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
– 한국학중앙연구원 / 심재우,임민혁,이순구,한형주,박용만,이왕무,신명호 지음 / 돌베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왕실문화총서 발행 사업의 예산 지원을 받아 수행한 왕실의 일상 연구팀의 두 번째 결과물.
그 첫째는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이며 두 번째가 이 『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마지막이『조선의 세자로 살아가기』의 순.
세 권을 한 번에 구입하고 책을 읽어 나가는 순서는 출판 순서의 반대인 세자, 왕비, 왕 순으로 읽고 있다.
그래야 태어나고 배우자를 간택해서 만나고 왕으로 올라가는 순서이기 때문에….
물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가장 무게가 있는 왕을 먼저 다루는 것은 당연지사지만, 출간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뭐 내 맘대로 태어나고 결혼하고 왕이 되고의 순서로 책을 시리즈로 보고 있다.
물론 이 다음은 왕이 되는 혼례식, 즉위식, 천지제사 순으로 볼 예정.
그 시나리오속의 한 권.
조선왕조 내내 왕권 중심의 권력이동 중에 사료가 부족하여 자칫 상상력에, 혹은 단편적인 자료에 의해서 왜곡되고 비틀어질 수 있는 왕비의 법적 지위, 왕비의 간택 과정과 궁궐에서의 삶 그리고 왕비를 둘러싼 정치세력 등 여러 가지 측면을 복합적으로 고려하여 왕비의 삶과 역사상을 서술하고자 노력했다.
책의 순서는 왕비의 간택과 책봉/아이를 낳고 기르다/왕실 여인의 권력 참여, 수렴청정/왕실 여성의 독서와 글쓰기/왕비와 왕실의 외척/왕비와 궁중 여성들의 순서로 글을 구성했다.
한 권의 책으로 299페이지의 본문과 부록으로 왕비의 가계도, 왕비를 배출한 가문, 왕을 낳은 곳, 낳은 날, 참고문헌, 도판 목록 등을 알뜰하게 챙겨 넣어서 말 그대로 조선 왕비의 자료를 한 곳에 모아놓은 논문이라 보면 무난하다.
최근 드라마와 영화가 흥미 위주로 시청률과 관객 수로 평가를 받다가 보니 선정적이고 폭력적이며 근간을 무시하고 심하게 비틀어져 오로지 흥미로운 삶의 한 소재 혹은 대중적인 호기심만 자극하는(심지어 성적인 부분을 부각시켜… 왜 이 부분이 안 나오면 영화가 안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상업영화는 잘 안 보는 편이지만….) 곳에서 완성도를 찾기도 해서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조선시대 왕비가 갖는 법적 지위와 상징, 간택 과정과 일생(왕의 승하 이후를 포함한), 왕비를 중심으로 한 정치세력들의 행보와 왕비의 태도 등에 대한 사료들은 실록에도 제법 분량이 있으니 그 정확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학문적인 최소한의 성의를 가지고 접근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조선시대 내내 적장자의 왕위 계승은 단 7차례(문종, 단종, 연산군, 인종, 현종, 숙종, 순종)에 불과하다.
이 이야기는….
왕이 될 장자의 배우자인 왕비가 중전이 된 경우는 7/27 즉 25.9%로서 아주 낮은 확률이라는 것.
거기다 적장자로 왕위를 계승한 왕들은 위에서 보듯이 단명하거나 쿠데타로 전복이 되는 경우도 많았다.
과연 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거기다, 왕들이 어리고 질병으로 몸을 간수하지 못 했을 때, 왕비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자신의 몸에서 적장자를 생산하지 못하고 후궁 소생의 자식이 왕위를 승계하는 일이 생겨날 정도로 왕실의 낮은 출산율은 어떤 이해관계를 통해서 어떤 갈등을 유발했을까….
