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를 동시에 꿰뚫는 몇 가지 문화 코드들이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사군자이다.
옛사람들은 자연에서 자신을 대변할 아바타를 찾았었다. 직언이 금기시되고 SNS도 없던 시절이니… 멀리까지 자신의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웅변할 소재를 찾았던 것이다.
지금은 명품 백을 들고, 명품 시계로 멋을 부리며 외제차로 치장해서 자신의 부로 자신의 무지 몽매함을 감추려 하지만, 당시에는 철학적, 사상적, 학문적 완성도를 높이는 몇 안되는 툴 중의 한 가지가 이 사군자를 기르며 감상하거나, 그림으로 그리거나 소유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수양도 하고, 소통도 하는…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화초를 가꾸듯 자신도 가꾸며 공부하고 노력하는…
외국의 그림이나 생활과 연관된 문화와는 조금은 차이가 있다. 사대부 손에 의해서(전문 화가의 손이 아닌) 그림이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점이 조금 특이하기는 한데…
글을 쓰던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한 개의 붓으로 그림을 그린 뒤 시제를 붙여서 그림의 빈 공간을 글로 완성하고, 그 그림을 본 다른 사람들은 그린 사람에게 글을 다시 그 그림에 남기는(마치 페이스북에 좋아요, 댓글을 달듯이)….
멋진 그림에 댓글을 다는 놀이는 아주 운치 있는 놀이 중의 한 가지였으리라… 얼마나 멋진가… 페이스북, 블로그의 원조격 되겠다.
사군자 그림을 보다가 보면 눈에 보이는 풍경을 정물로 옮기는 것과 추상으로 옮기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 선조들은 사군자를 정물로 옮기기도 하고 사상과 철학을 담았기에, 철학적으로 살짝 비틀려진 사군자를 읽는(보는 것이 아닌) 멋(맛)을 만날 수도 있다.
어떤 이는 사대부들의 글을 쓰는 붓놀림과 그림을 그리는 붓놀림이 비슷하다고도 말하여, 사대부의 글(전예해행초)과 그림은 병행할 수 있었다라고도 한다… 하지만 붓과 종이, 먹과 물 사이의 조화를 글에 준하여 병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이 든다… 하지만 쓰고 또 쓰고, 붓질을 하고 또 하며 붓을 다스리며, 자신을 다스리고, 세월을 다스리고 나라를 다스렸으리라….
지금껏 전해오는 명작 『사군자』 작품들은 이 책에 다 들어있다. 물론 최근 5만 원권에 들어있는 어몽룡의 월매도와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면… 요즘 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적 지식이 어디까지인가를 알게 되어 씁쓸함을 피할 수도 없다… ㅠ.ㅠ
아무튼…
얼어붙은 겨울 땅, 눈보라를 뚫고 이른 봄에 꽃을 피우는 매화, 한결같이 은은한 향을 피워내 곁의 사람까지도 향기롭게 만드는 난, 봄, 여름을 내내 참고 참아 다른 꽃들이 다 시들어지는 가을에 찬서리 맞으면서 고고하게 꽃을 피우는 국화, 사계절의 모진 풍파를 결코 굽힘 없이 견디어 내고 한겨울에도 그 색을 잃지 않는 대나무에서 사대부가 가야 할 군자의 길을 보았기에 이 『사군자』를 자신의 분신이라 여기며 때론 분재로, 때론 꺾꽂이로, 때론 뒷마당에 심어두기도 하면서 그림 속에 그 이상향을 덧대어 족자, 병풍, 벽화, 도자기 등에 구현을 했었다.
이 책은 한국의 사군자가 어떤 사람에 의해 어떻게 그 시절과 사상을 넣어서 그려지고 남겨져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전해지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책이다.
지금에 전해지는 사군자, 매란국죽은 지금껏 큰 변화가 있겠는가 마는… 시대에 따라, 그린 이의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어떤 의미를 사군자에 담았는지의 스토리도 같이 들어보면, 그 그림을 그리는 사람마다 다른 향기가 그림에 묻어서 따라온다.
