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고전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글쓴이 이연경 | 작성일 2005.2.2 | 목록
발행일 1998년 11월 20일 | 면수 356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9,500원

‘고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일단 ‘고(古)’라는 글자 하나 때문에 지루하고 딱딱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 책을 대했을 때 안 그래도 지루한 고전문학을 300페이지가 훨씬 넘게 다룬다는 것을 알고, 이걸 다 어떻게 읽나 하고 걱정만 되었다. 또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라는 책 제목에 거부감이 약간 들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고전시가를 제일 싫어했던 이유는, 언어영역 시험을 보면 고전시가 쪽에서 엄청나게 점수를 잃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하얀 책표지를 펼치고 한문학의 대가 이규보부터 판소리의 수호자 신재효에 이르는 내용을 읽으면서 이런 나의 편견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송순, 신재효와 같이 이전에는 몰랐던 문학가에 대해 알게 되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지은 작품에도 관심이 생겼고, 평소에 알고 있던 작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을 읽어보면서, ‘이 사람이 당시에 이런 고민, 이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썼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내 가슴에 가장 깊이 와 닿았던 작가는 ‘허난설헌’이었다. 같은 여자라서 그랬을까? ‘고독과 한의 여류시인, 허난설헌’ 편을 읽으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존여비 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 그리고 남성 위주의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허난설헌의 뛰어난 문학적 기질에 감탄한 것이다. 조선시대 여성의 몸으로 한시에 상당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 어려서부터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허난설헌의 처지가 너무나 불쌍했다. 똑똑하다는 이유만으로 남편에게 외면당하고, 바느질과 살림보다 독서와 글짓기를 좋아하여 시어머니와의 갈등에 정말 고달팠을 것이다. 허난설헌은 이런 외롭고 고달픈 결혼생활에서 오는 한을 시로 읊어냈다. 그녀의 시 한 구절 한 구절이 내 마음을 콕콕 찔러서 그녀의 시를 읽는 내내 드는 슬픈 기분을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라면 허난설헌과 같은 고달픈 결혼생활을 시로써 극복할 수 있을까, 시에 내 모든 울분을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어 더욱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허난설헌에게 또 놀란 것은, 그녀가 자신의 고독과 한만 그린 것이 아니라, 당대의 사회적인 현실 문제를 비판적으로 그렸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처지도 결코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데, 당시의 사회상까지 시로 다룬다는 점에서, 과연 허난설헌이 규방에서 지내는 사대부 여인의 몸으로 그런 시를 지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 중 허난설헌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인물은 정약용이었다. 18년 동안의 귀양살이를 하면서 실의와 절망에 빠져 세월을 보내기보다 오히려 그 기간을 연구와 집필에 쏟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귀양만 가지 않았으면 적어도 정조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왕의 신임을 받으며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쳤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만약 그가 벼슬길을 순탄하게 걸었다면 지금의 방대한 저작물은 남기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지옥의 생활로 보일 귀양살이를 정약용은 심기일전(心機一轉)했다는 것, 그것이 기중기를 사용하여 수원성을 축조했다는 사실보다 더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나라 고전문학의 특징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자연’일 것이다. 누구나 세속을 떠나 아무 걱정거리 없이 자연에서 살고 싶어 한다. 이런 마음은 현재나 옛날이나 다름없는 인간의 공통적인 욕구인 듯하다. 그런데 나는 윤선도가 「만흥」, 「오우가」, 「어부사시사」에서 단순히 자연친화적인 모습만 보여준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현실정치에서 겪은 실패를 자연 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면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모든 문학은 시대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이 그저 고전문학 작가들과 그 작품들에만 초점을 맞추어 소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책 나름대로의 잘 짜여진 구성에 빠져 들어가 나는 마치 ‘고전문학’이라는 깊은 숲 속의 길을 산책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잘 알지 못하고 지금은 쓰이지 않는 고어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고, 때로는 신비스럽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 고전문학을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한 이 책에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울 뿐이다. 아직 고전문학을 ‘시식’한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 향기를 완전히 느낄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우리 고전문학에 계속 관심을 가지며 더욱 친해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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