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년마다 한번씩만 읽어 볼 생각입니다.

글쓴이 최준영 | 작성일 2005.6.23 | 목록
조영래 지음
발행일 2001년 9월 1일 | 면수 320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9,000원

왠지 모를 이유로 선뜻 집어들었습니다. 오랜만에 들른 서점에서 하필이면 몇 번이나 읽었던 그 책을 집어들게 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굳이 이유를 따져보면, 그게 그(책)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던 듯합니다. 그렇지요. 눈에 들어왔는데, 고작 몇 번 읽었다고 해서, 고작 집에 있다고 해서 그(책)를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늦은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 ‘개정판이니 뭔가 달라졌겠지’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잠깐 훑어볼 요량이었습니다. 그러나 책을 펴는 순간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밤을 꼬박 지새우고 말았습니다.

전태일 평전, 그 이름만으로 일상의 모든 상념들을 날려버릴 듯합니다. 10여년 만이고, 세 번째입니다. 80년대 초반, 그러니까 제가 야학 학생이었던 시절, 문건으로 은밀하게 돌아다니던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살 떨리는 긴장감과 함께 읽었던 기억이고, 대학 시절 학회 세미나를 위해 읽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울지는 않았습니다. 새삼 울고불고할 감성이 제겐 남아있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울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저는 전태일과 마주한 것이 아니라 초라하고 부끄럽고 별 볼일 없는 저 자신의 과거와 맞닥뜨리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애증이 수없이 교차했던 그 날밤, 저는 울음 대신 상념의 구두점만 연신 찍어냈을 뿐입니다.

전태일이 점심 먹을 돈과 집으로 돌아갈 차비를 털어 어린 시다(여공)들의 주린 배를 풀빵을 사서 채워주고 자신은 밤새 걷고 달리기를 반복해 무려 3시간 여만에 집에 도착했다가 잠시 눈 붙이고 다시 출근하곤 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저는 눈물 대신 웃음이 나왔습니다. 저 역시 그런 내달림과 걷기의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학교사를 하던 때의 일입니다. 저녁 무렵 이문동에서 출발해 한 시간 반 동안 내달려 종암동에 있는 야학에 도착하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곤 했습니다. 물론 차비(토큰 혹은 회수권)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최루가스 냄새를 바람에 날려버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탓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내달려 최루가스 냄새를 없애고 나면 그보다 더 역겨운 땀 냄새를 풍기며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얼마나 웃기는 일입니까. 아무튼 덕분에 체력도 좋아지고, 야학에서는 차비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내내 동정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제 머릿속에 자주 떠오른 것은 그때의 기억이 아닙니다. 그 보다 오래전, 그러니까 제가 소위 ‘공돌이’로 놀림 받는 게 싫어 옆구리에 ‘앙드레 지드’나 ‘헤르만 헤세’를 끼고 다니던 야학학생 때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지요. 열다섯살 어린 여공이 공부해보겠다며 야학에 찾아왔다가 불과 3일만에 그만 둔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 한 분과 저는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돼서 그녀의 공장에 찾아갔습니다. 물론 문전박대만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나중에 어렵사리 야학에 들른 그녀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자신은 공부가 하고 싶은데, 검정고시도 보고 싶은데, 공장주인이 못 다니게 한다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흐느끼며 야학을 떠나던 그녀의 손가락을 본 순간 저도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손등과 손마디가 온통 피멍이었습니다. 요꼬(서서 좌우로 움직이는 직조기계)바늘에 찔려서 생긴 상처였습니다. 일이 서투른 시다나 견습공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상처였고, 공장에서 그 상처에 비례해서 숱하게 면박 받고 멸시 당했을 그녀가 하염없이 가엾기만 했습니다.

야학 문학의 밤 때의 일입니다. 시낭송과 노래부르기가 끝나고 드디어 기대했던 연극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은 ‘공장의 불빛’.(참나, 당시 교사들은 대체 무슨 마음으로 우리한테 그런 공연을 시켰던 건지..) 한시간 이상 진행되어야 할 공연이 채 30분도 안 돼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이유는 조명문제도, 배우의 연기나 연출이 엉망이어서도, 무대사고가 나서도, 관객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온통 울음바다가 되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날 모두 울었습니다. 구경 온 동네 아줌마 할머니들도, 연극을 기획/연출했던 교사들(대학생)도, 연기했던 학생들도, 저도…

세상에 태어나서 그렇게 오래도록 펑펑 울었던 때가 있을까 싶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런 기억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빌어먹을 책 읽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이 리뷰를 쓰면서 눈물이 핑 돕니다.

그 해 겨울을 난 뒤, 제가 좋아했던 여학생은 고검에 합격한 후 여상에 들어갔고, 어떤 여학생은 공부를 접고 다시 공장생활에 전념하기로 했고, 저를 무던히도 따르던 어떤 남학생은 고검 합격 후 대검(대입자격 검정고시) 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어떤 형님은 장가를 갔고, 어떤 누나는 남동생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며 공장에만 전념하기로 했고, 어떤 여학생은 교사(대학생)와 연분이 났고, 어떤 동생은 말도 없이 야학을 그만두었고, 아뿔싸 야학은 우리들의 야학은 건물주의 느닷없는 재산권 행사로 인해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생이 되어 슬픔 대신 열정과 분노로 다시금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전태일 평전)’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두 번째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의 감성은 무디어질 대로 무뎌졌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아니 변할 수 없는 게 있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전태일의 일기 속에 담겨 있는 숭고한 인간애입니다.

인간을 물질화 하는 세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人間像)을 증오한다.
(186쪽)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201쪽)

과거가 불우했다고 지금 과거를 원망한다면 불우했던 과거는 영원히 너의 영역의 사생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 (208쪽)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생을 두고 맹세한 내가, 그 많은 시간과 공상 속에서, 내가 돌보지 않으면 아니 될 나약한 생명체들.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너희들은 내 마음의 고향이로다…..
오늘은 토요일. 8월 둘째 토요일. 내 마음에 결단을 내린 이날, 무고한 생명체들이 시들고 있는 이때에 한 방울의 이슬이 되기 위하여 발버둥치오니 하나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239쪽)

단지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쳤던, 단지 벗들과 함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참세상을 만들어보겠다는 소망을 가졌던, 그 스물 두 살의 꽃다운 청춘은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뒤로하고, 그토록 사랑했던 어린 여공들과 청계천변 평화시장의 노동형제들을 남겨두고 마침내 한 줄기 불꽃으로 산화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애절하고도 절통한 죽음에 대해 저 같은 소인배가 저 같은 한량이 감히 무슨 자격으로 토를 달고 초를 치겠습니까. 그저 성마른 목소리로 이 척박한 대지 위에 작은 불꽃을 틔워 마침내 성화요원으로 타오른 시대의 초인, 전태일의 유지를 새삼 가슴깊이 새겨두고자 할 따름입니다.

사랑하는 친우여, 받아 읽어주게.
친우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 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리고 만약 또 두려움이 남는다면 나는 나를 영원히 버릴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領域)의 일부인 나.
그대들의 앉은 좌석에 보이지 않게 참석하네.
미안하네. 용서하게. 테이블 중간에 나의 좌석을 마련하여주게.
원섭이와 재철이 중간이면 좋겠네.
좌석을 마련했으면 내 말을 들어주게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어쩌면 반지(指環, 金力을 뜻함)의 무게와 총칼의 질타에
구애되지 않을지도 모르는, 않기를 바라는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애 다 못 굴린 덩이를,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유언(마지막 쪽)

3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