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되지 않은 내일
불안과 희망의 교차점에 선 청년들
발행일 | 2021년 10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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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438413 03300 |
면수 | 252쪽 |
판형 | 변형판 135x210, 반양장 |
가격 | 15,000원 |
“형의 마지막 순간은 내게 무거운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답을 해야만 했다.”
고故 이한빛 피디의 동생이 기록한
형, 그리고 여기, 보통의 청년들 목소리
방송계의 부조리한 관행에 괴로워했던 스물여덟 살의 드라마 피디 이한빛. 이한빛 피디의 동생이자 노동·주거·청년 분야 활동가인 이한솔 작가가 형의 삶과 죽음을 추적해 이한빛을 고민이 많았던 보통의 청년으로 조명해낸다. 또한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35명의 청년들을 만나 이한빛이 남긴 고민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닿아 있는지를, 그가 던진 질문에 대해 시차가 있지만 진심 어린 응답들이 어떻게 도착하는지를 기록한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불안과 상처, 희망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와 함께, 고인을 온전히 애도하고 추모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묻는 힘 있는 르포르타주 에세이.
장혜영(정의당 국회의원), 정혜윤(CBS 피디, 작가) 추천
고(故) 이한빛 피디의 이름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에 하나의 빛이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착취해야 하는 어두운 현실 앞에 끝없이 번민하던 이한빛은 생의 온 힘을 다해 그 고민을 세상에 나누고 이름처럼 하나의 빛이 되었다. 이한빛이 밝힌 세상, 그러나 더는 그가 없는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그의 동생 이한솔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조심스레 길을 안내한다. “서툰 해석으로 이한빛의 삶을 쉽게 평면화하는 대신” 이한빛이 멈춘 자리에서 그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천천히 형을 되돌아보고 다시 세상으로 향한다. 우리 사회가 ‘새로움’을 찾지 못하고 ‘따뜻함’을 잃어버릴 때마다 형을 생각한다는 그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는 다름 아닌 우리의 삶이다. 평범하게 인간답고 싶은 보통 청년들의 삶 말이다.
_장혜영(정의당 국회의원)
이한솔이 형의 죽음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언어’를 바꾸는 것이었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가 그가 한빛의 이름으로 들고 나온 새로운 언어였다. 그리고 형이 세상을 떠나고 5년이 흐른 시점에 나온 이 책 역시 언어 바꾸기에 대한 책이다. 이대남, 영끌, MZ 이런 언어는 집어던지고 진짜 청년들에게 필요한 언어를 찾아 헤매는 이 책을 감싸는 것은 ‘그냥 죽어버리기에는, 그냥 이렇게 살고 말기에는 너무너무 삶이 아까워!’라는 절박하고 애절한 분위기다. 물론 그답게 최대한 자제하면서 쓰고 있지만 이 글 안에 있는 모든 제안이 그의 가슴 찢어지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육성이라고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이 모든 주장을 관통하는 것은 우리 삶의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지 말자는 제안이나 다름없다.
(…) 이 책의 마지막 꼭지 제목에 나오는 단어는 내가 일평생 좋아해온 단어다. 감히 그 단어로 만든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기를 얼마나 원하는지 모른다. 궁금하다면 얼른 책장을…. 우리의 그릇에 담아놓을 정말 굉장한 단어다.
_정혜윤(CBS 피디, 작가)
이한빛, 그리고 ‘내 일’과 ‘내일’이
허락되지 못한 청년들을 위한 추모
“하루에 20시간이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후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2016년 10월 26일, tvN 드라마 <혼술남녀> 조연출 이한빛 피디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의 일부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학생운동 단체에서 활동했던 이한빛은 취업 후엔 월급을 쪼개 세월호 천막,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 등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런 스물여덟 살의 청년이 방송국에 입사한 지 고작 열 달 만에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렵”다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도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청년은 왜 유서를 남겨야만 했을까?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기록하고 증언한 『전태일 평전』이 출간된 지 수십 년이 흘렀지만, 일터에서 청년들의 죽음은 오늘도 끊이지 않는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 작업을 하던 김군이, 태안화력발전소 하청업체 계약직으로 일하던 김용균이, 현장실습생으로 처음 일을 배우던 김동준과 여러 청소년들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김태규가, 평택항에서 알바를 하던 이선호가, 그리고 저마다의 이유로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청년들이 있다. 꿈이 좌절되고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일터에서 삶을 이어갈 수 있는 내일을 떠올릴 수 없는 청년들이 있다.
