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와 애국

전후 일본의 내셔널리즘과 공공성

오구마 에이지 지음 | 조성은 옮김

원제 〈民主〉と〈愛国〉
원서 부제 戦後日本のナショナリズムと公共性
발행일 2019년 5월 10일
ISBN 9788971999264 93910
면수 1143쪽
판형 변형판 153x225, 양장
가격 65,000원
수상∙선정 2004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
2003 마이니치출판문화상
한 줄 소개
오늘의 일본을 만든 거장들이 그려 낸 전후사상의 대서사시
주요 내용

전쟁의 언어가 전후의 일본을, 오늘의 일본을 만들었다

이 책의 표지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군중 앞에서 한 신사가 사뭇 자연스럽게 모자를 흔들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누가 저 많은 사람을 모았으며, 저 사람은 누구이기에 저렇게 자랑스레 무수한 군중 앞에 서 있는가. 바로 1947년 12월 7일, 원자폭탄으로 폐허가 된 도시 히로시마를 방문한 히로히토와 그를 환영하는 일본인들이다. 패전 후에도, 일본인들은 여전히 천황의 신민이었다. 현대 일본과 전쟁이라는 ‘체제’가 얼마나 깊이 결합했는지 가장 잘 보여 주는 역사적 장면 중 하나다. 전후에도 전시의 일본은 남아 있었다.
현재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학자이자, 일본 사회의 모순에 침묵하지 않는 지식인인 오구마 에이지는 이미 몇 권의 책으로 한국 독자들을 만났지만, 현지에서 공히 인정받는 그의 주저가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구마 에이지는 마루야마 마사오와 쓰루미 슌스케를 비롯한 사상가들부터 조종사 사카이 사부로 같은 과거의 일본군 병사들과 평범한 학생 이시카와 사쓰키까지 전후 일본을 살아간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아, 대작 『민주와 애국』에서 현대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경로를 구축해 냈다.
지난 5월 1일 일본에서는 30년 간 재위했던 아키히토가 퇴위하고 나루히토가 새 천황에 즉위하면서 특유의 기년법인 연호(年號)도 헤이세이(平成)에서 레이와(令和)로 바뀌었다. 즉위식에서 아베 신조 수상은 “(이 자리는) 격동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평화롭고, 희망 넘치고, 자부심 있는 일본의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가겠다는 결의”라고 밝혔다. “아름다운 평화”를 뜻하는 새 연호 아래서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겠다고 말하면서도, 자위대의 무력행사를 정당화하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행보는 분명 모순적이다.
『민주와 애국』은 사상의 언어를 발판으로 삼아, 일본의 전시 체제가 전후 체제로 재구성된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과정을 세밀하게 파헤쳐 냈다. 이 책에 따르면 자민당과 아베 수상의 정치적 모순은 일종의 필연이다. 전후 일본의 보수 세력의 태두인 요시다 시게루는 패전 직후 수상으로서, 미국의 압력을 받아 전후 헌법에 비무장주의를 수용했으며 국민들에게 그 이상(理想)의 훌륭함을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 책은 요시다가 이미 그 당시부터 언젠가는 일본이 무장을 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음을 지적한다.
결국 세계 평화를 강조하면서도 과거의 식민 지배를 직시, 사과하지 않고 정치적·군사적 갈등을 조장하는 현재의 일본 사회와 정부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70여 년 전의 패전 직후 일본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책에서 주장하듯이 전쟁 중의 일본을 알아야만, 군국주의가 남긴 언어와 체제를 이용해서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할 수밖에 없었던 패전 직후의 일본을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주변국의 현실을 도외시한 채, 자국의 일방적인 내셔널리즘을 강변하고 있는 현재의 일본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려면, 전시와 전후를 가로지르며 변천해 온 일본 현대 사상의 언어들을 집대성한 이 책을 참조하지 않을 수 없다. 분량이 방대한 학술서임에도, 전후 일본사에 이름을 남긴 다양한 인물들의 흥미로운 단면들을 전후사상의 흐름과 적절히 조화시켜서 독서의 즐거움을 더한 저자의 필력도 인상적이다.

