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1-18 22:39
책 표지가 맘에 들지 않는다. 페이지도 안 쪽에 있어 보이지 않는다. 종이질은 또 뭐하러 이리 좋담. 쓸데없이 여백도 많고, 각주는 또 왜 다 이리 뒤에 달렸담…
그 어떤 불평도 사소하다. 서경식의 책 앞에서는.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 이어 두 번째 읽는 서경식의 책이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이제 읽을 책도 두권 밖에 안 남았는데( 청춘의 사신, 단절의 세기, 증언의 시대), 아쉬움에 소년시절 그가 읽었던 책들을 뒤적여 보고,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평범한 독서일기일꺼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서보다 더 자신을 드러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와 함께 본 미술 작품 앞에서 그랬듯이, 또 한번 그의 삶을, 그의 영혼을 엿보는 독자가 되고만다.
소년 시절의 책들에 대한 기억을 다시 되살려 적은 것만은 아니다. 책꽂이의 먼지 쌓인 책들을 몇십년전 소년의 나이일때의 책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며 그 당시의 기억을 되살렸다. ‘노래는 추억을 실은 마차’ 라는 글을 본 적 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들으면, 중학교 3학년때 처음 지방에 내려가서, 할 일이라곤 공부밖에 없었던 막막했던 때가 떠오르듯이. 저자는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을 보면, ‘절대로 울지말자’ 고 주인공 마르틴 타라처럼 다짐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어머니가 글자를 읽지 못해서 급식비를 못 낸 부끄러움에 훌쩍이던 기억을 떠 올린다. 가난한 집안 형편때문이려니 하시는 선생님 앞에서,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엄마가 글자를 못 읽는다는 부끄러운 사실은 탄로나지 않았으니 그냥 그런 걸로 해두면 되겠구니’ 하고 그제야 마음을 놓았던 기억을 떠 올린다.
[그 책을 읽었던 나날의 정경은 기묘하리만치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데 반해, 이야기의 중심 내용에 대한 기억은 왠지 미덥지가 못하다.]
기억난다. 지난 여름 한참 추리소설에 빠졌을 때 몇년만의 폭염에 집에는 에어컨도 없고, 회사 들어와서 최대 슬럼프에 빠져서, 주말에 소파에 기대 누워 미스테리 소설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했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 그 때 읽었던 추리 소설들을 보게 되면 당시의 막막함과 무기력함과 나른함이 떠오르는걸까?
저자의 전작에서 드문드문 나오던 가족사는, 저자의 소년 시절을 쓴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나온다. 서준식이나 서승의 어린시절에 대해 서경식의 목소리로 듣고 있노라면, 난 이미 그 사람들을 알고 있는 듯하다. 아픈 시절을 겪은 서경식의 가족을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머리 좋은 작은 형은 ‘서승’이고 반항아에 탁월한 운동신경의 독서를 멀리했던 막내형은 ‘서준식’이다. 작은형 서승은 막내인 서경식을 지나치리만치 귀여워해서 마치 소중한 장난감인양 대했고, 막내형은 좋아하는 표현으로 가끔씩 이슥한 심야에 왕복 4-5킬로미터는 족히 되는 장거리달리기를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던 막내형이 한국에서 영어의 몸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 나에게 독서란 도락이 아닌 사명이다’ 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서재나 연구실에서 씌어진 말이 나니고, 고문이 가해지고, 때로는 ‘징벌’이라 부르던, 수개월 간이나 계속된 독서 금지처분을 당하던 상황에서 써 보낸 편지였다.
서경식에게 ‘독서’란 자기 단련인 동시에 휴식이었고, 가장 사랑하는 대상인 동시에 증오의 대상이기도 했다. 학교를 빠지고 책방에서 책 몇권을 머리맡에 쌓아놓고 한 권씩 읽어 나가는 것은 그의 최대의 기쁨이었다. 몸이 아프면, 혹은 꾀병을 부려서라도, 기대 누워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워했다. 아플때 읽는 책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었다. ‘아프니깐..’ 하면서 변명처럼 잡은 책들. 서경식은 막내형의 위의 편지를 받고 형의 그 말을 본인에 대한 가차 없는 항변의 여지가 없는 비판으로 받아들인다.
[한 순간 한 순간 삶의 소중함을 인식하면서, 엄숙한 자세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독서. 타협 없는 자기연찬으로서의 독서. 인류사에 공헌할 수 있는 정신적 투쟁으로서의 독서. 그 같은 절실함이 내게는 결여돼 있었다.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지 않은 채, 귀중한 인생의 시간을 시시각각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학교 때까지는 한 반에 네댓명의 조선인들이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본인이 조선인인것을 숨기고자 노력했고, 고등학교는 명문 고등학교에 시험봐서 입학했는데, 단 한명 재일조선인이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열등감으로 차 있는 서경식의 어린 시절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난에 대해, 민족에 대해 너무 일찍 깨달아야만 했던 그에게 ‘책’이 있었고, 거기에서 해답을 구했다. 가끔은 그 해답을 찾기도 했다. 그는 분노하기 보다는 슬퍼하는 소년이었다.
[모두들 "어린 시절은 참으로 좋았다. 가능한 일이라면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나 역시 그 같은 마음이 없지 않다. 하지만 지난 시간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듯 하나하나 꼼꼼히 되짚어보면, 그리움이나 즐거움과 마찬가지로 어린아이 나름의 슬픔과 괴로움이 마음속 저편에서 되살아온다.]
서경식의 담담하지만 묵직한 글은 생각보다 더 가슴 깊이 자욱을 남긴다. 평소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일본 시선 몇권을 골라 본다. 새삼 에리히 케스트너의 책들을 구석에서 꺼내 본다. 읽을 엄두 못내고 있었던 루쉰의 책과 프란츠 파농의 책들을 드디어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저자가 끝내 읽지 못한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오기반 재미반으로 주문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