『허락되지 않은 내일: 불안과 희망의 교차점에 선 청년들』은 방송계의 부조리한 관행에 문제를 제기했던 고(故) 이한빛 피디의 동생이자 노동·주거·청년 분야 활동가인 이한솔 작가가 형의 자취를 따라가는 작업으로부터 시작해 우리 곁에 있는 보통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르포르타주 에세이이다. 사랑하는 형을 잃은 이한솔은 고인을 온전히 추모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물으며, “형의 마지막 순간은 내게 무거운 질문을 던졌고 나는 대답을 해야 했다”(7쪽)고 쓴다. ‘형은 어떤 사람이었나? 어떤 세상을 꿈꾸었을까?’, ‘형이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형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며 형의 지인들을 만나 형에 대해 듣는다. 그리고 이한빛이라는 개인의 이야기를 이한솔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이한빛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진 다른 청년들의 이야기와 포개놓으며, 이 책은 ‘우리, 청년들’이 처한 노동 조건과 사회 현실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향한다. “이미 수많은 이한빛들이 죽음보다 견디기 어려운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그동안 청년이라는 편집된 정의에 압도돼 이들의 진짜 아픔을 이야기하는 데 서툴렀다. 존중과 희망을 이야기하기에는 그 내면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우리에겐 지금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메시지가 꼭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은 형, 그리고 역시 한 명의 청년이기도 한 나, 오늘을 살고 있는 청년들의 포기, 좌절, 바람,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8쪽)
세상을 떠난 청년에 응답하는
우리, 청년들의 가장 정직한 진심들
『허락되지 않은 내일』은 고(故) 이한빛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한편, 이한빛의 삶과 꿈을 톺아보며, 그를 “보통의 청년”, “고민이 많았던 청년”으로 복원해낸다. 이 책은 이한빛을 알던 친구들, 그의 존재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다른 청년들의 이야기를 잇고 또 겹쳐놓음으로써, 이한빛의 고민이 특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한빛이 일터에서 마주친 경험들, 이한빛이 느꼈던 슬픔들, 이한빛이 품었던 희망들은 도처에 있다. 우리는 무엇을 불안해하고 어디서 좌절하는가? 우리는 불평등한 시스템과 불안이 일상화된 세상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가? 성별, 학력, 직업, 고용 형태, 지역, 가구 구성 등은 저마다 다르지만 지금 여기를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는 35명의 청년들은, 이한빛으로부터 출발해 여러 청년들에게 말을 건네고 그들의 말을 엮어낸 이한솔을 매개로, 슬프게도 시차가 있지만, 이한빛의 질문과 고민에 공명한다. 이들은 모두, 진심을 담아, 아주 정직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상을 떠난 청년에 응답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 중 하나다.
