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 윤용이지음/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2.13 | 목록
윤용이 지음
발행일 2007년 9월 3일 | 면수 386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8,000원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 윤용이지음/돌베개

작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우리 유물 중 백자를 특별기획으로 전시한 적이 있었다. 기획전이 예고되고 바로 가서 보면 아는 것이 없어서 남는 게 없을 듯하여 미리 공부하려고 구입한 책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백자 특별 전시회도 못 가고 책은 책대로 책꽂이에서 잠을 자다가… 지난겨울 동계 시즌 필독 리스트로 업 되어서 책상에 선택되어 읽혀진 책 되겠다.

토기와 도기는 무엇이고, 고려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 유물들… 각 지역의 박물관을 가보면 가장 많이 전시된 유물인 우리 옛 도자기… 분명히 도자기가 걸어온 길들을 공부하고 보면 더욱더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가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 뽑아들었다.

책머리의 저자의 글을 보면 이 책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왜 이 방면에 대해서 공부를 해두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나온다.

저자는 책머리에서 이렇게 말하는데 도자기를 바라보는 가장 정확한 시각인듯하여 옮겨 온다.

우리 옛 도자기는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선사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를 보여주고 있어 고고학과 미술사의 중요한 연구대상이고 그동안 청자, 백자를 중심으로 하는 자기의 역사만 강조한 측면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질그릇의 역사도 자기와 더불어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되어 그 내용을 함께 실었다.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연구반의 강의가 1년 16회에 걸쳐 이루어졌고, 도기사와 자기사를 1,2학기로 나누어 진행했다. 이 강의를 토대로 책을 펴낸다.

이처럼 이 책은 현재 남아 있는 문화유산들 중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도자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각 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가장 많은 양의 유물이 도자기이며, 용산으로 옮겨 오기 이전의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도자기의 수량은 고려, 조선을 합하여 3백여 점 정도이나 수장고에는 2-3만 점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인류 문화사와 동서 교류의 역사에서도 도자기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회화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이 조선 후기의 작품만 전하기 때문에 통시적인 가장 정확한, 가장 많은 이야기를 하는 도자기에 대해서 알아본다.

도자기만은 긴 시간 속에서 의연하게 살아남아, 오늘날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이며, 삶의 증거가 됨. 또한 이들이 추구했던 삶의 모습들이 도자기 속에 담겨 있는 것을 발견함. 이러한 발견이 이 책의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인의 삶의 모습을 다시금 도자기라는 새로운 줄로 꿰어 이해해 나가고자 하였다. ==> 좀 오버하는 듯~

질그릇이 선사시대부터 일정 시기까지 만들어지다가 그 이후에는 청자나 분청자, 백자로 대체된 것으로 잘못 이해되고 있음. 질그릇은 오랫동안 한국인의 삶 속에 꾸준히 함께 함. 청자나 분청자, 백자로 대표되는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도 질그릇은 꾸준히 만들어져 이들 자기들과 함께 사용됨.

선사시대 질그릇이 적갈색을 띄는 이유는 노천에서 구웠기 때문.

도자기 제조기술 면에서 미국은 동양보다 후진국이었음에도, 굽는 온도에 따라 600~700℃에서 구운 것을 토기, 1,000℃ 전후이면 도기, 1,100~1,200℃ 정도 되면 석기, 1,300℃ 이상에서 구운 것을 자기라고 구별한 그들의 기준을 일본이 그대로 수용한 것. 덕분에 토기와 석기라는 말이 통용됨.

어떤 재료로 만들었느냐에 따라 도토(陶-질그릇도,土-흙토)로 만든 그릇을 도기 곧 질그릇, 질그릇에 유약을 씌운 형태가 옹기. 도자는 도기와 자기가 합쳐진 말.

자기는 자토로 만들고 도기는 도토로 만들며 도기의 역사가 만여 년인데 비해 자기의 역사는 천 년 정도 밖에 안 됨. 우리도 국적 불명의 토기라는 대신에 도기라는 용어를 써야 하는 것이고 순우리말 질그릇이 더 좋은 표현

빗살무늬의 의미는 그동안 여러 각도로 해석, 가장 지지를 얻는 것은 물결의 출렁거림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 그 이외에 빛이나 영생을 의미한다는 설도 있음.

청동기시대의 유적에서 그릇의 형태가 V자 형태의 발은 모래사장에서 사용이 평이, 평지에서 사용하기에 불편해서 차츰 편평하게 만듦.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면 그릇의 빝바닥이 평저로 변함.

고조선을 비롯한 초기 정치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제사, 이제야에 술과 제물이 올라가는데 그것들을 담기 위한 정성이 담긴 그릇을 만들고자 홍도와 흑도 등의 채도가 탄생한 것으로 본다.

도기와 자기의 기본적인 차이는 우선 흙이 다르다. 도기를 만드는 흙은 진흙(도토 陶土) 자기의 재료는 돌가루 이를 자토(瓷土-사토라고도 함), 어떤 이는 유약을 입혔는지 혹은 안 입혔는지의 여부를 기준으로, 도기와 자기를 구분한다고 하나 그것은 나중의 문제, 도토냐 자토냐가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기준.

