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던 지난 금요일(2006.8.25)에 신영복 선생님께서 정년퇴직을 하셨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더불어숲’, ‘나무야 나무야’, ‘엽서’, ‘강의’ 등으로 알려진 우리 시대의 큰 스승님 신영복…
신영복 선생님께서 직접 강의 하시는 ‘신영복 함께 읽기’ 수업을 몇 번 수강해본 경험이 있지만 선생님과 인연이 깊은 명사와 지인들이 다시 읽고 이해하려한 신영복 사상과 인간 신영복의 다양한 모습들이 ‘신영복 함께 읽기’라는 멋진 책으로 기대하지 않았던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준다.
처음에 이 책이 기획되었을 때, 선생님과 그다지 인연이 깊지 않은 몇몇 사회 저명인사들의 이름이 거론됨을 소문으로 듣고 실망과 오지랖 넓은 걱정을 했었는데, 소문은 소문이었을 뿐 다행스럽게도 내 입맛에 맞는 느낌 좋은 책으로 완성되어 세상에 나온 것 같다.
신출귀모(신영복 선생님의 출판을 귀하게 생각하는 모임)의 일원인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박경태 교수의 서문을 시작으로 선생님과 관계가 예사롭지 않은 수 많은 분들이 판에 박힌 논문집 형식을 벗어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수필들로 저마다의 사연과 독후감들을 써내려간다. 전반부의 주요 필진들은 선생님과 함께 했던 성공회대학교 교수분들, 각계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 중심의 다소 학술적이고 딱딱한 글인데 반해, 후반부는 보다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글들로 인간 신영복에 대한 사회 각층의 따스하고 진솔한 사연들이 재미있게 펼쳐진다. 이들이 바로 선생님과 함께 더불어 숲을 이루는 60그루의 나무들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기획의 한계성으로 육십 그루와 멀리 떨어진 땅에 뿌리를 내린 알려지지 않은 나무들의 이야기도 점진적으로 기대해 본다.
표지에 저자로 소개되는 ‘여럿이함께’는 선생님 고유의 우리를 일컷는 따뜻함인데…
여럿이 함께 쓴 글의 독후감을 쓴다는 것은 큰 부담이다. 두루뭉술하게 대충 쓰려다가 나름대로 불편부당하게 정리해 보려한 점과 몇몇 필진에게 불유쾌함이 남지 않을까 고민하면서도 내공은 얕고, 주관은 짙은 독선적인 졸문일 수 밖에 없는 이몸의 한계를 한탄할 따름이다.
오로지 아직 읽지 않은 이들을 위함과 내 나름대로의 정리 필요성으로 쓴 독후감…
1부_신영복을 읽는다
Ⅰ. 끝나지 않은 사색―삶과 사유
■ 끝나지 않은 사색―신영복 사유의 흐름 (김형찬/고려대학과 철학과 교수) : 동아일보 기자시절 인터뷰의 인연으로 지인이 된 필자는 신영복 사색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이야기 한다. 1960년대, 경제학도로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을 접하며 사회를 구조적으로 인식했던 점, 20여년의 감옥생활(독방생활만 5년쯤)을 통해 동양고전으로 사고를 넓히게 된 점과 감옥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 출소후 첫강단에 설 때 자청해서 ‘한국사상사’를 강의했다는 점, 우리 사회의 기본적 모순의 한복판에 ‘지성의 나무’로 뿌리를 내려 가장 ‘정직한 나무’가 되자던 솔선수범, 자본의 논리에서 인간적 원리로 전환할 것을 기본으로 하자는 제안, 정체성과 자립의식이 부족한 사회 문제를 외면하고 단지 국가 경쟁력만 높이려는 미래사회 담론에 대한 반성하자는 언급 등 선생님의 과거 생각들을 짚어내고, 10여 년 후에나 출간될 예정인 신영복 선생님의 ‘나의 대학생활’에 대한 언급으로 볌함 없이 지속될 큰 스승님의 끝나지 않은 사색을 기대한다.
■ 진보주의의 새로운 지평(김호기/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 KBS와 신동아에서의 인연으로 지인이 된 필자는 ‘이성의 언어를 거부하는 감정의 독립’에 감복하고, ‘강의’ 라는 책을 접하면서 우리 안에 내재하는 관계로서의 보편성에 주목하여 그것을 ‘관계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론화한 독창적인 신영복 사상의 매력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세계화의 충격으로 인해 우왕좌왕 하는 우리 사회의 방황하는 진보주의를 우려하던 필자는 그 진보주의 속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신영복 선생님의 사상을 인간해방적 또는 문명 성찰적 진보주의라 명명하며 관심을 갖는다. 마르크스 정치경제학과 관계론의 인간 철학을 지반으로 하는 신영복식 진보주의에 대해서는 동시대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하려는 일상성과 진실의 탐구자로서의 위엄까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 사람을 거울로 삼는 구도자, 신영복―‘증오의 정치’를 넘어서(강준만/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미디어를 통해 이 책의 대표 저자로 소개되는 필자는 정치와 증오는 분류될 수 없다는 선지자들이 이야기로 글을 시작하여 증오의 악순환과 확대재생산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굴 탓하기에 앞서 나 자신의 일로 받아 들이면서 이에 대한 성찰을 할 것을 화두로 던진다. 직설적으로 표현되지 않는 내공이라 할 수 있는 암묵지(暗默知,Tacit Knowledge)의 공유를 이야기 하며 신영복을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한다. 올초에 교육부가 특정계층을 비하하는 내용을 담은 비교육적인 급훈을 없애라고 했을 때, ‘네 성적에 잠이 오냐?”, “30분만 더 공부하면 마누라 몸매(남편 직업)가 달라진다”,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와 같은 속물적인 급훈에 대해 그것은 현실적이며 그것을 치우라는 것은 위선적이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강준만 교수는 증오의 정치를 넘어서기 위해 바위처럼 흔들리지 않는 존재를 거울로 삼을 것을 권한다. 신영복 선생님이 바로 그런 바위인 것이다.