그런데 이렇게 내면으로부터 끄집어낸 이야기들은 전혀 화려하지도 않고 자극적이지도 않다. 곁가지들을 잔뜩 잘라내고 두터운 포장지를 벗겨낸 뒤,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말들이기 때문이다. ‘영끌’, ‘공정’, ‘이대남’, ‘욜로’, ‘MZ세대’를 둘러싼 ‘매운맛’ 이야기 대신, 그간 눈에 띄지 않고 말할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던 청년들의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말들이 여기 담겨 있다.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존중받고 싶다, 조직문화가 민주적이면 좋겠다, 마흔 살 이후의 삶을 그려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연결되어 변화를 만들고 싶다, ‘정상’이 무엇인지 되묻자…. 특히, 이 책에는 “정상”과 “상식”이라는 말이 많이 등장한다. 이한빛 피디의 문제 제기로 인해 방송 현장에서 정상이란 무엇인지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는 예리의 이야기(29쪽)부터, 최선의 선택지가 죽음을 예정하고 있다면 그것은 비정상이며, 일터와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곳이 정상적인 세상이라는 단언(124~126쪽), 하나가 아닌 삶의 방식들이 비정상이라는 시선에 대한 분노와 경멸까지. 이렇게 이 책은 우리가 버릇처럼 하는 푸념 또는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얘기라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그러나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던 아주 근본적인 진심을 자극한다. 이한빛이 던졌던 가장 중요한 질문도 바로 이런 것이었을 테다. 왜 나와 내 일은, 그리고 다른 청년/노동자들과 그들의 일은 존중받지 못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의 발문을 쓴 라디오 피디 정혜윤은 어슐러 K. 르 귄의 이야기를 빌려와, 이를 “귀리 까기 이야기”라고 쓴다. 그것은 “매머드 사냥 이야기”, “액션과 스릴과 죽음과 영웅”이 있는 “죽이는 이야기”, “찌르고 죽이고 무기를 집어드는 문화”에 속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이야기는 언뜻 아주 재미있어 보이지 않더라도, “다른 이야기, 말해지지 않은 이야기, 생명 이야기”이며, “내일 아침에 먹을 귀리를 어딘가에 담아놓아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또 귀리밭에 가야 하는데” 같은 말들과 용기(그릇)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 다른 삶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활동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진짜 청년들에게 필요한 언어를 찾아 헤매는” 작업이며 “우리 삶의 이야기를 이렇게 끝내지 말자는 제안”과 다름없다.
내일을 살아가기 위해
더 선명해져야 할 청년 의제들
『허락되지 않은 내일』은 기존의 청년담론·정책에 대한 비판이자 우리 사회에서 정말 중요한 청년의제가 무엇인지 되묻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한솔이 이한빛의 바람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들을 깊이 고민해온 유가족인 동시에, 오늘을 살고 있는 청년이며 청년·주거·노동 영역을 오가며 오래 경험을 쌓아온 활동가이기에 쓸 수 있었던 이야기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이한빛으로부터 시작하지만, 추천글을 쓴 청년 정치인 장혜영에 따르면, “이한빛이 멈춘 자리에서 그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천천히 형을 되돌아보고 다시 세상을 향한다. (…) 그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는 다름 아닌 우리의 삶이다. 평범하게 인간답고 싶은 보통 청년들의 삶 말이다.” 이한솔은 그렇게, 그간 대상화되기 십상이었던 청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직접 기록하며(청년이 기록한 또 다른 청년들의 인터뷰는 대부분이 반말로 실려 있다), 일터 이야기뿐만 아니라 청년들이 일상에서 고민하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펼쳐놓으며 청년담론을 새롭게 쓴다.
