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
시각예술가 박혜수 작가 노트
발행일 | 2022년 9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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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1438802 03600 |
면수 | 368쪽 |
판형 | 변형판 127x200 |
가격 | 18,500원 |
“작가 자신에 의한 작품 해설이라는 드문 시도이면서
그 자체로서 빼어난 사회학 에세이” _김현경(인류학자, 『사람, 장소, 환대』 저자)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포기한 꿈, 실연, 첫사랑, 나이 듦, 죽음…
질문하는 시각예술가 박혜수의 상실 탐구
‘꿈’, ‘실연’, ‘첫사랑’, ‘나이 듦’,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탐험해온 시각예술가의 작가 노트이자 사회학 에세이. 솔직해서 ‘까칠하다’, ‘심술궂다’는 말을 종종 듣는 박혜수 작가는 보통은 사람들이 묻지 않는 질문들을 던지며, 독자들이 그 대답을 찾아내는 감각을 ‘경험’하도록 만든다.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 이미지와 전시에 참여했던 관객들의 이야기가 뒤섞이는 장소들을 거치며, ‘우리’가 떠나보낸 것들, 잃어버린 것들, 사라져간 것들, 수많은 이별과 상실 속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되묻는 책.
김현경(인류학자), 오지은(음악가, 작가) 추천!
시보다 시작 노트에 더 눈길이 갈 때가 있다. 시작 노트는 시에 덧붙여진 메모에 지나지 않지만, 때로는 미처 시가 되지 못한 그 말들이 시 못지않은 존재감을 가지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이 책도 비슷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예술가와 함께 걷는 듯한 희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는 오랜 친구처럼 다정하게 조금 뒤에 우리가 보게 될 작품들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준다(난해한 작품으로 관객을 좌절시키면서 그 좌절을 즐기는 듯한 다른 작가들과는 딴판이다). 그의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는지 우리는 이 산책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길 바라게 된다. 그래서 마침내 오솔길 끝에 이르렀을 때는 미술관이 닫혀 있건 말건 상관없어지는 것이다!
―김현경(인류학자, 『사람, 장소, 환대』 저자)
박혜수 작가는 외계인 같다. 지구인을 아주 사랑하는, 그래서 관심이 식지 않는 외계인. 그는 지구인의 마음을 끈질기게 모은다. 한 가지 마음을 10년도 넘게 모은다. ‘지구인들은 대체 왜 이러지?’ 하면서. 지구인이 계속 되풀이하는 어리석음, 어딘가를 향한 사랑, 잃어버린 것, 그런 것들이 모이는 구멍이 박혜수 작가의 주머니에 있다. 모아 보니 아름답다.
―오지은(음악가, 작가)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탐험해온 시각예술가의
작가 노트이자 사회학 에세이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인 인류학자 김현경에 따르면, 박혜수 작가의 첫 책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작가 자신에 의한 작품 해설이라는 드문 시도이면서 그 자체로서 빼어난 사회학 에세이”이다.
박혜수는 ‘꿈’, ‘보통’, ‘우리’ 등 일상적이고 논쟁적인 말들에 관한 다양한 설문 작업을 바탕으로 조각·설치 미술 작업을 하는 시각예술가다. 그의 작업은 범박하게 다가오는 주제일지라도, 근본적인 지점의 아주 깊숙한 뿌리부터 파헤쳐 다시 사유하고 조직화하고 시각화하는 일에 가깝다. 그는 한국사회의 무의식에서 뼈대를 이루는 것들을 붙잡고 발골해낼 줄 안다. 박혜수 작가는 “삶에서도 나를 움직일 힘을 가지고 있는 작업”을 희망하며, 그 작업은 작가의 주변에서 끄집어낸 문제의식을 가지고 궁금증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글 또한 에두르지 않는 돌직구를 통해 우리 사회의 무의식을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박혜수 작가의 작업 중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라는 커다란 질문과 관련된 작업 및 이야기들을 묶은 작가 노트다. 다섯 개의 부로 이루어진 이 책은 각 부마다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시작하고, 이전 전시에 참여한 관객들이 들려준 답변, 작품 이미지, 그리고 작가가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하게 됐고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뒤따른다.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면서 독자들은 어떻게 미술작품이 만들어지는지 작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 풍부한 시각적 자극을 받으며 작가와 함께 전시 공간을 돌아다니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동시에, 이 책은 ‘꿈’, ‘실연’, ‘첫사랑’, ‘나이 듦’,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의 무의식을 탐험하는, 잘 쓰인 사회학 에세이이기도 하다.