“단언컨대 전후 일본에 대해서 알고자 한다면 일단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정치, 역사, 사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이 책의 견해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여기 등장하는 인물 및 논쟁, 사건들을 비롯한 역사적 흐름이, 전후 일본을 논하는 기본적인 발판이 되기 때문이다.” ―「옮긴이 후기」에서

 

같았지만 달랐던 전후의 언어들, 전후는 끝났는가

이 책은 전후(戰後) 일본 사상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들인, 제1의 전후와 제2의 전후라는 두 개의 전후, 전후 민주주의의 언어, 그리고 언설과 심정에 대해 설명하는 「서장」으로 시작한다. 일본의 전후 사상사를 체계적으로 재구성한 저자의 치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두 개의 전후’다.
이 개념은 1955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인 제1의 전후와 그 이후인 제2의 전후를 나눈 것이다. 1955년 이전의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독립한 여느 신생 국가와 같은 후진국이었으며, 패전으로 기존 체제가 붕괴하면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혼란이 거듭되었다.
반면 제2의 전후에는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덕분에 일본 경제가 전쟁 전의 수준을 급속히 회복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의 체결, 보수 세력의 자민당과 진보파의 사회당 등으로 대표되는 55년 체제의 수립으로 일본은 정치적·사회적 안정을 이루었다. 국가 정체성 역시 서구 선진국과 같은 반열에 도달했다고 간주되었다. 패전한 지 불과 10여 년 만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면서, 제2의 전후가 그 이전의 전후와 나뉘었다.
이런 차이로 말미암아, 민주와 애국을 비롯한 현대 사회의 주요 개념들은 시대에 따라 상이한 심정(心情)과 경험을 표상하게 되었다고 이 책은 서술한다. 게다가 전후의 일본인들은 여전히 전쟁 전과 전쟁 중의 경험을 삶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따라서 두 개의 전후를 가로지르며 변천한 언어에는 그들의 전쟁 체험도 반영되었다. 이 책이 민주, 애국, 근대, 시민, 국가와 같은 공공성을 둘러싼 언설들과 그 속에 담긴 심정의 흐름을 추적한 것은, 그것이 전후 일본의 변화를 가장 잘 드러내는 지표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지식인의 사상이 동시대에 집단적으로 공유된 심정과 무관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언설 구조의 변동에 이바지하는 지식인은, 말 쓰임의 전문가로서 집단적인 심정을 표현하는 언어를 빚어내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은 저명한 전후 지식인들의 논조와 함께 정치인이나 일반 민중의 목소리를 동시에 검증할 것인데, 양쪽 모두가 동시대의 공통 기반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종종 언급할 것이다. -본문에서

