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물

글쓴이 이경아 | 작성일 2005.3.2 | 목록
서경식 지음 | 이목 옮김
발행일 2004년 9월 13일 | 면수 256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0,000원

2005-02-06 02:48
어딘지 모르게 어린 시절의 책읽기에 대한 추억과 감성이 닮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책을 읽었다.

유난히 운동을 싫어하고 – 못해서 그러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 내 부모에 대한 환상, 내 친부모는 다른 누구일지도 모른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하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은 확실하지 않지만 하늘을 나는 교실을 읽으며 ‘울어서는 안된다’는 소년의 결심에서 오히려 책을 읽던 나는 눈물을 뚝뚝흘렸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의 독서편력과 성장을 들여다 보게 되었다. 비슷한 느낌이면서도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성장기, 어린 시절의 그 느낌들.

이것이 책을 읽으며 저자와 온전히 동화될 수는 없지만 깊은 공감을 가지며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은 그리 기억할 만한 것이 없다. 어린이날이 어린이를 위한 날이라는 것은 다 커서야 알았고,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 수업을 받던 세대인 나는 학년이 올라가 오후에 학교에 가야하는 날은 죙일 라디오 앞에서 시간을 들어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가끔 책이나 혼자 노는 것에 정신이 팔려 시간을 놓치면 학교엘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가슴졸이며 라디오 시보만을 기다렸던 그 오후의 기억만 뚜렷한.

그렇게 가난한 맞벌이 집안의 막내로 자란 쓸쓸한 기억이 내 어린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는 내내 눈과 머리는 글을 따라 가고 있었고 마음은 거꾸로 내 어린시절을 거슬러 올라가 저자의 말처럼 어린시절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진 그 무엇인가가 꼼지락거리며 기어나왔다. 누구나 다 어린시절의 특별한 추억거리가 있겠지만 너무도 다른듯한 환경이면서도 어쩌면 이리 비슷할까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이야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슬며시 웃음지으며 나의 추억을 되살려보게 되었다.

내게는 각기 다른 성향의 오빠들이 있었고, 책을 좋아하는 오빠는 나의 책읽기에 많은 영향을 끼쳤고 다른 오빠는 온갖 잡기, 바둑이나 장기 심지어 카드놀이까지 꼼꼼히 가르쳐주면서 나를 상대로 자신의 실력을 연마하였었다. 한참 태권도를 배울 때는 내게 발차기 연습까지 하였던가….

그런 일상에서 커가면서 읽었던 책들이 하나하나 떠오르고 중학생이 되어 처음으로 온전히 나를 위한 책을 언니에게 선물 받은 것도 생각난다. 직장을 다닌 언니의 첫 월급으로 내가 사달라고 했던 책은 읽을때마다 그 느낌이 새로운 어린왕자였는데…

그때 언니가 사 준 책은 영어공부도 하라는 뜻으로 영어판본과 번역본이 같이 있는 영한문고판 같은 책이었다. 누렇게 뜬 책이지만 지금도 갖고 있으니 벌써 이십여년쯤 전 책이 되어버렸나?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양장본의 어린왕자책도 있고 들고다니며 읽기 쉽게 나온 자그마한 어린왕자 책도 갖고 있지만 그 누렇게 뜬 책이 더 정감어린 이유는 ‘언니가 사 준 책’이라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겠지?

이 책에는 내가 읽은 몇권의 책 이야기를 빼놓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혀 생뚱맞게 읽게되는 것은 아니다. 책 이야기를 하며 풀어놓는 저자의 이야기에는 뭔가 알 수 없는 공감과 연대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내 마음과 통했던 것일까? 새로운 부임지로 떠나시는 수녀님에게 망설이다 이 책을 선물했더니 훑어보시고는 ‘감동적일 것 같다’는 말씀을 하고 가셨다.

그래, 어쩌면 나도 그랬는지 모른다. 이 책의 부제는 ‘서경식의 독서편력과 영혼의 성장기’인 것처럼 그의 독서편력과 영혼의 성장을 따라가며 나 자신을 투영시켜 보고 감동을 느끼게 된 것인지도.

아니, 이런저런 이유를 모두 버리고 한 영혼이 지나 온 과거를 돌이켜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읽고 감동받을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독서와는 관계없이, 거창하게 식민지의 역사를 지나 재일교포로 살아야 했던 소외된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는 것과도 관계없이 그저 내가 지나온 어린 시절을 되새기며 나의 인생을 지탱하게 하는 그 힘의 원천을 떠올리게 된다면. 물론 내게는 단순히 어린시절의 추억에 잠겨 떠올리는 감상적인 이야깃거리가 아닌 식민지배의 역사속에 조국을 떠나 돌아오지 못하고 살아야 했던 이들과 분단상황에서 일본에서 지낸 한 가족의 역사가 더 깊이 새겨져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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