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주거의 공간사 – 전남일 지음 / 돌베개
한국 근현대 주거의 역사 세트 3권 중 먼저 구입한 1권이 『한국 주거의 공간사』 이 시리즈 나머지 두 권은 『한국 주거의 사회사』와 『한국 주거의 미시사』
3권 합하면 정가로 6만 원에 이르기에 일단 제일 먼저 궁금했던 한국 주거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구해 읽게 되었다.
나의 인생 선상에 있는 주거공간의 변화에 대해서 흘러가는 이야기를 한 번은 훑어보고 싶었다. 물론 내가 다 경험한 주거공간의 연장선상, 물론 내가 남산 시범아파트와 도곡동 타워펠리스에 들어가 살지는 못했지만, 그 주거의 공간史는 한 번은 훑어보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1960년대의 초가집과 기와집을 경험(민속촌에 놀러 가서 구경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살고 있는 친척 집에서 먹고 자고 하는 실거주) 했고, 개인주택이 보급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방 세 칸과 마당이 있는 작은 주택을 신축하여 초등학교생활을 시작했다.
공동주택의 보급과 발맞춰 아파트에 이주해 살다가 결혼하면서 신혼집은 다시 개인 주택의 단칸방에 세를 들어 생활하다 조그만 아파트를 분양받아 아파트 생활을 하다가 지금 여기에 이르고 있다.
머지않은 장래에 저~ 먼 시골의 고향으로 돌아가 날고 조그만 고향집을 수리해서 편안하고 안락한 은퇴 이후를 꿈꾸고 계획하기에 여러 가지로 궁금해하는 점들이 많다.
이미 고향집을 설계를 해주기로 약속해둔 사람도 있고, 여러 채널을 통해서 다양한 설계도들도 섭렵했고 나중에 그 유명한 설계자와 긴~시간 상담을 통해서 멋진 집을 지으리라는 원대한 꿈도 꾸고 있다. 집사람과 같이 몇몇 맘에 드는 전원주택을 알아보고 심지어 몇몇 집은 현장 답사도 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집 지을 돈과 시간이 없다는 게 함정인데….. ㅠ.ㅠ
뭐, 천천히 열심히 돈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는 손바닥만 한 시골집 한채 짓는 돈은 모일 것이고, 시간이야 뭐 법적으로 정한 나이가 넘으면 그 이후는 아주~~~ 프리하니까 걱정도 안 한다. ㅋㅋ
책으로 돌아갈까~
자생적 주거지인 전통 한옥 마을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아파트가 아니면 이상한데 사는 생각을 할 정도로 만연한 지금의 공동주택 아파트 공화국에 이르는 과정 속의 다양한 "주거의 공간" 즉 평면도의 변천사를 연구한 연구서적이다.
다양한 공동체의 목적(일제의 노동자 숙소, 개발 단계의 집단주택 등)에 의해 요구되고, 시행과정에서 다양한 시행착오와 거주자의 수요와 갈등, 상호 보완을 겪으며 변화한 우리의 동선과 시선 그리고 가족들의 변천이 함께하는 거주공간의 변천에 대해서 논한다.
덕분에 과거 우리 전통 한옥의 배치도, 한옥이 근대화하면서 변화한 다양한 설계도, 근현대사에 굴직한 이름을 남긴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한 다양한 개인 주택 도면들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어서 미래의 내 주택에 한 걸음 더 다가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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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마을은 주로 교통로에서 한발 물러나 한 모퉁이 돌아선 곳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고, 부득이 길가로 나앉는 경우는 누각으로 마을의 입구를 가려 길에서 마을이 바로 들여다보이지 않게 했다. 이러한 ‘물러남’의 관념은 거주지와 그 안의 주택에까지 이어져, 여러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단위 주택에 이르는 위계를 형성한다. 즉 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곧바로 보이지 않도록 구부러진 형태로 완성되어야 길하다고 여겼다.
