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

개념사로 읽는 근대의 일상과 문학

김지영 지음

발행일 2016년 3월 11일
ISBN 9788971997123 93800
면수 295쪽
판형 신국판 152x225mm, 반양장
가격 17,000원
분류 역사·인물 단행본
수상∙선정 2017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도서 학술 부문
한 줄 소개
사회의 규율과 개인의 욕망이 뒤얽힌 근대의 '일상', 그 자명해 보이는 '일상'의 개념들을 낯설게 바라보기
주요 내용

연애청춘탐정괴기명랑의 개념사로 읽는 근대

『매혹의 근대, 일상의 모험―개념사로 읽는 근대의 일상과 문학』은 개념사와 풍속ㆍ문화론적 문학 연구를 결합하여, 일상 개념사 연구의 새로운 영역을 이론적으로 마련하고 그 구체적인 사례를 탐구한 책이다. 일상 개념사라는 연구 영역을 정초하기 위한 논리와 체제 및 방법론을 제시하고, ‘연애’, ‘청춘’, ‘탐정’, ‘괴기’, ‘명랑’이라는 일상 개념의 표상을 통해 근대의 삶과 생활의 기저에 있는 정치적이고 문화적인 힘들의 다채로운 역학을 탐사한다.

 

일상 개념사의 방법을 처음으로 제시, 규율과 욕망이 뒤얽힌 일상을 면밀하게 독해

이 책의 저자인 소장학자 김지영은 ‘일상’을 개념사의 방법론으로 면밀하게 독해하는 학문적 모험을 시도한다. 한국에서 일상은 연구의 대상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서구 학계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 신문화사라고 불리는 조류, 미셸 푸코 등의 선구적인 연구가 있기 전에 일상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는 왕조와 정치 체제가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인간은 평범하고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자신의 역사를 써나간다. 일상은 사회의 규율과 개인의 욕망이 뒤얽혀 있는 역설의 공간이다. 친숙하기 때문에 자명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일상은 우리를 강하게 구속하고 있는 한편,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전복의 욕망이 꿈틀대기에 불온하다.

 

근대의 일상을 분석하는 데 개념사가 유력할 수 있는 이유

개념사란 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어 개념의 형성과 부침을 현실과의 상호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역사 방법론이다. 개념은 시대 현실을 표상하는 동시에, 현실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개념사가 언어와 현실 간의 상호 역학을 고찰하는 데 탁월한 이유이다. 가령, ‘연애’는 일본을 통해 유입된 개념인데, 일제 식민지 시대에 쓰이던 ‘연애’는 당대의 사랑의 담론을 표상하기도 하지만, 서구적 근대에 대한 식민지 엘리트 청년들의 열망이 담긴 매우 정치적인 전략이기도 했다. 즉, 개념은 현실을 표상할 뿐 아니라 직접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일상은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인간 주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그 주체에 의해 만들어진다. 개념사의 방법론은 이러한 일상을 “개념의 차원에서 분절”하여 자세히 분석하고, 이를 “근대적 앎의 형성 과정” 속에서 객관화시킨다. 그리고 개념과 현실이 맺고 있는 상호 관계를 검토하여 개념의 “사회ㆍ정치적 실천”(59쪽)의 의미까지 밝혀낸다. 근대의 일상을 분석하는 데 개념사가 유력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연애’, 구체적 경험이 아닌 추상적 사고로 존재하다

‘연애’는 일본의 번역어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고, 한국에는 1910년대 신소설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가들이 본격적으로 연애의 개념을 차용한 것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시원이라고 평가받는 춘원 이광수나 횡보 염상섭 모두 문명의 상징으로 자유연애를 주창했다. 남녀의 연애는 근대적 개인의 내면이 마련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 일본을 거쳐 수용된 ‘연애’는 근대문학의 거장들에게 인준을 받고 ‘신성한’ 가치로 떠받들어졌다. 그런데 ‘연애’라는 개념은 근대인의 내면뿐 아니라 성性과 육체와 관련될 수밖에 없는데, 이 점은 조선 사람들에게 매우 낯선 것이었다.

