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것 낯선 것

학산한언 선집

신돈복 지음 | 정솔미 옮김

원제 학산한언
발행일 2019년 8월 26일
ISBN 9788971999752 04810
면수 280쪽
판형 변형판 135x220, 소프트커버
가격 12,000원
분류 우리고전 100선
한 줄 소개
‘학산의 시시한 이야기’는 결코 시시하지 않다. 독자는 신돈복의 ‘시시한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난 읽을거리이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임을 이 책을 읽으며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내용

우리의 눈과 귀가 닿지 않는 깊은 동굴 안에는 상식으로 헤아릴 수 없는 괴이한 게 많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별세계의 존재」 중에서

이상하고 아름다운, 조선 방방곡곡의 이야기

 

이상한 것, 낯선 것에 대한 기록

 

이 책은 조선의 빼어난 이야기꾼 신돈복(辛敦復, 1692~1779)이 보고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기록한 『학산한언』(鶴山閑言)의 일부다. ‘학산’은 신돈복의 호(號)이며 ‘한언’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 시시껄렁한 이야기라는 뜻이니, 책의 제목은 ‘학산의 시시한 이야기’쯤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시한 이야기’는 당대 문인은 물론 한글로 번역되어 여성들에게도 애호되었다. 또한 후대의 인기 있는 이야기책에 『학산한언』의 이야기가 수록되기도 하고 백과사전류에 실리기도 했다.

신돈복은 명문가 출신이지만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24세에 진사시에 급제하고도 노년인 71세에야 종9품 벼슬인 선릉참봉을 제수받고 73세에 종8품 벼슬인 남도봉사를 지냈다. 이렇듯 그 관직만 보면 현달하지 못했으므로, 혹자는 신돈복의 삶이나 글을 시시하다고 여길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책 제목마저 ‘학산의 시시한 이야기’이니 더욱 볼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학산한언』에는 다른 책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조선 방방곡곡의 이야기와 18세기 서울에 살던 지식인의 풍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유학에 독실했던 당시의 대다수 문인과는 달리 신돈복은 도가(道家)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신선의 사적(事績)은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신비롭고 기이한 각종 현상들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학산한언』에는 귀신·용·별세계·신기한 능력을 지닌 동물이 대거 등장한다. 또한 『학산한언』에는 시대를 풍미했던 빼어난 인재부터 기생, 청지기, 상인, 도둑, 심마니, 사기꾼까지 다채로운 인물의 삶이 18세기 조선이라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종횡무진 펼쳐진다. 여기에 각각의 글 말미마다 당시 그가 접한 국내외 문헌이 부기(附記)되어 있어 독자의 견문을 확장해준다.

그러므로 ‘학산의 시시한 이야기’는 결코 시시하지 않다. 독자는 신돈복의 ‘시시한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난 읽을거리이자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글임을 이 책을 읽으며 금세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귀신을 믿는 유자(儒者) 신돈복

 

신돈복은 귀신의 존재를 믿었을 뿐 아니라, 자신의 글에 귀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를 뒷받침할 근거로 공자와 우암 송시열을 자주 이용했다.

“공자께서는 ‘괴이함’과 ‘무력’과 ‘패란’과 ‘귀신’에 대해 말씀하지 않으셨다.”

조선 시대의 유자들은 『논어』 「술이」(述而)에 나오는 이 구절을 글쓰기의 중요한 지침으로 삼았고, 그 때문인지 조선 시대의 글에서는 기이한 사건이나 신비로운 존재에 대한 기록이―그것을 믿든 안 믿든―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그런데 신돈복은 공자의 말을 다른 의미로 해석했다.

