른답게 말합니다』 등이 있다.

김미옥 지음

자타공인 활자중독자다. 30년간 공무원으로 일했으며, 2019년부터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한 서평이 많은 이에게 회자되었다. 절판되거나 묻힌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서평가로 유명한데, 출판계에서는 이를 ‘김미옥 현상’이라 부른다. 저서로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쓴다』, 『미오기傳』, 『나의 왼발』(공저), 『당신의 삶이 글이 될 때』(공저)가 있다.

김중미 지음

1987년부터 인천 만석동에서 ‘기차길옆공부방’을 열고 지역 운동을 하였다. 지금은 강화로 터전을 옮겨 농촌 공동체를 꾸려 가며 ‘기차길옆작은학교’의 큰이모로 살고 있다. 저서로 『괭이부리말 아이들』, 『꽃섬 고양이』, 『느티나무 수호대』, 『모두 깜언』, 『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곁에 있다는 것』, 『꽃은 많을수록 좋다』 등이 있다.

김하나 지음

읽고 쓰고 듣고 말하는 사람. 예스24의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김하나의 측면돌파>를 4년 동안 진행하며 수많은 작가를 인터뷰하고 책을 소개했다. 2022년부터 황선우 작가와 함께 팟캐스트 <여둘톡-여자 둘이 토크하고 있습니다>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금빛 종소리』,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공저), 『말하기를 말하기』 등이 있다.

이동국 지음

한국 서예 연구자이자 큐레이터로 37년간 120여 차례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예술의전당 수석 큐레이터로, <신화, 영원한 생명의 노래>·<한국서예이천년>·<오세창의 전각·서화감식 콜렉션 세계>·<한글書×라틴타이포그래피>·<치바이스와 청조 문인의 대화–사여불사似如不似>·<추사 김정희와 청조 문인의 대화-괴怪의 아름다움>·<ㄱ의 순간> 등을 기획하였다.

정지우 지음

작가이자 변호사다. 20여 권의 인문학 및 에세이를 집필하였고, 활발한 대중 강연과 칼럼 기고를 비롯해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SNS에도 일상의 사유를 꾸준히 올리며 대중과의 소통을 이어 가고 있다. 저서로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돈 말고 무엇을 갖고 있는가』, 『AI, 글쓰기, 저작권』, 『글쓰기로 독립하는 법』, 『나를 살린 청춘 고전』 등이 있다.

정희진 지음

여성학·평화학 연구자, Ph. D. 저서로 『아주 친밀한 폭력』, 『정희진처럼 읽기』, 『소통 불가능성의 인문학』,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전5권)』, 『페미니즘의 도전』, 『다시 페미니즘의 도전』 등이 있고, 『‘위안부’, 더 많은 논쟁을 할 책임』 등 80여 권의 공저를 썼다.

최재봉 지음

기자. 1988년 한겨레신문 공채 1기 기자로 입사해 사회부, 국제부 등에서 근무하였고, 현재는 한겨레 책 지성팀 선임기자로 문학 및 출판 분야 기사를 쓰는, 독보적인 문학 전문 기자다. 저서로 『이야기는 오래 산다』, 『탐문, 작가는 무엇으로 쓰는가』, 『그 작가, 그 공간』, 『언젠가 그대가 머물 시간들』, 『최재봉 기자의 글마을 통신』 등이 있다.

편집자 100자평
1997년, 해외여행을 하며 기행문을 연재하던 어느 날, 신영복 선생은 이런 글을 쓰셨다.
“나는 당장 당신의 답장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나는 당신의 답장을 읽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더불어숲』)
그러고 보니, 신영복 선생은 내내 우리에게 엽서를 띄우기만 했다. 감옥에서는 형수님과 계수님에게 한 달에 한 번씩 감옥 안의 사색을 꾹꾹 눌러써서 내보냈고, 출소한 뒤에도 국내와 해외, 그리고 우리나라의 변방을 여행하며 엽서를 띄웠다. 그런 선생에게 이 책은 뒤늦은 답장이지만, 저자 없이 남아 있는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답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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