– 1910년 8월 조선을 식민지화한 직후 일제는 수많은 법령을 발표하여 식민통치의 기틀을 잡았다. 그중 하나가 1912년 10월 7일 발표된 ‘시구개정’에 관한 훈령. 식민지 행정체제의 정비와 더불어 경성의 주거지는 급격한 변모. 일본 도쿄 시구개정의 예를 따른 경성 시구개정은 기존 한양의 도로망과는 무관하게 종로, 황금정(지금의 을지로), 본정(지금의 충무로)를 연결하는 남북도로의 계획 및 황금정 중심의 방사형 도로망 계획을 포함했다. 이는 몇몇 도로를 정비하는 수준이 아니라 경성의 도로망과 그 중심부를 완전히 재편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 시구개정안은 1921년부터는 경성도시계획연구회의 주도로 더 세밀한 밑그림이 그려졌다. 연구회의 계획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도시계획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도시계획에는 한국인이 집중 거주하는 시가지 약 48만 평을 구획정리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단독주택지뿐 아니라 단지형 공동주택지 또한 공급했다. 1941년 7월 주택공급 대책을 본격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조선주택영단이 설립되고, 동시에 주택건설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대규모 공동주택 건설의 물꼬를 텄다. 때마침 조선총독부는 1937년 토지구획정리사업실시 후 경성에 신시가지를 개발 중이었는데, 조선주택영단은 영등포 지구 등일보인 주거지에 우리나라 최초의 공동주택단지인 영단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주택조성사업이자 최초의 계획적단지조성공사는 경성의 도림(지금의 문래동), 번대방(지금의 대방, 신길동), 상도(지금의 상도동)의 세 단지에서 이루어졌다. 이 사업은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른 ‘일단의 주택지경영’ 사업이었다.
– 한국전쟁 후 주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1950년대 후반부터 대규모 공영단독주택지가 가발되었다. 1950년대 말과 1960년대까지 건설된 서울 불광동 재건주택(1956), 북가좌동 국민주택, 상도동 국민주택, 우이동 국민주택, 갈현동 국민주택 등이 대표적이다. 대규모 주거 단지의 효시는 1961년 구로동 주택단지다. 서울시는 1961년에 구로동의 군용지 10만 평을 무상으로 대여받아 국토개발 사업비와 시비 등을 투입해 공영주택 600동과 간이 주택 275동을 건립했다. 이 구로동 공영주택단지는 동일 지역에 대규모 주택을 세운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 주거의 건축에서 보편화, 표준화, 일반화의 개념은 개별적으로 지어지는 일반 민간 단독주택에도 적용되었다. 1970년도에 건설교통부는 대한건축사협회와 공동으로 개발한 서민용 표준주택 설계도를 발표, 보급했다. 총 10종의 표준설계도는 10~15평 소형 단독주택 건설을 위한 것으로 심각한 주택 부족을 겪던 상황에서 주로 영세민과 수재민을 위한 것이었다. 창과 문 등 주택건설 자재를 규격화하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소의 설비만 갖추도록 했으며, 설계도를 살 경우 건축 허가가 쉽게 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개이니 설계하거나 건축가에게 의뢰할 때보다 매우 저렴하게 집을 지을 수 있어 표준설계도가 많이 채택되었다.
– 일제 강점기에 새로운 주거유형으로 등장한 공동주택은 초기에는 최소 규모의 집단 숙소 성격이 강했다.
– 한국은 일제강점기와 전쟁, 경제개발 시기를 거치면서 주택의 대량생산과 근대적 주거의 보급, 생활수준의 향상이라는 목표가 강력한 기제로 작용했다. 또한 한국의 주거공간 변화에는 도시화라는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발휘했고, 이것이 공동주택을 확산시키고 지배적 유형으로 정착시킨 주요 원인이 되었다. 거주지 개발의 단위가 점점 거대화되고, 개발 위주의 정책적 영향하에 획일화된 주거유형을 양산해 온 것도 한국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이로부터 기인한 주거유형의 획일화 경향을 비판하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아파트로 대표되는 주거에 대한 관심만이 날로 증대되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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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주거의 공간사 – 전남일 지음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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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개항기부터 2000년대에 이르는 근현대화의 질풍노도의 시기에 한국의 주거의 변화 중 가족을 동반한 최소한의 삶의 기본 단위인 주거환경의 내외부, 시공간적 변화 중에서 건축사적인 부분을 추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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