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서얼,혁명가로서의 허균.(자유인으로서의 허균.)

글쓴이 이연경 | 작성일 2005.2.2 | 목록
허경진 지음
발행일 2002년 6월 25일 | 면수 424쪽 | 판형 46판 128x188mm | 장정 양장 | 가격 13,000원

수능에 대비하기 위해서 풀어 본 언어영역 문제집에서 호민론과 유재론을 만났다. 그 글을 읽으면서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이가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과연 허균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익히 들어 알고 있는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사실,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라는 사실 그 외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그가 가끔 나타나는 천재 중의 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사실 나와 내 친구들은(우리 세대라고 말하진 않겠다.) 옛사람을 흠모하진 않는다. 교과서로만 접해 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유교적 사상에 얽매인 고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허균은 다르다. 허균은 홍길동전을 지은 사람이고 서얼들과 함께 혁명을 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 책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교 사상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허균을 서얼 출신이라고 알고 있다. 내 친구들 중에도 허균을 서얼 출신이라고 알고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심지어는 학교 선생님도 계셨다. 그러나 허균은 서얼이 아니다. 명문가에 태어나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허균을 시대의 서얼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허균이 시대의 서얼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허균이 살다 간 시대는 어떠했는지, 허균의 사상은 어떠했는지를 꾸준히 성실하게 따라가고 있다.
군데군데 허균의 저서에서 인용한 글로 허균의 생애와 사상을 근거있게 이해하려 애쓴 흔적이 보인다. 허균이 태어난 해부터 시작해 그가 살아간 시대에 대해 어렵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쓰고 있다. 허균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 허균이 살다 간 시대, 허균의 배경, 인간관계, 저서 등을 고루 다루고 있다.
사실 허균 평전을 읽고 나서 내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허균이란 인물과 책 속의 인물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 책에서 그리는 허균은 내가 생각한 허균보다 더 인간적이다.
허균은 ‘그대들은 모름지기 그대들의 법을 지키게. 나는 나름대로 내 삶을 이루겠노라’라는 시에서 알 수 있듯 모친의 삼년상을 치르면서도 숨기지 않고 기생들과 놀았다. 남녀간의 정욕은 하늘이 주신 것이고 인륜과 기강을 분별하는 것은 성인의 가르침으로, 하늘이 성인보다 높으니 본성을 어길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유교에 얽매이지 않았고 그랬기에 시대의 서얼이었다.
또한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서얼들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귀거래의 꿈을 꾸면서도 가진 능력이 많기 때문에 번번히 파직당하면서도 벼슬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는 허균의 모습도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내가 허균에 반한 것은 허균이 지어 손곡 이달에게 보낸 시에 이달이 ‘순전히 무르익긴 했지만 성당의 풍격을 섭렵하지 못했다’고 말하자 허균이 ‘이 시는 당에 가깝다 또는 송에 가깝다고 할까 봐 걱정됩니다.사람들이 내 시를 보고 이건 허균의 시다 하고 말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반박한 글을 읽고 나서부터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거침없고 시대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천재가 조선사회에서 어떻게 좌절하고 다른 생각을 가지고 혁명을 꿈꾸게 되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허균이 일으키려 했다는 혁명의 전말이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아서인지 책의 뒷부분에 가서 조금은 허술하다는 느낌이 든다.그때부터 허균은 어떤 식으로 혁명을 꿈꿨고 계획했는지 선명하게 그려지지 않고 있다.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이 느꼈다는 세가지 한 중 첫 번째인 이 넓은 세상 중 왜 하필 조선이라는 나라에 태어났는가 하는 의문은 허균에게도 마찬가지인 듯 보인다. 허균이라는 거침없고 자유로운 천재가 재주를 펼치기에는 조선사회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허균은 홍길동전에서 이상사회를 꿈꿨고 실제로 혁명을 계획했다. 실패했지만 그는 나름대로 시대에 맞서, 유교에 맞서 치열하게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군데군데 인용된 허균의 글들을 통해 저자가 그려내고 있는 허균을 이해하려 애쓰다 보면 조금은 허균이 가깝게 느껴진다.

7 +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