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가는 길 – 이용휴지음/박동욱,송혁기옮기고씀/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2.13 | 목록
발행일 2014년 9월 15일 | 면수 192쪽 | 가격 10,000원

이런 책, 이런 사람이 있는 줄은 이 책을 손에 쥐고 처음 알았다.

혜환 이용휴라는 250여 년 전 연암 박지원과 쌍벽을 이뤘던 한 조선 문인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전공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연암에 비해서 혜환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인물이라는 것도….

혜환은 성호 이익의 조카. 남인계 명문가였으나 이익의 맏형인 이잠이 숙종의 친국 끝에 죽임을 당함으로써 역적의 집안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훗날 이용휴의 아들인 이가환이 정조의 신망함에 관직에 올랐으나 괴수라는 혐의로 옥사하여 고종대까지 신원되지 못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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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그는 당시나 지금이나 참 상대하기 쉽지 않았던(저자 송혁기 曰) 문인이었다.

"실학자들이 현실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경세의 이상을 학문으로 서술했다고 하면, 이용휴는 세상의 통념을 넘어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가치를 문학이라는 상상의 세계로 그려낸 것이다."​라고 역자는 책의 머리말 부분에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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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그가 추구했던 학문과 글의 방향과 일치하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여 진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쳐내고 쳐낸 핵심만 존재하는 글들이기에 더욱 그러했으리라…

저자에 의하면 해와 또 다른 여러 해를 거듭해 겨우 그의 글과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그의 순수한 열정, 깊은 아픔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금씩 이해할수록 그의 사상에 다가가 저자는 자기의 글들을 보태어 이 콧대 높은 어른의 더 많은 글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덕분에 이 책은, 원본 번역본을 먼저 읽고 저자 두 명이 돌아가면서 해설을 해놓은 글을 읽게 되는데 한번 읽고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번역본과 원본(한자본)을 한 번 더 읽어본 다음에 해설판을 다시 보게 되는 구절도 제법 있다.

번역본과 해설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혜환이 자신의 글을 워낙 깔끔하게 끊어서 군더더기 없이 글을 마무리해놓은 글의 이해하기 쉽도록 번역해 놓은 것이 맞는지 한 번 더 읽게 되는 그런 책이다.

그래서 그의 글과 옮겨 쓴 그의 글을 구분 없이 가져온다.

2015년 한 해를 시작함에 있어 자신을 돌아보고 가다듬으며 무거운 첫걸음을 걷기에 훌륭한 조력자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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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약삭빠른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우직한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지만 정작 그 약삭빠름이 제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졸拙하다고 해서 반드시 손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역설적으로 졸함은 교巧함이 되고, 교함은 졸함이 된다. 똑똑한 척하는 헛똑똑이가 될 것인가? 아니면 아둔해 보이지만 정말로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인가

지식인은 교활해지기 쉽고 점잖은 척 포장하기도 어렵지 않다.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돌발적이거나 속이 보이게 행동하지만, 배운 사람은 머리를 굴리느라 절대 단순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익이나 셈에 빨라서 남에게 양보하거나 자신에게 손해를 입힐 행동을 하지 않는다. 뒤에서는 끊임없이 구시렁거리면서 저보고 하라면 발을 쑥 뺀다. 지식인이 넘쳐나는 요즘에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부끄러워할 줄 아는 것은 용기에 가깝다." – 중용, "사람은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어서는 안 된다.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운 일이 없게 될 것이다." – 맹자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잘못한 사람은 잘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늘 부끄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부끄럽지 않은 사람들뿐이다. 세상에서 정말 부끄러운 일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고,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세상 사람들은 너무나도 후안무치, 파렴치, 몰염치에 익숙하다. 결구 혜환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당대 지식인에 대한 통열한 비판을 한 셈이다.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이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것은 그때만의 일이 아니다.

온고지신, 사구 종신해야 한다. 하던 대로 하면 잘해 봐야 현상 유지를 넘어설 수 없고, 잘못되면 당연히 후퇴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이 잘못된 관행이라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과실을 저지르는 것보다 과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밀어붙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나만 따르라는 것은 추진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 ‘나’가 잘못되었을 때는 다수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다. 제왕이란 만인지상에 있으니 자신의 과실이나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깨어있는 지도자를 바라는 마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지도자는 귀 막고 눈 감은 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기만 하고, 그 옆에는 입안의 혀처럼 구는 아첨꾼들만 넘쳐난다면 그 나라의 미래는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글이 임금에게 어렵지 않게 전달되고 그것을 뼈아프게 받아들인다면, 그 나라는 적어도 희망은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격적인 비난이나 지적보다 완곡하고 점잖은 충고의 칼날이 더 매섭고 아프다. 자신의 충고를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된다는 칭찬을 해서 그러한 충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현명함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충고의 방식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요즘은 어떤 사이든 싫은 이야기는 쉽게 하지 않는다. 스승과 선배가 제자나 후배를 위해 따뜻한 충고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대번에 인상을 쓰고 싫어하거나 쓸데없이 오해하는 일이 번번하게 생기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없으면 제가 다 잘해서 그런 줄 안다. 어른의 말은 그래서 소중하고 무겁다. 흐트러진 삶의 지침을 수정하는 것은 허울 좋은 자기반성이 아니라 충고에서 시작된다.

삶을 사는 방법에는 바쁜것과 한가로운 것 두 가지가 있다. 바쁜 사람은 남의 눈치나 보면서 손발을 자신의 소유로 삼지 못한 채 일생을 마치고, 한가로운 사람은 여유 있게 조물주가 자신에게 준 것을 다 누린다고 하다면 옹의 하루는 다른 사람의 100일에 해당하는 셈이다.

"남에게 자애로운 조부가 되기는 쉬워도 운치 있는 조부가 되기는 어렵다."라는 말도 있는데 대개 인자함은 항상 있을 수 있지만, 운치가 있는 것은 특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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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자신을 두드리고 담금질하면서 갈고닦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줄을 잘 서서, 실력보다는 아첨과 사탕발림으로 출세의 길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곳이 정치판이거나 학계 거나 재계거나….

이 어지러운 세상은 거기다 다양성과 여러 요구 사항들이 넘쳐나는 다각화를 넘어서 첨각화되고 있다… 땅콩으로 회항을 하지 않나, SNS에서는 몇몇 사람 정도는, 몇몇 기업 정도는 쉽게 매장시킬 수 있을 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어떻게 길을 찾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온 국민을 휴머니스트화 시켜서 따뜻한 온기를 불러올 수 있을까…

초중고 정규 과목에 영어, 수학, 국어 절대평가, 상대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닐듯한데….

결국은 문사철의 결핍이 내면의 부실, 사상의 획일화, 생각의 단순화를 불러왔다고 본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기능보다 감성이 앞서가는 지금… 문사철의 강화 없이는 다음 세상에선 길을 잃기 쉬울듯한데….

문사철의 입문에 앞서 더 중요한 과목이 이 "나를 찾아가는 길"인 듯….

참된 나를 찾고, 참된 어디를 바라보고, 참된 첫걸음을 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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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가는 길-이용휴지음/박동욱,송혁기옮김/돌베개] 진정한 자신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껍데기 같은 사회적 관계와 남의 눈에 비친 모습들만 앙상하게 남아 가짜와 가식들만 존재하는 곳에서 참된 나를 찾아 내면의 길로 들어서 길을 찾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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