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탁오 평전 – 저자 옌리에산, 주지엔구오 / 역자 홍승직 / 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6.5.24 | 목록
발행일 2005년 4월 15일 | 면수 592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28,000원

이탁오 평전 – 저자 옌리에산, 주지엔구오 / 역자 홍승직 / 돌베개

부제 :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중국 원제와 저자 이름은 『中國第一思想犯 : 李贄傳 – 鄢烈山/朱健國』

제목 그대로 『중국 제일 사상범 이지전』이다.

이름은 지, 탁오는 그의 호. 별호는 굉보, 탁오자, 이화상, 독옹, 백천거사로도 불리며, 인터넷에 나오는 몇 자의 요약에 보면

“명나라의 사상가. 유교적 권위에 맹종하지 않고 자아중심의 혁신사상을 제창하였다. 금욕주의·신분차별을 강요하는 예교(禮敎)를 부정하며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반(反)유교적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죽었다”

이렇게 단순하게 나오며, 보통 사람들은 그 정도라도 알고 있으면 다행…

그렇게 유명한 명언 몇 구절만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인 중국의 유명한 사상가인 이탁오의 고난으로 엮어진 삶을 열어본다.

인터넷에 나오는 이 내용이 국가적 공식 기록인 중국의 공식 기록문에 남겨진 그를 멀리했던 사람들의 그를 폄하하는 내용들이 편향적으로 전해진 것.

책은 부제에서 말하듯, 유교의 전제에 맞선 중국 사상사의 최대의 이단아 이탁오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생을 그려 왔는지를 정확하게 안내한다.

기존의 집권층의 위치를 초연하게 버리고(개 짖는 소리가 하기 싫어서) 중국 가식적인 지식인들이 허구(공맹을 그간 논한 사람들의 말만 곱씹는다고 표현)만 쫓아다닌다고 비판하여 뭇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단으로 몰려 비극적인 생을 마감(자살) 하는 일대기가 있다.

오늘 2016년 5월 23일은 2009년 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7주기.

이지가 찾고자 했던 참된 세상은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고도 남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평소 소신이 담긴 거침없는 발언과 행동 그리고 그의 다양한 저술을 통해서 사상의 자유를 추구한 이지의 지극히 일탈적인(악의를 품고 보는 사람들이 보기에) 행보에 이은 비극적 삶의 마감과 故 노무현 대통령의 7년 전의 비극적인 행보가 지극히도 일치한다.

마치 복사기에 복사를 한 것 같이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이지의 평전을 읽은 사람들 중 오직 나만의 생각일까… ㅠ.ㅠ

이지는 정교일치의 전제주의 국가에서 통치철학의 한 방편이던 공자에 대립하고 맹자의 반군주적 생각에 동의 했다. 물론 공자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공자만을 존중하는 것을 반대했던 것.

아울러 그분도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본주의를 맹신하며 참된 민주화와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사람을 반민주주의, 반자본주의의 굴레를 씌우다 못해 빨갱이와 시골의 어느 한 조그만 마을의 소박한 사저를 아방궁으로 몰아간 것이 뭐가 다른가…

이지가 세상을 뜬지 414년이 지났는데 중국이나 우리나 뭐가 달라졌나 싶다…

탁오를 죽인(죽이려 한) 기득권 세력이 그들의 기득권을 악용해서 용의주도하게 이단으로 몰아붙인 것도 모자라서 감옥에 있는 그를 죄인의 몸으로 고향으로 압송하여 그의 명예를 실추시켜 그에게 수치와 모욕을 안겨주자는 목적으로 고향으로 압송한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 결국 이지는 자신의 목을 칼로 그어 세상을 마감했다.

그로부터 407년이 지난 몇 년 전 봉하 마을에서도 사저를 아방궁이라 매도하고, 측근의 사족을 붙들어 매는 것도 모자라 잘라내고 싶었던지 다방면으로의 압박과 치욕적인 검찰 소환 조사 등을 통해서 그를 사지로 몰아붙였던 차기 집권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커녕 굴욕적인 모습을 담기에 급급했던 지난 77년 전이 자꾸 오버랩 된다.

이지가 세상을 버린 것이 이지의 명예를 지키고자 함이었던 것과 故 노무현 대통령이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이 어찌 이리 똑같았을까…

세상을 신문이나 뉴스만 보면 바보가 된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길이 보이지 않듯이…

옛 성현의 말씀을 그대로 되씹는 것을 이탁오가 우려했듯, 진정 옛사람을 알려면 평전을 열어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세상이 공짜로 눈에 들어오지 않듯이, 우리 미래도 마찬가지.

세속에 찌든 사람이 보기에는 시대의 이단아라고 하지만, 그들을 따르는 많은 평범한 현자들과 더불어 나는 세상을 많이 바꾸고자 노력했던 두 성현에 고개 숙여 깊이 감사하는 바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이지에 대한 깊은 욕심이 함께해야 뜨거운 가슴이 생기고 눈이 열려 편히 볼 수 있다. 이 평전을 읽지 않고 이지가 남긴 불세출의 명언들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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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상의 법도는 인위적 조치가 없고, 최상의 통치는 소리가 없으며, 최상의 교육은 말이 없음을 신조로 삼았을 뿐 아니라 주와 현의 장관에게도 이렇게 지도하고 요구했다.

– 이지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세어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학문을 믿지 않고, 도를 믿지 않고, 신선이니 부처니 하는 것을 믿지 않았다. 그래서 도사를 만나면 싫어했고, 승려를 만나도 싫어했으며, 도학선생을 만나면 더욱 싫어했다.