■ 신영복의 ’60’년을 돌아본다(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신영복 선생님을 지켜 볼 수 있었던 필자는 스물여덟 음력생일에 끌려가 마흔여덟 음력생일에 풀려난 선생님의 극적인 삶과 더불어 그 앞 뒤로의 모든 삶들을 비교적 많은 페이지에 풀어서 정리했다. 출소후 지난 20년을 해배(解配) 1기로 규정하고, 앞으로의 20년 해배 2기의 계획을 신 선생님께 여쭙고 나서 다음과 같은 대답을 받아낸다. “지난 60여년을 되돌아보는 일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 그의 몸에 새겨진 한국 현대의 역사, 그의 몸이 뛰어넘은 한국 현대의 역사(조희연) : 역시 신선생님과 같은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조희연 교수는 한국현대의 역사를 주제로 20년 20개월 감옥생활의 원인이 된 통일혁명당 사건을 이야기 한다. 악명 높았던 중앙정보부 1968년8월24일의 발표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역사적 희생에 대한 깊은 생각으로 우울하게 시작되지만 ‘깊은 우물에서 길어올린 시린 샘물’과 같은 두 가지, 신영복의 민중서예와 함께 읽고 싶은 신영복 사색로 희망을 말하며 전환적 위기를 겪고 있는 2000년대 한국사회에 싱영복 함께 읽기를 권한다.
Ⅱ. 나무에서 숲으로―글과 예술
■ 세 번째 봉우리(조정래) :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으로 우리 근현대사를 좌측에서 조명한 위대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법정스님과 피천득 선생님으로 대변되는 우리 나라 수필계의 거대한 두 산에 이어 신영복 선생님을 또 하나의 큰 산, 세 번째 봉우리로 거론한다. 그 세 봉우리들을 다시 세 개의 솥 다리로 풀이 하여 먼 세월 뒤에도 독자들이 마음 껏 밥을 퍼먹을 수 있는 희망에 기뻐한다. 글발과 더불어 신영복 선생님의 인격에 경외심을 갖는 그는 뜨겁고 강하고 아픈 이야기를 낮고 조용하고 부드럽게 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마력같은 경지에 이를 수만 있다면 그 자신도 20년쯤 감옥살이를 해도 좋겠다는 스스로도 어이 없고 그 끔찍한 발상의 농담에 멋쩍어 한다.
■ 사색의 산책이 펼치는 언어의 숲-신영복의 글과 언어(임규찬) : 문학평론가이며 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인 임규찬 선생은 ‘감옥으로부터 사색’에서 편제해 놓은 ‘농활!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면!’이라는 제목의 ‘농활지침서’로 글을 시작하여, 부드럽게 이야기 하면서도 해야할 말은 확실하게 전달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탁월한 문체에 감탄을 넘어 질투를 불러일으킨다며 동양고전의 미학을 발견한다는데 대체로 동감하지 않겠느냐고 독자에게 묻는다. 근원을 추궁케 하는 고차원적 율동의 필법은 물론이고, 풀한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마음이 실려 있어서 복잡한 기교의 길이 아닌 지순한 자연의 길을 되짚어 보듯 지시함에 경탄을 보낸다.
■ 나무에서 숲으로 가는 길을 같이 거닐다-왜 독자들은 신영복의 책을 읽는 것일까(이권우) : 도서평론가 이권우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지연된’ 축복으로서 신영복 선생님을 말한다. 직업이 직업이니만큼 지난 십여년간 여기저기에서 접할 수 있었던 신영복 저작의 독자서평에 대해 정리하는 그는 세대를 초월하여 두루두루 읽히는 신영복 선생님의 힘을 이야기 한다. 너무 앞서가면 모험주의자로 비난받고, 뒤쳐지면 수구주의자로 낙인찍힐 수도 있는데, 그 긴장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조화와 균형의 신영복을 이야기 한다.
■ 신영복의 서예 미학―그의 옥중서체가 형성되기까지(유홍준) : 문화재청장으로 미술사가로 베스트셀러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익히 알려진 유홍준 선생님은 신영복 서체를 ‘연대체’, ‘어깨동무체’로 명명한 이답게 신영복 선생님의 대표적인 서예작품 ‘갈벗삼천리’, ‘여럿이 함께’, 녹두씨알’, ‘처음처럼’, ‘서울’ 등을 펼쳐놓고 그 위대성을 논하면서 신지도에서 25년이던 원교, 강진에서 18년이던 다산, 제주도에서 9년이던 완당을 이야기하며 예나 지금이나 외롭고 열악한 삶의 조건에서 위대한 예술을 이끌어 낸 데에 침묵으로 동의할 것을 이야기 한다.
Ⅲ. 낮고 깊은 성찰―신영복 다시 읽기
■ 한 혁명적 인간의 낮고도 깊은 성찰의 기록-다시 읽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김명인) : 인하대 국어교육학과의 김명인 교수는 햇빛출판사를 통해 발표된 18년전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초판 서평에 이어 18년만에 신영복 독서평에 담다른 감회를 느낀다. 수필가도 아니고 서예가도 아니고 경제학자도 아닌 혁명적 인간 신영복을 발견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한다. 검열을 통과해야 하는 편지글 모음에 절제되거나 은폐됨은 있었지만 그 뒤에 길게 드리워진 정서적 울림조차 절제되지 못했음을 이야기 한다.