활동가 이한솔은 이한빛이 끄집어낸 청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영끌’, ‘공정’, ‘이대남’ 같은 자극적인 말들 대신에 정말 시급한 사안들을 몇 가지로 추려내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의제를 명확히 드러낸다. 80%의 청년들을 지워버린 주류 언론·미디어·정치로부터 벗어날 때, 그것은 ‘내일’, 즉 불안과 희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미래의 문제로 수렴된다. 구체적으로, 청년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왜곡된 시선들, “어릴 적부터 꿈과 자아실현에 대해 지겹도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가 일터에서 직면하는 문제들, 계급·학력·학벌·지역·젠더·섹슈얼리티 등을 따라 깊게 파인 불평등의 늪, 고립과 공동체의 문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상적 번아웃 속에서도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특히, 청년세대와 ‘불평등’ 문제를 강조하는 부분들은 더욱 깊은 눈길을 주어야 할 대목이다. “불평등에 대한 진단은 청년세대의 불안, 슬픔, 행복 등의 감정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지를 바라보는 중요한 렌즈가 될 것이다. 경고등이 켜졌을 때, 제대로 고민했어야 했다.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불평등과 차별의 현실에서 세상을 등질 때, 온 사회가 진심을 가지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찾았어야 했다. 달콤한 신기루로 눈앞의 문제를 가리는 ‘청년팔이’는 이제 그만하자. 불평등을 넘어서는 청년들의 이야기로 다시 시작하자.”(242쪽)
내년은 대통령 선거가 있는 해이다. 벌써부터 대선 행보에 나선 후보들은 ‘청년’을 들먹이지만, 그곳에 공적인 장에서 목소리가 지워진 청년들의 삶을 들여다보려는 마음이 담겨 있는지는 의문이다. ‘노동’ 의제는 언급조차 잘 되지 못하며, 심지어 한 후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폐지하겠다는 ‘경제’ 공약까지 발표했다. 그렇기에 이한빛 그리고 일하다가 세상을 떠난 수많은 청년들에 응답하면서 그들이 바라던 세상을, 또 여기 청년들이 바라는 세상을 향한 이야기를 담은 『허락되지 않은 내일』은 바로 지금, 우리가 함께 꼭 읽어야 하는 책이다. “홀로 버티고 있는” 청년들, ‘위선’과 ‘꼰대’를 벗어나고픈 기성세대, 그리고 다른 정치를 꿈꾸는 사람들과 청년정책 입안자들에게 이 책은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 책 속에서 ‖
죽음을 온전히 추모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떠난 이들이 채운 자리에서 그들을 기억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사람은 죽어 이름을 남긴다지만, 고인의 이름이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것만이 추모의 전부는 아닐 테다. 나의 형은, 세상을 떠나기 직전 가장 두려운 마지막의 순간에 글로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그 마음이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형이 남긴 흔적에서 나는, 자신이 꿈꾸었던 세상이, 비록 본인은 누리지 못하더라도 남은 이들에게는 꼭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보았다. 감히 죽음의 의미를 함부로 해석할 수 없겠으나, 적어도 하나 분명한 것은 자신과 같은 이유로 내일이 허락되지 않는 청년들이 없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_6쪽.
“저희 친구들이 다 같이 늙어가고 있지만, 이한빛은 언제나 20대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에요. 계속 생각하게 되죠. 한빛이었으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물론 제가 한빛이의 의견을 마냥 따르지는 않았겠지만(웃음). 그래도 나한테 욕할 수 있는 친구로 남아 있어주는 것 같아요.”(태민) _31쪽.
떠난 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형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나는 형의 죽음을 쉽게 해석하고 과도하게 해석하지 않기 위해 언제나 경계한다. 하지만 형의 마음속을 조심히 그리고 끈질기게 보려고는 노력한다. ‘어떻게 살고 싶었을까.’ ‘무엇을 사랑했을까.’ ‘왜 쉬고 싶었을까.’ 이한빛을 떠나보낸 주변의 사람들도 지난 5년간 그의 죽음을 해석하기 위해 각자의 노력을 이어오고 있었다. _34쪽.
형이 남긴 마지막 이야기는 방송 현장에서 노동이 조금이나마 존중받으면 좋겠다는 아주 소박한 바람이다. 대책위가 많은 지지를 모아 대기업 방송국의 사과를 받은 이유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보통의 한빛’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노동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노동이 또한 존중받아야 한다는 형의 생각은 시민들의 폭넓은 공감대를 얻었다. 어렵지 않으면서 평범한 고민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청년, 한 명의 사람인 한빛. 나는 형과 또 다른 청년 누군가들을 다르게 보지 않는다.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거나 신나게 하는 기획을 다양하게 벌이고 싶어했던 형의 모습은 우리가 익숙하게 만날 수 있는 청년의 모습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빛의 죽음엔, 좌절과 우울보다는 그의 고민과 바람이 특별하지 않게 남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도 똑같은 고민을 하는 어떤 청년이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_34쪽.