자토 중에 고령토는 한국의 고령에서 나는 것이 아닌 현재까지 중국에서 찾은 가장 이상적인 자토를 고령토라고 한다. 중국 강서성에 있는 고령산에서 난다고 해서 고령토라 부름(한국의 고령에서는 자토가 생산되지 않음),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므로 자토의 대명사가 됨. 고령이란 말을 중국어로 카울링이라고 하고 이에 영어로 자토를 카올린이라 함. 도토는 아무리 앏게 구워도 불투명해 앞과 뒤가 보이지 않고, 자토로 그릇을 얇게 빚으면 반투명체에 가깝게 보임. 고로 도토는 불투명체 자토는 반투명체.

도토는 굽는 온도가 600~1,200℃ 미만. 도토에는 사람의 뼈와 같이 몸체를 지탱해주는 성분이 많지 않아서 1,200℃를 넘으면 주저앉아버림. 때문에 600~1,200℃ 사이, 보통 1,000℃ 전후에서 구워냄. 자토는 1,200℃ 이상에서 굽는다. 그릇을 굽는 온도는 1,200~1,400℃로 그 범위가 넓음 대체로 1,300℃가 이상적인 온도.

일본에서는 도공, 도요, 도요지에서 도기장과 자기장을 구분해서 부르지 않고 도공으로 불렀으나 우리와 중국은 ‘도기장, 자기장’으로 명확하게 구분함. 당연히 도자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물레도, 가마도 다름.

진흙은 점력과 가소성이 있는 것을 진흙이라고 함.

분청사기 중에 질이 좋은 것은 청자와 유사하며, 일부 백자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 청자와 백자에 견주어 분청사기만 질이 떨어져서 이름 붙인 것은 아님. 옛 기록에는 분청사기라는 기록은 없음. 세종대에 분청사기를 만드는 곳이 139개소, 자기소로 불리지 사기소라는 말은 없음. 당시에는 자기라 불렀을 것으로 생각됨.

청자는 대부분 녹색인데 청자라 불린 이유는 고대에는 녹색과 청색을 아울러 청색이라 함.

처음 중국에서 청자가 만들어진 계기는 값비싸고 구하기 힘든 진짜 옥을 대신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는 의지에서 비롯

조선 초기는 고려 후기 상감청자의 여운을 이은 분청자가 널리 제작되던 시기, 분청자에서 백자로의 전환은 조선 성리학의 확산과 시기적으로 일치.

성종 연간 명에서 청료를 수입 고가의 청화백자를 중국에서 수입하기보다는 청화 안료를 수입하여 광주의 분원에서 자체 생산. 우리나라에는 코발트 매장량이 매우 적어서 구하기 힘듦. 발색이 뛰어난 상품의 코발트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비싸, 백자에 그림을 그릴 때는 한양의 도화서 화원이 분원까지 내려와 번조관의 감독 아래 그림을 그릴 정도.

17세기 중국은 청나라의 등장으로 정치적 혼란이 가중되면서 도자기를 유럽에 수출할 수 없게 됨. 중국의 자기가 유럽에 소개된 16세기 이후 중국 도자기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폭발적. 명에서 청으로 교체되던 시기, 청나라는 모든 대외 수출을 금지해버림. 중국의 경덕진이 불타고 자기 생산이 어려워지자, 유럽인들의 자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판로 개척이 시급해지면서 유럽인들의 새로운 자기 생산지로 일본이 급부상함. 18세기 중국은 다시 수출을 재개, 이후 오히려 중국이 일본식의 무늬를 흉내 낸 채색자기를 만들어 일본 자기의 가치가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 발생. 세계 도자기 시장의 변화 속에, 오랜 자기 생산의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던 조선의 역할은 전무함. 국가적 차원의 쇄국정책과 화려함을 꺼리던 사대부의 취향은 조선을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어버림.

오늘날 달항아리로 불리는 후덕하고 비대칭의 백자는 18세기 조선의 변화 속에서 탄생. 중국과 일본은 채색자기에 집중하는데 유독 조선만이 다른 길을 걷게 된 까닭은 청나라의 오랑캐 문화를 거부하고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데 치중하면서 소박하고 간결한 백자가 사랑을 받았기 때문. 일본이 상업화에 눈을 떠 유럽에 자기를 수출하여 막대한 부를 누리게 된 것과 비교하면 오늘날 조선의 자기가 갖는 미학적 평가는 상품적 가치보다는 자기가 갖는 독자적이며 내면적인 아름다움에 치중하여 이루어낸 결과.

분명한 것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것이다.

게을음의 소치로 국립중앙박물관의 백자전에 못 가보고 놓쳤으나 안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 청자나 백자전이 열리면 이 책을 한 번 더 열어보고 들고서 찬찬히 돌아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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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 윤용이지음/돌베개] 우리 문화를 선사시대부터 통시적으로 대변하는 중요한 연구대상 중 한 가지인 도자기에 대해서 국립중앙박물관 연구반 강의 내용을 토대로 펴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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