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책중독자의 솔직 담백한 고백서

글쓴이 임동혁 | 작성일 2011.7.8 | 목록
톰 라비 지음
분류 절판도서
발행일 2011년 2월 7일 | 면수 312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4,000원

이 책은 책 제목 그대로 어느 책중독자의 솔직한 고백을 담은 책이다. 저자는 진솔하고도 재치 있는 말투로 읽는 이로 하여금 편안함과 동시에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저자는 자신이 책중독자라고 털어놓으면서 책중독자들의 여러 가지 특징을 말해주고 있는데 자신의 경험담과 더불어 실제 사례를 들어주어 신뢰와 공감을 동시에 얻고 있다. 많지는 않지만 책 몇 군데에 특이한 삽화가 그려져 있는 게 이 책의 특징인데 그 별난 그림이 약방의 감초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어서 보는 재미까지 더해주고 있다.

이 책은 총 1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수집광들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는 ‘수집광’이라는 제목의 파트에서 수집광들이 보이는 몇 가지 특징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 수집광들은 ‘희귀성’에 환호하고, 책의 ‘상태’에 집착하며, ‘초판본’에 완전 열광하고, ‘서명, 기명, 증정본’을 강렬히 원하며, ‘오자’를 사랑한다고 한다. 이 중에서 희귀성에 환호하는 것을 제외하곤 책 수집광들과 난 정반대의 특징을 보이는 것 같다. 책중독자들과 내가 어떻게 다른지 하나씩 따져보도록 하겠다.

먼저 난 책 수집광들과 달리 책의 상태에 집착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 책을 읽을 땐 책의 상태에 신경을 쓰긴 한다. 누가 읽었던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라 새책을 선호하고 깨끗하고 온전한 상태의 책을 갖길 원한다. 하지만 일단 책을 집어 들어 읽기 시작하면 나와 책 수집광들 사이의 공감대는 멀어진다. 난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는 책의 상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책을 되도록 더럽게 보자는 주의라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 공백에 메모하고 끝부분을 접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색칠하고 줄긋기 바쁘다. 그래서 다 읽고 난 책은 중고서적에 내다 팔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나빠진다. 책을 험하게 보진 않는데 여러 번 접었다 폈다 해서 그런지 책의 어느 부분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책의 내용에 집착하고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난 별로 개의치 않는다. 수집광이라면 절대 내가 한번 읽은 책들은 모으려 하지 않을 것 같다. 이것이 나와 책 수집광들 사이의 첫 번째 차이점이다.

그리고 난 책 수집광들과 달리 초판본에 열광하지 않는다. 난 신간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것이 초판이든 재판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내용이 좋고 내게 도움이 되는 책이라면 언제 혹은 어느 시기에 찍었든 난 상관없다. 더불어 난 저자의 서명이 있든 기명이 있든 별로 관심이 없고 증정본이라고 해도 다른 책과 똑같이 취급하기 때문에 이런 특징은 내게 의미가 없다. 내겐 저자가 직접 사인해서 보내준 증정본도 있고 내가 직접 받아 사인본이 된 책도 몇 권 있는데 그 책들은 내게 그리 특별한 대접을 받고 있지 않다. 난 책을 통해 저자와 교감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에 더 의의를 두지 저자의 흔적이 남아 있고 없고는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수집광들과 내가 다른 점은 오자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실수는 수집광들에겐 또 다른 굉장한 아이템이라고 한다. 책 속의 오류는 그 책의 가치를 높이고 심각하면 더 심각할수록 책의 가치가 올라가 책 수집광들이 열광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난 오자가 있는 책을 절대 반기지 않는다. 오자를 찾아내서 출판사에 얘기해줄 정도로 난 오자가 있는 책을 매우 싫어하는 편이다. 전에 이문열 작가의 <<삼국지>>가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 난 그 책에 열광했고 무척 아꼈다. 그런데 몇 번 읽으면서 오자를 하나 둘씩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 일이 있은 후론 내용에 신경 쓸 뿐 <<삼국지>>를 애지중지하지 않게 되었다. 내 보물 1호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던 책이었지만 오자들 투성이란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보물 목록에서 완전히 제외시켜 버린 것이다.

지금도 난 오자가 있는 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이 세상에 나오기 전에 편집하시는 분들이 여러 번 책을 읽어서 오자 내지 오타를 없애려고 노력을 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오자(오타)가 난무한 책들이 자주 눈에 띈다. 평범한 오타는 애교로 봐줄 수도 있지만 내용의 흐름을 끊기게 하고 상황을 이해 못하게 하는 경우는 곱게 봐줄 수가 없다. 물론 이런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도 서평을 쓸 때 오타를 종종 남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내가 우연이라도 오타를 발견하게 되면 부끄럽고 민망해서 오타가 있는 부분을 바로 수정한다. 사람이 완벽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최소한 완벽하려는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책 수집광들은 자신이 쓴 글에 오자 내지 오타를 발견해도 그렇게 좋아하고 수집하려 들지 궁금하다. 그들도 자신의 글에서 오자를 발견하게 되면 미소가 지어지는 대신 민망해서 얼굴부터 붉어질 것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다독가들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는 ‘돌연변이들’이라는 제목의 파트에서 ‘정상적인 책중독자들’과 다독가들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서 저자는 다독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다독가들은 자기가 읽는 책의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책을 너무 빨리 읽기만 해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나 또한 이점에 대해서 크게 공감한다.

