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을 옮겨 놓은 책이다.
저자는 1944년 2차 세계대전 말에 지하 운동을 하던 중 체포당해 아우슈비츠로 이송되어 제3 수용소에서 1945년까지 포로로 생활한 이야기를 그린 그의 처녀작이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가 겪은 일들을 생생하고 차분하게 끝까지 한 번의 반전도 없이 잔잔하게 써 내려간 책이다.
이 "반전 없이 잔잔하게"가 때로는 너무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감정의 표현을 절제하고 사실에 촛점을 두고 쓰다 보니 일상적인 포로생활의 반복으로 느껴져서 가끔은 "앞 페이지와 뒷 페이지 내용이 다른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전쟁과 포로수용소가 왜 생겼고, 나치스들은 왜 그렇게 유대인들을 못살게 굴었을까… 등등의 많은 궁금한 사항이 발생하는데 친절하게도 후미에 그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들을 옮겨 적고 그 답을 달아두어 전쟁과 아우슈비츠, 독일인들의 사상 등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17개의 작은 소제목으로 나누어서 그의 포로수용소(감옥) 이야기를 그린 뒤에 4부의 부록이 책 후미에 실려있다.
최초 이 책은 1947년 조그만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는데 처음에는 초판 2,500부가 인쇄되어 추가로 인쇄되지 않고 그의 말에 의하면 "망각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모두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고통스러웠던 전쟁을 누구도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가 그 주된 이유 중 하나였었다. 1958년 이후 에이나우디 출판사에서 다시 출판되면서 책은 새 생명을 얻어 5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고 8개 국어로 번역되고 라디오 드라마, 연극으로 공연 되기도 했다.(책을 보는 내내 쉰들러 리스트가 생각났다는….)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 전역에서 많은 학생들이 의견을 편지로 혹은 개인적으로 전해온 내용에 대해서 자신을 소개하고 질문에 답하는 내용들로 구성되어있다.
이 질문과 대답 속에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내용들이 다 담겨있다.
1. 당신의 책에는 독일인들에 대한 증오도 원한도 복수심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다 용서한 것인가?
2. 독일인들은 알고 있었나? 연합군은 알고 있었나? 수백만 명의 집단 학살이 어떻게 유럽 한복판에서 아무도 몰래 진행될 수 있었나?
3. 수용소에서 탈출한 포로들은 있었나? 집단적인 반란은 왜 일어나지 않았나?
4. 아우슈비츠가 해방된 뒤 다시 찾아가본 적이 있는가?
5. 레비는 왜 독일 수용소만 이야기할 뿐 러시아 수용소는 언급하지 않는가?
6. 자유의 몸이 된 후 [이것이 인간인가]의 등장인물들 중 다시 만난 사람이 있는지?
7. 유대인에 대한 나치스의 광적인 증오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8. 수용소 포로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당시를 떠올리면 어떤 기분인지? 어떤 요인들 덕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지?
그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 글을 써서 책으로 나와 내게 오게 되었다.
그의 생존의 비법은 책의 부록 말미에 그가 이렇게 말한다.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 중에 단 5%도 안되는 사람이 살아남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5% 중 대부분이 가족, 친구와 재산, 건강, 균형감각, 젊음을 모두 잃었다. 내가 살아남아 무사히 돌아온 건 대부분 운이 좋아서였던 것 같다. 수용소로 들어가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것, 그러니까 등산으로 체력이 단련되어 있었다거나 화학자였다는 것의 역할은 그리 크지 않았다.
아마도 지칠 줄 몰랐던 인간에 대한 관심이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살아남아 우리가 목격하고 참아낸 일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의지가 생존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흑과 같은 시간에도 내 동료들과 나 자신에게서 사물이 아닌 인간의 모습을 보겠다는 의지, 그럼으로써 수용소에 널리 퍼져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낸 것이 도움이 되었다.
전쟁보다도, 포로수용소 생활 보다 더한 무한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인들… 언제부터인가 산나무에 물이 올라 파릇해지고, 장미가 피는 계절의 여왕이라 할 5월이 잔인한 달이 되어버린 지금…. 부도덕한 권력과 부패한 정치인들이 넘쳐나는 이런 시기에 그의 마지막 마침 글은 많은 울림을 남겨준다.
"굴욕과 부도덕에서 나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고집스럽게 지켜낼 필요성은 1944년에만 필요한 요건이 아니라 70년 세월을 넘은 지금에도 필요하다는 사실에 안타까울 뿐이다.
"이것이 인간인가? 어떤 것이 인간인가?"를 그는 묻고 있다.
안타깝지만 그는 1987년 토리노의 자택에서 돌연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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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지음/이현경옮김/돌베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던 저자가 많은 수인들을 정신적 조난자로 만들었던 곳에서, 굴욕과 부도덕에서 자신을 지켜내었던 일들을 잔잔하게 그려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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