질문이 사라진 시대,
속 깊은 심술쟁이 시각예술가의 질문들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질문을 꺼리는 시대, 솔직해서 ‘까칠하다’, ‘심술궂다’는 말을 종종 듣는 시각예술가가 독자들에게 곤란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 대답을 찾아내는 감각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책이다. 박혜수 작가는 스스로를 “궁금한 것을 못 참는 성격”이며 “꼭 들어야 할 말은 직접 묻고 들어야만 한다는 철학”(7쪽)이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답변은 질문에 달려 있기 때문에 질문이라는 문제는 예술가들에게 평생의 숙제와도 같고, 개인으로서도 질문은 “‘나’의 자리를 짐작해보는 좋은 도구”라는 이야기로 이 책의 서두를 연다. 특히, 박혜수 작가의 직설은 다음과 같은 표현에서 빛을 발한다. “정말로 물어봤어야 할, 들었어야 할 이야기들은 묻히고 전혀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시끄러운 소음들 속에서 속뜻을 헤아리는 것도 이젠 지친다. 사람들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을 묻지 못하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못하며, 지레짐작하면서 혼자 병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묻지 않은 질문’을 대신 묻고, ‘듣지 못한 대답’을 대신 들어보기로 했다.”(12쪽)
그래서 이 책을 펼친 독자들은 작가의 질문들을 붙잡고,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 이미지와 전시에 참여했던 관객들의 이야기가 뒤섞이는 장소들을 지나게 된다. 1부는 “당신은 어떤 꿈을 포기했나요?”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과거의 ‘나’라는 문제를 다루며, 2부는 “헤어진 연인이 남긴 물건과 사연을 남겨주세요”라는 부탁에서 시작해 실연 수집 프로젝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3부는 “첫사랑을 기억하시나요?”라는 질문과 함께, 공단지역 노동자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랑의 기억들을 불러내며, “10대의 나, 80대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라는 질문으로 시작하는 4부는 나이 듦과 고독사의 문제를 탐구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갑자기 죽는다면,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라는 질문으로 여는 5부는 죽음에 관해, 코로나 유가족·요양원 직원·화장시설 장례사·병동 의료진들의 이야기와 작가 아버지의 죽음을 겹쳐놓고 독자들의 대답을 기다린다.
한국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사라져간 것들을 위한 예술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상실과 애도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박혜수 작가가 개인적으로 천착해온 질문이자 프로젝트 이름이기도 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에 대한 한 권의 답변이면서,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더욱 증폭시킨 질문인 ‘어떻게 잘 이별할 수 있을까?’에 대해 사려 깊은 대답을 모색한 기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꿈과 사랑을 떠나보내고, 나이가 들고, 죽음을 마주하게 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는 박혜수 작가의 작업, 그리고 이 책에서 지금의 한국사회라는 맥락 속에서 탐구된다. “한국사회는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회복’을 너무 빨리 강요한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유가족이 임종을 보지 못했고 강제로 장례를 생략당해도, 피해자들임에도 소리 내어 울지 못한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들이 언제 다시 시작되는지 알지도 못한 채 하염없이 ‘기다려라’는 답변을 듣는 것도 이젠 공허하다. 시작조차 못 했는데 제대로 해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지금, 인생의 한 시기가 송두리째 사라져버렸는데도 우리는 ‘다시 시작’을 강요받는다.”(182~183쪽) 슬픔을 표현하지 못하고 애도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것은 코로나 유가족뿐만이 아니며, 그렇기에 우리에게 남겨진 해묵은 상처와 감정들을 잘 돌보고 떠나보내기 위해, 이 책은 예술가의 자리에서 개입한 흔적들을 담았다.