1920년대 전반까지 근대소설의 일반적 서사 유형 중 하나는 조혼한 남성 주인공이 자신의 진보한 사상을 이해해주는 여성을 만나 전처와 이혼하려고 하다가 부모와 갈등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유연애의 가치, 사랑과 연애의 발견을 부조浮彫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부모로 상징되는 전통과 대결하는 세대 투쟁의 이야기에 가깝다. 실제로 연애라는 개념은 현실에 활착하지 못하고 추상적 이념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근대의 연애소설들에서 엽기적 죽음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되어 있다는 게 김지영의 통찰력 있는 분석이다. 남녀 간의 사랑이 삶의 경험과 현실 속에서 발아하기보다는 추상적인 사고 수준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핍진한 사랑의 이야기는 전개될 수 없었다. 연애가 현실이기보다는 이상에 가까웠기에 작가나 등장인물은 곡진한 사랑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당시 엘리트 청년들은 연애를 글로 배웠다. 또는 연애라는 개념은 현실의 조건이 갖추어지기 전에 이 땅에 들어왔다. 저자 김지영이 개념사의 방법론으로 밝힌 ‘연애’의 의미다.

 

청춘’, 해방과 절망 사이에서 방황하다

개인의 욕망과 감각, 열정이 근대의 가치로 부상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여 젊음이 ‘청춘’의 이름으로 공공화되었다. ‘청년’이 사회의 주역으로서의 책임의식과 주로 결부되었다면 ‘청춘’은 자유, 해방, 열정 등의 낭만적 의미들과 관련을 맺었다. 여기까지 ‘청춘’의 의미는 젊음의 표상답게 진보적이다. 그런데 이내 ‘청춘’에 부정적이고 퇴행적인 이미지가 덧붙여진다. ‘청춘’을 ‘눈물’과 ‘슬픔’, ‘고뇌’ 등의 수사와 연관 짓는다든지, 방탕과 비행을 저지르는 미숙한 존재로 지도와 교육의 대상으로 규정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는 ‘청춘’이 해방의 의미 못지않게 그 자체로 불안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낭만과 해방의 감각은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기에, 이를 선용할 만한 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청춘’은 그것이 구가하는 자유만큼이나 불안한 것이었다. 젊음이 이상적인 가치를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현실의 부박한 조건, 즉 세계 경제공황으로 인한 취업난, 식민 정책으로 인한 민족 차별 등의 문제는 ‘청춘’에 환멸과 냉소, 절망의 이미지를 덧씌웠다. 당대의 영화나 통속소설 속의 청춘 서사들이 과다하게 감상感傷적이고 비극적이었던 것은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괴기 탐정소설은 식민지 조선의 울트라모던의 결과

일제 시대에 탐정소설이 인기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김지영이 주목하는 것은 탐정소설이 식민지 조선의 근대성과 관련되어 있는 부분이다. 탐정소설이 열광적으로 수용되고 창작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과학적 지식과 논리라는 근대 이성과 합리성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다. 탐정소설에 등장하는 첨단의 과학 지식과 수수께끼 같은 범죄를 풀어가는 ‘탐정’의 추리는 근대의 계몽 이념과 잘 어울렸다. 계몽의 담론이 탐정소설이 활발히 창작되고 폭넓게 수용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창작 탐정소설들은 정작 추리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야기 과정을 통해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서술자의 해설과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직접 밝혀졌다. 김지영은 추리 서사에서 비약과 생략이라는 중대한 결함이 생긴 근본적 원인을 식민지 조선의 과학 지식의 낮은 수준, 열악한 교육 현실이라는 외적 조건과 연계한다. 정통 탐정소설이 아닌 엽기적이고 선정적인 사건이 전경화되는 괴기 탐정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상황도 그러한 식민지 근대의 한계와 관련된다. 과학적 논리와 서사적 추리가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이야기 공간에 엽기적 사건들이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저자 김지영은 이러한 괴기 탐정소설 장르 현상을 일제의 교육 통제, 기능 위주의 과학 교육, 식민지적 상업자본주의 등 “식민지 조선의 특수한 사회적 여건들이 종합된 ‘울트라모던’의 결과”(204쪽)로 해석한다.

 