 천황 만세를 대신하는 반전과 평화의 헌법

1부에서는 전쟁 직후인 ‘제1의 전후’의 언어 체계가 태어난 경위를 검증한다. 1장 「윤리의 초토화」에서는 두 개의 전후를 포괄하는 전후사상의 근원이 된 전시의 사회 상황을 개괄한다. 일본 제국의 상층부가 보인 비효율성과 난맥상부터, 젊은 지식인들이 체험한 불합리한 병영 생활, 서민들과 어린이들이 군수 공장과 농촌의 집단 피난지에서 겪었던 고난까지, 전후의 일본인들이 언어에 담고자 했던 심정의 근원을 입체적으로 보여 준다.
다음 2장부터는 전시사상의 언설을 변용하여, 전후의 새로운 사상을 구축하려 했던 노력들을 중시한다. 이것을 저자는 “바꾸어 읽기”라고 부른다. 2장 「총력전과 민주주의」는 천황제를 옹호했던 전시의 언어를 “바꾸어 읽어서” 전후 정치의 민주주의를 구축하고자 했던 마루야마 마사오와 전시의 총력전 체제가 효율성을 강조했던 논리를 “바꾸어 읽어서” 전후 경제의 “근대적 인간 유형”를 수립하고자 했던 오쓰카 히사오가 주인공이다. 전후 일본을 대표하는 이 두 사상가는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습득한 언설을 완전히 버리고 새것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저자의 주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사례다.
3장 「충성과 반역」은 패전 직후에 급변했던 천황제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과 히로히토 퇴위론의 흐름을 다루었다. 현재의 일본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격렬했던 병사 출신 국민들의 천황에 대한 반감도 볼 수 있다. 또한 마루야마 마사오의 스승이자, 이 시기를 대표하는 정치 철학자, 정치가였던 난바라 시게루를 중심으로 제기된 퇴위론이 전시의 내셔널리즘과 맞닿은 지점도 세밀하게 서술했다. 이들이 제기한 천황의 전쟁 책임은 어디까지나 천황의 명령으로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일본인들에서 비롯되었다. 이때는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조차도 자국의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아시아 국가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4장 「헌법 애국주의」는 전쟁 포기와 비무장주의의 조항, 헌법 제9조에 대한 논의를 다루었다. 제1의 전후만 해도 이 조항은 대중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 의회 내의 논제였다. 이 반전 평화의 조항은 미국의 압력으로 성립되었지만, 요시다 시게루 수상을 필두로 한 보수파는 이것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일본의 상징이라고 선전했다. 이렇게 반전 평화를 전후의 내셔널리즘으로 성립시킨 언설의 방식은 전시의 천황제 옹호와 유사했다.
5장 「좌익의 ‘민족’, 보수의 ‘개인’」은 공산당에 속한 지식인과 보수 지식인이 남긴 언설을 대조적으로 분석한다. 공산당은 전시에 사실상 유일하게 전쟁을 반대한 세력이었기에, 제1의 전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전쟁에 반대했으나 정부의 압력으로 결국 전향했던 지식인들이 패전 후에 품은 자괴감이 이 영향력의 바탕이었다. 또한 이것은 전쟁에 찬성했거나, 혹은 훨씬 소극적으로 반대했던 보수파가 개인의 생활을 지키고 싶다고 주장하며 사회 변혁을 위한 개인의 희생을 강조한 공산당에 반대하는 명분이 되기도 했다.
6장 「민족과 시민」의 주제인 ‘정치와 문학 논쟁’도 5장에서 이어지는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한다. 전시 체제를 전면적으로 비판하면서 새로운 전후 체제 구축을 주장한 공산당은 예술 활동에서도 정서보다 이념을 중시했다. 반면 아라 마사히토를 필두로 한 잡지 『긴다이분가쿠』(近代文學)의 동인들은, 전쟁에 찬성했던 문학가들의 책임을 추궁하면서도 공산주의와 같은 이념에 종속되지 않는 개인과 문학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히라노 겐이 특히 중시했던 문제가 좌익 운동 내 여성의 지위였다. 전전의 공산당에서는 여성 활동가를 하우스 키퍼house keeper라 통칭하며 남성 활동가와 동거시켰는데, 히라노는 이것을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정치”의 비정함을 보여 주는 사례로 들며 “문학에 종사하는 자가 좌우간 더 이상 정치는 싫다고 방언放言하기 일쑤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본문에서

전쟁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시도

2부는 1950년대부터 1960년 안보 투쟁까지의 시기에서 다양한 전후사상이 전개되며 시행착오를 겪고, 1955년 이후로 이 사상들이 유명무실해지는 경위를 그린다.
먼저 7장 「가난과 단일 민족」은 1950년대의 내셔널리즘을 개괄한다. 그중에서도 아직 전체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본의 계층적 격차가, 전 국민을 포괄하는 내셔널리즘의 장애물이었다는 사실을 입체적으로 서술해 냈다.
8장 「국민적 역사학 운동」은 전후의 새로운 국가 정체성 형성을 목표로 했던 ‘국민적 역사학 운동’의 발단부터 쇠락까지의 과정을 보여 준다. 사학자 이시모다 쇼는 전시에 주로 징병되어 전사했던 자신보다 젊은 세대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이 운동을 주도했다. 일본사를 민중이 주도해 온 과정으로서 재조명하여, 국가주의와 군국주의의 도구로 이용되었던 전전, 전시의 역사학과 내셔널리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다.
9장 「전후 교육과 민족」에서는 역사학과 함께 전시 내셔널리즘 형성의 핵심을 담당했던 교육학이 전후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이야기한다. 전쟁 시기에 결국 전쟁에 동조했다는 자괴감은 전후의 여러 교육학자, 교육자가 공유한 심정이었다. 전후의 교육학 역시, 전시부터 전쟁에 반대했던 공산당과 밀접해졌다. 전 국민이 함께 쓰는 공통어 보급, 미국을 추종하는 전후 교육에 대한 비판 등은 일본인을 결집시킬 전후 내셔널리즘을 이루기 위한 교육적 시도였다. 하지만 전시의 교육학에 대한 전쟁 책임의 인식과 추궁이 미약했기 때문에,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교육은 전쟁 전의 황국 신민 교육과 유사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
10장 「피로 물든 민주주의의 기억」은,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다케우치 요시미를 자발적, 비판적 근대화의 선구자인 중국과 타성적, 종속적 근대화의 우등생인 일본을 비교하며, 전후 일본의 진로를 모색한 인물로 재구성했다.
11장 「자주독립과 비무장 중립」에서는 제1의 전후 후반부의 정치적 변화에 초점을 맞춘다. 즉 1950년의 한국 전쟁 발발로 미국이 일본에게 전쟁 포기와 비무장 대신 재무장을 요구하면서, 비무장을 지지하는 보수 세력과 미국에 종속된 전면적 무력 포기를 반대하는 진보파라는 기존의 정치 지형이 변질된 것이다. 보수 세력은 미국과의 재무장 협상 수단으로 평화 헌법을 이용한 반면, 진보파는 평화 헌법의 준수를 주장하게 된다.
12장 「60년 안보 투쟁」은 제목 그대로 1960년의 미일 신안보 협정에 대한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다루고 있다. 패전으로부터 15년이 지났던 당시에 일본의 학생과 대중은 전쟁의 고통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이 협정으로 일본과 오키나와가 미국의 세계 전략에 종속되어서 또다시 전쟁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까닭에 격렬히 반대했다.

