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그림속 양반의 한평생 – 허인욱지음/돌베개

글쓴이 조통 | 작성일 2015.2.13 | 목록
허인욱 지음
발행일 2010년 9월 6일 | 면수 287쪽 | 판형 국판 148x210mm | 가격 17,000원

옛 그림 속 양반의 한평생 – 허인욱지음/돌베개

휴일 오후에 시간을 내서 얼마 전 파주 출판단지 돌베개 출판사 1층 행간과 여백에서 열린 신영복교수의 독자와의 대화 시간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말씀을 재미나게 하시고 의미 있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중의 한 가지가 내 마음에 확 와 닿았는데, 그 내용은….

신영복 교수는 연초에 자신에게 들어온 그림이 있는 큰 달력을 버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곳에 출판과 관련된 큰 그림을 연필로 그리고… 처음에는 이렇게, 마지막 부분은 저렇게… 중간에 자료는 어디서 따오고, 어떤 자료를 여기 배치하고… 그리고 또 수정하고… 연필로 쓰는 이유가 수정하기 위함이고, 큰 달력의 뒷면을 이용해서 쓰는 것이 전체의 줄기를 놓고 가감하기 위함이라고…. 나도 큰 달력 하나 구해서 체계를 좀 잡아가면서 공부를 할까? 그리 정리해서 머지않은 시일 내에 나도 역사와 관련된 책을 한 권 내불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ㅋㅋㅋ^^

아무튼~

역사에 대한 지식이 백지장처럼 얇고, 살얼음판처럼 위태로운 것이어서 지금은 여러 종류의 다양한 사료와 자료들을 접하면서 그저 받아들이고 있다. 출판사와 작가를 보는 눈도 조금 생겼고,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지 못함 또한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이가 말을 익힐 때 많은 다양함에 노출되어 가면서 말을 익히듯이 그저 많은 다양함에 노출되고 익히고 있는 시기라고 나는 판단한다. 그래서 그냥 여러 가지 사료와 자료를 접하고 있다.

그런 질풍노도의 시기에 돌베개의 추첨 행사(매주 금요일에 페이스북에서 실시하는 페북 친구 추첨 행사)에 응모하였다가 추첨에서 당첨되어 선물 받은 [옛 그림 속 양반의 한평생]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조선 양반의 일생’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준비하면서 역사를 전공하였지만 정치사 중심의 역사에 매몰되어 있다 보니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그들이 입었던 옷, 그들이 치럿던 행사 등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던 것을 돌아보고 여러 자료를 통해 당시의 모습을 재현하려고 애썼던 덕분에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인 ‘평생도’를 보면서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양반의 삶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간다. 그림에 대한 해설은 책을 사서 보시고~ 주요 내용을 옮겨 보자면~

삼신은 아기를 점지하고 산모와 아기를 돌보는 신령이다.

남원 수지마을에서는 아이를 낳은 후 방 윗목에 삼신상을 차렸다. 아기를 낳은 지 초사흘이 되면 다시 차리고 이레마다 삼신상을 차려 삼 이레, 즉 21일까지 빌었다. 삼신은 ‘살다"(生)에 어원을 두었다고 여겨지는 ‘삼’에 신(神)이 합쳐진 생명이나 생산의 여신을 말한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남자는 열다섯, 여자는 열네 살이면 결혼할 수 있었다. 그 이전에 혼례를 의논하는 의혼은 아들딸의 나이가 열세살이 되면 가능했다. 더 어린 나이에도 가능했는데, 두 집안의 부모 가운데 지병이 있거나 부모의 나이가 만으로 쉰이 넘고 열두 살 이상 된 자녀가 있을 때는 관에 신고하면 혼인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혼행’은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직접 맞이하는 의식, ‘신행’은 신부가 신랑 집으로 가는 것을 말함. 모든 혼인 의식을 끝낸 후 신랑은 첫날밤 신부 집에서 지내고 사흘 정도를 묵는다. 그 후 신부는 신행 절차를 밟아 시댁에 들어가 시부모에게 폐백을 드리고 현구고례를 한다. 신행은 대개 3일 신행이라 하여 사흘째 되는 날에 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신부 집 형편이 넉넉할 때는 수개월, 심지어는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 친정에서 묵다가 신행을 하기도 했다.

과거를 보는 날 응시자들의 옷과 소지품을 검사했는데, ㅣ책을 가지고 들어가는 자는 처벌하는데 시험장 밖에서 걸리면 1식년, 안에서 걸리면 2식년 동안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박탈했다. 식년은 3년에 한 차례씩 정규적으로 실시하는 식년시를 말하니, 1식년은 3년, 2식년은 6년 동안의 시험 자격을 박탈한 것이다.

조선시대 생원, 진사에 급제한 이들의 평균 연령은 15세기 25.72세, 후기인 19세기 37.81세로 평균 34.56세, 문과 합격자 1만 5천151명 중 최연소 합격자는 만 열다섯으로 고종 3년(1866)에 붙은 이건창, 최고령 합격자는 여든다섯으로 고종27년(1890)에 붙은 정순교. 과거 합격은 경제적 가치보다는 사회적 가치 때문

부친상에 대나무 지팡이, 모친상에는 오동나무 지팡이를 짚은 이유는 아버지는 하늘로 둥글고, 어머니는 땅으로 네모나다는 ‘천원지방 천지부모'(天圓地方 天地父母)라는 사고에서 비롯. 이는 남녀 차별적인 사고가 아니라, 아버지는 남자라 양이고, 어머니는 여자라 음이라는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요즘 사람들이 태어나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또는 의,판검사?)을 얻기 위해서 올인하여 인생을 투자하듯이 예전에도 과거 급제를 통해서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관직을 얻으려고 부단히 애를(돈과 시간을) 썼다. 과거에 관직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집안을 일으키지 못 했다…라는 죄인으로 살았듯, 지금도 한 집안에서 어른이 되어(대학을 졸업하고도 실업자가 되어)서도 생계를 도모하지 못하고 집안을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들이 설자리가 없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보인다.

다시 신영복 교수의 강의 내용이 떠오른다…. 대학을 가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시간(청춘의 대부분)과 돈(부모 가처분 소득의 대부분)을 써가면서 대기업의 훌륭한 일꾼을 양성하는데 그 사람들을 사용하는 대기업과 국가에서 일부를 분담하거나 대부분을 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 거기다 거의 모든 대한민국의 기업들과 사회가 대졸자 신입사원을 원한다면… 공교육의 마지막 단계는 대학이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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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그림속 양반의 한평생 - 허인욱지음/돌베개]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양반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삶을 문헌과 그림 외에 부족한 부분은 민속학 분야를 참고하여 사회상을 재구성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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