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적 상상
계몽주의에서 포스트휴머니즘까지
| 원제 | The Neoliberal Imagination |
|---|---|
| 원서 부제 | Politics, Aesthetics, and Economics in the Evolution of Hyper-Industrial Capitalism |
| 발행일 | 2026년 2월 23일 |
| ISBN | 9791194442851 93300 |
| 면수 | 442쪽 |
| 판형 | 신국판 152x225mm, 반양장 |
| 가격 | 33,000원 |
■ 담론, 표상, 미학의 집합체로서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적 상상’의 계보학을 구축하다
한때 신자유주의는 모든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공공서비스가 민영화될 때도, 노동자들이 파편화되고 비정규직이 늘어날 때도, 무한경쟁에 시달려 번아웃이 일상화될 때도 이게 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했다. 이제는 누구도 신자유주의가 문제라고, 신자유주의를 막아내자고 말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는 “다양한 사태에 대한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될 수 있을 만큼 단일한 성격을 가진 실체가 아니라 종적 다양성과 내적 이질성을 가지고 있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무언가이고, 온갖 것의 원인으로 겨냥되는 과녁의 한 지점이 아니라 도처에 퍼져 있어서 비판의 대상으로 수렴되지 못하는 무언가이며, 모든 현상의 배후에 음험하게 도사리고 있는 낯설고 생경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자신과 한 몸이 되어 있어서 너무나 일상적이고 친숙한 무언가”(‘옮긴이의 말’ 중에서)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상상』은 정치철학과 미학적-기술적 관점에서 신자유주의를 해부하는 책이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상상’의 차원에서 신자유주의를 다시 분석한다. 여기서 말하는 상상이란 담론, 표상, 그리고 미학의 복합체로서, 기술적 양식을 통해 매개되고 생태학적 사건들과 함께 변형되는 인간 경험의 총체이다. 그것은 세계에 대한 관점이나 전망인 동시에, 그러한 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내며 살아가고 있는 세계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 책이 다루는 신자유주의적 상상 혹은 세계상의 가장 문제적인 점은, 그것이 계속 자신의 형태를 변형하며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신자유주의적 사고가 너무 익숙해져서 그것이 정상적인, 유일한 삶의 방식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 전에는 문제가 없었나? 자유주의의 원류로 지목되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은 신의 손길에 의해 공감이라는 미적 감각이 인간에게 분배되었다고 말한다. 이 입장에서는 경제와 사회의 세속적 질서가 인간이라는 존재의 궁극적 목표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로스 아비넷은 1970년대 일어난 신자유주의적 혁명이 이들 요소 사이를 파고들어, 자유시장의 기적이 외부의 도덕적 전제가 필요하지 않고, 계약의 공정성만으로 평화와 번영을 보장했다고 지적한다. 유일한 원칙은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왜곡으로부터 시장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태동하고 발전하는 경로를 니체가 말한 계보학을 통해 구성한다. 이런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서구 근대성의 진화가 매끄러운 변증법적 이행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세계관을 탄생시킨 핵심적인 모순과 갈등, 공모의 지도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 1부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바탕이라 할 수 있는 자유주의와 계몽주의에서 시작해, 19세기와 20세기의 주요한 사건, 예컨대 1‧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를 거치며 어떻게 신자유주의라는 상상의 토대가 만들어졌는지 추적하고 분석한다.
2부에서는 198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적 상상이 형성된 쟁점들, 네트워크화된 소통, 인간 생명의 생명기술적 조작, 글로벌 문화의 확산, 지구적 생태 위기의 도래에 나타난 개인주의의 미적 형상화를 살펴보면서, 신자유주의적 상상이 네오-파시스트, 초민족주의, 근본주의 운동 같은 반작용을 일으켰는지 고찰한다.
■ ‘대안이 없다’의 시대, ‘대안의 가능성’을 찾아야 하는 현실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대안적 상상은 가능한가?
이 책의 2부는 인류세라는 위기에 맞서 신자유주의가 특정한 종류의 기술적 메시아주의로 출현한 과정에 주목하면서 시작한다. 인류세라는 개념은 격렬한 이념 투쟁의 장인데, 기술자본주의의 환경적 영향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신자유주의 세계관을 이루는 모델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하는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인류 역사는 끊임없는 기술적 극복의 역사였으므로, 기술 발전의 ‘대가속’을 통해 지구의 미래를 안전하게 지킬 거대 기술에 대한 민간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에 따르면 이는 지구 전체를 하나의 우주선으로 조망하는 글로벌 미학으로 발전하는데, 그에 입장에서 이는 지구온난화‧과잉 착취‧환경 파괴 등의 고질적 문제를 단순히 미래의 기술이 해결할 것으로 상정하는 기술적 메시아주의에 다름 아니다. 결국 인류세 개념은 생태‧글로벌 민주주의라는 장기적 목표와, 소유적 개인주의‧대량 소비‧극단적 자본화‧기술 혁신이 양립 가능함을 표상하는 미적-담론적 복합체가 되며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통합된다. 이처럼 신자유주의는 다가오는 위기마저 자기-극복을 위한 인류 능력의 시험대로 미적으로 구성함으로써 스스로를 정당화한다.