패전 후의 교육론을 구속한 것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각인된 행동 양식이었다. 황국 일본에서 주권 재민의 나라로 말이 바뀌어도, 공통어를 보급하고, 교사의 지도성을 부르짖고, 반미를 주창하고, 민족과 전통을 상찬하고, 국가 목표를 추구한다는 행동 양식이 실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사상적인 대립과는 대조적으로, 보수파와 상통하는 부분이 생긴 것도 그런 이유였다. 패전 후의 교육학자와 교사들은 아마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각인된 행동 양식에 구속된 채로, 패전 후 10년이 넘게 잃어버린 국가 목표의 대용품을 찾았다. -본문에서

고도성장과 함께 찾아온 일본의 전후 내셔널리즘

3부는 제1의 전후의 언설이 평화 헌법에 대한 공격, 국민적 역사학 운동의 실패 등으로 인해 의심받으면서, 제2의 전후의 언설이 생긴 경위를 검증한다.
13장 「대중 사회와 내셔널리즘」에서는 먼저 제2의 전후의 핵심적 특징인 대중 사회와 성립, 전쟁 기억의 망각과 미화를 분석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 1968~1969년에 일본 사회를 휩쓸었던 전공투(全共闘) 운동을 간략히 살펴본다. 1950년대 중반부터 미국과 일본이 정치적, 경제적으로 결합하자 일본 경제는 본격적으로 고도성장의 궤도에 오른다. 국민의 경제적 격차가 줄면서, 비교적 균질한 생활양식과 문화를 향유하는 대중 사회가 성립한다. 이것은 전시의 총동원 체제를 대신할 대중 내셔널리즘이 이루어졌음을 뜻했다.
이어지는 14장 「‘공적인 것’의 해체」(요시모토 다카아키), 15장 「시취(屍臭)에 대한 동경」(에토 준), 16장 「죽은 자의 월경」(쓰루미 슌스케, 오다 마코토)은 네 사람의 사상가가 각자의 전쟁 경험을 토대로 삼아, 제2의 전후에 대응한 과정을 다룬다. 하지만 이들이 전쟁을 체험한 방식은 크게 달랐다. 이공계에 진학하여 징병을 회피한 요시모토 다카아키, 패전 후에 경제적으로 쇠락한 중상류층 출신의 에토 준, 상류층 가정에서 성장하고 전시에 미국에서 하버드대학을 졸업했으나 자진 귀국하여 동남아시아에서 위안부들을 감시하는 군속(軍屬)으로 복무한 쓰루미 슌스케, 연합군의 오사카 대공습으로 어린 나이에 생사의 기로를 경험했던 오다 마코토에게 전쟁은 각각 전혀 다른 의미를 지녔다.
그런 까닭에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징집을 회피했다는 자책감을 뿌리치기 위해, 개인의 생활과 가족을 강조하게 되었고, 에토 준은 패전을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토대로 삼으려는 제1의 전후의 언설에 저항하면서, 전쟁에서 희생된 일본인들을 내세워 패전 이전의 사회 질서를 긍정하고자 시도했다. 반면 쓰루미 슌스케와 오다 마코토는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1965년에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베헤렌)을 세운다. 이 두 사람은 전쟁에서 경험한 일본이라는 국가와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까닭에 이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결론」에서는 전쟁 경험이 전후사상의 새로운 내셔널리즘을 형성시킨 토대였음을 다시 강조한다. 전 국민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시킨 물질적·의식적 토대는 전쟁의 총동원 체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이 경험이 희박해지자, 전후사상의 가치도 희석되었다. 전후사상의 배경이 세대를 거쳐 전달되지 못하고 그 형식만 주입되면서, 민주주의와 평화를 강조했던 제1의 전후의 언설은 권위적인 질서로 치부되어 제2의 전후에 일방적으로 비판당하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전쟁과 전후의 의미를 상기하면서 이념 대립 이후의 제3의 전후를 위한 언설을 모색할 필요성을 지적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전후사상이란 전쟁 체험의 사상화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후사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전쟁의 기억이란 무엇이었는가”를 이야기하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다. -본문에서