■ 선생이 되는 길, 우리 모두의 길―다시 읽는 「청구회 추억」(김명환) :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김명환 교수는 이전에 신영복 선생님이 계시는 성공회 대학교 교수로 근10년을 함께 했던 인연이다. 지금보다 작고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 성공회대학교에서 매년 어린이날과 현충일을 교수 가족모임의 날로 발의하고 이끌었던 추억을 이야기 하며, 518*610Cm 공간에서 즐기던 땅탁구로 광주항쟁과 6월항쟁을 기념했던 사연도 공개한다. 그리고, 이 모든 교수 가족들을 ‘청구회의 추억’으로 가슴에 담아내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사람의 길, 선생이 되는 길로 세상의 빛을 꿈꾼다.
■ 바다에 이르는 사색 깊은 강물의 여정―다시 읽는 『나무야 나무야』(조병은) : 성공회대 영어학과 조병은 교수는 ‘국토와 역사의 뒤안에서 보내는 엽서’라는 다소 겸손한 부재를 달고 있는 ‘나무야 나무야’로 깊은 사색을 시작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중에서 가장 얇지만 또한 생각할 것이 많은 이 책에는 역사적 상상력을 통한 반성적 성찰이나 나무와 숲의 관계를 통한 인간 중심의 철학들이 있고, 그것은 화사한 언술이 아닌 따뜻한 가슴과 깊은 인간 사랑으로 쓴 글임에 감동이 있고, 파장은 더 오래갈 수 있음을 이야기 한다.
■ 지상의 인연, 인간의 연대―다시 읽는 『더불어 숲』(홍윤기) : 동국대학교 철학과 홍윤기 교수는 ‘새로운 길목에서 띄우는 신영복의 해외엽서’라는 부제를 단 ‘더불어숲’을 이야기 한다. 독후감은 역사의 생환 또는 과거와 미래 이곳과 저곳이 같이 얽힌 공간의 보편사를 인상으로, 인간의 삶과 자유, 또는 자기가 자신으로 있어야 할 이유를 자각하는 삶을 이상으로, 인간주의적 신뢰를 상상으로 규정하며 “우리 더불어 숲이 되자”는 신영복 선생님의 지속 가능한 생존과 인간의 연대와 깨달음의 누증을 철학적으로 분석해 냈다.
■ 옷깃 여미며 읽는 동양고전―다시 읽는 『강의』(배병삼) : 영산대 정치학과 배병삼 교수는 ‘워낙 글을 귀히 여긴 나라다 보니 이 땅에 글을 쓴 사람은 많았다. 다만 글을 넘어 책을 쓴 사람은 드물었다. 저술가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한 사람은 다산 정약용을 꼽을 수 있을 터이다.”로 글을 시작한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의 “강의”는 다산이 후세를 향해 과거의 지혜를 논했던 바로 그런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서도 만약 경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책에 대한 아쉬움도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은 배병삼 선생님의 매력인 듯 싶다.
Ⅳ. 존재론에서 관계론으로―신영복 깊이 읽기
■ 제국의 논리를 넘어, 새로운 문명을 향하여-신영복의 문명론(김창진)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창진 교수는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논리에서 볼 때, 수 많은 민족들이 엮어내는 개별 문화들의 다양성과 대등한 교류를 부정하고 글로벌 스탠다드만을 강요하는 세상의 흐름에 맞서 한낱 감상적인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는 ‘관계론’과 ‘연기론'(나무 두 개를 마찰하여 연기를 내는 이론)의 소중함을 역설하며 제국의 논리를 넘어 평화의 공동체를 이야기 한다.
■ 동양사상과 마르크스주의적 문명 비판-『강의』를 중심으로(이규성) : 이화여대 철학과 이규성 교수는 인간 사회를 ‘관계론’의 관점에서 보고 인간성과 인간적 가치를 인간관계를 통해 실현되는 것으로 동양고전을 독해하는 흥미로운 방법을 개발한 신영복 선생님을 이야기 한다. 현재의 삶을 반성하고 과거의 삶에서 진실을 회상하여 그것을 미래의 삶에 투영하려는 사고 방법은 인간성과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음미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이것이 혹시 고전에 대한 객관적 해석을 손상시킬지도 모르나 어쩌면 이것이 사상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 만리장성과 화이부동-루쉰과 신영복(백원담) –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백원담 교수는 바늘. 실, 칼을 든 손으로 본문은 물론이고 표지 도안과 제본까지 직접했던 ‘아큐정전’의 작가 루쉰을 생각하며, 동일선상에서 신영복 선생님을 바라본다. 1881년생 루쉰과 1941년생 신영복의 한 갑자 차이 인생의 절묘함으로 그 생각을 일면 합리화 시키면서… 오랜 감옥 생황에서 다양한 노동을 통해 몸에 밴 노동의 미학을 이야기 한다.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론(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아니한다)을 관계론적 시각에서 재조명하여 ‘개인이 맺는 교우의 의미를 넘어 모든 인간관계와 국가간의 관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를 빗대어 중국과 우리나라가 오늘의 세계사적 현실에 맞설 그 무엇인가의 연대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
■ 자본주의 문명 비판과 관계론 (신정완/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문제의 통혁당은 민족해방주의(NL) 노선이며, 신영복 교수는 지금까지 줄곧 반자본주의자로 살아오신 분임을 강조하며 시작되는 이 글은 다소 흥분돼 보인다.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적 비판은 관계론에 이르러 이 이론이 서양문명 전체에 대한 비판을 내장하고 있음을 이야기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비판은 안되는 법, 신정완 교수는 그 대안을 찾으려 노력하는데, 즉답을 듣기 보다는 스스로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에서 찾으려 한다.
