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안단테(The Sound of a Wild Snail Eating) –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지음/김병순옮김/돌베개
나는 책에 관해서는 편식을 하는 편이다.
신간은 잘 안 보고 또 역사, 인문,고전 책이 아니면 잘 안 보는 편이다. 물론 거기다 적어도 1년 정도는 묵혀서 본다. 역사, 인문 쪽의 책들 자체가 1-2년 묵는다고 역사가 달아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책들은 20년 만에 내 손에 들어온 책들도 많다. 또한 시간이 흐르면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검증을 받는 시간도 있고, 내용이 튼튼한 책들은 입소문을 타고 오르내리기 때문~ 하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책값이다. 신간은 할인이 안되기 때문이고, 1년차 정도가 되면 기본 30% 정도의 거품이 빠지기 때문이다.
서적의 유통 과정이 책값을 올리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신간이라는 족쇄가 풀리면 대폭 할인도 되고, 또 출판사에서 리퍼브 도서로 다시 풀리면 어떨 때는 새 책과 다름없는 책이 50% 가격으로 만나게 될 때도 있고, 어떤 논문집이나 월간지는 권당 천 원에 만나는 경우도 많다. 그리 그리 책값을 아끼고 아껴도 월 10만 원 내외의 책값도 부담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내 손에 온 달팽이 안단테는 선물 받은 책이다. 먼저 이야기하자면 선물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부담 없이 주고받기에 딱 좋은 책이긴 하다. 연령대와 성별, 나이와 직업, 투병과 간병, 선생님과 제자, 친구와 연인 사이 등 그 어떤 사이에도 주고받기 편안한 수필집이라 평가할만하다.
저자는 20여 년간 투병생활(후천성 미토콘드리아병)을 하면서 우연하게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제비꽃 화분에서 이 긴 이야기는 출발한다. 이를 작가는 [제비꽃 화분에서 일어난 뜻밖의 사건]이라는 제목으로 1부를 출발하여 총 6부로 나누어 각 부별로 나누어 이야기를 하는데 2부부터는 초록 왕국/병렬/문화생활/사랑과 신비/익숙한 공간의 제목으로 달팽이와의 인연, 삶, 생물학적 규정, 생활, 비밀스러운 삶과 사랑, 이별 순으로 이야기를 써나갔다.
20여 년의 투병 생활을 하면서 1년간의 달팽이와의 인연을 맺으면서 그는 아주 정확하고 정직한 시각으로 움직임과 생활을 관찰하여 자신의 투병 생활 중의 한줄기 빛으로 생각한 것 같다. 외롭고 힘들고 긴 터널과 같은 병상 생활을 견디게 해준 반려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야 할까…
살아가면서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늘 나는 주장한다. 건강한 사람 마저도 주말이나 퇴근 후 시간대를 활용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자신을 가꿀 수 있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건강한 인생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이즘인데 당연하게 투병하거나 외롭고 지친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집중하고 의지할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 저자는 제비꽃 화분에서 달팽이를 찾아낸 것이다. 웬만한 생물학자, 과학자를 뛰어넘는 관찰과 관련 서적의 탐구와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이 책을 완성시켰다. 달팽이 이빨이 2,640개이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사에 [이빨이 날카롭고, 작고,섬세하다]라고 적힌 내용까지 찾아내고 거기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우 많은 단어를 덧붙였다는 말까지 써넣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달팽이 치설(齒舌)은 천천히 앞으로 이동하는데 4주에서 6 주면 완전히 새로운 이빨로 대체되는데 여기서 죽을 때까지 오직 서른두 개의 이만으로 버텨야 하는 내 처지와 비교할 때 달팽이 이빨이 부럽다는 이야기를 하며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만들어낸 종보다 자연스레 이빨을 바꿀 수 있도록 진화한 종에 속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것처럼 보였다.
어떤 달팽이 종은 육식을 한다. 심지어 자기 종을 서로 잡아먹는 달팽이들도 있다.
