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조선 후기의

문화적·사상적·정치경제적 발전 속에서 꽃핀

우리 산수화의 정점頂點, 진경산수화

웅혼한 풍광 사이 엿보이는

18세기 조선의 현실과 당대인의 이상

 

한양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사대부 선비들과 궁중의 주요한 인사들은 진경산수화의 주문, 감상, 수장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면서 진경산수화의 유행에 기여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진경산수화는 화단의 대표적인 선비화가들과 화원 화가들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제작되면서 18세기 화단의 성과를 대표하는 주요한 흐름이 되었다. 따라서 진경산수화를 살펴본다는 것은 곧 18세기의 다양한 회화적, 사상적, 문화적, 정치경제적 변화를 살펴보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 ‘책머리에’에서
18세기에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안정을 배경으로 이념과 명분을 강조하던 성리학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탈주자학적인 경향과 현실을 중시하는 현실주의가 형성되었고, 이러한 배경에서 새로운 문예적 경향과 사실적 회화가 나타났다. 민간에서는 전국 각지로의 여행이 유행하였고, 사대부 관료 사이에 환력의 기념물로서 지방을 재현한 진경산수화의 수요가 느는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서 진경산수화는 이전의 실경산수화에 비해 더욱 주요한 회화의 장르가 되었다.
-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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