 

공자께서 ‘괴이함’과 ‘무력’과 ‘패란’과 ‘귀신’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이치에 맞지 않아서가 아니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칠 만한 게 못 되기 때문일 터이다. 천지 사이엔 없는 게 없다. 그런데 그중 익숙하게 보이는 것들만 정상이라 하고 자주 안 보이는 것은 이상하다고 한다. (…) 『태평광기』를 지을 때 재상 이방 등은 모두 이름난 신하였다. 천하 고금의 일을 널리 수집하여 기록하고 편집하여 바친 것이지, 어찌 잡스러운 일을 갖고 임금을 인도한 것이겠는가? 임금으로 하여금 천지 사이의 인정(人情)·물리(物理)·유명(幽明)·변화를 두루 알아 문밖을 나서지 않고서도 모든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이니, 그 뜻이 깊다. 관건은 예(禮)를 갖추어 요약하는가이다. _「이상한 것, 낯선 것」 중에서

 

신돈복은 이러한 이유로 ‘이상한 것, 낯선 것’을 글의 소재로 삼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중국과 조선 문인들 사이에 널리 읽힌 설화집 『태평광기』는 황제에게 바친 책이고 기괴한 이야기가 잔뜩 실려 있지만, 오히려 황제의 시야를 넓히고 지식을 확충하는 데 보탬이 된 책이라고 보았다.

 

최신의 『화양문견록』에 다음 이야기가 있다.

하루는 귀신 이야기가 나오자 우암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귀신은 있다. 선조 때 허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에 귀신이 둘 있었다. 얼굴이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인간의 말을 할 줄 알아 사람과 말을 주거니 받거니 했지. ……”

 

우암 송시열의 제자 최신의 책 『화양문견록』에서 발췌한 우암의 말이다. 신돈복은 귀신을 다룰 때 종종 송시열의 이 말을 근거로 든다.

신돈복은 이렇듯 통념을 깨고 ‘이상한 것’을 애써(!) 기록했는데, 이는 그가 세계를 볼 때 대단히 유연하고 특별한 시각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중국 남송(南宋)의 학자 주희(朱熹)는 ‘괴이함’과 ‘무력’, ‘패란’은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귀신’은 조물주의 자취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조선 시대 유학자들은 주희의 견해를 절대시했다. 그런데 신돈복은 그와 견해를 완전히 달리한다. ‘이상한 존재들’은 그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뿐이며, ‘정상인’ 것들과 그 본질이 같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들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그의 시각은, 세상 모든 것들이 동등한 존재라는 인식을 열어 준다.

“세속에서는 귀신이 없다는 게 정론(正論)이라고 함부로 말한다. 이것이 어떻게 진정한 앎이겠는가?”(「귀신은 있다」 중에서)

신돈복은, 진정한 앎이란 모든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해진 운명을 거부한 품위 있는 인간들의 기록

 

신돈복이 낯설고 이상한 것에 관심을 두었다고 해서 그가 현실을 외면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조선인명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신돈복은 경세제국(經世濟國)으로 자부하며 사정에 밝았다고 한다. 그가 집필한 『후생록』(厚生錄)은 50여 종의 문헌을 참조해 농업 지식을 정리한 농서(農書)다.

신돈복은 인간의 감각기관으로 지각할 수 없는 미지의 존재뿐 아니라, 눈앞의 현실 세계에도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졌다. 신돈복은 동시대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몇몇 특별한 인간에 주목하고, 『학산한언』에 실린 여타 글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들을 기록했다. 봉산의 무관, 청지기, 서녀(庶女), 일본 간첩, 노비 등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기록했다.

이들의 삶은 신돈복에게 지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라 ‘후대에 전해야 할 이야기’였다. 이러한 창작 의식은 사마천의 『사기열전』과 같이 어떤 인물을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짓는 전(傳)의 전통과 맞닿아 있지만, 이들 작품의 지향과 서술 방식은 전과 몹시 다르다. 우선 중심인물들이 대개 별 볼일 없는 출신인데 이들은 현실에서 좌충우돌 고난에 맞닥뜨리며 엉뚱한 실수를 하기도 한다. 다른 전과는 달리 평이한 문장을 구사하며 인물 간의 대화가 많아 현장감이 생생하다.