지난여름 나는 여러 가지 왕비와 관련된 역사 속 여러 사실들을 상상력에 의존하지 않고 사료와 연구를 통한 있는 그대로의 고증서를 한 권 만나서 두 달에 걸쳐서 찬찬히 또 찬찬히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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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에는 왕비는 오직 한 명이었고, 왕비가 있는 상태에서 들어온 여성은 후궁에 머물렀다. 이와 달리 고려 시대에는 처와 첩이 분명하게 나뉘어 있지 않았다. 왕의 후비가 여러 명 존재하는 다처의 형태였으며, 적실과 첩이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이러던 것이 조선시대에 남녀와 적서를 엄격히 구별하는 성리학 이데올로기가 도입되면서 왕실의 가족 질서도 새로 재편되었다.
– 원래 간택은 왕실에서 혼례를 치르기 위해 후보자들을 궐내 불러 모아 배우자를 뽑는 제도다. 간택은 전국에 알려진 신부 후보 신청을 받는 공개구혼 형식이었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정치적 계산에 의한 특채였다.
– 초간택 후보는 서른 명 내외, 재간택 후보는 다섯 명에서 일곱 명, 삼간택 후보는 세 명을 뽑고 그들 중에 한 명이 최종 선발. 조선 후기에는 왕비나 세자빈이 내정된 상태에서 형식적으로 간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며, 간택에 참여하는 여성은 대부분 권세가나 명문 가문의 딸.
– 중종의 비 단경왕후 신 씨는 특히 비극적인 삶을 삼. 중종반정에 성공하며 왕비의 자리에 올랐지만, 친정아버지 신수근이 연산군 대의 좌의정 출신으로 반정세력에 의해 죽임을 당함, 반정세력은 숙청한 딸이 왕의 비 즉 왕비 자리에 있는 것을 용납하지 못해 폐했음.
– 수렴청정은 6명의 왕후가 7명의 왕을 대신함, 세조비 정희왕후가 성종을 대신해서, 명종대에 중종비 문정왕후가, 선조대에 명종비 인순왕후가, 순조대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순조비 순원왕후는 헌종과 철종 2대에 걸쳐서 수렴청정한 유일한 왕비, 고종 즉위시 익종비 신정왕후가 최종.(성, 명, 선, 순, 헌, 철, 고) 짧게는 8개월에서부터 길게는 9년에 으르기까지
– 후궁 출신의 왕은 희빈 장 씨의 경종, 숙빈 최 씨의 영조, 수빈 박 씨의 순조, 희빈 장 씨는 후궁 출신으로 왕비의 자리까지 오른 여성, 조선 역사를 통틀어 궁녀 출신으로서는 비록 한때나마 왕비의 자리를 차지하였던 유일한 인물. 물론 나중에 추존되어 왕비가 된 후궁 생모는 더 많아짐.
– 조선 초기 혼속은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이었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서 혼례를 치르고 자식들이 장성할 때까지 처갓집에서 살았다. 당시 개혁 세력은 이런 관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 유교 이념에 입각하여 예치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남귀여가혼은 국가의 종법적 질서 체계 재편에 방해되는 모순된 양식. 그들은 이를 좌시하지 않고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정하려는 노력을 기울임
– 기존의 혼속을 과감하게 바꾸는 논거를 『주자가례』에서 찾아내어 뜯어고침,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오는 친영을 태종대의 양녕대군이 처음으로 거행 함. 양반들은 친영의 뒤를 따르는 어려움이 여간하지 않았으므로 달가워하지 않는 풍조가 만연
– 간택을 통해서 왕비를 맞이하는 방식은 태종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태종이 이속의 아들을 부마로 삼고자 한 것이 계기, 장님 중매쟁이를 넣어서 배필을 하려 했으나 거절. 이에 대노하여 이속의 집을 적몰하고 그 아들에게는 장가를 못 들도록 만든 다음, 사대부의 자녀들을 대궐 안으로 모아 놓고 친히 간택을 하는 것을 법식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 간택에서 탈락한 여성은 평생 수절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억측은 근거 없는 낭설.
