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國史 와 韓國史의 가장 큰 차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게 그거 아닌가 할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국사는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내부에서 보는 역사이고 한국사란 외부에서 보는 역사라고 할까 그럼 그게 뭐가 다른가? 이책은 바로 그점에서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삼고 있다. 국사와 한국사의 차이는 다름아님 역사라는 객관적인 지나간 사실에 대해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해서 좀더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물론 내 몸에 백의민족, 단일민족, 단군의 소생이라는 피가 흐리고 있는 이상은 약간은 거북한 표현들도 있지만, 저자 나름대로의 객관적인 기술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역사에 대한 생각에 한번즘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발명, 세계최초의 강우량 측정기 발명등 세계최초라는 별칭이 달린 문화유산을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다.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교육을 받아왔고 그래서 자긍심 또한 타 민족에 비해 많이 가지고 있다. 오쳔년 역사이래 타민족을 침탈한 적이 거의 없는 오로지 침략을 받았지만 역사의 주인공으로 버저히 존재하는 그런 민족에 대한 자긍심들… 현재가지고 있는 국사에 대한 가장 큰 모토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과연 그럴까?에 대한 반문은 감히 할 수 없었던 아니 해야할 이유도 없는 그런 현실이다. 독도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불거져 나오면 나라전체가 난리가 난다. 엄연한 우리역사를 자기꺼라 우기는 민족들을 보면 용서가 되지 않는다. 용서할 수 없다. 용서해서도 아니 되는 것이고.
그럼 정작 우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반문하면 할말이 없어지니다. 고구려의 제대로 된 강역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학계를 비롯해서 각종시험에 점수따기용으로만 알았던 국사교육의 문제점들 너무도 많이 우리 스스로가 우리의 역사를 알지 못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역사란 미래의 거울이다는 말이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느 민족보다 더 뼈저리게 느꼈을 민족이지만 이제 다 잊어버린것 같다. 왜 그런 역사가 있었던가를 생각치 않고 그냥 큰 역사의 줄기중에 하나라고 감춰버리는 그런 집단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이 책은 우리역사의 상고시대인 선사시대부터 현대사에 이르기 까지의 큰줄기만을 언급하고 있다. 세세한 각론의 역사까지 따진다면 이이화선생님의 불후의 명작인 한국사이야기정도의 분량은 되야할테니… 그 중에서 우리가 치욕스럽게 여기는 고려시대 몽골지배의 시기와 조선의 사대정책을 역사라는 큰 줄기에서 새롭게 보는 시각이 눈에 띤다.
지금도 학설은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고구려라는 제국의 강역은 반도를 벋어난 대륙에 까지 미쳤다는 점에 대해선 누구나 수긍하는 바이다. 그런 고구려가 반도의 한쪽 구석에서 겨우 국가라는 특을 잡은 신라에 의해 쇠망할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기지만 여하튼 신라는 최소한 반도의 일부를 병합했다. 그후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 발해와 남북국시대를 거치면서 고려라는 진정한 고구려계승자에게 진정한 반도의 통일주인공역활을 넘겨주게 된다. 고려는 국호에서도 알수있듯이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만천한에 천명하고 그 의지를 보여주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희라는 띄어난 외교관으로 인해 강동6주를 획득했다고 생각하지만 천만에 말씀이다. 획득이 아니라 많은 준비끝에 가져온 고구려의 반환이라고 봐야할것이다. 이렇듯 초창기 부터 고구려계승정신이 고려에게 있었다.
비록 고려중기에 가서 왕권의 약화와 지주층의 거대로 인해 무신정변을 필두로 한 최씨무신정권이 자리잡지만 그들의 최대 모토도 고구려계승이라는 점에는 틀림없다. 그러니 당연히 원과의 충돌을 피할길이 없었고 그렇게 대몽항쟁이 시작된다. 비록 항쟁의 패배로 원의 사실상 지배를 받게 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다른 면도 있다. 과연 몽고의 지배기간동안 역사가 후퇴했느냐 아님 진보했는냐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당시 고려는 원으로부터 정치 경제등 다 방면에 걸쳐서 내정간섭을 받았으나 그에 상응하는 시대의 큰 흐름을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비록 폐자인 고려는 독립성을 잃었지만 20세기의 한민족만큼 정체성에 대한 위협은 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체성을 한단계 높일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볼 수있다. 예를 들어 원의 지배시기에 고려는 노비제도가 부모중 한사람이 천민이면 천민이 되는 일천즉천의 제도였다 하지만 원의 지배시대에는 일량즉량이라는 제도가 도입된다. 물론 기득층의 강력한 로비로 유야무야되기는 하지만 그 만큼 사회전반에 걸쳐 많은 충격들이 있었고 그 충격들을 서서히 소화해내면서 사회는 또 다른 변혁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조선의 대외정책중 우리에게 부끄럽게 비쳐지는 모습이 중국에 대한 사대정책이 아닌가 싶다. 소중화를 자처하면서 오히려 중국보다 더 성릭학에 매진했던 그런 부분들 말이다. 하지만 역시 사대를 민족의 자존감도 없는 정책으로만 비판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당시 원의 멸망과 명의 창궐에서 조선이란 신생국의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였다. 물론 중국제국의 전통적인 통치철학의 하나인 근공원교라는 방식에 의해서 조선을 하나의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조공이라는 외교관계를 설립하는게 명제국의 입장에서도 유리한 면도 있었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도 부정적인 요인보다는 긍정적인 요인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당시 반도국인 조선의 경우는 천년전의 고구려와는 판이하게 달랐다. 대륙국가 아닌 반도국가라는 맹점때문에 선전문화의 유입현상이 늦어지므로 제때 반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면에서 많이 불리했던 것이다. 크게 보면 조선의 사대정책은 그런한 문명의 흡수라는 입장에서 탁원한 외교정책으로 봐야할 것이다. 비록 명,청교체기에 광해군같은 군주를 배척하고 안주해버린 면은 있지만 당시로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외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그런 종속성이 아닌 반도국가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정책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 역사란 되풀이 된다는 말도 있다. 물론 똑같이 반복될 수는 없지만 그 만큼 역사를 통해서 현시대와 미래를 가늠하고 조절할 수 있는 거울이라는 소리일것이다. 과연 우리는 우리역사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고민과 제대로 된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지 반문해 볼 수 있는 책인것 같다. 물론 역사에 대해서 자긍심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자긍심을 가져야 만 타 민족의 역사왜곡을 막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싶다. 그동안 우리 근 현대사부분의 경우 많은 점에서 객관적인 역사인식을 가지고 있는 계기가 있었고 지금의 세대는 또 그러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멀리도 아니고 천년전 이천년전의 역사에 대해선 너무마 막연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점 또한 사실일 것이다. 진정한 우리 역사를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같아 다시금 역사에 대한 생각을 하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