■ 신영복과 분단·통일 문제(김동춘/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 신영복 선생님의 글에서는 한반도의 분단체제와 통일문제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거의 접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김동춘 교수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20여년 수형생활을 했던 이의 부담감을 우려하면서도 수감되기 전 청년시절, 수감이후 생활, 출옥 이후의 변화들을 시대적인 배경들과 함께 분석해 보려고 노력하고 나름대로의 결론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앞선 학자들의 신영복 읽기가 그러하듯이 참된 신영복 사상은 신영복 선생님 자신만이 알 뿐이고, 나는 김동춘 교수를 통해 신 선생님을 이해하는데 보다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2부_신영복을 말한다
■ 제자로부터 받는 아픔과 기쁨(이현재/서울대 명예교수, 대학 스승) : 조용한 언급으로 제자의 지난 아픔을 함께하는 이현재 선생님. 재승박덕(才勝薄德)이라는 사자성어를 무색하게 하는 인격으로 다방면의 문화활동을 하면서도 성공회대학교 대학원장이란 직무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없이 정년을 맞은 인간 신영복에 됨됨이를 이야기 하며, 정년을 굳이 의식하지 말고 보다 더 원숙한 경지에서 중후한 지도자가 되기를 갈망함과 동시에 부인과 아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며 가정의 행복을 기원한다.
■ 옛 스승들의 회고(좌담)(박문희·조홍범·박창기·박창희·서상호·신영복) : 중학교 시절 스승 박문희 선생님은 눈이 동글동글하고 귀엽던 학생 신영복을 추억하고, 박문희 선생님의 동생 박창희 교수는 한 동네에 살면서 겪은 부친 신학상 선생님을 추억하며 부자의 철학에 눈길을 보낸다. 부친(신학상)의 제자인 박창기 선생님은 해방을 미리 준비했던 스승으로 부터 배운 노래를 불러준다. 담임 선생이 되고 싶었으나 끝내 다른 반에 빼앗긴(?) 쓰라림을 경험한 조홍범 선생님의 제자 사랑은 훗날 남한산성으로 면회를 갔다가 면회불가로 되돌아 올 수 밖에 없었던 아픔으로 이어진다. 부친(신학상)의 제자로 방황하던 청소년기의 자신을 바로 잡아준 스승을 추억한다. 이렇게 옛 스승 혹은 부친의 제자들과 좌담을 함께한 신영복 선생님의 기쁨 또한 남달랐으리라. 좌담의 기록을 맡은 더불어숲 회원 신정숙과 한혜영, 두 돼지띠 숙녀들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 밀양 뒷동산에 올라(정풍송/작곡가, 초등 및 중학 동창) : 어린시절 그 집에 놀러가면 교육자 집안의 조용함과 품위를 느꼈다던 정풍송 선생님. “뱀은 이슬을 먹고 독을 만들지만, 꽃은 이슬을 먹고 꿀을 만든다”는 격언으로 벗 신영복의 20년 대학생활(감옥생활)에 위안을 느낀다. 조영남의 노래 ‘옛 생각’을 듣다 보면 정풍송 선생님은 분명 신영복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작곡을 했을 것 같다. “뒷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면 ~♪ 꽃 댕기 매고 놀던 옛친구 생각난다 ~♪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 놀던 바위 외롭고 흰 구름만 흘러간다 ~♪ 모두 다 어디 갔나 모두 다 어디 갔나 ~♪ 나 혼자 여기서서 지난날을 그리네 ~♪”
■ 은린銀鱗처럼 빛나던 시절(배진/부산외대 서반어과 초빙교수, 고교동창) : 다재다능, 재기발랄로 고교생 신영복을 기억하는 부산상고 동창 배진선생은 키 작은 순서로 자리를 배정받아 5번째이던 선생님과 2번째이던 자신의 가까운 인연을 과시(?)한다.
대학2학년이던 단기 4293년 여름방학에 보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오늘의 현실 생리에 맞지 않는 이국인일지 모른다. 우리는 오만한 자들에 의해 우리의 영토를 틀림 없이 짓밟히고 있다…이하 생략”
■ 가난한날의 벗―나의 50년 지기 신영복(김문식/고교동창) : 대입모의고사에서 항상 전교수석이었고, 글솜씨와 만화 그리는 솜씨 또한 빼어났던 동창 신영복의 학창시절을 추억하며, 대학시절, 서울로 이사했던 신영복 선생님댁을 찾으면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항상 밝았던 어머니의 표정 탓에 그늘을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과 부친의 ‘등산가족’이란 달동네 사는 이야기의 일부를 기억해 주기도 한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하다 보니, 함께 손수레를 끌고 동대문에서 노량진까지 이사를 했던 우정의 기억 또한 빼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진정한 50년지기가 되려면 감옥에도 함께 갔었어야 하는데… ^^;
■ 대하드라마의 제4막을 기다리며―상대 시절의 신영복(홍재영/한국산업경제연구소 대표, 대학동창) : 대하드라마 제3막은 세실극장으로 부터 시작된다. 1988년 여름 갓 출소한 신영복 선생님을 만날 때, 복수의 일념으로 불타는 투사의 자세, 고뇌와 방황의 모습를 상상했던 필자는 홍릉시절 그대로의 유머러스한 장난꾼, 친화력과 공동체정신을 그대로 지닌 청년 신영복의 모습에 경탄과 함께 기쁨을 토로한다. 대학시절 여장으로 무대에 올라 연기했을 때, 어떤 남학생이 홀딱 반해서 데이트 신청을 하려했던 사연을 중심으로 선생님과 함께 했던 대하드라마 제2막을 추억하며, 이제부터 펼쳐질 ‘대하드라마 신영복 제4막’에 대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주변에 부탁하며 글을 맺는다.