이 책은 저자인 로스 아비넷은 신자유주의 바깥에서 대안적 상상을 찾을 가능성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저자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적 전통에 자신을 위치시키면서 프레드릭 제임슨,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티머시 모턴 같은 연구자들의 작업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며 자신의 입장을 펼쳐 나간다. 그 과정에서 니체, 마르크스, 하이데거, 아도르노, 하비, 보드리야르 등 주요한 근현대 사상가들의 지적 유산을 활용하며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발전, 심화되는 문제들을 살펴보며 대안적 상상계의 가능성을 가늠한다.
추천사를 쓴 박승일과 배세진 연구자가 밝혔듯, 이 책은 곱씹고 질문하며 읽어야 해서 쉽지 않지만 신자유주의와 미학적-기술적 논의의 관계를 파악하는 데 탁월하다.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경제학적 독트린이나 통치합리성에 불과하다면, 정치철학이나 미학적-기술적 논의는 불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상상, 그러니까 세계 자체가 되어 우리 삶을 지배한다.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를 다시 성찰하고 다른 상상을 모색하려는 교양대중에게 권한다.
■ 책 속에서
하이에크, 프리드먼 그리고 몽펠르랭 소사이어티의 추종자들이 선언한 것처럼 자유시장의 기적은 외부의 도덕적 전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었고, 계약의 공정성만으로도 평화와 번영 그리고 계몽된 자기 이익의 원칙을 통한 세계의 통치를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일한 신성불가침의 원칙은 정부의 개입으로 인한 왜곡으로부터 시장의 자유가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과도한 복지 지출, 경제 계획, 높은 세금, 그리고 최악으로는 도덕적 기준을 시장에 개입하는 이유로 활용하는 것 등으로부터 말이다. _10쪽, ‘한국어판 서문’ 중에서
자본과 미학은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 있어서, 문화의 미디어-기술적 상연을 참조하지 않고 글로벌 경제를 연구하는 것은 상품 형태 자체의 심적 재생산에 관하여 무언가 근본적인 것을 놓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포스트모던 자본주의’는 국가와 유력한 경제 기업이 획책해온 돈, 미학, 욕망 간의 상호 꼬드김이며, 모든 것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삶의 물질적 한계가 시뮬레이션의 영역 속으로 녹아 사라져버리는 세계관으로 개인들을 끊임없이 재차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경제적 우발성을 매개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이데올로기 내지는 세계관이라는 발상은 신자유주의적 상상에 대한 내 설명의 출발점이다. _ 28쪽, ‘서론_ 신자유주의적 상상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따라서 아도르노가 보기에 신자유주의 세계관이 탄생한 배경에 자리한 이례적인 폭력을 망각하게 만드는 것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 체제이다. 사회적 삶의 상징적 질서를 연출하는 이 체제는 본질적으로 기억상실증적이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유포시키는 형식-미적 ‘유형’들은 개인의 욕망을 끊임없이 다양화되는 소비의 영역으로 흘려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불안정한 열망의 장을 나타낸다. 이 과정에서 ‘망각’은 필수적인데, 소비하고자 하는 자아의 바람을 되살리려면 언제나 시간과 성찰을 무효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양심에 과거의 짐을 짊어진 채로는 행복한 소비자가 될 수 없기에, 전후 등장한 문화산업은 미래의 삶을 상상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계관에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 _184~185쪽, ‘4. 소비, 개인주의, 대중사회(1950~1979)’ 중에서
그러나 동시에 공공 영역에서 생태주의가 정치적 목소리를 얻게 되며 자유방임적 개인주의가 표현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인류 문화사에 대한 계보학적 접근의 본질적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떤 확립된 규범 질서의 존속이 가장 불리한 상황에서도 그 질서를 옹호하는 가장 강력한 성자와 사도들을 매개로 스스로를 변형해낼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구와 인간이 구축한 기술 시스템 간의 관계를 정량화하려는 이론적 틀로서 인류세의 출현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략적 재-구성/개혁을 촉발했다. 이러한 형상화는 매우 위험한 도박과도 같은데,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①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는 기술적 극복의 역사이며, ② 이러한 극복은 서유럽의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도래와 전후 기술 발전의 ‘대가속’으로 인해 급격히 강화되었고, ③ ‘중공업’ 체제의 부정적 환경 영향은 지구의 미래를 안전하게 지킬 거대 기술에 대한 민간 주도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역전시킬 수 있다. _290쪽, ‘6. 세계화 그리고 인류세의 미학’ 중에서