박혜수 작가는 ‘꿈의 먼지’ 시리즈로 사람들이 이루지 못해 버린 꿈들의 사연을 모았고, 정신을 다루는 세 분야의 전문가인 정신과 의사, 점술가(타로점), 예술가가 함께 상담 퍼포먼스 시리즈 ‘오래된 약국’을 작업했으며, 헤어진 연인들의 실연 물품과 사연을 모으는 프로젝트에 ‘실연 수집’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편, 공단지역 노동자들의 첫사랑 기억을 되살리는 영상작품 <우리 기쁜 젊은 날>을 제작했고, 낭독 퍼포먼스 <당신으로부터 편지가 왔어요>에서는 관객들과 더불어, 10대(과거)의 나와 80대(미래)의 나를 함께 생각했다. 또한 아버지를 향한 개인적인 애도 작업 <아버지의 죽음>은 부산시립미술관 및『부산일보』와 함께한 부고 시리즈 ‘늦은 배웅’으로 이어져, 코로나 유가족들과 우리 사회가 기꺼이 같이 애도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냈다. 역설적이게도, 사라진 것들은 박혜수 작가의 작업들 속에, 그 작업의 일부이자 작가 노트인 이 책 속에 오롯이, 살아 있다.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은 보통은 사람들이 묻지 않는 질문들을 통해 우리의 “속마음”과 “진심”에 도달한다. 그리고 우리가 떠나보낸 것들, 잃어버린 것들, 사라져간 것들, 이별과 상실의 경험 속에서도 여전히 소중한 것들에 대해 되묻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마지막 질문이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반드시 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당신을 좋아하나요?”(364쪽) 이 질문은 이 책의 앞표지 하단에도 적혀 있다.
책 속에서
정말로 물어봤어야 할, 들었어야 할 이야기들은 묻히고 전혀 궁금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시끄러운 소음들 속에서 속뜻을 헤아리는 것도 이젠 지친다. 사람들은 정말로 하고 싶은 얘기를 하지 못하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묻고 싶은 것을 묻지 못하고, 듣고 싶은 것을 듣지 못하며, 지레짐작하면서 혼자 병들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묻지 않은 질문’을 대신 묻고, ‘듣지 못한 대답’을 대신 들어보기로 했다.
당신이 들었어야 할 누군가의 속마음, 그리고 당신이 마땅히 대답했어야 할 당신의 진심. _12쪽.
나는 살아가는 것일까. 살아 있는 꿈을 꾸는 것일까. 그저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_27쪽.
꿈은 밝고 긍정적이어야만 한다는 것, 미래를 향해야 한다는 것,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것, 한 사람 몫을 해야 한다는 것, 쓸모 있는 존재가 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한다는 것…. 나는 꿈에서 이 모든 것을 거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침묵하지 않게 할 꿈에 대한 질문은 ‘희망으로 가득 찬 꿈’이 아니라 사실은 ‘빌어먹을 꿈’이 아닐는지. 그렇게 나는 사람들에게서 실패한, ‘포기한 꿈’을 묻기 시작했다. _35쪽.
이제 설문 <당신이 버린 꿈>은 사람들이 보내온 ‘버린 꿈’만 의무감으로 모아오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자신이 포기한 꿈을 버렸지만, 나는 지금껏 사람들이 버린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왜 버리지 못했을까. 사실 포기한 꿈을 마주하는 것은 제3자인 나도 즐거워하는 일은 아닌 것이, ‘버려진 꿈’을 보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불행한 끝이 보이는 누군가의 삶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그들이 언젠가 찾으러 오지 않을런지 하는 부질없는 기대도 있으나, 그냥 누군가는 이를 기록하고 간직해야만 할 것 같았다. _80쪽.