앞뒤 맥락 다 자르고 ‘LH 투기 의혹’까지 끌어오며 이 사건[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청년’과 ‘공정’이라는 말로 몽땅 묶어버리는 혹자들의 분석은, 과한 것은 물론 그들만의 세상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메이저 대학 입시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청년, 정규직의 노동구조와 가깝지 않았던 청년,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청년들이 있다. 자신의 삶과 현재 벌어지는 공정 이슈를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청년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경기에 뛰기라도 해야 규칙이 공정한지를 논의할 텐데, 지금으로서는 선수에 등록되지도 않은 사람이 절대 다수이다. _63쪽.
직함을 맡게 되면 ‘나이 명함’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 최근 한국사회주택협회라는 단체의 이사장을 맡게 됐다. (…) 우여곡절 끝에 임기를 시작했지만, 그 이후에도 웃지 못할 해프닝은 많이 벌어졌다. 공공기관이나 기업의 주요 인사들과 만나 협의할 자리에 일찍 도착해 사람들을 맞으면, 분명 서로 인사를 나누었음에도 회의 시간이 다가오자 그제서야 약속이라도 한 듯이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이사장님은 언제 오시나요?” (…) 나만의 경험도 아니었다. 뉴미디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D채널의 성과 공유회에서 이 채널의 청년 대표에게 던져진 질문 중 하나가 “애인 있어요?”였다. 그가 20대가 아니었다면 술자리도 아닌 공식 행사에서 그런 질문을 받았을까. 우습게도 거대 야당의 당대표로 선출된 30대 정치인 역시 인터뷰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_104쪽.
“부모님 잘 만나서 괜찮은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들은 그런 게 가능해 보이긴 해. MZ세대라고 하는데 내부에서도 양극화가 있어. 『90년대생이 온다』에서 이들이 발칙하다고 하잖아. 근데 그것도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는 친구들이나 그런 거 아닌가 싶기도 해. 반대의 친구들은 스스로를 ‘종이배’라고 하더라고. 사회가 정말 빠르게 변하고 파도가 많잖아. 그냥 거기에 떠서 둥둥 떠다니는 인생이라고 자조해. 타당해 보이지 않아? ‘내년에 뭐 하지?’ 이런 고민이 큰 거지. 코로나 때문에 가장 친한 친구는 채용이 취소돼 원래 꿈꾼 직업을 포기하고 택배 배달을 시작했어. 그런 거지.”(선규) _145쪽.
“제가 사회초년생일 때 공공기관에서 일했는데, 어쩔 수 없이 갑질을 하게 되는 경우들이 생겨요. 예산을 내리는 상황이다 보니깐. 여섯 시 퇴근 전에, 다섯 시에 기어코 용역을 받은 업체에 전화해서 결과 보고서를 오늘 밤까지 달라고 지시하래요. 너무 무리한 요구이지 않냐고 반문하면, 위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우리는 갑으로서 내릴 수 있는 지시를 내린 것이고, 오늘 보고서를 제출하지 못하면 당신들이 일을 못하니깐 당신들의 과실이 되는 거야’라는 말을 꼭 붙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전혀 아닌 상황인데. 처음에 이러한 갑질을 아무렇지 않게 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제가 그런 일까지 해야 되나 싶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준영) _180쪽.
“지역에 남는 이유? 서울에서 벤처기업에도 들어가봤는데, 과도한 경쟁 속에서 내가 굳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더라고. 지역도 분명 자원이 없기는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해보기에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 주체적으로 뭔가 해보고 싶었어. (…) 실제로 출범하기에는 서울보다 전주가 더 쉬워. 물론 지속에는 한계를 느껴서 다들 떠나는 거지만. 아직 나는 시작 단계이고 더 부딪혀보고 더 판을 벌여보려고. 내가 여기서 지속 가능할 수 있으면 누가 오든 지속 가능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실험해보는 것도 있지.”(선미) _168쪽.