차례

한국어판 서문

서장
두 개의 전후/전후 민주주의의 언어/언설과 심정에 대해

1부
1장 윤리의 초토화 전쟁과 사회 상황
분파주의와 무책임/군수 공장의 실태/조직 생활과 통제 경제/지식인들/학도병의 경험/전후의 시작
2장 총력전과 민주주의 마루야마 마사오, 오쓰카 히사오
애국으로서의 민주주의/근대에 대한 재평가/국민주의의 사상/초국가주의와 국민주의/근대적 인간 유형의 창출/대중에의 혐오/굴욕의 기억
3장 충성과 반역 패전 직후의 천황제
전쟁 책임의 추궁/어느 소년병의 천황관/천황 퇴위론의 대두/공산당의 애국/주체성과 천황제/무사도와 천황의 해방/천황 퇴위와 헌법/퇴위론의 종식
4장 헌법 애국주의 제9조와 내셔널리즘
내셔널리즘으로서의 평화/환영받은 제9조/순응으로서의 평화주의/공산당의 반대론/국제 공헌의 문제
5장 좌익의 ‘민족’, 보수의 ‘개인’ 공산당·보수계 지식인
회한과 공산당/공산당의 애국론/전쟁과 리버럴리스트/올드 리버럴리스트/개인을 내세우는 보수/세대의 차이
6장 민족과 시민 정치와 문학 논쟁
개인주의의 주장/전쟁 체험과 이기주의/근대의 재평가/공산당의 근대주의 비판/고바야시 히데오와 후쿠다 쓰네아리/시민과 난민

2부
7장 가난과 단일 민족 1950년대의 내셔널리즘
격차와 내셔널리즘/아시아의 재평가/반미 내셔널리즘/공산당의 민족주의/1955년의 전환/사의 변용/사랑하는 조국의 의미
8장 국민적 역사학 운동 이시모다 쇼, 이노우에 기요시, 아미노 요시히코 외
고립에서 탈출하기/전후 역사학의 출발/계몽에서 민족으로/민족주의의 고조/역사학의 혁명/운동의 종언
9장 전후 교육과 민족 교육학자·일교조
전후 교육의 출발/전후 좌파의 신교육 비판/아시아를 향한 시각/공통어 보급과 민족주의/애국심의 연속/정체기의 도래
10장 피로 물든 민족주의의 기억 다케우치 요시미
정치와 문학의 관계/저항으로서의 12월 8일/전장의 악몽/두 개의 근대/국민 문학의 운명
11장 자주독립과 비무장 중립 강화 문제에서 55년 체제까지
1950년의 전환/미국의 압력/내셔널리즘으로서의 비무장 중립/아시아에 대한 주목/유엔 가입과 배상 문제/55년 체제의 확립
12장 60년 안보 투쟁 전후의 분기점
샌프란시스코 체제라는 족쇄/5월 19일의 강행 채결/전쟁의 기억과 애국/새로운 사회 운동/시민의 등장/사심 없는 운동/투쟁의 종언
13장 자본주의가 이루어 낸 19세기 세계화
8장 세계화의 재구성
9장 자본주의의 미래는 있을까?
10장 맺음말

