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내가 정말 좋아하고 존경하는 분이 선물해 주신 책이다. 돌베개 출판사에서 계셔서 좋은 책이 나오면 종종 이렇게 책 선물을 해주시곤 한다. 코로나19와 마스크라면 전염병에 관련된 의학 분야의 책을 쉽게 떠올리게 되는데 사회학에 대해서 말하다니, 어떤 내용일지 기대가 됐다.
실제로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에 많은 화두가 됐던 것은 전염병에 대한 과학적 논증 보단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켰는지에 대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고찰이었다.
이 책은 ‘거리두기’, ‘돌봄’ ‘가족’ ‘노동’ 등 10가지의 키워드를 통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우리 사회를 여러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얘기한다. 키워드를 보고 "아 기사에서 많이 본 단어네" "대충 이런 얘기겠지"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는 독자가 없길 바란다. 왜냐하면 이 책은 코로나19 시대에 어떻게 우리가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책이 아니라 그동안 언론이 주목해 왔던 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 분야를 깊게 파고드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어떤 사안에 대해 자세하게,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분석하기란 쉽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날것의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제한되기도 하고, 언론에 의해 ‘필터링 된 정보’ 만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린 다양한 매체를 통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원격수업을 받는 학생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정부의 긴급 보육에 의지하는 상황, 감염자들의 동선 공개 등 여러 문제를 마주했다. 그리고 우린 시시각각으로 인터넷에 공개되는 감염자들의 동선과 개인정보를 접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변 사람과 타인의 이야기를 나누며 사회적 거리두기로 멀어진 우리의 ‘물리적 거리’를 메워갔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우리가 쉽게 보고 얘기하는 것들의 이면에는 결코 쉽지 않은 복잡한 상황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누군가의 아이를 돌봄으로써 자신의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보육교사, 학생들이 나오지 않은 강의실을 채움으로써 감염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조교, 동선 공개로 개인의 인적 사항이 유추되어 이웃의 비난을 받는 가족들… 우리가 그마저도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상황을 누군가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전염병의 위험에 방치되고, 다수를 위한 결정이라는 이유로 인권을 보호받지 못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무지한 감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위기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 주변을 경계하는 것은 우리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 누구도 이 전염병에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코로나19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역을 불문하고, 사회적 위치와 재력을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노출되어 있다. 지금 당장 내가 겪는 일이 아니라고 해서 앞으로도 내가 겪지 않을 일이란 보장은 없다. 내가 지금 다른 사람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미래의 나를 위한 행동이기도 하다.
2020년 2월, 한국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고 9월 현재까지 코로나19는 현재진행형이다. 초반에 코로나19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던 시기와 지금의 관심사는 많이 달라진듯하다. 각계의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백신’,’언택트’, ‘뉴노멀’ 같은 키워드를 언급하며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침체되어 있는 분위기에서 벗어나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코로나19와 공존하며 살아갈지 모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하다.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하려는 태도는 분명 우리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발견된, 혹은 발견되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문제들을 애써 외면하며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린다면 이 위기는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올 것이다.
이 책은 ‘작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나도 몰랐고, 당신도 몰랐을 이야기.
함께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