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

글쓴이 이경아 | 작성일 2004.12.27 | 목록
서경식 지음 | 이목 옮김
발행일 2004년 9월 13일 | 면수 256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0,000원

2004-10-06 23:56

이 책은 책들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유년기, 청년기에 읽은 책들을 중심으로 그 독서 경험을 자신의 삶의 궤적 속에 위치시키면서 책과 인생이 다른 것이 아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이라면 그것이 김현이나 장정일의 그것과 같은 ‘행복한 책읽기’가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일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재일교포로 지식인으로서 저자는 자신의 언어적 민족적 문화적 정체성을 제기할 수 밖에 없고 독서는 그런 쓰라린 자의식이 문제가 되고 싸움을 벌이는 장소가 된다. 저자나 책에 대한 별다른 사전 지식 없이 이 책을 집어든 독자로서 놀라왔던 것은 충분히 감상적이 될 수 있는 사건들을 서술하면서도 저자가 유지하고 있는 객관적 거리, 조심스러움, 유머, 담담한 톤 등이었다. 사실 아무래도 일본이라는 우리에게는 낯선 문화적 배경이기에 그가 언급하는 책들이 많은 경우 전혀 들어본 적도 없는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책 페티쉬가 아닐까 싶을만큼 그 모든 책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보여주면서도, 현실과 책 사이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균형감각, 아니 양자 사이에 끊임없이 다리를 놓으려 하는 (아무리 비현실적인 아동용 책에서도 현실과의 끈을 놓치지 않고 루쉰과 같이 너무나 심각한 책에서도 한 조각의 꿈과 환상을 버리지 않는 것) 저자의 노력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각각의 챕터를 읽어보면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먹물’다운 꼼꼼하고 신중한 문체 속에서 과장하거나 오버하지 않으면서 마지막 대목에서는 반드시 한 방을 꽝 때려주고 마는데, 뭐랄까 글재주 덕이라기보다는 인생과 책에 대한 저자의 구력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드러내지 않고 감추려고 하는데 저절로 새어나오는 깊은 서정적 울림이랄까.

6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