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똥구슬 – 유금지음/박희병편역/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2.13 | 목록
유금 지음 | 박희병
발행일 2006년 11월 27일 | 면수 176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7,500원

여행에 대비해서 비축해두는 돌베개 출판사의 "우리고전 100선"시리즈 중 한 권이다.

한 손에 들어오는 A5(148X210mm) 사이즈에 쉬운 내용을 열차나 버스를 기다리거나, 차 안에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덕분에 기회 닿을 때 마다 구해두고 읽지 않고 서가에 두었다가 여행 갈 때 들고나가는 책이다.

스키 시즌이 시작되어 매주 긴 여행을 해야만 한다. 용평까지 새벽에 두 시간 반, 올 때는 주말 오후라서 기약 없는 3-4시간… 예전에는 이 시간을 멍 때리거나 스마트폰을 긁적대면서 그저 시간을 때우거나, 버스를 승차하기 전에 소주를 한 잔 캬~ 들이키고 난 다음에 푹~ 잠이 들어 서울로 향하곤 했었다.

덕분에 주위에서는 나에게 겨울이 오면 "반대 동안거"에 들어간다고들 한다.

남들은 겨우내 밀렸던 책들을 모아서 긴~ 긴 겨울밤 동안 찬찬히 열어보는 사람들에 비해서 역으로 바빠지는 겨울… 책을 보지 않는 동안 & 스키거에 들어간다는 것~~ ㅋㅋㅋ

아무튼 "올 시즌에는 겨울 영동고속도로에서, 용평 리조트에서 허무하게 버리는 시간을 좀 쪼개서 써볼까?" 라는 생각에 집을 나서며 서가에서 뽑아들고 용평으로 향했던 책이다.

물론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가방이 조금 무거우면 어떠랴… 산에 오르는 것도 아닌데… 하면서 챙겼던 책.

아무튼 오전에 혼자서 스키 락커 등록하고, 락커 찾아서 스키 꽂아두고, 시즌권 찾고 오전 스킹하고 점심 혼자 먹고 타워호텔 소파나 드래곤 플라자 소파에서 한 두어 시간 노닥거리며 책이나 보다 오면 되지? 하고 출발했는데…

슬로프에서 용평레이싱스쿨 교장샘을 만났다…. 용평 레이싱스쿨 교장샘이 스쿨 선생님들과 함께 시즌 전에 몸풀기를 하고 있는걸 보고 잽싸게 내려가 인사하고 혼자 왔는데 같이 놀아도 되냐고 물어서 허락을 받고 같이 오전 스키를 즐기고 점심 먹고 헤어져서 버스 정류장으로 왔는데….

아뿔싸….

성수기가 아니면 3시 서울행 버스가 없다는 것 아닌가…. 익히 알고 있던 내용들인데… 시즌 초반이라 착각했네….. ㅠ.ㅠ

"뭐 3시간이 비면 어때… 내겐 ‘유금 시집’이 있쟈나~~ " 하면서 타워콘도 데스크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분양사무실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아서 꺼내 읽은 책이다.

틈새를 잘 이용하면 책을 읽을 시간은 언제든지 나오는법… 이 맛에 버스 타고, 열차 타는 것을 더 선호하게 되나보다…

덕분에 콘도 소파에서, 서울 들어오는 버스 안에서 하루만에 편하게 읽은 책 되겠다.

책으로 돌아갈까나…

이 책은 『우리고전 100선』시리즈 중 첫 권이라 평소에 언젠간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책이다. 1권이니 뭔가 다르리라 생각했었고, 박희병 저자가 100선의 진두지휘자 정도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튼 유금 이 양반은 유득공의 작은 아버지로서 개인의 시집 『양환집(낭환집이라고도 불리는)』을 번역한 것이다. 양환은 말똥구슬이란 뜻이다.

최근 후손의 집에서 발견되어 학계에 소개 됨으로써 이 책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책이다. 덕분에 한글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이른다.(하지만 이 책이 2006년에 나왔으니 내게는 그 뒤로 7년이나 더 걸리긴 했지만…)

유득공의 작은아버지라고 하기는 하나 유금과 일곱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아주 친하게 지내던 인물이다. 연암 박지원의 일파의 한 사람이 점 그리고 서출이라는 점에서 통하기도 했다. 그를 주위에는 서얼 출신의 지식인들 또한 상당수 있었다.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희경, 이희명 형제, 서상수, 윤가기, 백동수 등등 당대에 이름을 떨친 서얼층 인물들이 연암을 종유(從遊)하거나 그 문하에 출입했던 사람들이다.

정권의 유지와 집권층의 권력 독식을 위해서 조선에만 유일하게 존재한 서얼차별제도(서양을 비롯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는 존재하지 않는)의 제도적 희생자의 한 명이기도 한 저자의 시집이다.

역자에 의하자면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이 특징들을 관찰하고 난 다음에 시들을 다시 한 번 더 읽을 것을 권하고 있다. 그 다섯 가지 포인트는 아래와 같다.

자욱한 안개와도 같은 우수가 시적 기저에 깔려있고

벗에 대한 유별난 집착이 보인다는 점

집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심정이 표나게 드러나 있다는 점.

집과 가족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여준다는 점

농사꾼, 어부,장사치,여종 등 미천한 사람들에 대한 ‘민중적’ 시선이 강하다는 점

마침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 버스에 오르는 시점이라… 버스 안에서 서울로 향하면서 한참을 졸다가 일어났더니 여전히 영동고속도로 상에서 미적거리고 있는 버스 안에서 책을 다시 꺼내어 한 번 더 읽었다.

처음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내용은 일기 같은 서정적인 신세 한탄의 세월 이야기 밖에 아니지 않는가?라는 의문 또한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편역자의 해설을 통해서 당시 그와 그 주변의 상황에 대해서 이해를 하고 나서 연암의 서문부터 차례로 읽어 나갔더니….

연암의 서문이 새로이 마음속에 비수가 되어 들어오면서, 그의 시가 다시 보이게 된다….

왜 이 시집을 양환집/말똥구슬이라 했는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진리는 오늘도 새삼스러운 내용이 아니다.

덕분에 연암은 아래와 같은 서문을 지어 유금에게 전해주어 책 머리를 만들어 오늘에 전한다.

말똥구리는 제가 굴리는 말똥을 사랑하므로 용의 여의주를 부러워하지 않고, 용 또한 자기에게 여의주가 있다 하여 말똥구리를 비웃지 않는 법일세.

자패(유금을 가르킨다)가 내 이야기를 듣고는 기뻐하며,

"말똥구슬이라는 말은 제 시에 어울리는 말이군요."

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의 시집을 ‘말똥구슬’이라 한 후

내게 서문을 부탁하였다. 나는 자패에게 이렇게 말했다….(후략)

그 두사람은 같은 설움을 공감하며 말똥구슬이라는 단어를 깊이 있게… 깊이 있게 공유했던 것이다.

팽생을 꼿꼿하게, 온화하면서도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양심적인 자세로 꼿꼿하게, 하지만 그 덕분에 더더욱 불우하게 세상을 살아간 한 인간의 일기와 같은 시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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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똥구슬 - 유금지음/박희병편역/돌베개] 팽생을 꼿꼿하게, 온화하면서도 불의와는 타협하지 않고 양심적인 자세로 꼿꼿하게, 하지만 그 덕분에 더더욱 불우하게 세상을 살아간 한 인간의 일기와 같은 시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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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올 시즌 동안거는 예년과는 좀 다른 동안거가 될 듯 하다~

9 + 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