■ ‘대학신문’을 빛낸 글솜씨(윤흥렬/전세계치과의사협회 회장, 대학동창) : 서울대 ‘대학신문’ 기자시절,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그 자리에 문리과에 김지하, 하길종 등 쟁쟁한 글솜씨에 맞선 군계일학 상과대 학생 신영복을 추억한다. 또한 신영복 선생님을 가장 아꼈던 벗 이영윤(세실극장 운영, 엽서 서문 필자)의 투병소식을 전하며 그를 대신해서 글을 쓰는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뽑은 이빨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어느날 15척 담 밖으로 던졌습니다. 일부분의 출소입니다.”를 이야기 할 때는 필자의 투철한 직업의식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 물을 닮은 사람(신남휴/개인산방 주인, 대학후배) : 1960년대 초, 신영복 선배를 만나 보내던 대학시절의 꿈들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것 까지는 좋았다. 기억이 1968년 여름, 해군소위 시절로 넘어가면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계급장 뜯기고 얻어 맞고 이유도 모른체 1년 넘도록 옥중 동거를 하게 된 사연을 이야기 할 때는 안타까움을 이루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신영복 선생님이 초로의 나이에 해탈하여 저잣거리로 돌아왔을 떄, 말과 글과 삶이 온전히 일치하는 사람을 맞이한 감동을 이야기 한다. 참고로 미산 신남휴 선생께서 기거하시는 강원도 깊은 산골의 개인산방은 5년전부터 신영복 선생님의 안식처가 되었으며, 몇년전부터는 매달 한 번씩 열리는 ‘더불어숲학교’가 운영되는 공간이 되었다.
■ 시와 그림을 사랑한 문우회 선배(이해익/리즈컨설팅 대표컨설턴트, 대학후배) : 대학 5년 후배인 필자는 신입생 시절에 선배 신영복이 남긴 작품 ‘민족자본’을 공개한다. 단순히 학부생과 대학원생의 만남이 아니라 상과대생으로서 미술과 서예, 문학을 하는 동류의식으로 가까웠던 인연을 이야기 한다. 현실적으로 계산이 빠른 수재들의 집합체에서 시화전과 문학의 밤을 함께 했던 인연은 이제 선배의 은퇴를 기뻐(?)하며 문우회 동문 시화전을 품어본다.
■ 40년이 지난 지금도 부르는 옛 노래(장명국/내일신문 사장, 대학후배) – 서울대학교 경제학교 7년 후배인 필자는 4대1의 경쟁을 뚫고, 경우회라는 학회에 가입한다. 가입하자마자 선배들이 가르친 노래에 매료된 필자는 노래를 만든 사람이 누구일까 의문을 갖다가 신영복의 작품임을 알게 된다. 그 경우회 노래와 함께 “사람이 한 번 뜻을 세우면 끝까지 밀고가야 한다. 분단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 경제학도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라던 선배님의 말씀을 40년 세월동안 가슴에 담고 살았던 사연을 이야기 한다.
■ 청구회의 추억을 되살리며(김승광/전 군인공제회 이사장, 육사25기 제자) : 육사생도 시절 선생님을 잘 따르던 제자이던 필자는 통혁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너무 오랜 세월이라 선생님의 존재를 잊고 지내다가 36년만에 친구를 통해 선생님의 소식을 전해듣고 1년이 더 흐른 후에 떨리는 가슴으로 상봉하게 된다. 신 선생님의 명문 “배운다는 것은 자신을 낮춘다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다만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으로 진정한 학자에 찬사를 보낸다.
■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석양에 난다(김학곤/농협무역 대표, 육사26기 제자) : 몹시도 엄격한 규율의 육사생도 생활 속에서 단비와 같았던 신영복 선생님의 자유스럽던 교양 수업 시간을 추억하는 필자는 수업중에 선생님이 인용하신 헤겔의 법철학 서문을 뇌리에 각인한채 살아온 40년을 이야기 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되어서야 난다.” 그리고, 이제 인생의 황혼에 들어선 신영복 선생님을 보면서 육사출신으로서 국군보안사령부에서 근무했던 자신의 옛일에 마음 쓰며 반성한다. 현재 필자가 대표로 있는 (주)농협무역을 소개하는 인간적인 면모와 이제부터 소주는 ‘처음처럼’만 마시겠다는 미소가 절로나는 군인정신이 즐거운 글이다.
■ 청맥회의 추억(최영희/약사, 청맥회 제자) : 이화여대 시절, 청맥회라는 동아리 활동으로 인해 당시 육군중위이던 신영복, 이영윤 등을 만나 교류했던 점을 추궁받아 꽃다운 20대를 최종판결을 받기까지 5년 동안 소환되고 또 소환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필자는 신영복 선생에 버금가는 시련을 꺽은 지금의 남편 이서방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음에 여유를 부린다. 선생님께서 개국 약사 30년을 기념하여 써주신 ‘어머니 약손’은 뿌듯함의 절정일지도 모른다.