[실연 물품] 구매는 주로 중고 사이트에서 이루어졌는데, 우선 사연이 있어 보이는 물건을 고른 뒤 판매자에게 내용을 확인했다. (…) 혹시 다른 종이학 선물이 또 있는지 사이트를 뒤지던 터에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판매자 역시 오랫동안 집에 자리만 차지하는 것 같아 팔고 싶다고 하는데 사연을 물으니 남편 물건이라 모른다고. 사연이 있으면 구매하고 싶다고 의견을 전달했더니 돌아오는 답변이, 남편의 전 여친에게 전달되지 못한 선물이라는 것(부인이 알려줬다). 그렇게 내 손에 전달된, 한 남자의 순정으로 접은 종이학은 유리병에 조심스럽게 담겨 있었다. 병을 열자, 종이학들 사이에서 좁쌀 같은 것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처음엔, 너무 오래 보관해서 종이들이 삭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본 그 좁쌀들은 종이배였다! 절대 사람 손으론 접을 수 없을 것 같은 크기의 종이배들이 천 마리 종이학과 함께 들어 있었고, 시중에 파는 종이로 접은 게 아닌 학들을 펴 보니, 역시…. 이 남자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_104~105쪽.
최근 당신은 언제, 무엇 때문에 설레었는가? 설렘이란 감정에 유통기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설레는 일에 나이를 운운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불확실한 것이 두렵고 감정도 버겁다. 그렇게 감정이 제거된 일과 무감각한 사람을 주변에 채워가며 ‘나는 안전하다’고 안심하며, 저마다의 굴로 깊이 들어가 더 깊은 곳에 불안한 감정을 묻는다. 그렇게 속이 텅 빈 몸뚱이만 남아 그대로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싶은, 나 하나쯤 이 세상에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고 그냥 ‘사라짐’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귀찮음이 커지면 우울하거나 슬프지도 않고 단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이 귀찮을 뿐이다. 어차피 나이가 들수록 맛있는 것을 먹어도, 즐거웠던 일을 해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도 예전 같지 않고 뻔해진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감정 따위 거추장스럽기만 하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대며 자신의 속마음은 땅에 묻은 채 100퍼센트 안정이 보장된 완벽한 날만을 기다린다. 그날엔 반드시 충분히 기뻐하겠노라고. _174~175쪽.
영상작품을 위해 취재한 21명의 인터뷰이들은 최소 40세 이상, 구로공단(금천과 안양 지역) 산업체에서 근무했거나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다. (…) 몇몇 분들은 구로공단과 관련한 인터뷰 경험이 있었고 대부분은 이번 인터뷰가 ‘산업화’와 관련된 것으로 예상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신 분들은 느닷없이 ‘첫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으니 대부분 무방비 상태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표정을 보여주셨고 우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_188쪽.
2019년부터 진행된 <(주)퍼펙트패밀리>(perfectfamily. co.kr)는 일본의 역할 대행업에서 착안하여 제작한 작품으로, 인구 소멸 사회로 향하는 미래, 1인 가구에게 사람을 빌려주는 가상회사이다. 사실 아버지와 친인척 장례식을 경험하면서 나와 같은 1인 가구는 장례식조차 못 해볼 것 같은데 국가는 혈연 가족제도를 바꿀 생각은 없어 보이니, 죽는 마당에 가족법 어기는 게 대수랴. 가짜 가족이라도 빌려서 죽음의 존엄은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됐다. _265쪽.
“대체 내가 문화부 기자인지, 사회부 기자인지.” “기자님, 저는 제가 예술가인지 기자인지 모르겠어요.” (…) 코로나 유가족 취재를 진행하면서 『부산일보』 [문화부] 오금아 기자와 자주 나눈 대화이다. 그만큼 우리가 하는 일이 문화와 예술의 일인지가 의문이었다. 이런 의문은 2019년에 발표한 영상작품 <후손들에게>를 제작하면서도 느꼈는데, 고독사 취재를 다니면서 ‘나는 왜 사회부 기자 같은 일을 하고 있나’를 고민했다. 취재를 하면 할수록, 이 내용을 가지고 ‘멋 부리지 말자’는 기준을 명확히 세우고 최대한 예술가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로 했다. _341쪽.