무엇보다, 서사 전개 과정에서 인간과 현실 그리고 운명 간의 팽팽한 갈등이 나타난다. 「봉산의 무관」 주인공은 매관매직이 성행하는 사회에 합류하고자 하나 여의치 않자 자살하려는데 운명이 그를 살길로 이끈다. 「길정녀」의 주인공인 서녀 ‘길정’은 신분적 한계와 고아가 된 처지로 양반의 첩이 되는데, 남편에게 버림받은 신세가 되어 다시 신관 사또의 첩이 될 운명에 놓인다. 그러나 격렬하게 저항한 끝에 남편과 백년해로한다. 청지기 ‘염시도’는 경신환국 때 주인이 사약을 받자 세상에 뜻을 잃고 불가(佛家)에 귀의하려 하나 예언과 운명이 그를 아리따운 여성에게 이끈다.

이들 이야기에서 신돈복은, 인간이 삶의 무게와 운명의 장난 한가운데를 꿋꿋이 뚫고 나오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들은 난관에 부딪혀 고군분투하면서도 인간적 품위를 잃지 않는 점에서 ‘빼어나다’고 인정받는다. 아울러 이들이 현실과 갈등을 빚는 계기를 주목해서 보면 작가가 당대 사회 현실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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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사
책머리에

별세계의 존재
별세계의 존재 / 기이한 말 표동 / 이상한 선비화 / 신선과의 만남 / 강철이라는 용 / 용이 된 물고기 / 이상한 것, 낯선 것 / 외눈박이 사신 / 여우의 시 / 귀신은 있다

외발 귀신
죽은 연인과의 사랑 / 장수 제말의 혼령 / 귀신들 잔치 / 내가 쫓아낸 귀신 / 나비가 되어 / 외발 귀신 / 돌아가신 아버지의 부탁 / 귀신과의 문답 / 아버지의 혼령

봉산의 무관
봉산의 무관 / 길정녀 / 겸인 염시도 / 노비 이언립 / 금강산의 검승 / ‘호랑’이 만난 무인

이인들
이광호 / 문유채 / 설생 / 정북창 / 김세휴 / 이계강 / 남추

인간 원숭이
인간 원숭이 / 사람보다 인삼 / 인삼 대상(大商) / 도둑의 참회 / 과부에게 주는 금 / 사슴의 인의예지 / 아홉 살 효자 / 부모님 무덤을 지키는 마음

채생의 늦깎이 공부법
중국에만 인재가 있나 / 차천로의 시 / 한석봉의 글씨 / 겸재 정선의 그림 / 맹인 부부 / 채생의 늦깎이 공부법 / 추노촌의 향단이 / 최 상국의 부인

해설
신돈복 연보
작품 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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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신돈복 지음

辛敦復, 1692~1779.

자는 중후(仲厚), 호는 학산(鶴山). 명문가 출신이지만 관직은 노년에 겨우 말단직인 참봉을 지냈다. 그렇지만 박학다식하여 당대 이름난 문인들과 교분이 깊었다. 『학산한언』과 농서 『후생록』(厚生錄), 도가서 『단학지남』(丹學指南) 등 풍부한 저술이 있다.

신돈복은 오래도록 벼슬을 하지 않았기에 조선의 다채로운 이야기를 수집하고 평소 깊이 관심을 가졌던 신선과 도가(道家), 귀신에 관해 폭넓은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아울러 18세기 서울의 노론계 지식인으로서 풍부한 정보를 접했다. 『학산한언』은 이러한 저자의 삶과 지식을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정솔미 옮김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문학과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논문으로 「조선시대 흉가의 문학적 형상과 그 의미」, 「<설생전>과 야담 <설생 이야기> 비교 연구」, 「장한철 『표해록』의 야담적 전이 양상」, 「<길녀>에 나타난 권력의 양태와 저항의 실상」 등이 있다.

편집자 100자평
조선의 유학자들이 멀리하고 기록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던 귀신, 신선, 이인 등 우리의 감각 기관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다양한 이야기들이 조선 사회에 가득했다. 이 책의 저자 신돈복은 이러한 기이한 이야기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기록함으로써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학산한언』은 소중한 기록이고 살아 숨쉬는 삶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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