■ 살벌한 대전교도소, 그 시절이 그리운 이유(이승우/HNC협동건설 대표, 감옥동료) : 대전교도소에서 같은 재소자로 만난 10년 터울의 필자는 함께 양화공장에서 일하며 같은 방을 썼었다. 이이제이(夷以制夷) 정책에 따라 일반잡범들이 사상범을 감시하고 괴롭히도록 종용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고매한 인격으로 인해 죄수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선생님이 아닌 ‘영복이 형’, ‘복이 형’으로 불리던 그 시절을 그리워 하며, 학식도, 권위도 돈도 명예도 다 발가벗고 맨몸 그 자체만으로 평가 받아야 했던 그 공간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그곳에서 피어나던 선생님의 향기가 내게도 느껴지는 듯 싶다.
■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맺은 사제의 연―이구영 선생님과의 인연(배기표/광명 명문고 교사) : 우리 모두의 스승 신영복 선생님의 스승 되시는 한학의 대가 노촌 이구영 선생님과의 인연은 ‘강의’를 비롯하여 신선생님의 글 여러곳에서 만날 수 있는 분이다. 노촌 이구영은 조선조 중기의 4대 문장가 중 한 분인 월사 이연구 선생의 후손으로 벽초 홍명희에게 사사를 받은 한학의 대가인데, 이런 분에게 신영복과 같은 탁월한 제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4년간이나 지속된 것 또한 행운이리라. 더불어숲 회원 배기표 나무는 노촌선생의 ‘이문학회’에도 활동을 하면서 두 분 스승님의 말씀들을 정리하는 일을 맡았다가 대스승님이 노환으로 불편하신 탓에 두 분을 옆에서 지켜본 느낌만을 안타깝게 기록했다.
■ 시대의 어둠 속에서 빛을 만나다(문행주/화순군의회 의원, 전 대전교도소 경비교도대원) : 광주민주화항쟁의 한복판에서 제적통지서와 입영통지서를 받아 쥐게 된 필자는 아버지의 종용으로 입대를 한다. 6주 훈련을 마치고 보직을 받던 날 뜻밖에도 경비교도대를 명받고, 다시 4주간의 추가 훈련을 받고 대전교도소로 배정받아 신영복 선생님과 함께했던 감동의 날들을 이야기 한다. 제대 후,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필자는 신영복 선생님의 출소 소식을 접하고 결혼식의 주례를 부탁하는 등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 이랑 많이 일굴수록 쟁기날은 빛나고(황인욱/콘텐츠 코디네이터, 감옥동료) : 필자는 시(詩)의 형식으로 서로의 왼손과 오른손, 서로의 오른손과 왼손을 맞잡고 독방으로 끌려가던 순간을 회고한다. 의욕에 넘치는 행동가이고 싶었던 자신에게 손과 가슴과 눈빛으로 더 진한 뭔가를 전해주던 선생님을 느꼈던 것 같다. 역시 詩의 형식으로 쓴 축구이야기가 멋스럽다. 출소 후 벽에 걸린 ‘녹두씨알’의 이야기는 그 인연에 비해 사뭇 다른 전달 방법이 있어 아름답다.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인연인 듯 싶다.
■ 전쪼회 시절(이근성/프레시안 고문) : 언제나 유머가 넘치는 이근성 고문의 이야기는 1980년대말 세실극장과 세실레스토랑으로 건너간다. 이영윤 선생님의 주도로 만들어진 전쪼회(전국쪼다협회?)의 추억과 출소후, 신영복 선생님에게 많은 힘이 되어주려 했지만 결국엔 신 선생님의 도움도 받아가며 더불어 살게되는 멋쟁이 아저씨들의 모임을 이야기한다. 신 선생님의 입을 통해 “정말 대단한 곳이 있다네.”로 시작되는 개인산방과 더불어숲학교의 사연 또한 선생님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큰 것이리라. 18년전 전쪼회 말석에 앉아계셨다던 이근성 고문께 후진양성의 뜻을 여쭙고 싶다.
■ 20년의 세월을 딛고 다시 시작된 강의(이재정/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전 성공회대총장) : 역시 전쪼회의 일원으로 출소후, 신선생님의 사회 활동에 발벗고 나섰으리라 예상되는 이분은 성공회대학교에 선생님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셨다. 신선생님의 출강 이후, 4년제 대학에 준하는 각종학교이던 성공회신학교가 성공회 신학대학으로 성공회신학대학이 성공회대학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인 지주의 역할을 하셨던 순간들을 증언하고, 신영복 선생님의 지혜와 함께 성공회대학교가 나아갈 길을 희망하며 또 다짐한다.