<꽃이 지는 시간>에서 꽃이 죽으면, 죽은 시간을 기록한 종이 태그를 달아, 또 다른 설치작품 <오아시스 제단>으로 옮겨진다. 원래는 오아시스 벽면을 생화로 가득 채웠어야 했으나, 한 송이 꽃도 꽂아보지 못한 코로19 유가족들의 ‘상실된 장례’를 나타내고 싶었다. 텅 빈, 마른 오아시스 벽 앞에서 관객들이 ‘꽃 한 송이 바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 마음으로 유가족들을 위로해주길 바랐다. 마치 이곳이 소리 내어 울지 못하고 자책하며 아파할 그들에게 위로의 공간이 되길 바랐다. _351쪽.
프로젝트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 시리즈를 포함해서 <당신이 버린 꿈>, <오래된 약국>, <실연 수집>, <늦은 배웅>과 같이 사라지고 있는 것들, 상실을 다루는 작품들에서 나는 그것을 잃어버린 사람들, 내게 자신의 세계를 말해준 이들을 떠올렸던 것 같다.
꿈과 사랑을 포기하고 ‘나’보다 ‘너’와 ‘우리’를 선택하여 겨우겨우 ‘보통’의 위치까지 이르렀는데, 기쁘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은 고단한 하루하루를 견디는, 무던히도 성실하게 살아온 ‘우리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한 것이라고는 열심히 산 것밖에 없는데 손에 쥔 게 없다. (…) 우리는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혼자 있는 법’을 배우지 못했고, 사유할 수 있는 뒷방을 가지지 못하며 매일매일 변하는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질문이 사라진 당신, 만사가 귀찮고 새로움도 설렘도 사라진 지 오래고 오직 염려하던 미래가 닥칠지, 어떻게 하면 그 재앙을 피할 수 있는지만 골몰한다. _362~363쪽.
들어가며 누구에게 무엇을 물을까
Ⅰ. 꿈의 먼지
1. 버려진 꿈 2. 빌어먹을 꿈 3. 뻔한 주제, 특별할 것 없는 사람들 4. 심술쟁이 상담가 5. 오래된 약국 2011 6.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은 것들 7. 당신은 성장하고 있나요? 8. 버려진 꿈과 잃어버린 열쇠 9. 다시, 꿈
Ⅱ. 실연 수집
1. 익숙해지지 않는 이별 2. 상처받은 마음 3. 그와 나만의 비밀 4. 냉정과 열정 사이 5. 분홍 칫솔 6. 환상의 빛 7. 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그러면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 8. 책상 서랍 맨 아래 칸
Ⅲ. 사랑과 실연의 얼굴
1.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2. 보고 싶은 얼굴 3. 걸을까, 뛸까, 아니면 멈출까 4. 기쁜 우리 젊은 날 5. 형태 씨의 사랑 6 서로;로서 7. 그 순간, 내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8. 짧은 사랑, 긴 그리움
Ⅳ. 미래가 두려운 사람들
1. 내가 내게 묻다 2. 당신으로부터 편지가 왔어요 3. 라이프 인 어 데이 4. 세상을 파는 가게 5. 늙는 것도 사는 것의 연장일 뿐 6. 후손들에게
Ⅴ. 애도 일기
1. 늦은 배웅 2. 아침에 배달된 죽음 3. 애도의 중요성에 대하여 4. 아버지의 죽음 5. 마음의 준비 6. 낯선 이별 7. 죄책감, 스스로에게 가하는 형벌 8.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9. 꽃이 지는 시간
나가며 이별 후에 남은 것, 당신!
부록 프로젝트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