– 만약 반드시 공자로부터 모든 것을 취해야 한다면, 천고 이전의 공자가 없을 때는 끝내 사람이 될 수 없었단 말입니까?

– 진리 앞에서는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 하늘이 한 사람을 태어나게 했으면 당연히 그 사람의 쓰임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폐기하고, 모두가 공자에게 복종케 하고, 그를 따라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하는가?

– 그가 공격하려고 하는 공자는 춘추 시기의 공자가 아니라 ‘백가를 배척하고 오로지 유가의 학술만 존중’한 후대의 공자이다. 이지는 입만 열었다 하면 ‘자왈’ 운운하는 것을 가장 혐오했고 공맹의 도통을 잇는 것을 스스로의 사명으로 여기는 그런 부류의 사람을 특히 천시했다.

– 공자의 무리로 자처하는 그 사람들은 별 볼일 없는 범상한 사람들로 공자의 뜻을 초월하지 못한 것, 이것이 바로 맹자가 맹자로 그친 이유다.

– 말은 행실을 돌아보고, 행실은 말을 돌아본다.

– 이단의 가시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명실상부’한 이단이 되려는 것. 그가 말한 이 ‘이단’은 삭발하여 중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유가의 도통을 수호하는 자가 반드시 배척하려고 하는 ‘이단’을 말하는 것이었다. 단지 부처를 믿어서 중이 되려는 것만을 말하는 ‘이단’은 천하에 널리고 널려서 사대부들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

– 가장 중요한 잘못은 사회 지도자가 충심에서 우러나오지 않으면서 성인의 도를 크게 떠벌린 것에 있다. 충심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것은 바로 ‘자연지성’을 위반한 것이다.

– 사람의 경중은 재능을 따져야지 성별을 따져서는 안 된다고 그는 주장.

– 중국에서 애정 없는 혼인은 보편적인 상황이었다. 아들딸 낳아 기르는 부부관계에 만족하지 않는 남자는 일반적으로 기녀를 찾아가거나 첩을 들여, 선택한 기녀와 첩 중에서 ‘지음’을 찾곤 했다. 이지는 ‘지음’을 찾는 그만의 독특한 방법이 있었다. 바로 독서를 통해서 옛사람과 교류하는 것이었다.

– 성인도 무슨 특별히 다른 점이 없어요, 보통 사람들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성인은 단지 책임지지 못할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지요.

– 이지와 마테오 리치의 세 번의 만남은 그들 각자의 저작 중에 모두 기술되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한 시대의 빼어난 인물로, 뛰어난 지혜와 두려움 없는 헌신의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

– 정교일치로 ‘덕치’를 표방한 중국 사회에서는 역대로 도덕 표준지상주의를 강조했다. 겉보기에는 일리가 있을 것 같은 이 도덕표준지상주의(실제로는 순종하면 창성하고 거스르면 쇠망하며, 동조하면 받아주고 다르면 내치는 구실{가 얼마나 많은 인재를 압살했는지 모른다. 이지는 도덕적 계율로 사람을 억압하는 것을 강하게 반대했다.

– 조선 전쟁은 실제로는 만력 26년 겨울에 끝났다. 일본이 조선을 공격한 때로부터 도합 7년 동안 잃은 군사가 수십만이요 소모한 양식이 수백만이다. 그래도 중국 조정과 조선에는 승산이 없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함으로써 일본군이 내부의 문제로 말미암아 철군하여 귀국하는 도중, 중국과 조선의 군대가 그 기회를 틈타 추격함으로써 전쟁은 비로소 ‘승리’로 막을 내렸다.

– 그들이 이지를 원적지로 압송하려 한다는 소식이 갑자기 옥중에 전해졌다. 아마도 어떤 내각 대신이 그렇게 처분하도록 건의한 듯하다. 이지는 이 소문을 듣고 그들의 비열함에 격노했다. 그들은 단번에 이탁오를 때려죽임으로써 그가 만고의 이름을 성취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가 무죄라고 선고하는 것은 더더욱 원치 않았다. 그리하여 그가 일생 동안 걸어온 길과 반대되는 길을 선택하여, 귀향을 원치 않는 이 사람을 어떻게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함으로써 그에게 수치와 모욕을 안겨주자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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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의 저자는 당시의 통치자는 고분고분 충성을 다하는 충신만 필요했을 뿐 사상가는 필요하지 않았다고 보며, 사상가는 공자 하나면 충분하다고 본다.

이지의 경우는 봉건 전제주의 문화에 가해진 거센 충격으로 보나, 이전 사례가 없었던 비판정신으로 보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활력을 잃지 않은 몇몇 그의 깊은 관점으로 보면 제갈량, 소동파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학술성의 원칙을 지키며, 역사소설, 전기, 연의와는 명확한 경계를 두며 근거 있는 사료를 통해 이지의 긍정적인 측면에 더욱 중점을 두어 봉건 전제를 반대한 투사이자 사상 해방의 선구자로서의 이지의 가치를 발굴하고자 했다고 한다.

이탁오 평전 – 저자 옌리에산, 주지엔구오 / 역자 홍승직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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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 방문학자로 1년 유학 갔던 저자가 사스로 숙소에 묶인 시점 출판사로부터 번역 의뢰를 받아 ‘사상가에 대한 존경은 그 사상이 먼지를 털고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이라는 원저자의 말에 동감하여 번역한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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