명랑’, 다층적이고 착종된 근대를 드러내다

‘명랑’은 서사 장르명(명랑소설, 명랑만화 등)을 가리키기도 하는데, 한국의 특수한 역사와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명랑’이 식민 당국의 정책에 의해 적극적으로 호명되었다는 점은 자못 문제적이다. 1940년대에 식민 당국은 사회 분위기를 ‘정화’시킨다는 명분하에 ‘명랑사회 건설’ 등의 표어를 활용하여 체제를 선전하고 식민지 조선을 규율했다. 파시즘이 극에 달했던 시기에 ‘명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명랑소설과 ‘유모어’ 소설이 이 시기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이 장르가 그것의 외연과는 다르게 체제 순응과 국가주의적 규율이라는 내포를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해방 이후에는 신사회의 건설이라는 명분과 상업자본주의의 영향 아래 ‘명랑’ 장르가 확대 발전하는데, 주목해야 할 것은 ‘명랑’ 코드가 선정적이고 저급한 성적 코드와 결합하게 되는 국면이다. 1960년대 이후 명랑소설이나 명랑만화는 상업주의와 결탁하여 성적 코드가 난무하는 하위문화와 접속한다. 한편 한국 사회는 군사 쿠데타로 인해 다시금 국가주의 사회로 완전히 편입되는데, 지배 체제는 ‘명랑’이라는 표어로써 국가주의 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를 은폐하고자 했다. 즉, ‘명랑’ 코드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혼종적인 개념으로 거듭난다. 국가주의적 규율의 기능과 자유주의적 삶의 방식, 그리고 선정적인 하위문화의 의미를 가로지르는 것이다. 저자 김지영은 ‘명랑’ 개념을 통해 한국의 다층적이고 착종된 근대, 즉 문제적 시대를 진단한다.

차례

책을 펴내며 — ‘일상’을 가로지르는 사유의 모험

1부 일상 개념 연구를 위한 시론

1. 신문화사, 개념사, 그리고 일상 공간
신문화사의 대두와 일상에 대한 관심
개념사와 일상은 어떻게 만나는가

2. 개념사로부터 일상 개념 연구로
코젤렉과 라이하르트의 거리
일상 개념, 욕망과 경험의 육화 그리고 너무나 정치적인

3. 풍속・문화론적 연구가 걸어온 길
근대성에 대한 고고학적 탐색
개념과 현실의 역동적 상호작용

4. 일상 개념, 다른 생각과 실천의 가능성
개념사로의 접속과 전환
개념의 시대적 맥락과 역사적 변화
번역어 이동과 개념 편성 체계
개념 표현의 수사적 맥락과 정치적 역학관계
데이터베이스 축적과 통계 활용을 통한 양적 분석
다른 생각과 실천의 가능성을 위하여

2부 개념사로 읽는 근대의 일상과 문학

1. ‘연애’란 무엇이었는가
‘연애’라는 신조어
‘신성한 연애’의 상상력
식민지의 사랑
연애, 문학, 근대인

2. ‘청춘’, 개인적 감성과 사회적 이상 사이에서
젊음의 표상, ‘청춘’과 ‘청년’의 거리
‘청년’과 ‘청춘’의 분화, 그리고 감성의 공공화
해방과 불안의 감성적 딜레마
모던 청춘, 환멸과 냉소의 다른 이름
통속 서사의 청춘, 슬픔과 연민의 표상
개인적 감성과 사회적 이상 사이에서

3. ‘탐정’의 탄생
식민지 탐정소설의 형성
‘정탐/탐정’, 첩보・치안에서 취미・흥미 기호로
‘정탐/탐정’의 분화와 탐정소설 장르의 등장
탐정소설 취미, 계몽과 흥미의 이율배반적 접속
‘기괴/괴기’의 의미 이동과 그로테스크 탐정물의 성립
울트라모던 괴기 탐정의 시대

4. ‘괴기’, 공포 취미와 환멸의 모더니티
괴기 혹은 근대 내부의 타자들
‘기괴/괴기’의 기원과 변천
과학적 탐구 대상으로서의 ‘기괴/괴기’
그로테스크 개념의 유입과 공포의 취미화
‘에로―그로’의 세계상과 환멸의 모더니티
‘괴기’의 근대성

5. ‘명랑’, 규율과 통속이 만나는 지대
‘명랑’의 서로 다른 얼굴들
중세의 ‘명랑’ 개념
식민지적 규율과 자본의 포획
해방 후의 ‘명랑’과 신사회 건설의 활력
국가주의의 귀환과 ‘명랑’의 혼종성
명랑 장르 코드는 어째서 특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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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옮긴이

김지영 지음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한국 현대소설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UCLA, 미시건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을,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한림대학교에서 연구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중등학교 국어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 학생들과 함께 고민하고 있다. 문학을 감상하는 일이 작품의 미적 구조나 작가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기보다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인간의 마음, 관계, 만남에 대해 더 깊고 진실하게 고민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화론적 문학 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연애소설, 탐정소설, 명랑소설, 각종 괴기 서사물을 읽으면서 대중적 감성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변화해왔는지 공부하고 있다. 개념사, 문화사, 문학사의 접속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대중 서사와 대중적 감성의 관점에서 한국 문학사를 다시금 사유하는 연구를 지속하고자 한다.

편집자 100자평
연애, 청춘, 탐정, 괴기, 명랑이라는 일상 개념을 통해 한국의 다층적이고 착종된 근대를 분석하는 흥미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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