이렇게 저자는 생물학적인 정의를 떠나서 과연 달팽이와 사람 중에 누가 더 생물학적(사회적, 동물적) 진화가 잘 된 종인가에 대한 의문도 제시한다. 신종플루 바이러스 하나에 지구촌 전체가 떠들썩거리면서 난리를 피웠던 몇 년 전을 기억해보면 느릿한 움직임으로 천적을 피하고(대부분 천적은 상대의 빠른 움직임을 간파하여 포착하고 냄새를 통해서 흔적을 찾아다닌다) 단순하게 분비물을 배출해서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고, 변온동물의 특징을 이용해 겨울잠 여름잠을 자는 이 동물이 완벽한 진화를 한 것은 아닐까? 인간은 어설픈 영하 몇 도의 추위에 얼어 죽고, 한여름 열대야 일주일을 피하기 위해 지구의 오존층을 날려버리는 프레온 에어컨을 발명해서 썼고, 몇 십 년 뒤면 고갈될 화석 연료를 경쟁적으로 펑펑 쓰고 있으며 그로 인해 부족한 연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자 명분도 실리도 없는 전쟁까지 일으켜서 많은 사람들의 목숨마저 파리 목숨처럼 생각하는 이 어지러운 세상으로의 진화는 누구를 위한 영장류의 최고봉에 사람이라는 종을 올려놓았을까… 내가 보기에는 인류가 진화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이야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이다.
책의 내용 중 달팽이와 진화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몇 가지 더하자면~
달팽이는 1가구 1주택이 아니라 1인 주택의 훌륭한 집까지 가지고 있는 훌륭한 개체이다.^^
달팽이는 먹을 것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날씨가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잠자리로 간다. 심장박동 수는 느려져서 1분에 몇 번 뛰지 않고 산소 흡입량은 활동할 때보다 50분의 1로 줄어든다. 날씨가 너무 뜨거우면 여름잠을 자고 날씨가 너무 추워지면 겨울잠을 잔다. 과학계가 우리처럼 병에 걸린 사람들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달팽이 걸음처럼 느리게 진행되는 동안은 그냥 휴면상태에 있다가 안전한 새 치료법이 발견되었을 때 비로소 깨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병든 사람들에게 왜 그런 놀라운 능력이 주어지지 않는 걸까? 어느 나라에 기근이 닥쳤을 때 모든 인구가 다시 곡식이 무르익는 철이 올 때까지 안전하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휴면 상태에 들어가 심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은 진화론적인 차원에서 보면 달팽이보다 나은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지구가 생긴지 46억 년 겉으로 보자면 지구의 주인은 인류인 것으로 보이지만, 속으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가 정답인 것 같다. 앞으로 수억 년이 흐른 다음에 지구의 주인이 바뀌어 원숭이나 달팽이가 지배하는 세상에 과거 역사를 이렇게 쓰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다…[인류는 서로 간의 의사소통을 위하여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많은 종족 중의 한 종이었다. 원숭이와 심지어 달팽이까지도 의사소통과 교류 협력을 하고 살았는데 인류는 자기네들만 말을 할 줄 아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며 그 좋은 의사소통의 도구를 두고도 전쟁과 착취를 일삼는 잘못된 조직 구조를 오랫동안 바꾸지 못하고 살았으며 계급 간과 계층 간의 양극화는 갈수록 벌어지는 형태로 역사를 이끌어 가려는 자와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대립과 반목을 일삼았다.]라고 적혀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맨 마지막의 저자의 글은 이 모든 책의 내용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는 글이라 따온다.
달팽이가 그저 묵묵히 미끄러지듯이 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그 자체가 즐거움이었고 깨달음이었으며 아름다움이었다. 달팽이의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나를 인간세계를 넘어선 더 큰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달팽이는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그 아주 작은 존재가 내 삶을 지탱해주었다.
아무튼 오래간만에 아침에 왼손으로 뽑아 들어 오른손으로 옮겨와 그날 저녁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 내려간 재미난 책이다.
참… 그리고 오래간만에 만나는 번역서인데 책을 보는 내내 번역서인 것을 모르고 읽을 정도로 번역이 부드럽고 정확하게(머 원작을 모르니.. 정확한 듯?) 저자의 의사를 전달해주는 것 같다. 물론 원고의 우수성, 번역 작가의 작품 재구성(한글로) 능력, 거기에다 편집자의 정성이 더해졌으리라… 어떤 책은 읽다가 보면 정말 열받아서(무슨 구글 번역기에 돌린 듯 문맥이 안 맞는…) 원서가 보고 싶은 책들도 있다… 이럴 땐 정말 열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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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안단테 -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지음/김병순옮김/돌베개]투병중 달팽이와 우연히 만난다. 타고난 느린 걸음걸이와 고독한 삶을 관찰, 분석, 연구하여 어둠의 시간 속에서 헤매던 저자를 더 큰 세계로 이끌었고 또 스승이 되고 삶을 지탱해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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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책의 첫장을 넘기면 ‘『Biophilia』에 바친다’라고 되어있다.
Biophilia를 사전적으로 옮겨 쓰자면 생명애(愛), 영영사전에는 an innate love for the natural world, supposed to be felt universally by humankind라고 적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