“나는 기댈 곳이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 기댈 곳이 없다는 게 그 누구한테도 기댈 곳이 없다는 말이잖아. 친구한테도 그렇고 가족한테도 그렇고 온전하게 기댈 수 없어. 내가 상담 일을 했잖아. 청년들을 만나면 다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 그런데 그걸 서로한테 얘기하지 못해. 자기 친구한테도 못 하고 엄마한테도 못 하고 그러다 보니까 찾을 곳이 없는 거야. 고민이 있어도 찾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기댄다는 것 자체가 내가 패배자가 되는 느낌인 거지. 우리 사회에서 가르쳐준 유일한 기댈 곳은 돈이라고 하고.”(은재) _200쪽.
떠난 형이 언제 가장 떠오르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우리 사회가 ‘새로움’을 찾지 못하고 ‘따뜻함’을 잃어버린 모습을 볼 때마다 형이 떠오른다. (…) 형의 죽음 이후 시민들이 보내준 공감과 응원이 컸던 이유도, 꿈과 욕구가 마모된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5년 가까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형과 같은 이들이 한국의 많은 조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기에 안타까운 마음도 크다. _215쪽.
불평등과 차별을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하는 사람의 행동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철학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나도 스스로 확신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말했을 뿐인데, 모두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분명히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지라도, 같이 잘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남겨두자. _238쪽.
이한솔이 형의 마지막 나날을 통해 알게 된 것은 육체적인 죽음의 슬픔만은 아니다. 일찌감치 존재가 지워져버리는 것, 아무도 그 목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그렇게 시들시들해지고 생명력을 잃고 그것이 현실이자 삶의 법칙이라고 여기고 받아들이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하지만 우리가 언어를 바꾸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한솔이 기대한 것은 명백하다. 살아 있는 것. 그냥 숨 쉬는 것 말고 더 새롭게 더 따뜻하게(‘새로움’과 ‘따뜻함’은 이한빛이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했다). 이 일은 가능할까? 어떻게? 일단 언어 바꾸기부터. 일단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정혜윤, 「발문」 중에서) _252쪽.
들어가며 | 좌절과 희망에 관한 대화
인터뷰이 소개
한빛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
1 빛이 머문 시간
2016년 가을
한빛이 소리를 냈다
자살에 대한 오해
빛이 남긴 것
2 보통이 지워진 사회
한빛, 보통의 청년
깔깔이가 된 청년들, 80퍼센트의 맥락이 편집됐다
공정하다는 착각의 착각
불안한 내일
3 왜곡된 시선
한빛, 그만두면 되잖아
정말 책임감이 없을까요
‘님’의 위선
어리다는 이유의 결함
4 소모하는 일터
한빛, 패배자
남는 것이 없는 일터
어떤 사람에게는 더 위험한 일터
노동자라고 부를 수 없는 노동자들
엄마 기일조차 갈 수 없는 을의 일터기
5 우리 사이의 불평등
한빛, 그의 마음이 가닿고 싶었던 곳
그들이 사는 세상
넘을 수 없는 대학의 벽
서울로 가야만 하나요
위협과 차별은 분명히 있습니다
6 연결이 필요한 청년들
한빛, 동료가 없다
결국 나는 혼자를 선택한다
만만혐
기댈 곳이 필요하다
다시, 공동체
7 꿈꾸는 청년들
한빛, 꿈과 욕구
일상적 번아웃
다양성 그리고 존중
세상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나가며 | 불평등을 넘어, 한 줄기 빛을 밝히고 싶다
발문 | 일단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부터 _정혜윤(CBS 피디, 작가)
MZ세대·영끌족…그게 정말 청년들이 생각하는 청년의 모습일까 / 한국일보
\"故 이한빛 PD, 슬픔·고통 일상인 사회의 일반적 청년 모습이죠\" / 이데일리
청년문제. 공정에 천착하기보다는 불안의 마음에 집중하는 게 필요 / YTN 김혜민의 이슈&피플
이대남·이대녀 뒤의 진짜 청년 / 시사IN
불안하지만 희망을 놓지 못하는 청년들 / 이로운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