머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글과 그림에는 사상과 이즘이 녹아있는데 그 녹아든 스토리를 듣고 다시 그 글과 그림을 보면… 상당히 다른 느낌이 온다…
때론 서늘하게.. 때론 안타깝게….
책의 주요 내용을 조금만 담아 온다.
매화는 겨우내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꽃망울을 맺고 있다가 새봄이 오는 것을 알려 주듯 이른 봄에 꽃을 피운다. 이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군자나 지사, 세월 속에 은자, 또는 지조 있고 고상한 여인에 비유되기도 한다.
난은 산중에서 비와 이슬을 받아 살면서도 빼어난 잎에 고운 꽃을 피우며 은은한 향기를 멀리까지 보낸다. 본성은 바람과 물을 좋아하지만 이 또한 지나치는 것을 꺼리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난의 생태적 특성에서 옛 문인들의 중도의 도를 지키는 군자의 품성을 보게 되었다. 산속에 홀로 피어 있으면서도 스스로 절제하는 향기로운 삶은 군자의 삶의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국화는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꽃이다. 모든 꽃이 피었다 지고 없는 늦가을, 그제서야 조용히 서리를 맞으면서 피는 모습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뭇 꽃이 피는 봄, 여름을 다투지 않고 찬 서리가 내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꿋꿋함은 늘 남들보다 뒤에 자리하면서도 더욱 향기롭게 빛나는 군자의 모습이다.
대나무는 곧게 자라 휘어질지언정 쉽게 부러지지 않는 강직함이 있다. 속은 비어 넉넉하면서도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다. 한겨울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푸른 잎들을 그대로 간직하며 곧게 뻗은 늠름한 모습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는 군자의 삶이다.
이런 매란국죽을 사군자로 정한 것은 다분히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에 맞추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는 선비를 군자라 하는 만큼 사군자라는 용어는 원래 뜻이 높은 네 사람을 일컫는 말로 춘추전국시대 중국에서 유행하였다. 당시 "제나라의 맹상, 조나라의 평원, 초나라의 춘신, 위나라의 신릉 등 네 군자는 모두 밝은 지혜가 있으면서도 충성스러운 믿음이 있었고, 간대하고 후덕하면서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으며, 현자를 존경하면서도 선비를 중요하게 여겼다"고 하여 사람들은 이들을 사군자라 불렀다 한다.
문인화로서의 사군자화는 서로를 이해하는 문인들 사이에서 감상되었을 뿐 값을 매겨 거래되지는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시대부터 중양절에 임금과 신하들이 연례적으로 모여 시를 짓고 국화를 감상하는 모임을 가졌으며, 고려시대에는 이 모임이 정례화되었다. 조선시대 왕들은 중양절에 신하에게 국화분이나 국화주를 하사하기도 하였다.
조선 초중기에 가장 성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인들 스스로도 묵죽을 즐겼을 뿐 아니라 화원화가들 사이에서도 많이 그려졌다.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을 뽑은 시험에서 가장 배점이 많은 화목이 묵죽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묵죽 다음에 산수, 인물 그리고 화조와 영모화 순이었다. 도화서 화원화가를 뽑는 시험에서도 산수, 인물보다 더 우선시 되었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수묵화의 비중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바탕 비바람이 대숲을 훑고 지나간 후의 상쾌함을 소쇄(瀟灑) 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원림으로 유명한 담양의 소쇄원도 바로 이러한 시원함에서 그 이름을 지었다. 소쇄원 입구에는 키 큰 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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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매란국죽으로 피어난 선비의 마음 - 이선옥지음/돌베개] 동아시아를 동시에 꿰뚫는 큰 문화적 코드인 사군자가 어떻게 태어나 우리에게 전해지고, 어떤 시대적 배경에, 어떤 상황에 처한 그 누군가의 그림이 어떻게 그려져 지금에 이르는지 알아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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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많은 사군자 그림을 감상하며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니 2달이나 걸렸다.
10년에 걸쳐서 돌베개 출판사에서 출간한 테마한국문화사 10권 중 사군자를 읽음으로 모두 읽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