■ 옥중 편지를 만났을 때의 그 울림으로(김정남/전 대통령 교문사회 수석비서관) : 필자는 신영복 선생님의 엽서를 최초로 공개한 사람이다. 신선생님의 구명활동에 헌신하셨던 일원으로 매달 있었던 면회를 통해 신 선생님과 그 부모형제들을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정갈한 그 엽서를 만나고 글의 울림을 통해 그것을 막 창간한 평화신문에 싣기로 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제목도 필자의 작품이다.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고, 용기가 되고, 이정표가 되는 선생님의 글로 필자와 독자들은 다시 한 번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 게으른 경배자의 변(허문영/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 필자는 월간중앙 기자 시절에 ‘청구회 추억’을 소개한 인연으로 선생님의 주례로 결혼하게 된 자랑을 감추지 않는다. 해방후 좌익활동을 하다가 경북 봉화에서 은둔 생활을 하던 이상한 농부 전우익(2004년 작고)과 신영복의 고리를 이어주던 추억들을 회고한다. 아직도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보면 머리보다 몸이 먼저 동한다는 그의 소감은 분명 에로틱한 말은 아니리라… excuse me ^^;;
■ 놀 줄 아는 선비, 나는 그와 노는 것이 즐겁다(김창남/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한국대중음악학회 초대 회장이기도 한 필자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으면 아무거나 신영복 선생의 책을 집어들고, 아무 페이지나 읽는다고 한다. 신영복 선생님의 깊은 철학 뿐만 아니라 동료 교수로서 잘 놀줄 아는 심지어 유치할줄도 아는 신영복이기에 더 좋아한다며 선생님의 애창곡 중에 ‘에레나가 된 순이'(양공주를 소재로 함)도 있다며 비밀(?)을 까발리기도 한다.
■ 사제를 넘어선 사제(유낙준/성공회 서대전성당 신부, 성공회대 제자) : 격동의 80년대를 학생운동과 노동으로 보내던 필자가 이재정 신부의 소개로 신영복 선생을 만나게 된 사연으로 시작되는 글은 사제가 아닌 사제로의 삶을 살아오신 선생님을 이야기 한다. 신선생님이 오래 머무르셨던 대전교도소 바로 옆에서 사제로서 일하게 된 인연을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살라는 계시로 받아 들인 자신을 고백한다.
■ 가르친다는 것의 의미―교사들의 스승 신영복(심은하/부천부명고 교사, 성공회대 교육대학원 제자) : 전교조 1세대에 해당하는 91학번 심은하씨는 학보사 기자시절에 “질줄 알면서도 싸웠던 사람”을 찾아 인터뷰한 것이 인연이 되어 신영복 선생님을 주례로 모시기까지 한 더불어숲 회원이다. 부드러운 얼굴에 강인한 글발은 부부가 닮은 듯 하다. 남편 배 모선생님과 함께 교사의 길을 걸으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있을 필자와 부군의 ‘함께 여는 새날’을 믿는다.
■ ‘돈 안 되는 공부’의 가르침(탁현민/대중음악 연출가, 성공회대 제자) : 우리는 불량학생의 추억을 읽는다. 사고뭉치 고교생이 교무실에서 벌을 받으며 삐딱한 눈을 내리깔다가 발견하게 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충격의 전조, 고교시절의 감동 약발이 떨어져 갈때 다시 발견하는 신문에 연재중이던 신 선생님의 여행이야기, 필자는 진정한 스승을 찾아 성공회대학교에 입학한다. 졸업후 이따금 찾아가는 학교에서 ‘돈 안되는 공부’를 생각하는 필자의 마음이라지만… 이미 그는 돈을 기획할 줄 아는 유명인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윤도현이 성공회대에 입학한 것도 그의 영향이라 믿어지는 걸~
■ 세상 인연의 숲, 가족의 길로 들어서다(박강리/한국외대 환경교육학 강사, 누나의 딸) : 신 선생님이 대학원에 입학하던 시절에 태어난 필자의 멋진 이름(江里;강마을)은 꽤나 젊던 학생 신영복의 작품이라 한다. 손아래 동생에게 딸의 이름을 맡겼을 누나와 매형을 생각해보면 역으로 범상치 않았을 신생님의 젊은시절이 떠오른다. 1984년 16년만에 귀휴하여 엿새를 보낼 무렵 외삼촌으로부터 듣게된 키의 철학과 배움의 철학, 사랑의 철학을 새기고 살았을 필자의 모습은 눈과 마음에 아름다움이 넘치는 중년의 이미지로 내게 다가온다.
■ 나의 영원한 오빠, 휴머니스트 신영복 (심실/유니원 커뮤니케이션 회장, 입주가정 교사집 딸) : 아마도 이 책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몰입한 글이 아닌가 싶다. 마치 ‘청구회추억’에 버금가는 멋진 영화 시나리오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여섯살 짜리와 얘기할 때 오빠는 여섯살 눈 높이에서 얘기했다.’는 글은 뭉클하다. 뒷동산 풀밭에 누워 변신하는 구름을 소재로 떠들던 한 시간, 번개치는 밤이 무서워 오빠방으로 달려가면 “똑딱똑딱” 소리로 들려주며 겁을 달아나게 했던 참 쉽던 과학이야기… 가정교사를 끝내고도 계속되던 오빠와 가족들의 인연은 필자가 중학생이 되었을때 큰 우울함을 던져주고 말았으니 바로 통혁당사건과 오빠의 구속이다. 오빠는 떠나갔지만 실이는 오빠의 정신을 이어받아 용기있는 소녀가 되고, 숙녀가 되고, 아줌마가 되었으리라. 이 분은 참으로 만나보고 싶은 분이다. 훗날 더불어숲학교에서 이분을 만나게 된다면 밤새도록 그 시절의 이야기를 육성으로 들려달라고 떼를 쓰고 싶어졌다. ^^
■ 빈손(서숙,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 필자는 몹시도 짜증스럽던 한 여름 밤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길에 역겨운 냄새들로 가득찼던 서울을 추억한다. 집에 들어와 식사를 마치고 아파트 식탁에 앉아 우연히 읽게된 ‘평화신문’에 실린 글 하나는 수많은 하루살이와 파리, 모기, 소음 등 도시의 모든 짜증거리들을 신비롭게 날려버렸다 한다. 그리고, 지금 방에 걸린 액자 하나 <빈손>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선생님의 글이다. 빈손, 거둘 손…
■ 함께 걷는 서오릉 길(노회찬/민주노동당 국회의원) : 이미 미디어를 통해 친분 있는 정치인으로 알려진 필자는 노동운동에 전념하며 아스팔트 위에서 보내던 중 만난 평화신문을 이야기 한다. 며칠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출간되었고, 주머니가 허락될 때마다 세권 네권씩 사서 선물하는 인생을 살아온 이야기를 듣노라면 나또한 작은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지난 4월에 더불어숲 회원과 함꼐 했던 40년만의 서오릉 소풍(본문의 댓글 참조)에 불참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부분에서 목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뭘까?