예전의 난 그저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똑똑해지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난 생각 없이 이 책 저 책을 그저 읽기만 했다. 당시엔 서평을 통해 읽은 내용을 정리할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더욱 읽기에만 몰두했던 것 같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한창 책 읽기에 빠졌을 때 읽은 책이 뭐였는지 떠올려보면 기억나는 작품이 거의 없다. 분명히 어렸을 때 상당히 많은 양의 책을 읽은 것 같은데 내 머릿속에 지우개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당시에 읽었던 책의 제목은 물론이고 그 내용이 전혀 기억나질 않는다. 만약 그때 독후감을 쓰는 버릇이 있었거나 혹은 메모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심하게 읽은 책을 기억하지 못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아직까지도 하시는 분을 최근 어느 출판사 모임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분은 대형서점에서 자신이 읽었던 책을 기억하지 못해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은 적도 있고 같은 책을 여러 번 구매한 적도 있다고 고백하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날 모인 분들의 절반이 그런 경험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를 비롯해서 그 날 모인 분들은 책을 좀 읽는다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책을 읽고도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내용을 잘 기억한다고 말한 사람은 평소 메모를 잘한다는 분과 나뿐이었다. 이와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메모를 하면서 잘 읽든가 정리를 염두에 두고 책을 읽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은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얼마나 정확히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책을 얼마나 많이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많이 읽어도 기억하지 못하고 책에서 말하는 진리를 깨우치지도 못한다면 그런 독서는 의미가 없다. 삶의 지혜와 지식을 얻기 위해 독서를 하는 것인데 단순히 과시용으로 읽는 것이라면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예 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단 다독가가 나을지 모르지만 둘 다 머릿속이 비어있는 건 마찬가지이므로 빨리 많이 읽는 데만 연연할 것이 아니라 한 권을 읽더라도 인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제대로 독서를 하는 것이 바람직한 독서가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책 중독자들이 전자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저자는 ‘상상 속의 책방’이라는 파트에서 왜 책 중독자들이 전자책을 꺼려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를 네 가지 정도 언급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책 중독자들이 전자책을 선호하지 않는 이유로는 손가락으로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고, 여백에 메모를 할 수도 없으며, 손으로 책을 만질 때 느껴지는 촉각적인 즐거움도 없고, 잉크와 종이 냄새도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감하는 바가 크다. 나도 이와 같은 이유로 전자책을 꺼리고 종이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백에 메모를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전자책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에 가장 공감한다. 난 책을 읽을 때 항상 볼펜과 형광펜을 챙긴다. 그 이유는 책에 메모도 하고 표시도 하기 위해서다. 이는 여러 권의 책을 한꺼번에 조금씩 읽기 시작하면서 붙인 습관인데 서평을 쓸 때 효과적이라 계속 이런 방식으로 책을 읽고 메모를 남기고 있다. 이렇게 하면 그냥 책을 읽고 서평을 쓸 때보다 더 알찬 내용을 서평에 담을 수 있고 당시의 생각과 느낌을 생생히 전할 수 있어서 즐겨 사용한다.

그런데 만약 메모를 하지 못하게 하고 책을 읽고 서평을 쓰게 한다면 내용 요약은 그럭저럭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읽을 당시의 그 느낌을 전할 수 없어서 서평의 질이 떨어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평을 통해 글을 좀 더 잘 쓰려는 내 목표에 차질을 주기 때문에 전자책을 꺼리는 것이다. 전자책에도 메모 기능이 생겨서 여백을 활용할 수도 있고 밑줄을 그을 수도 있게 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서는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갈아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책 냄새를 맡으며 종이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도 나름 좋아해서 이런 묘미를 전자책이 살려주지 못하는 한 내 사전엔 전자책은 들어오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세상엔 수많은 중독들이 존재한다. 게임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 등 중독이란 단어가 붙은 것 치고 좋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중독은 인간에게 해가 된다. 나 또한 한때 게임중독으로 고생을 해본 적이 있어서 중독의 무서움을 매우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중독은 마땅히 경계하고 꺼려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단 하나 중독이란 단어가 붙은 말 중에서 인간에게 득이 되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책중독이다. 책중독은 중독이란 단어가 붙어있지만 결코 인간에게 해롭지 않다. 아니 오히려 책중독에 빠지면 삶이 풍요로워질지언정 궁핍해지진 않는다. 지나치게 책을 수집하거나 쌓아두지만 않는다면 책중독만큼 좋은 중독은 세상에 없다고 본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긴 하지만 그래도 책중독만큼은 예외로 해두고 싶다. 책 중독자의 삶이 어떠한지 궁금하거나 자신이 과연 책중독자인지 아닌지 판단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볼 것을 권하는 바이다.

인상적인 글귀

“책들은 책 주인에 대해 뭔가를 말해준다.”

“책을 빌려주는 것은 책에 ‘안녕’을 고하는 것과 진배없다.”

6 +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