3부
13장 대중 사회와 내셔널리즘 1960년대와 전공투
고도 경제 성장과 대중 내셔널리즘/전쟁 체험의 풍화/평화와 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신좌익의 민족주의 비판/전공투 운동의 대두/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가해
14장 ‘공적인 것’의 해체 요시모토 다카아키
전중파의 심정/초월자와 가족/신에 대한 증오/전쟁 책임의 추궁/뒤틀림의 구조와 대중/안보 투쟁과 전사자/국가에 대항하는 가족/전사로부터의 이탈
15장 시취에 대한 동경 에토 준
죽음의 세대/몰락한 중산 계층의 소년/죽음과 생활자/시취를 풍기는 1960년 안보/미국에서의 메이지 발견/환상의 사자들
16장 죽은 자의 월경 쓰루미 슌스케, 오다 마코토
위안소 대원으로서 체험한 전쟁/근저에의 지향/새로운 조직론의 발견/난사의 사상/부정형의 운동/국가와 탈주

결론
전쟁 체험과 전후사상/전후사상의 한계점/전쟁 체험의 다양성/제3의 전후/호헌에 대해서/언설의 변천과 이름 없는 것

원주
후기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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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오구마 에이지 지음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사회학자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전공은 역사사회학과 상관사회과학相關社會科學이다. 1962년 도쿄도 아키시마시에서 태어나 나고야대학 물리학과를 중퇴하고 1987년 도쿄대학 농학부를 졸업했다. 1998년 같은 대학원의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일본인’의 경계: 지배 지역과의 관계에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학 총합정책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구마 에이지는 방대한 자료를 섭렵해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정치철학과 역사를 폭넓게 탐구하여 일본 학계에서 명망이 높다. 또한 그는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한 여러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후부터 탈원전 운동에 함께했으며, 20만 명 이상이 참여한 일본의 탈원전 시위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인 《총리 관저 앞에서》를 만들기도 했다. 이 영화로 2016년 일본영화부흥장려상을 받았다.
저서로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 ‘일본인’의 자화상의 계보』, 『‘일본인’의 경계: 오키나와·아이누·대만·조선-식민지 지배로부터 복귀 운동까지』, 『인도 일기: 소와 컴퓨터의 나라에서』, 『시미즈 이쿠타로: 어느 전후 지식인의 궤적』, 『시민과 무장: 미국의 전쟁과 총기 규제』, 『대화의 회로: 오구마 에이지 대담집』, 『일본이라는 나라』, 『1968』,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오구마 에이지 시평집』, 『사회를 바꾸려면』, 『살아서 돌아온 남자: 어느 일본 병사의 전쟁과 전후』(한국어판 『일본 양심의 탄생』), 『아웃테이크스: 오구마 에이지 논문집』, 『논단 일기』, 『우리는 어디로 가려 하는가』, 『누가 무엇을 논하는가: 현대 일본의 사상과 상황』 등이 있으며, 몇 권의 공저가 있다.
『일본 단일민족신화의 기원』으로 1996년 산토리학예상을, 『민주와 애국』으로 2003년 일본사회학회장려상·마이니치출판문화상과 2004년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1968』로 2010년 가도카와재단 학예상을 수상했으며, 『사회를 바꾸려면』이 2013년 신서대상 1위에 선정되었고, 『살아서 돌아온 남자』로 2015년 고바야시 히데오상을 받았다.

조성은 옮김

1983년에 태어났다. 2006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2015년 도쿄대학 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메이지가쿠인明治学院대학 국제학부 국제학과에 재직 중이다. 전공은 전후 일본의 정치사상사이며 저서로 『‘대중’과 ‘시민’의 전후사상: 후지타 쇼조와 마쓰시타 게이이치』(일본어판, 이와나미서점 발간)가 있으며, 후지타 쇼조의 『정신사적 고찰』을 우리말로 옮겼다.

편집자 100자평
세계 평화를 주장하면서도 끊임없이 군사력 강화와 평화 헌법의 개정을 추진하는 일본 사회와 정부의 뿌리 깊은 모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참조하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부터 쓰루미 슌스케에 이르는 전후 사상의 거장들이 남긴 언어들을 낱낱이 파헤쳐서 군국주의의 영향과 전후사상에의 시도를 밝힌 저자의 노력과 방대한 전후사상의 흐름과 각 사상가들의 개인적 면모를 적절히 조화시킨 그의 필력이 모두 돋보이는 역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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