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라는 덫에 걸린 현대 문명

글쓴이 이수민 | 작성일 2004.12.27 | 목록
분류 절판도서
발행일 2004년 4월 30일 | 면수 368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3,000원

2004-07-09 01:31

자본주의의 병폐를 지적하는 말들 가운데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병주고 약주고’다. 애초부터 병을 주지 않았다면 약도 필요가 없겠지만, 자본주의는 이 둘 모두를 준다. 그런데 약이란 게 무릇 어느 정도의 부작용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라 부작용을 치유하기 위해 또 다른 약이 필요하게 된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시작되면서 지갑에서 돈이 술술 새어나가고, 이런 메커니즘으로 자본주의는 배를 불린다. 발을 한번 들여놓으면 여기서 빠져나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자본주의 상품의 꽃인 자동차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무기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자동차는 일단 주인을 만나는 순간부터 주인을 배신하기 시작한다. 유지비, 교통체증, 주차난, 사고 위험 같은 직접적인 근심거리를 안겨주는 것은 물론, 개인의 건강 위협, 인류의 환경 문제, 나아가 석유를 둘러싼 국제 분쟁에도 공모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대답은 단순하고도 명쾌하다. 차를 버려라!

케이티 앨버트의 이 당돌한 책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똘똘하다. 자신의 주장에 대해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을 갖고 있음은 물론이요, 충실한 자료조사와 상식에 근거한 논리를 통해 이를 효과적으로 설득시키고 있다. 1부는 자동차의 문화사라고 불릴 수 있는데, 19세기 말에 처음 등장한 자동차가 어떻게 순식간에 인류가 총애하는 물건으로 등극했는지를 보여준다(자동차는 20세기 문명사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장본인이다). 2부는 자동차의 해악보고서인데, 구체적인 통계자료를 거론하여 자동차가 어떻게 삶의 질에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 밝혀준다. 3부는 자동차와 결별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들을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거론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제아무리 자동차 예찬론자라고 하더라도 가슴 한구석이 뜨끔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아니면 중간에 책을 덮었거나.

책과 관련하여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두 가지다. 책의 의도가 차의 해악에 집중하는 것이라 사람들이 왜 그토록 자동차에 매혹되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다소 미진하다는 생각인데, 특히 아쉬운 것은 자동차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운송 수단으로서만 여기는 태도다. 자동차가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만족감 중에는 일정한 공간을 독점한다는 생각도 포함된다. 자동차라는 공간은 마치 집과도 같아서 그 속에서는 뭐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선사한다. 이것이 이동성과 결합하면 만족감은 극대화된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드라이브다. 드라이브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곳으로 이동한다는 목적이 아니라 개인의 자유가 어디로든 끝없이 확장될 수 있다는 욕망의 충족이다. 이것과 관련하여 저자가 계속 강조하는 공동체 의식의 회복도 꼭 모든 사람에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저자는 자동차를 공동체 삶의 가치의 정 반대편에 두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지라도 자동차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게 해주기 때문에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또 하나는 보다 현실적인 문제다. 이것은 외국의 사례를 수입할 때 고려해야만 하는 상황이기도 한데, 한국에서 자동차 산업은 특수한 지위를 갖고 있다. 한국이 급속도로 교통대국이 된 것은 정책적으로 장려한 결과로, 자동차 산업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높고, 또 단일 산업으로는 자동차 산업만큼 고용효과가 탁월한 것도 없다. 산업 시스템 자체가 자동차 위주로 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인구밀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차량 소유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교통 문제는 개인의 결단과 정부의 지원은 물론 산업 시스템의 개혁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양상을 띤다. 자본주의의 위력은 이래서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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