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물네 권의 일기에 담긴 조선, 조선 사람들
[우리고전100선 19, 20] | 유만주 지음 | 김하라 편역 | 2015년 7월 출간
여기 스물네 권의 오래된 일기장이 있다. 약 200년 전 서울 남대문 근방에 살았던 사대부 지식인 유만주(1755~1788)라는 이가 그 주인이다. 만 스무 살에 시작하여 서른네 살 생일을 며칠 앞두고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쓴 일기이니 길지 않은 그의 생애가 오롯이 여기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가로 22.5cm에 세로 35.8cm의 큼지막한 한지로 묶은 두툼한 공책이 부족할세라 가늘고 단정한 한문글씨로 13년의 시간을 촘촘하게 채운 이 일기의 젊은 주인은 그것을 ‘흠영’(欽英)이라 불렀다. ‘흠영’이란 ‘꽃송이와 같은 인간의 아름다운 정신을 흠모한다’는 뜻의 조어(造語)로, 그 주인 유만주의 자호(自號)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일대일대응에서 우리는 『흠영』이 단순한 일기장이 아니라 그 저자 유만주의 분신이자 또 다른 ‘나’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일기에 남은 유만주는 사마천(司馬遷)과 어깨를 겨룰 만한 위대한 역사가가 되고 싶어 하며, 그런 자신의 꿈을 믿고 정진하던 젊은이였다. 그는 정사(正史)와 야사(野史) 및 소설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일을 기록한 것이라면 무슨 책이든 몰두하여 읽고 논평하던 열정적인 독서가였고, 당시 조선의 현실을 객관적인 태도로 주시하며 자신의 견문을 꼼꼼히 기록하던 재야 역사가였다. 이에 공사(公私) 영역에 걸친 그의 경험이 구체적이고도 상세하게 재현된 그의 일기는 18세기 후반 조선이라는 시공(時空)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자료가 된다. _’책머리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