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부피가 작다고 무시하고, 크다고 무서워하면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부피가 작은 이 책은 생각보다 무겁다.
136페이지의 가볍고, 한 손에 들어오는 사이즈의 작은 이 책은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 (Concussion, 2013)』이라는 제목의 독립 영화를 이화여대 내부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 1프로와 책 한 권을 함께 엮어낸 행사에 참여하고 받은 책.
어디서 뭘 봤다고 이야기하기 좀 애매한 영화 제목에 어울리듯 이 책은 부제처럼 "하드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의 사회학"을 반영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일명 ‘엄마 포르노’ 작품인 그 책의 독후감 또는 에필로그와 같은 책.
아이러니하게 나에게 제목도 낯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세계적으로 3천만 부 이상 팔린 책이고, 시공사에서 판매하고, 그 뒷담화와 같은 책은 돌베개에서 출판하고, 이와 관련한 세트메뉴로 같이 본 영화는 독립 영화로 미국 작품을 이대 영화관인 모모에서 보고…
거기다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한글 제목의 영어 원제는 『컨커션(Concussion』 충격, 뇌진탕이란 뜻을 한글로 시원하게 『커피 한 잔이 섹스에 미치는 영향』이라고 멋지게 의역해서 만들었다. 거기다 영화의 내용은 어느 날 우연히 야구공에 맞은 주인공이 동성애에 눈을 뜨고 섹스와 관련하여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동성애적인 사랑(섹스?)을 하기 전에 커피 한 잔을 먼저 하고 컨설팅을 하면서 시작한다는….
『그레이~』도, 『커피 한 잔~』도, 『사랑은 왜~』도 혼란스럽게 한다.
거기다 이 책과 영화 그리고 소설은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공효진과 정우성, 성동일이 이야기하는 하나씩 가지고 있는 아픔들과 연계되는 듯하여 텍스트는 사상으로 이어져 상상력을 훨씬 높게 더 가치를 상승시키는 듯하기도 하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암튼 TV 드라마는 잘 안보지만 요즘 뜨는 『괜찮아, 사랑이야』와 책과 영화를 바라보며… 아마도 이 작가가 『그레이~』시리즈를 읽고, 『커피 한 잔~』을 보고 대본을 쓰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트메뉴인 듯하다.
이렇듯 지금 인연이 된 스토리 한 반 바퀴만 대충 둘러보아도 이미 불안하고 복잡하다… ^^;;
아무튼 저자는 지배적인 힘을 발휘해 제도로 자리 잡았다거나 문화매체 등을 업고 주류로 치고 올라올 정도로 새롭게 퍼져나간 가치관과 태도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바로 이 『그레이~』라는 베스트셀러라는 사실에 주목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문화적 공감의 창출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그 밑바탕에 깔고 『그레이~』라는 책을 바라 본다.
하지만 작품은(내가 보지는 않았으나 저자가 보기에) 사도마조히즘적 관계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어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는지에 주목해야 이 시리즈의 성공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의 사도마조히즘이나 사회적 병리 현상을 글, 소설, 동화로 만들어 내는 것이나 공히 공감을 불러온다는 사실.
하지만 원저를 먼저 보고 읽지 않은 관계로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렇게 세상을 많이 흔들었다고 하니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위시리스트에 담아본다.(아마도 그리된다면 내 생에 처음으로 독후감을 먼저 읽고 원저를 뒤에 읽는 최초의 책이 될 수도 있다~ ^^*)
책 속에서 그 시절의 세상을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레시피도 나온다.
아무튼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한 번쯤은 뒤돌아보게,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내용 중 담아둘만한 글을 가져온다.
예를 들자면, 동화나 소설이 되풀이해서 다루는 주제와 스토리 구성은 그 시대의 상황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 이를테면 동화에서 계모나 계부가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너무 일찍 죽는 바람에 재혼이 잦았다는 사실로 풀이된다. 마법의 손이 진수성찬을 차린다는 이야기는 굶주림과 흉년에 따른 기근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 동화 속의 교활한 인물은 봉건주의 시대에 그만큼 정의가 무시되거나 왜곡되었음을 에두른 표현이다.
동화를 읽는 우리는 그 동화에서 역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 어떤 보편적 심리구조 묘사되고 있는 게 아니라 촛불 아래서 귀를 기울이며 그 이야기를 듣고 또 전파하는 여성, 남성, 아이의 구체적 심리가 그려지고 있음을 유념해야만 한다. 단턴은 이런 결론에 이른다.
베스트셀러 창출에는 무엇보다 공동체 모순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위치에 선 ‘문화사업자’, 그러니까 입지전적 인생을 살아왔거나 사회구조의 모순을 대변할 처지의 인물이 강력한 힘을 상징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혹은 순결하고 드높은 덕성을 자랑하며 자기 의사가 분명한 젊은 처녀가 부자 남자를 위해 일한다. 처음에 남자는 어딘지 모르게 상처를 주는 방식으로 여자를 상대한다. 그러나 점차 소설은 남자의 어려웠던 과거를 밝혀내며, 그가 안고 살아온 상처가 무엇인지 그려낸다. 그리고 이 남자 역시 여주인공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게 된다.
사랑은 지성의 능력으로는 풀 수 없는 가장 괴이한 모순이라고 헤겔은 썼다.
물질적 자산의 공정한 분배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은 부정을 통한 긍정이 아니라 이게 아닌데 하는 자기 부정의 악순환만 연출할 따름이다. 더 나은 조건의 상대를 찾아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공허한 자기 긍정만 일삼는 게 막장 드라마를 즐기는 진짜 이유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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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불안한가 - 에바 일루즈지음/김희상옮김/돌베개] 세계적으로 성공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라는 소설 속의 여성의 시각, 소설이 세상의 가치관과 태도와 어떻게 연결되어 베스트셀러가 되는지 등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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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사랑은 지성의 능력으로 풀 수 없는 가장 괴이한 모순이라고 헤겔이 말했듯이…
괜찮은 선남선녀들이 노처녀, 노총각으로 늙어가는 이유 중 1% 정도는 찾은 듯하다….
명품을 걸치고자 하는 헛된 욕망에 잃어버린 영혼, 시간을 폐기하는 게임에 갇혀버린 두뇌, 감독의 상상력에 두 시간 놀아나는 영화관에 가는 것이 전부인 상상력을 찾아가는 구도의 발걸음….
청춘들은 마케팅 플랜에 의해서 휘둘릴 뿐 상상력을 펼칠 수 없는 감옥에 갇혀있는지도 모른다.
닭장 속의 닭처럼 주는 데로 먹고, 먹는 데로 알까고, 똥 싸는…
차라리 잠들기 전 면벽 10분 묵상이라도 권하고 싶다…
4~5 인치밖에 안되는 좁은 세상으로 기어 들어가지 말고, 몇 개의 글자라도, 몇 편의 그림이라도 들여다보고 잠이 들면 꿈속에서라도 상상력을 펼칠 수 있을 터이니…
세상이 만들어 놓은 두세 평의 감방 속에서 빨리 해방되어야 할지니…..
그 편협되고 이기적인 마케팅적 사고가 시장을 찌글어들게 만들고, 영혼을 지치게 만들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짝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보다 더 낳은 조건(손해보기 싫으니… 자신은 돌아보지도 않고…ㅠ.ㅠ)을 찾아서 그 잣대로만 비교하고 자신 보다 조금 더 긴(높은) 사람을 찾기만을 하다 길을 잃어 홀로 살아가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구제하려면…
인문만이 이 세상을 구원하고 돌이킬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누구의 힘을, 누구의 사상을 빌려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