그런 의미에서 아우슈비츠라는 사건은 니체가 『즐거운 학문』에서 묘사한 신의 죽음과 유사한 면이 있다. 광인이 신의 죽음을 선언하러 나타났을 때 시장 광장을 서성이고 있던 무신론자들은 인간 삶에 한계도, 선악도, 어떤 윤리적 지평도 없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전망 앞에서 공포에 질린다. 그러나 광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신앙을 잃었기 때문에 자행되었다고 하는, 신의 죽음이라는 사건은 단순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 무시무시한 사건은 “아직 오는 중이고, 여전히 배회하고 있으며, 아직 사람들의 귀에 닿지 않았다.” 신의 죽음은 모든 창조의 근본 원리인 신을 상실하는 데서 오는 문화적·종교적·윤리적 위기에 우리 자신을 노출시킬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일을 직시하고, 신을 죽임으로써 요구되는 가치 전도 작업을 줄기차게 해나가야 한다. 아도르노가 지적한 것처럼 아우슈비츠라는 사건의 막대함 역시 유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행해진 체계적이고 산업화된 학살은 전례가 없는 일이며, 단기적으로는 유럽의 전쟁터에서 삶의 기본 조건을 회복하고 세계 경제 활동의 조건을 복원하기 위한 공동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대응을 필요로 한다. _375쪽, ‘8. 권력, 주권, 그리고 억압된 것의 귀환’ 중에서
이러한 신자유주의를 새삼스럽게 지목하고 폭로하는 것은 어떠한 설명적 효과도, 어떠한 실천적 효과도 내지 못한다. 이미 신자유주의의 힘은 말로 포획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신자유주의는 능력과 수행실적을 바탕으로 보상 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믿음이나, 삶을 일종의 커리어 구축 과정으로 여기며 미래를 기획해나가는 전략에 앞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는 마치 본성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며 이것 이외의 다른 삶은 상상조차 어렵게 되어버렸다. 이처럼 너무나도 정상적이면서 강력한 것이 된 신자유주의는 온갖 현상들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이며, 설명항이라기보다는 설명되어야 할 사태에 가깝다. 어떻게 해서 신자유주의는 자명한 삶의 양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_423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 추천사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단지 이미지를 복제하는 수준을 넘어, 가상-미학적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의 주의와 기억, 나아가 미래를 향한 상상력의 회로 자체를 재설계하고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상상’은, 그런즉 관념이 아니라 실재다. 그것은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기술적 미래주의로 재조직하고 우리의 인생을 부단한 자기 극복의 과정으로 몰아넣는 초산업주의의 미학적 지배 체제다. 아날로그 미디어 기술이 이미지 과잉으로 우리를 방향 상실에 빠뜨렸다면, 디지털 네트워크는 우리의 노에시스적 시간을 탐욕스럽게 소진하면서 삶의 무한한 가능성을 계산 가능한 확률 안으로 가두어버린다. (…)
이 책의 이론적 밀도는 하나의 선택이며, 동시에 저항이다. 천천히 곱씹고 질문하고 저자와 겨루면서 복잡한 분석의 층위를 따라갈 때, 우리는 비로소 자본-기술-미학이 재구성한 이 현실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작동 원리를 읽어낼 때, 그것을 다시 쓸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마주하게 된다. 상상은 다른 상상으로만 극복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다른 상상을 상상해보길.
— 박승일(『기계, 권력, 사회』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않는다』 저자, 기술문화연구자, 캣츠랩 소장)
『신자유주의적 상상』에서 저자 로스 아비넷은 신자유주의 전체를 일이관지하는 바를 ‘상상’이라는 관념으로 설정함으로써 신자유주의의 계보학을 수행한다. 신자유주의에 관한 지금까지의 논의가 각 분과학문 또는 방법론에 갇혀 신자유주의의 파노라마를 제시하는데 실패했다면, 이 저서에서 아비넷은 놀랍게도 그리고 설득력 있게도 계몽주의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포스트휴머니즘 논의에 당도하면서 상상이라는 관념을 중핵으로 신자유주의의 계보를 재구성한다. 아비넷은 정치철학에서부터 역사학을 거쳐 미학과 기술철학에 이르기까지, 경탄스러운 박학을 수단으로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범위를 기존의 논의보다 훨씬 더 길게 잡으며 그 영향력의 범위 또한 훨씬 더 넓게 잡는다. 단순한 경제학적 독트린을 넘어, 단순한 자유지상주의적 정치철학을 넘어, 신자유주의는 우리의 상상 그 자체를, 결국 ‘세계 그 자체’를 재구성하려는 미학적-기술적 기획이다. 아비넷은 이 테제를 각 분야의 관련 논의들을 정교한 발걸음으로 종횡무진 가로지르며 설득력 있게 입증한다.
이 저서는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오늘날, 인문사회과학계가 그리고 교양대중이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노작일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황혼’에 이를 전체적으로 정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규정할 수 있게 해주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 배세진(『금붕어의 철학』 저자, 정치철학자)
추천사
한국어판 서문
서론_ 신자유주의적 상상이란 무엇인가?
1부 자유주의와 근대성
1. 자유주의, 계몽, 그리고 부르주아 사회
2. 자본주의와 세계의 진보(1840~1918)
3. 자본 그리고 ‘파괴의 자연사’(1918~1948)
4. 소비, 개인주의, 대중사회(1950~1979)
5. 신자유주의와 탈근대적 순간(1980~1995)
2부 신자유주의적 변형들
6. 세계화 그리고 인류세의 미학
7. 포스트휴머니즘과 가속주의
8. 권력, 주권, 그리고 억압된 것의 귀환
결론_ 대안적 상상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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