– 중전의 간택 조건은 족성(문벌이 있는 가문), 여덕(부녀자의 덕성), 융례(가례가 융숭한 예이기에 신중해야 한다), 박의(널리 의논하여 가장 적합하다고 공감하는 여성을 선택) 한다는 원칙.
– 인조와 영조는 자신이 직접 간택에 참여
– 왕비의 임신 7개월에 산실청을 설치, 3제조는 도제조에 영의정, 제조에 예조판서, 부제조에 도승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음, 핵심 중의 핵심 관직자로 구성. 산실청 설치 후 형의 집행, 활 쏘기, 총 쏘기, 등의 군사훈련 중지. 빈궁이나 궁인 중에 임신한 사람을 위해 설치한 것은 호산청으로 주로 후궁들을 위한 것. 규모나 운영 경비 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 왜 남성의 종친이 아닌 여성인 대비가 청정의 주체가 되었을까? 정치적 훈련을 받지도 않았고, 개인의 성향에 따라 움직이는 결과 훗날 부정적 평가를 받으나… 왕위의 찬탈 가능성이 낮은 여자, 왕실 최고의 어른의 위치이자 가장 가까운 핏줄이 보호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 왕비의 딸은 공주, 후궁의 소생은 옹주, 세자빈의 소생은 군주, 세자의 후궁 소생은 현주, 즉 공주, 옹주, 군주, 현주는 이름뿐만 아니라 실제 예우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 조선시대 사람들은 가족 간에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한 기준을 『주자가례』의 ‘사마씨 거가잡의’라는 부분에서 찾음. ‘사마씨 거가잡의’란 ‘사마광이 지은 가정생활에서의 각종 예절’이라는 뜻.
– 왕비에게는 20여 명의 궁녀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 고종대에 중전의 궁녀가 공식적으로 100명, 이런 추세로 본다면 왕비가 거처하던 중전의 궁녀는 조선 전기에는 50명 이내, 조선 후기에는 100명 이내였을 것으로 추측
– 왕비는 자신의 노비인 궁녀를 주인의 자격으로 관리해야 하지만, 동시에 잠재적인 연적으로도 관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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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여주(女主)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한 큰 기둥형 국모도 있고, 파란만장하게 등장하였다가 한순간에 허무하게 폐비되는 안타까운 비빈들도 있고,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여 수렴의 뒤에서 왕과 국정을 쥐었다 놓았다 조정하던 수렴청정 왕비들과 온갖 당쟁과 사화의 핵심에서 배후 조정하던 야망을 가지고 치열한 정치판속에 정통으로 맞서며 철권을 휘두르는 왕비도 만날 수 있다.
어디서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던지 한 판 크게 휘저으면 역사에 남는다.
좋은 쪽이건 나쁜 쪽이건….
당시나 지금이나 왕비의 수렴청정은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듯….
지금의 통수권자들이 앞으로 몇천년 동안 어떻게 비쳐질지 조금만 고민한다면… 조금은 더 낳아질텐데.. 란 생각이 든다.
사관에 의해 기억되던 역사가, 포털과 SNS에 의해서 다양한 시각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아무리 역사와 관련된 통일된 책으로 경직된 사관을 주입시키려 한다고 해도 이미 다양성은 각각의 개인들의 개인주의적인 사회상과 맞물려 불가능해진 현실을 쥐고 되돌아가려는 사람들이 그저 안타까울뿐….
모든 생물들은 생존하기 적합한 환경으로 진화하기 마련이라고 한다.
집권기간 4-5년은 숨길 수 있으나…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한 史實들은 최소 1천년 이상은 가니….
이름값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사명감을 갖고 생각해야 할 일인지를 모두들 통감하고 뼈에 세겨야 할 것이다.
특히나 정치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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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비로 살아가기 - 신명호 외 6명 / 돌베개] 왕과 세자들만을 바라보며 생활한 단순한 왕비가 아닌 최고 권력자의 배우자 위치에 어떻게 올랐으며 그 위치에서 어떤 사회적, 정치적 인간적 삶을 살다 갔는지에 대한 고증들을 찾아서 조명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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