■ 내 마음속의 스승(ㅎ.ㄴ돌/노래 캐는 사람) : 아버지(이원수)가 운영하는 약방을 지키며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30대 중반의 필자. 1989년 남한산 등산의 인연으로 선생님을 만나고, 그러기 1년전 눈물나게 했던 마음의 스승을 직접 만난 기쁨 탓인지 선생님이 품어내는 광채를 발견한다. (나도 그 말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그리고, 고집스럽게 한글사랑을 실천해 온 포크 아티스트 한돌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그가 거리에서 데뷔 하던날, 마음의 스승은 이흥건이란 본명을 버리고, 여러 음악의 유혹을 뿌리친 채 포크음악에만 전념하는 의지의 한돌을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 떡으로 기억되는 남자, 모성을 가진 남자(오한숙희/여성학자, 방송인) : 서울나무골에 살게된 인연으로 파리공원에서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된 필자는 선생님의 첫인상을 아저씨라기 보다 아줌마같은 포근함으로 기억한다. 10여년전 진보적여성운동 기금 마련을 위한 바자회에서 모친이 거금을 투자해 구입한 액자인데, 바로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다. ‘너른 마당 열린 대문 두레상 한솥밥’은 가슴 울리는 감동의 글귀다. 종교와 무관치 않은 성공회대학교에 다니면서도 떡신자를 자청하는 선생님의 이야기를 느껴보자. 그런데, 젖같은 마무리가 마음에 걸리는건 신경 과민일까? ㅡㅡ;;
■ 나를 성찰하게 하는 글과 말(하승창/전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 : 필자는 두번째 징역시절에 ‘사람아 아, 사람아!’를 읽으며 다이호우잉의 이 책을 번역한 신영복 선생님을 재발견하고, 사모하기 시작한다. 이후 경실련 활동중에 선생님을 직접 만나뵙게 된 후로 성공회대 교수축구회의 객원멤버로 적을 두면서 나름 깊은 인연이 시작되는데, 스스로에게 자기경계와 자기성찰이 변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 디지털 글꼴 ‘엽서체’ 개발 이야기(김민/ 국민대 멀티미디어디자인과 교수) : 이 책의 표지가 신영복 선생님이 직접 쓰신 글이 아닌, 김민 교수의 디지털 글꼴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흔하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본문에서도 그런 언급은 없다. 필자는 선생님의 옥중 엽서를 모아 정밀하게 스캔해서 작업 16개월만에 총728자를 추려내고, 그것을 기반으로 신영복 엽서체를 디지털화 해가는 과정을 이야기 한다. 초기 개발후, 선생님으로부터 B학점을 받고, 아직도 2% 부족하다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여념이 없는 필자에게 보다 나은 희망과 용기를 드리고 싶다.
■ 높지도 거세지도 않은, 그러나 도도한 장강처럼 흐르는(김은정/전북일보 정치부장) : 선생님이 감옥생활 최후의 30개월을 보낸 곳은 전주교도소였다. ‘강의’ 출간 기념으로 전국순회 강연을 하던중 전주편을 인연으로 신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하게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소박한 소망의 직접인용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미셸 푸코처럼 나의 글은 ‘완고한 권력구조를 깨트리기 위한 연장통’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의 삶을 반성하고 현실과 시대를 재조명 하는 작은 거울이기를 바라지요.”
■ 처음처럼(손혜원/크로스포인트 대표,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 교수) : 필자는 광고업계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열정이 넘치는 멋쟁이 사업가다. 지난봄 더불어숲학교에서 손혜원 선생님과 같은 방을 사용했던 나의 아내는 이튿날 손혜원 팬이 되어버렸으니 결혼4년차 신랑으로서 질투가 아니 날 수 없었다. ^^; 각설하고, 일단 이글에서 필자는 브랜드 ‘처음처럼’으로 맺게 된 신영복 선생님과의 인연을 대담하게 서술한다. 이미 오래전에 인터넷을 통해 접한 글이기도 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대중에게 반드시 일독을 권하고 싶은 사연이다.
■ 천년의 약속, ‘더불어숲’(이승혁/유니소니언여행사 실장) :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만 한다.’ 선생님의 ‘나무야 나무야’를 사진으로 기록했던 분이자 꽤나 선생님을 닮아가는 필자는 장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으로 글을 시작했다. 이만큼 필자와 선생님의 관계를 적절하게 표현할만한 글도 없을 성 싶다. 평소에 이승혁 선배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이정도로 문장력이 좋을지는 생각도 못했었다. excuse me~ ^^;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수 많은 나무들의 사상과 전통이 천년의 약속으로 남기를 희망하는 것은 필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바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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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감동을 받은 몇개의 문장과 개인적 인연들이 가물가물해진 부분을 누락함에 안타까워 나중에 이글을 수정하게 되련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