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08-18 10:56
만화의 한 장면에 자신의 자동차와 ‘혼인신고’를 하려는 한 사람이 있다. 창구에서 관청직원은 자동차가 사람이 아니므로 불가하다고 하자, 그는 “왜, 안되죠? 나는 저 차를 사랑한단 말이에요.”라고 말한다. 1999년 한 테네시 사람이 실제로 자기 차와 결혼하려 한다. 혼인신고서에 적힌 무스탕의 신원은 출생지 디트로이트, 아버지는 헨리 포드, 혈액형은 10-W-40으로 되어 있다. 공무원들이 신청서 접수를 거부하자 그는 어떻게든 혼인신고를 하고야 말겠다고 맹세한다.
비록 우리가 차와 혼인신고를 하지는 않지만, 우리들의 삶의 대부분과 집착의 대부분은 어쩌면 남자의 경우 자신의 아내와 가족보다는 차에 더 가 있는 것이 사실일런지도 모른다. 자신의 아내와 가족에게는 하루에 한 번도 제대로 마음을 나누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지내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가 운행하면서 마음이 들러붙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보편화된 자동차와 눈 먼 사랑을 하게 되었나?
이 자동차는 그 탄생과정부터가 다른 비자동차 운반수단을 배타적으로 몰아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미국을 포함한 북아메리카의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마차와 자전거, 시가전차, 철도를 정책적으로 몰아내고 자동차기업과 석유기업들의 탐욕을 드러내면서 교통수단의 다양성은 짓밟혀버리게 된다. 이제부터 철저하게 시작된 개인주의적이고도 패스트한 라이프 스타일은 우리 문명을 더욱 비인간적인 환경, 비자연적인 환경으로 이끌게 된다.
자동차와의 결혼생활이 달갑기는 커녕 괴롭고도 고통스러운 원인은 무엇인가? 2부에서는 이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자동차가 대기에 끼치는 해악과 기름유출과 환경오염, 빈부의 격차 문제 등 산적한 문제들이 많이 서술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동차를 운행하는 사람의 직접 비용보다 숨겨진 간접비용이 더욱 심각하다고 저자 캐이티 앨버드는 말한다. 정화되지 못한 환경으로 인해 피해보는 인간의 인간다운 삶의 환경 침해와 그 비용일부의 세금화로 인한 보행자의 부담도 그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동차로 인해 도로에서 학살되는 사람과 생명의 숫자가 인류가 저지른 최악의 비극이라 불리우는 전쟁의 그것보다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자동차는 인류의 편리한 삶의 도구라기보다는 학살도구일 뿐이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오면 아득해지고 마는 것이 바로 이 자동차이다. 자동차문화는 이미 우리 생활 아주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나부터도 출퇴근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왕복 50Km 거리의 직장에 대중교통만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3번을 갈아타서 가야 하고, 그나마 대중교통이 그리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아서 시간으로도 2시간 남짓을 사용해야 한다. 그 뿐인가?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은 승차자가 이용하기에 편하지 않다. 서서 가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난폭운전과 흔들리는 버스, 밀집한 승차인구 등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서 생긴 자동차에 대한 반인류적이고 반생명적이고 반우주적인 학살도구에 대해 아무런 반성과 실천없이 살기에는 양심이 찔린다. 어떻게 하면 될까? 나는 심사숙고 후에 아주 부끄럽고 작은 대안을 내놓을 수 밖에 없음을 깨닫는다. 우선 자동차와 간헐적 별거를 할 것,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고 적당한 거리라면 걸어서 이동할 것을 다짐해본다. 다음으로 먼 안목으로는 직장에서 걷기나 자전거를 활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자동차 운전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어디 직장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바뀌어지는가? 그렇다고 집도 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자동차에 대한 인식만은 늘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면 의식없이 차를 마구 모는 일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나아가 차에 매여 정말 우리 삶에서 필요한 그 무엇을 놓치는 일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